제 4 부 : 삶의 완성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죽음, 모든 사람의 완성>
266. 이 부분은 우리의 신자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은 적은 부분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이야기할 때, 신앙인으로서의 완성은 하느님과의 일치로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일치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과 결합할 때, 즉 죽음으로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음에 대해서 자신있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경험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대하여>
267. 죽음의 문제
인간은 누구나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가리켜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도 합니다.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지만, 그 역할은 나를 대신해서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 걸까? 그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옛날 중국의 진시황도 죽지 않으려고 별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가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신비 속에 머물러 있는 죽음이라는 실체. 이 신비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는 거부나 반항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반성의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268.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구약성서에 의하면 죽음은 ‘죄의 결과’(창세기 3,19-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입니다.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교만과 불순종, 하느님을 향한 반역 때문에 죽음으로 결말을 맺은 많은 경우를 우리는 성서에서 볼 수 있다.
이사야 25,7-8에 ‘하느님이 머무시는 산에서 잔치를 벌리시고 백성들의 얼굴을 가리웠던 너울을 찢으시며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리라’고 약속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또한 호세아 13,14에는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빼내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고린 15,54-55에 ‘이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을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라는 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요한 11,25-26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이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죽고 땅에 묻히신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신앙은 가르치고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만일 이렇게 다시 살아난다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전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헛된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그 분의 편지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신앙에서는 새로운 삶의 본보기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이며, 그분의 삶을 우리가 이 땅에서 실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고,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一致)를 이루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269.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뒤섞여 범람하고 있습니다. 악(惡)이 선(善)의 이름으로 위장하기도 하고, 선이 악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러한 모순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설 때,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태오 복음서 25장 최후심판의 비유). 하느님의 그 판정에 따라서 우리는 천국과 지옥과 연옥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들게된다.
270. 천국과 지옥과 연옥
1)천국 : 하느님이 계시는 곳. 축복 받은 자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며 영원한 생명의 나라(마태 25,31-46참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오른쪽의 강도에게 약속하신 곳(루가 23,43참조). 하느님과 함께 사랑으로 일치되어 충만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
2)지옥 : 천국과는 상반되는 곳. 하느님과 분리되고 단절된 상태, 무자비하고 게으르며 저주받은 자들이 가야 할 곳(마태 25,31-46참조). 루가복음서 16장 19-31에 나오는 표현에 따르면, 부자가 고통을 받고 있는 곳이며, 다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된 곳을 가리킨다. 이 곳에 가야 할 판정을 받는 이들은 누구이겠는가? 루가 복음서 이 부분에서는 사랑의 실천을 하지 않은 대상을 지칭하고 있다.
3)연옥 : 성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개념. 사람의 아들을 모독한 이는 용서받을 수는 있다(마태 12,32)는 말을 하심. 교회는 초기부터 기도와 미사로써 연옥에 있는 영혼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가르쳤으며,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과 서로 통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기도한다.(사도행전의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을 믿으며’와 ‘우리가 훌륭했지만 이미 죽은 이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도 같은 이치)
271.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분이다. 이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산다. 실제로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느님 앞에 설 때 완전하게 자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사랑이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안에서 결실을 얻을 때까지 충실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272. 세상의 완성(=종말)
예수님은 여러 번 세상의 완성과 그 날의 분위기에 대해서 복음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한 사실의 묘사라고 하기보다는 신앙의 위기와 시대적인 위기를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세상의 완성(사도행전 1,7=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주실 때가 지금인가?)에 대해서 묻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결정하셨으니 알 바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다. 분명히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변해가고 달라지겠고 사라져 버리겠지만(1고린 7,31) 착한 행위와 그 업적은 영원히 남는다.
273. 그리스도의 재림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사(救世史)의 목표이며 출발점이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재림과 세상의 완성에 대한 많은 가르침들의 목적은 ‘선과 악이 혼돈되어 있는 현재의 역사가 끝나고, 眞, 善, 美 자체이신 하느님과 그분을 따르는 이들이 승리할 것이며, 구원의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이의 구세주이시며 주님이심이 만방에 밝혀질 거라는 가르침’이다.
274. 육체의 부활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다시 살 것이라고 가르쳐왔다(요한 11,25). 이런 가르침을 따라서 교회는 세상이 완성되는 날에 모든 인간이 부활하여 하느님 앞에 서게 될 것임을 믿고 가르쳤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선인이든 악인이든 부활 할 것이다(1고린 15,13-14). 예수님은 육신을 지니고 부활 승천하셨지만 생명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가셨다. 육체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교회의 가르침의 의도는 ‘인간이 단순히 영혼만의 존재가 아니며, 영과 육이 결합된 존재로서 그 육체는 소중한 것이며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살도록 부르심 받았다’는 점에서 전인간이 변형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275. 공심판(公審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모든 이들이 부활할 때에 사람각자는 있는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그때는 아버지의 나라가 해와 같이 빛날 것이며(마태13,43), 밀과 가라지가 분리되고,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구별된다. 즉 공심판은 모든 것이 완성되고 마무리짓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심판기준은 마태 25장처럼, 이웃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사랑했는가?’이다.
공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희망을 주는 것이며, 그때를 올바로 맞고 현세 생활을 윤택하게 해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생활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죄와 양심에 대하여>
276. 객관적인 윤리규범인 자연 도덕률(자연법)
인간은 선한 것을 식별하고 그것을 바라고 살아간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인간다운 행위를 함으로써 자아를 성취하고 책임을 진다. 인간은 자기존재의 근원인 하느님에게서만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처신해야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안다. 또한 우주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설정한 질서(신법)에 의해 지배된다. 인간은 이러한 하느님의 진리를 알아듣고 책임을 지고 지켜나가게 되어있다. 이것이 이성의 규범이다.
277. 양심 -- 주관적 규범
인간은 윤리행위를 위한 객관적인 규범(법)외에 이것에 호응하는 내부의 기능이 있어서 구체적인 윤리행위를 하도록 이끈다. 이것이 양심이다. 이는 행위의 주체자에게만 소속되는 것으로 주관적 규범이라 한다. 양심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안방이요, 하느님이 계시는 지성소이며 그분의 법의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이 법의 소리는 인간에게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행하고 악을 피하라고 한다. 인간은 양심에 순종해야 하며, 양심(良心)과 인정법(人定法)이 충돌될 때에는 양심을 먼저 따라야한다고 가르친다.
278. 죄란 무엇인가?
인간은 자아를 성취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자기 실존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거부하며 저항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아담이 행한 의도적인 어김이며(외적인 행동), 하느님과 같아지고자 하느님과 경쟁하고자 하는 태도로 생각한 것이다.(내적인 행동) 결국 하느님을 거부하였고 자신을 선과 악의 판단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죄란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그 분의 계명과 질서와 조화를 깨뜨리며 그 분의 초대를 거절하고 그 분과 대등해지려고 하며 그 분께 용납될 수 없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아닌 피조물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는 내적인 자세와 외적인 행동이 다 문제되는 것이다.
죄는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행위를 그릇된 줄 알면서도 자유로이 의도적으로 행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대죄와 소죄로 나누기는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죄(死罪)와 용서받을 수 있는 죄로 구별한다.
279.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죄의 결과로 인간은 하느님과의 친분관계를 잃었고 낙원에서 추방되었으며 인간사이의 갈등도 생겼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도 보내주셨다. 죄인을 구원하러 그리스도는 오셨으며(마태 9,13), 죄가 없으신 분(요한 8,46)으로서 죄를 없애고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셨다.
280. 인간의 응답
인간이 이 하느님의 사랑을 수용할 때에 비로소 구원이 될 수 있다. 죄가 자유의지의 소산이듯이 하느님의 사랑 역시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표시로서, 인간은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려야 하며,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해야 한다. 주님의 초대에 응하는 것이 구원이다. 이 초대에 응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바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생활이다.
281. 믿음의 생활
믿음이란 하느님의 초대에 인간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응답하는 것이다. 믿음의 대상은 하느님과 그 분의 구원계획이다. 이 믿음은 감상적인 것이 아니다. 확실히 내용을 알고 맡기고 동의하는 것이며 자신을 의탁하는 사랑의 행위이다.
세례를 받을 때 주어지는 믿음은 내가 어떻게 키워 가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 믿음의 대상과 내용을 더 잘 알도록 성서를 읽고 기도하며 성사생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믿음에 따라 우리의 행위가 달라져야만 참되게 살아있는 믿음이 된다.
282. 희망의 생활
희망은 우리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며, 이는 믿음에서 나온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이 희망은 때때로 실패로 끝나는 인간의 희망과는 다른 것이다.
하느님께 바라는 이 희망은 미래에 올 추상적이고 공허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 하느님 나라의 상속, 영원한 생명, 현세에서 기쁨과 행복이라는 구체적인 것이며, 결국에는 세상 종말에 이루어질 모든 사람들의 완성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의 일에서 쉽게 실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느님께 희망을 두지 않고 인간의 현실에만 집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느님께 대한 희망의 포기는 커다란 잘못이며 이는 믿음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희망의 비결은 믿음이다.
283. 사랑의 생활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지만, 그 분은 목숨을 바쳐가면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찾아오신다. 이에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느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응답은 역시 사랑의 실천이다.
하느님은 한때 우리를 사랑하시고 정지하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안에 살아계시며 사랑을 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284. 믿음, 희망, 사랑의 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윈리이다.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고 하느님의 구원약속에 굳은 희망을 갖게되며 마침내 그 분을 사랑하고 따르게 된다. 믿음을 뿌리로 하고 희망을 줄기와 가지로 한 나무가 되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 사랑은 실제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의 사랑으로 구성된다.
<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하여>
285. 그리스도인의 사명
인간공동체는 공동선을 실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삶을 본받아 이 세상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과 하나가 됨으로써 자기완성, 세상의 완성, 하느님나라의 실현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과 누룩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그것이 되기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을때, 복음정신에 따라 싸워야 한다.
286. 국가와 교회
국가와 교회는 공히 국민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므로 각기 고유한 범위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상대방의 이익과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하느님의 역사와 구원의 보편성을 대행하므로 국가나 정부의 차원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국가가 복음적인 가치를 위협하는 일이 있을 때 예언자다운 목소리로 그의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국가는 교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선교활동과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며 권력은 공동체에 봉사하라고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287. 정치와 그리스도인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더 완전한 인간생활을 영위하고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그렇게 형성된 정치 공동체는 일정한 권력과 그 권력을 대행하는 집권자를 필요로 한다. 이 정치 공동체는 인간의 본성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하느님이 정하신 질서에 속한다. 모든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집권자와 선택한 체제와 자연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限), 공법에 복종할 양심의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부당한 권력이나 법에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288. 경제와 그리스도인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다른 형제들과 결합하고 봉사하며 창조사업에 협조한다(창세 1,28). 그러므로 누구나 각자에게 가능한 책임의 정도에 따라 경제활동을 전개할 수 있고 그 대가로 얻은 것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라 해서 사유물로만 여기지 말고 공유물로 여기며 남에게도 유익하게 사용해야 한다. 정당하게 해결되지 않을 때 교회는 이런 문제에 복음의 빛을 던져주어야 하지만 모든 이가 듣는 것은 아니다.
289. 교육과 그리스도인
인간에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참된 교육은 인간이 지향하는 대로 공공복지를 위한 인격형성을 추구한다. 교육을 통하여 학생들은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도 원만한 인격과 봉사정신을 배우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도록 배우고 교육에 종사하는 이들은 배워야 한다.
290. 대중매체와 그리스도인
사람들에게 더 없이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대중매체이다. 여기에 종사하는 이들은 올바른 양심으로 해야한다. 또한 보도는 진실하게 해야하고 정의와 사랑을 지키는 한도에서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전하는 방법에도 윤리적이고 합당해야 한다.
291. 국제관계와 그리스도인
국제관계가 밀접해짐에 따라서 현대는 공동선을 위해 세계적인 공권력에 의한 국가간의 질서를 요구하게 되었다. 국제관계는 상호보완적인 측면에서 유지 발전되어야 하기에 좀 더 나은 나라는 절대적인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들을 돕는 데 앞장서야 하고 군비축소와 전쟁억제를 위해 애써야 한다.
<1998년 9월 16일 - 23일 예비자 교리 교육을 위하여>
1. 그리스도인의 비전 86면의 설명 -- 16일에 사용하였음
나는 다른 수많은 세상을 창조할 수도 있었다. 물론 네가 없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네가 없는 세상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겠느냐? 네가 없는 세상은 불완전한 것이다. 너는 내 마음속의 어린아이이며 내 생각의 기쁨이다. 물론, 나는 지금 현재의 네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신체, 부모, 나라, 문화, 재능 등-으로 너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너의 지금 모습과 다른 낯선 너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현재의 너일 뿐이다. 수많은 모래알과 겨울 눈송이가 제각기 독특한 형태 구조를 갖고 있듯이, 너라는 존재 역시 다른 인간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존재 구조로 만들어졌다. 만약 네가 너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껴질 때에는 “어미가 자기 태중의 아기를 잊는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겠다”{시편 137,5-7의 최민순 번역 참조}고 한 나의 말을 명심하여라.
2. 고해성사 예식을 위하여 -- 16일에 세례자 2명을 위하여 길게 설명한 부분임
1) 마음을 돌아보는 양심성찰 - 초대받은 당신 274면
2) 성찰(省察) - 통회(痛悔) - 정개(定改) - 고백(告白) - 보속(補贖)
3) 성호경 -- 내가 범한 모든 죄를 전능하신 천주와 신부께 고백합니다. -- 첫 고백입니다. -- (알아낸 순서에 따라 말한 다음) --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통회하오니 사하여 주소서 --(사제의 훈계와 보속 선언) -- 사죄경(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 -- 응답(아멘.) -- 주께서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 하느님 감사합니다.(일반적으로 생략하기도 한다)
4) 고해성사는 자신의 준비로 완성된다. 사제 앞에 와서 하는 일의 의미는 완성을 위한 단계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통회라고 할 수 있고, 정개(定改)가 그 다음을 이룬다.
5) 시연하기
3. 죽음 이후의 세계
1) 마태오 복음 25,31-46의 최후의 심판 이야기 : 양과 염소의 무리로 갈라진 이야기
2) 루가 복음 16,19-31의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 : 죽은 자를 보내야 믿는다는 이야기
3) 마카베오 하권 12,38-45에 나오는 죽은 이를 위한 제사 : 2천 드라크마 봉헌
4) 출애굽기 32,7-14 : 다른 이를 위하여 비는 기도 이야기
4. 죽음과 그 이후의 삶 - 믿음과 전승으로 해결되는 부분
1) 육체의 죽음으로 개인의 완성은 마친다.- 사심판(私審判)
2) 그 이후의 변화를 위해서 우리 각자가 할 일은 없다. - 타인의 기도가 필요할 뿐, -- 사도행전의 ‘통공’
3) 세상의 완성 때, 재림이 이루어지는 때 -- 공심판(公審判)
3) 어디로 간다고 가르치는가? -- 천국, 연옥, 지옥
4)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일 뿐.
5. 미래 신앙인으로서 삶의 자세 (잠언 30,5-9) - 연중 25주간 짝수 해 구약독서 -- 23일 시작때 사용할 것
저에게는 당신께 간청할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을 제 생전에 이루어주십시오. 허황한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십시오. 먹고 살 만큼만 주십시오. 배부른 김에 “주님이 다 뭐냐?”고 하며 배은망덕하지 않게, 너무 가난한 탓에 도둑질하여 하느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성서의 말씀은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데 가져야 할 본보기 자세 두 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며,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가 더 큰 문제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세례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의 시작’에 불과한 일입니다. 그 완성을 위하여 우리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일에 우리가 듣고 배운 하느님께 기도할 줄 알아야.
1)고해성사 순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 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 아멘. |
◎ 고해한지 (***몇 일, 몇 주, 몇 달****) 됩니다.
◎ 이 밖에도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
† 사제의 훈계와 보속
◎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 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 사제의 죄 사함 선언 **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
◎ 아멘.
|
<다음 이하 부분은 생략하기도 합니다>
† 주님을 찬미합시다.
◎ 주님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 감사합니다. |
2) 이사야 66,1-2 신앙인으로서 자세 참조
“야훼의 말씀이시다. 내가 굽어보는 사람은 억눌려 그 마음이 찢어지고 나의 말을 송구스럽게 받는 사람이다”
1)고해성사 순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 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 아멘. |
◎ 고해한지 (***몇 일, 몇 주, 몇 달****) 됩니다.
◎ 이 밖에도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
† 사제의 훈계와 보속
◎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 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 사제의 죄 사함 선언 **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
◎ 아멘.
|
<다음 이하 부분은 생략하기도 합니다>
† 주님을 찬미합시다.
◎ 주님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 감사합니다. |
2) 이사야 66,1-2 신앙인으로서 자세 참조
“야훼의 말씀이시다. 내가 굽어보는 사람은 억눌려 그 마음이 찢어지고 나의 말을 송구스럽게 받는 사람이다”
**************** 이후에 작성할 예비자 교리 내용 주제들 ******************
<비디오>
(KBS의 성지순례 비디오)
피고인 석의 하느님-30분, 함께 토론도 하기. 성서에 나오는 고통에 대한 문제를 미리 언급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