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앓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함께 있음을 알려주는 병자성사<sacramentum unctionis(도유) infirmatiorum>
‘교회가 고통받으시고 영광 받으신 주님께 죽음의 위험에 처한 환자를 맡겨드려 주께서 그를 구원해주시도록 하는 성사’. 예전에는 이 성사를 종부(終傅)성사라고도 했습니다. 그 의미는 죽기 직전에 기름을 바르고 구원을 빌어준다고 했던 데서 기인하며, 마치 이 성사를 받고 나면 죽어야 할 것으로 사람들이 알아들었던 과거의 역사가 있기에 그렇게 불렸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용어입니다.
요즘에는 병자성사를 꼭 죽을 위험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병이나 노쇠함으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 신자에게 먼저 영신적인 목적을 위하여, 다음으로 육신 건강을 위하여 베푸는 성사’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단순하게 사제가 찾아가서 기름을 바르는 행위로써 기적을 일으키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잘 생각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병자성사에 앞서서 고해성사를 집전하기도 합니다. 병자 본인이 말하기 어렵다면 말없이 이루어지는 ‘전대사’라는 것도 있습니다.
병자성사에 대해서 성서에서 기록하는 부분은 야고보 사도의 서간 5,14-16(447면)에 나옵니다. 서간의 이 부분에 해당하는 ‘원로’는 교회의 직책에 따라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미사. MISSA, COMMUNICATIO>
172. 미사라는 말은 ‘5세기경부터 서방 라틴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 제사를 재현하며 최후만찬의 양식으로 그리스도 친히 당신 교회 안에 물려준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만찬제사를 칭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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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에 해당하는 말이긴 합니다만, 만찬은 예수님의 이 지상 생애 가운데 제자들과 함께 한 마지막 저녁식사를 말합니다. 부활대축일의 3일전 성목요일--해마다 날짜가 이동됩니다.** |
미사라고 하는 말은 라틴말<MISSA>을 음(音)을 빌려서 읽은 것이기에 ‘미사’라고 하는 말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용어입니다. 이 미사에 대한 설명은 몇 가지 순서로 하겠습니다. 먼저 미사가 무엇인지, 미사에 대한 참여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미사의 효과는 무엇인지, 그리고 끝으로는 미사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미사에 대한 세부설명을 할 때는 여러분이 사용하시는 ‘오늘의 말씀’을 가져오셔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하는 예비자 교리반에는 오늘부터 이어지는 미사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여러분들도 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할 것을 요청하겠습니다. 따로 강조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신앙은 머리로 알아듣는 것이 아니고 삶으로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사는 위에 말씀드린 것과 다르게 좀 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제사’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제사’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지상에 살아있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억하여 바치는 행위를 가리킬 것입니다. 사람이 바치는 제사의 구성요소에는 조상에 대한 기억도 있을 것이고 음식도 차려놓는 일, 그리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누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미사 구성요소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차이나는 것이 있다면, 단순하게 이 세상에 살아 계시지 않는 돌아가신 분만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저 친척을 중심으로 자신들과 관련된 조상들만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고, 신앙에서 믿음에서 기억하는 예수님과 하느님 안에서 우리 조상들을 기억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그 미사에 함께 한 사람들이 함께 기억한다는 데도 차이점이 있습니다.
신자들이 미사를 통해서 기억하는 예수님, 우리 조상들과 살아있는 우리 형제와 자매들을 위해서 뭔가 좋은 일을 해 주시기를 바라는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땅에 묻히고 그 육신이 썩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하느님과 함께 살아 계신 분입니다. 그렇게 살아 계신 분이라고 그리고 당신께 기도하는 신자들에게 힘을 내려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하는 분입니다. 물론 이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부활(復活)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애석한 것은 부활이라는 사건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즉 신앙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우리가 외친다고 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의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분이고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미사는 살아 계시는 예수님의 과거 지상생활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이 남기신 행적들을 통하여 우리 생활을 변화시킬 것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웃을 위해서도 우리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힘을 얻는 것입니다. 미사는 신앙인 삶의 중심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릴 순서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자세가 올바르게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올바른 자세인가에 대한 것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몸이라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중요한 면에서는 더 강조돼야할 마음의 문제입니다.
벌거벗지 않고 온다는 면에서 일단, 외형의 모습은 괜찮다고 봐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다가 전통적으로 강조돼온 자세에는 ‘다른 이에게 짜증을 내게 하거나 혐오감을 주지 않는 차림’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법에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복 차림으로 미사에 참여한다가거나, 다른 이들로 하여금 이상한 상상력을 자아내게 하는 옷차림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관계를 올바로 맺는 것은 본인과 하느님과의 관계이긴 하지만, 사람인 관계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체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속이 다 비치는 옷이라든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코를 막게 하거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자세라면 좀 더 정돈돼야할 필요가 있는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보이지 않는 자세라면 마음의 문제일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제는 스스로에게 맡겨진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돌아본 결과, 과연 본인의 자세가 합당한 것인지를 판단하고 올바르지 못할 때에는 올바를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올바르지 못한 자세라고 본인이 스스로 판단할 경우,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는 ‘회개(悔改)’라고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죄(罪)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긴 합니다만, 작은 죄<=소죄(小罪)>라면 정성 가득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좋은 결심을 하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고, 좀 더 커다란 죄<대죄(大罪)>라면 교회에서 정한 방법에 따라서 고해성사를 통하여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화해를 한 다음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제사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나는 사람에게 잘못했지, 하느님에게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행위는 모든 것이 다 인간에게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그 일이 하느님께서 정하신 삶의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역시도 하느님과의 관계도 틀어지게 만드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 고해성사에 대한 자세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 받아들여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준비를 하고 난 다음에 우리가 참여하게되는 미사라는 제사의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제사의 목적을 세 가지로 말씀드리면, 하느님께 받은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느님께 잘못과 죄를 범했을 때는 속죄를 하고, 인간이 행복하고 생의 의의를 찾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은총을 구하는 목적이 있다. 여기에다 굳이 한가지를 더 이야기하면 청원이라는 것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삶의 힘을 하느님께 미사를 통하여 바라고 내 바램을 들어주시고 내가 힘을 내어 움직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제 미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미사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나면, 다음 시간부터는 여러분들에게 미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겠습니다. 성총을 얻는 방법으로서 성체성사를 간단하게 말씀드릴 때도 강조하긴 했습니다만, 천주교 신앙생활은 그저 알아듣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 생활로 드러내기를 강조하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러 가지 다른 경우를 통해서 미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들으신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이제까지는 제가 미사에 참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기에 그랬다는 단순한 이유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미사에 대한 설명을 다 끝내고 나면, 예비자 교리의 출석 때에도 확인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훗날 예비자 교리에 제대로 임하셨는지 그래서 세례성사를 받기에 합당한 준비를 하셨는지 판별기준으로 제가 활용하겠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사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아무래도 그 문(門)이 좁아질 거라고 미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 1 장 개회식
미사는 입당성가로 시작한다. 로마 전례양식의 입당성가는 그레고리오 교황 무렵에 완성된 것으로 로마 시내에 많은 성당이 생기자 교황이 각종 축일을 기회로, 정해진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는데 이때 교황의 일행이 시편의 구절을 노래하였고 이들을 맞이하는 신자들이 시편구절에 응답하였는데, 이것이 입당성가의 기원(起源)이 되었다.
이러한 노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이 사제를 맞이하여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의 장(場)을 만들기 위한 역할로서 입당 성가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입당송의 내용은 교회력에 적합한 것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입당성가를 노래하지 않을 경우에만『미사경본』 이나『미사용 시편집』에 있는 입당송을 해야한다.
입당성가를 하는 동안에 사제와 복사들은 제단에 인사를 하고 자리에 선다. 제단에 대한 인사는 친구(親口)하거나 향을 피운다. 사제석은 대부분의 신자들이 잘 보이는 곳으로 모든 신자들을 대표하고 그리스도의 대리자의 자리로 적당한 곳이어야 한다. 사제가 미사를 시작하기 전 “성부와 성자와 성령(성신)의 이름으로, 아멘.”이라는 중세 때부터 써오는 관용어구와 “사랑을 베푸시는 성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시는 성령(성신)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모인 그리스도교 신자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성령(성신)의 활동을 통하여 현존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성 바울로의 고린토 후서의 맺음말’로 입당 인사를 한다. 이러한 의식은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현존 의식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 다음 사제는 그날의 미사<지향(志向)>을 간단한 말로 소개한다.
사제는 신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미사에 임(臨)할 수 있도록 참회의 기도로 초대한다. 이는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기 전에 서로가 용서하고 오라(마태 5,23-24)고 이르셨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하느님을 거역하고 있는 것이 없는지 성찰하며 잠시 반성한다. 그런 다음, 일동은 일반 고백(고백의 기도)을 한다. 이에 사제는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소서”하고 사죄를 선언한다.
자비를 구하는 찬가는 동방교회의 호칭 기도에서 로마 전례에 젤라시오 교황때 도입된 것인데 오늘날 남아있는 형태인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 앞에 탄원기도가 있었다. 그런데 로마전례에는 봉헌 전에 공동기원과 봉헌문 중에 교회를 위한 기도와 청원 기도가 있기에 여기에서는 기도를 생략하고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만 남게되었다.
대영광송은 그 기원을 4세기경의 그리스어나 시리아어의 아침 기도 에서 부분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영광송의 가사 앞부분은 루가 복음 2장 14절의 천사의 노래로 시작되어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를 노래하고 뒷부분은 그리스도에게 호소하는 말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과 마지막에 성령에 대한 신앙도 포함되어 있다.
대영광송의 형식은 사은찬가(謝恩贊歌 : 떼데움)의 1 부와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처음에는 말의 뜻을 잘 살린 간단한 선율이었으나 성가대가 생기면서 선율이 복잡해지고 다른 전례성가처럼 수준이 높아져서 교우들은 점차 노래하지 않던 과정을 거쳐 다시 신자들이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개회식은 ‘본기도’로써 끝맺는다. 사제는 ‘기도합시다…’라는 말로 신자들을 기도로 초대한다. 이 말이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기도의 내용, 기도의 동기 등에 관하여 간단한 말로 기도하기 쉽도록 인도한다. 사제가 대표하여 정식기도문을 바치고 신자들은 그 기도에 마음으로부터 찬동(贊同)하는 뜻으로 ‘아멘’이라고 대답한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성신)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로 향하게 되어있다.
제 2 장 말씀 전례
말씀 전례 전체의 구조와 기능, 성서의 선택방법, 미사의 독서배분, 성서봉독, 응송, 사도 서간 복음 그리고 강론 ,알렐루야와 복음 전 노래, 신앙 고백,신자들의 기도 ,말씀의 전례에서 감사의 전례 (성찬의 전례)로 진행된다.
신자의 예배는 모여 하느님의 은혜를 상기하고 기념하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성서를 봉독(奉讀)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의 중심은 부활의 신비이지만 그는 그의 전(全)생애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바치셨기 때문에 주님의 생애 한 장면 한 장면이 구원의 신비를 이룬다. 그러므로 교회력은 부활절을 중심으로 1년 동안 그리스도의 전체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성서 봉독의 배당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미사중의 말씀전례는 그리스도 생애의 사건, 각 장면의 신비, 각 장소를 기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이다. 성서의 한 부분을 이해하려 할 때 신약과 구약을 함께 본다면 그만큼 이해가 더 쉽기 때문이다.
성서의 말씀 선택은 그리스도 생애의 사건을 인간입장에서 상기하고 기념함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이 하신 일을 마음에 느끼고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는 데에 말씀의 전례의 중심이 있다. 그러므로 성서 중 그리스도의 생애의 한 사적과 가르침을 복음에서 택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미리 모방된 것을 구약성서에서 택하여 그 복음의 말씀을 어떻게 생활하였는가에 대한 사도의 가르침을 사도들의 서간에서 택하는 구조로 말씀의 순서는 이루어진다.
이렇게 택한 성서를 나누는 배분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성서학, 전례신학 등의 전문가의 협조를 얻어 주일미사를 위한 3년 주기의 독서 배분을 작성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이룩한 구원의 신비를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한 1년간의 교회력에 따라 배분한 것이다. 평일 미사는 주일미사의 성서 말씀과 병행하면서 2년을 주기<홀수 해․짝수 해>로 하여 배분되었다.
전례에서 성서 봉독은 교회가 공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대면해서 봉독하도록 규정되어있다. 성서 봉독은 신자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그 말씀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시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독서자가 미리 잘 준비하는 것이 좋으며 봉독에 있어서는 알려진 한에서 저자의 이름과 성서이름을 본문의 봉독에 앞서 밝힌다. 봉독 후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독서자가 말하면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대답하게 되어 있으나 앵무새처럼 ‘하느님께 감사합니다’하거나 복사가 신자들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미사 마지막에 신자들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감사의 정을 정성 들여 노래함으로써 비로소 그 말은 전례 기도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응송은 어려운 구약성서 봉독 후 이에 대답하는 것으로 말씀의 전례의 목표로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말로 대답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며, 구약성서와 관련 있는 부분을 뽑아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음미하며 구원 사업을 상기하며 기념하기 위한 것이고 이는 시나고가(=회당) 이래의 전통이다.
회당에서 율법서(모세오경)를 봉독하고 시편을 노래하는 것이 현재의 시조라 할 수 있는데, 로마 교회전례에서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발달함으로써 응송은 음악적으로 풍부한 선율로 발전하게되었지만 점점 더 어려워지며 일반인들은 부르기가 어려운 층계송(그라두알레)이 되었다. 지금은 '층계송'이라는 말 대신에 ‘응송’이라고 부른다.
사도 서간은 하느님 말씀을 어떻게 생활로 표현하는가를 사도들이 자신들이 복음의 씨를 뿌린 각 교회에 써보낸 편지인데 사제의 강론과 비슷하다. 성령(성신)께서는 사도의 강론 때, 하느님 말씀을 해설하려는 사제, 강론을 들으려는 모든 신자에게도 작용하신다.
알렐루야<알렐루 야훼>라는 말은 ‘하느님을 찬양하라’라는 말로 사도 서간과 관계 있는 것은 아니다. 알렐루야 다음에 이어지는 복음 봉독에서 함께 하실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것이다.
성서 봉독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말씀을 건네는 것이지만, 신앙고백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대답과 같은 것이다. 이는 6세기 초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이것은 성찬의 전례에서 성체성사를 받기 전에 세례성사 때의 결심을 새롭게 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다.
신앙고백의 기도문으로는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과 사도신경의 두 가지가 있는데 어떤 것을 하더라도 상관없다. 전자(前者)는 당시의 오류를 정정한 공의회의 결정을 반영하고 있으며, 후자(後者)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신앙고백과 더불어 복음에 응답하는 기도로서 신앙에 따라 사는데 필요한 은혜를 청하는 기도가 공동체의 기도이다. 이 기도는 개인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들의 공동체를 위하여 하는 기도이다. 기도할 때 넓은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먼저하고 자신들이 속해있는 공동체를 위한 지향을 드리도록 기도의 순서를 정한다. 신자 공동체 기도의 지향에 있어서 여러 자원의 공동체에 언급할 수 있도록 지향은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첫째 : 세계의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이다.
둘째 : 전 세계의 모든 민족, 국가, 각종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평화나 구원을 기원하게 된다.
셋째 : 모든 차원을 위한 구체적이고 긴급한 일을 위하여 하는 기도이다.
넷째 : 우리의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한다.
신자들이 한마음이 되도록 기도를 위한 초대의 말과 끝맺는 기도는 집전 사제의 임무이다.
말씀의 전례에서 감사의 전례(성찬의 전례)로.
하느님 말씀에 대답하는 것은 말씀의 전례를 거쳐 감사의 전례로써 완성된다. 하느님의 말씀에 완전히 대답하기 위해서는 말[언(言)]의 기도만이 아니고 인간전체의 봉헌이 필요한데 이것은 그리스도자신의 봉헌에 의해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제 3 장 성찬 전례
성찬의 전례의 뜻, 예물봉헌의식, 감사송 전구, 서창, 감사의 찬가, 성찬 기도 성립의 역사, 성찬 기도 제1양식, 성찬 기도 제2양식, 성찬 기도 제3양식, 성찬 기도 제4양식, 네 가지 성찬 기도와 앞으로의 전례
미사전례는 말씀전례로 끝나지 않고, 자연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로 이어진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감사의 감정, 찬미의 노래, 봉헌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 감사의 전례는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가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선물이나 아름다운 찬미의 노래로써 표현하게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아름다운 전례가 불가능하다.)
성찬의 전례의 첫 부분은 봉헌의 준비이다. 봉헌 성가와 봉헌행렬, 빵과 포도주를 제단에 바치고 준비하는 일 ,손을 씻는 기도와 봉헌 기도까지가 성찬의 전례 제1부를 말한다.
우리가 제물을 제단으로 가져가고 사제는 집전자로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교회의 대표자로서 신자들의 제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공식적으로 제단에 바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받아들여져서 그리스도의 봉헌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된다. ‘빵을 바치는 기도’는 구약 때부터 베라카(찬미)의 기도 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가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다음 포도주에 천연적인 산물과 함께 우리 자신을 봉헌함을 의미하는 의미로 한 방울의 물을 섞는다. 이어서 향을 사용할 수도 있다. 정결 기도를 바치고 봉헌하는 마음을 깨끗이 하여 받아들여지도록 하나의 상징으로서 손을 씻는다. 이어서 사제는 교우들을 <예물기도>에 초대한다.
감사송 전의 이 대화구는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에 나타나 있다. 성찬의 전례에 앞서 감사송이 나오는데, 이것의 시작을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집전 사제의 인사와 신자들의 “또한 사제와 함께 ”라는 대답의 감사송 전구를 한다. 이러한 신자들의 찬동에 고무되어 사제는 정성을 다하여 감사송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노래한다.
예전에는 ‘시작하다’의 의미로써 서(序)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집전 사제가 하느님 자신과 하느님 백성인 신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진술한다는(이야기를 하는) 의미로서 서(敍)를 사용하고 있다.
ꡔ성부여, 주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우리의 의무요 구원이로소이다. 주는 당신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 말씀을 우리에게 구세주로 보내시어, 성령(성신)의 힘으로 동정녀 몸에서 혈육을 취하여 나시게 하셨으며, 사람이 되신 그 말씀은 주의 뜻을 따라 거룩한 백성을 주께 모아 바치셨고. 십자가에 달려 수난 하심으로써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을 보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들과 모든 성인들과 함께 주의 영광을 찬미하며, 소리 맞춰 노래하나이다.ꡕ 여기는 하느님과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된 하느님 나라의 구원의 역사가 진술되어 있고 성찬 기도문의 끝까지 관련되어 있다. 로마 전례에서는 교회력에 따라 구세사의 특징을 진술하게 되어 있다.
196. 감사의 찬가 <SANTUS, BENEDITUS>
감사송 다음에 오는 감사의 찬가는 이사야서 6,3과 마르코복음 11,9-11까지에서 취한 것인데 전반부는 약 6세기에, 후반부는 약 7세기에 첨가된 것이며 감사송과 성찬기도를 연결시키고 있다.
성찬기도는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성문화(成文化)되고 고정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대략 3 세기경까지) 말씀의 전례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충분히 음미한 후 하느님의 말씀에 대답하여 모든 것을 바치려는 기도가 성찬 기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잘된 기도문을 베끼거나 가르침을 받아 보존하게 되었고 후세까지 남게 되었다. 여기에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주셨는가를 천지 창조에서 시작하여 주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진 구세사 전체가 하느님의 자비의 표현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로마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로마 전문에 대한 존경에서 이것을 성찬 기도 제 1양식으로 하고 히폴리토의 아나포라<Anaphora:희랍정교회의 성찬식>로 불리는 3세기의 성찬 기도를 현대에 맞게 수정하여 제 2양식으로 하였다. 또 고대의 라틴 전례의 전통을 종합하여 새로운 성찬 기도가 작성되어 제 3양식이 되었고, 동방교회의 교부 바실리오의 아나포라에서 취해 간결하게 하나로 정리한 것을 제4양식으로 하였다.
198. 성찬 기도 제1양식은 로마식 전례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라틴어로 미사를 지내는 15세기동안에 거의 변경되지 않았다. 이 기도문은 약 4세기 중엽부터 4세기말에 걸쳐 고정된 것 같다. 가장 오래된 로마 전례서 ꡔ베로나의 전례서ꡕ에는 267개의 감사송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로마 전례에 속하는 사제들은 자신의 감사송을 작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감사송들 가운에 사제의 개인 신심에 치우친 것이라든지 중요한 사항을 주로 생각하지 않거나 주님의 가르침으로 볼 때 중요하지 않는 점을 강조하는 것들은 정통 신앙에서 벗어날 위험도 없지 않았으므로 그레고리오 교황 재위 때 그렇게 뛰어나지 않는 감사송은 제거하고 종래의 미사경본의 7가지 의 감사송으로 제한시켜 로마 전문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이리하여 완성된 것이 성찬 제 1양식이다. 여기에도 비교적 새로 첨가한 부분이 있다. 아마 각종의 개인적 신심, 그때 그 장소에 모인 사람들의 특별한 청원을 삽입하여 성립되었을 산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그것이다.
199. 성찬기도 제2양식은 기원전 215년경의 유명한 로마 주교 히폴리토가 저술한 사도전승이란 책 가운데 이 기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수록되어 있다. 이 주교는 성한 지고 중에 꼭 없어서는 안된다고 생각되는 요점을 적어두었다가 사제들에게 전해주려고 했는데 이것이 성찬 기도 제 2양식의 기원이 되었다. 요점을 적어두었기에 간결하여 현대인에게 적절하고 성찬 기도에 필요한 요소가 모두 들어 성찬기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는데 자료가 되기도 한다.
200. 성찬 기도 제 3양식은 로마전문의 제 1양식의 특징을 살리고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로마전례의 성찬 기도로 완성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로마교회의 지금까지의 전통을 종합하여 그 신학적 내용을 풍부히 나타내려고 하였다. 제 1양식과 비슷하지만 신학적으로는 균형이 더 잘 잡힌 완전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의 감사송은 그날의 전례에 고유한 것 이든가 아니면 교회력에 제시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 이 양식 중에서 특히 표현이 풍부한 대목에는 성부께 대한 부르짖음만이 아니고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말뿐 아니라 전례에서의 성령(성신)의 작용이 생명을 주고 거룩하게 만든다는 성화(聖化), 신화(神化)의 작용과 하나로 모은다는 일치, 사귐의 작용으로 표현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