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랑에 대한 계명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주 하느님이 주신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출애굽기 20,12)’ ‘너는 네 부모가 늙었을 때 보살피고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말아라. 부모가 설혹 노망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잘 참아내고 네가 젊고 힘있다고 해서 부모를 업신여기지 말아라(집회서 3,12-13)’
이러한 계명이 요즘 시대에 들어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시대가 바뀐 탓일까? 별로 강조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바뀌지 않을 인간의 도리(道理)는 있는 법이다. 인간 도덕의 근본은 부모에 대한 공경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늘에 순응하는 자는 흥하고 역행하는 자는 망한다[순천자흥, 역천자망 --- 順天子興 逆天子亡]
창세기 9장에 나오는 노아의 후손은 셈, 함, 야벳이다. 둘째아들 함이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고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두 형제에게 말을 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후에 술이 깬 노아는 함이 한 일을 전해듣고 그 아들에게 저주를 선언한다. 또한 야곱은 에사오보다 뒤늦게 태어나서 상속권을 놓친 사람으로 나온다.(창세기 25장이후) 그는 상속권에 대한 집착으로 훗날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 축복을 가로채는 잘못을 범하고 만다.(창세기 27장) 그 결과 집을 떠나 20년간을 방랑생활을 한다. 그는 살아있을 때 그를 극진히 사랑해주었던 어머니 리브가를 살아서는 보지 못한다. 또한 야곱은 그의 자식 요셉을 사랑하였는데 다른 형제들이 질투하여 요셉을 이집트로 팔아버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형제들은 요셉이 짐승에게 물어 뜯겨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거짓 보고까지 한다(37장). 아버지를 속이며 축복을 빼앗았던 것처럼 그가 똑같이 자식들로부터 속는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부모님에 대하여 어떤 마음 자세를 갖고 대하고 공경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248. <자녀가 부모에 대한 계명과 더불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관계 역시도 중요시함을 가리킨다. >
살인하지 못한다(출애 20,13; 신명 5,17)는 계명의 근거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에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창세기 9,6에 보면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모상]으로 만들어졌으니 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제 피도 흘리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인간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모상안에서 만들어졌기에 그 누구도 자기 멋대로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없다. 또한 자기가 자기 생명을 죽여도 안된다. 생명자체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누군가를 죽인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살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민수기 35,33에 따르면, ‘땅에 흘려진 피는 그 피를 흘리도록 만든 사람의 피가 아니고서는 그 원한을 갚을 길이 없다’고 했다.
250. ‘살인하지 말라’는 제 5 계명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우리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계명을 어기지 않고 하느님 앞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중 과연 몇 사람이나 살인을 저지르며 살겠는가? 하지만 하느님이 주신 이 계명의 본뜻은 우리가 ‘생명을 돌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의 적극적 의미는 ‘생명을 돌보아야 한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살인뿐 아니라 남에게 성[怒-성낼 노]을 내고 남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으로 간주하신다(마태오 5,21-22). 예수님께서 이렇게 살인 금령을 부연하여 폭넓게 해석하시는 것은 미움이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 5 계명은 ‘생명을 돌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적극적인 계명으로 바꾸어 이해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이기적인 동기에서이든 무관심에서든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살면 된다는 태도를 갖는다면 그것은 일종의 살인행위이다.
251. <생명보호에 대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생명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생명의 중요성도 함께 깨달아야 한다. >
252. 제 6 계명 + 제 9 계명 ; 간음하지 말라. + ‘다른 사람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프로이드는 사람들이 평소 생각하는 것 중의 90%가 성(性, sex)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성(性)은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성에서 오는 윤리적 타락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다윗, 솔로몬, 야곱, 삼손등 성서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대다수가 성적 타락을 맛본 사람들이다. 누구나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원초적이고 충동적인 본능이 솟구쳐 나오면 윤리적으로 넘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제 6 계명은 지키기 힘든 계명이다.
성적인 유혹이나 성적인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성적인 유혹은 갑자기 우리를 덮친다. 다윗이 바쎄바를 향한 욕정을 참지 못한 것은 미리 계획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저녁나절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바쎄바를 보고 나서 갑자기 유혹이 밀려 온 것이다. 성적인 유혹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본능적 욕구를 건드리기에 그렇다.
253. 인간의 본능적 욕구는 일단 일어나면 그것이 채워지기 전에는 좀체 꺼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본능적 욕구는 부끄러움도 위험에 대한 경계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욕망이 채워진 다음에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고 안전에 대해 생각하고 부끄러워하게 된다. 마치 목이 마르면 물을 먹어야만 갈증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듯이 성욕도 그렇다. 성적인 유혹은 극복하기에는 힘겹고 어려운 유혹이지만 그 유혹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물리치느냐 하는 선택은 여전히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리에게 달려있기에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인 것이다.
254. 성적인 욕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순결의 사나이라고 말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셉을 통해서 알아보자.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구약의 성조 ‘요셉의 경우’를 보자. 이집트 경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향하여 성적 욕망을 느끼면서 팔을 붙잡으면서까지 관계를 맺자고 유혹해올 때, 요셉의 첫 번째 응답은 ‘싫습니다’였다. 그의 두 번째 행동은 겉옷을 유혹자의 손에 내맡기고(창세기 39,12-13) 도망치는 일이었다. 이것이 최선의 길이다.
우리가 살면서 유혹을 받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유혹이란 본능적인 욕구가 건드려지면 언제든지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밀려온 유혹에 굴복하여 죄를 짓게 될 때 잘못하는 것이다. 유혹 앞에서 ‘싫습니다’라고 하면서 등을 보이고 도망치지 못하면 그 책임은 유혹자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255. <제6 계명 - 남녀간의 성적관계를 규정하는 계명이다. 상호간의 정조(貞操)를 보호하는 계명에 대한 것이다. 동성애, 혼인이외의 경우에 대한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그런 행동이나 마음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것도 함께 금지하는 것(?)이다.>
<9계명 - 제 6계명의 바탕이 되는 마음까지도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행한 잘못된 행동의 즐거운(?) 반성(=회상)도 금지하는 것이다.>
256. 제 7 계명 + 제 8 계명 + 제 10 계명 ;
도둑질을 하지 말라. +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이 세 가지 금령은 인간에게 진실하지 못한 삶을 살지 말라는 계명을 담고 있기에 함께 이야기합니다. 도둑질, 거짓증언, 남의 재물을 탐내는 것은 한마디로 진실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이다. 병든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이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정부패와 한탕주의에 물들어 이 계명들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 지낸다. 이것은 빛과 소금을 자처하는 교회가 병들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위선과 거짓말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지도자와 개개인이 진실되게 살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그리스도교회]의 부패상의 대표적인 것은 가짜 박사[=신학박사]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박사들이다. 특히 신학박사들이다.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찬 모습이니, 나라가 이런 모양으로 갈 수 밖에. 우리도 잘못 산다면, 이름만으로 산다는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예수쟁이만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바닷물의 염도는 1.4%라고 한다. 이 염도가 대양(大洋)의 물이 썩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그리스챤은 40%가량이라고 한다.
<7계명- 재산과 재산권에 대한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리고자 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더불어 자기의 재산에 대한 올바른 사용도 권하는 것이다.>
<8계명 - 명예를 보호하는 계명이다. 남을 죽을 죄인으로 몰지 말라는 것이다. 성서에서 통하는 것은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면, 그대로 일이 시행되던 관습이 있었는데, 이의 남용도 금지하는 것이다(참조. 다니엘서-수산나와 다니엘)>
<10계명 - 제 7계명의 바탕이 되는 마음도 금지하는 것이다. 내가 정상적이지 못하거나 남에게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금지하는 것이다. >
십계명을 가장 잘 정리한 분은 예수님이다. 율법학자가 으뜸가는 계명을 물었을 때,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 둘째 계명은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예수님은 간략하게 정리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계명을 정리하면서, 1-3계명은 위의 경우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고, 4-10은 인간에 대한 것이다. 즉,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순서는 명확하다. 하느님 사랑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해라. 그래야만 그 다음에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순서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어느 것도 완성되지 못한다. 한가지 더 강조할 것은, 십계명을 율법주의자로서 지키려면 지키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 문자에 매어서 지키는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자랑스러울까?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완벽하게 했다고 자랑할 수있을지는 몰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도 과연 그러할까?
십계명을 지키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자유를 갖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다음에 계명을 주셨다. 자유인으로 만든 다음, 그 자유를 삶에서 융화시켜 나가라는 의미에서 주신 것이 십계명이다.
<교회법에서 말하는 계명>
258. 교회법에서 규정한 6가지 계명... (교리서 44과. 202면-204면)
현행 교회법은 1983년 11월 27일부터 발효된 ‘요한 바오로 2세 법전’이라 한다. 교회법은 인간 사이의 구체적인 과정들을 제시하고 해석하는 것은 아니기에 신법(神法)이라 하기도 하고, 자연법(自然法)이라고도 한다. 이 교회법은 1752개조의 항목이 있는데, 이 가운데서 삶의 의무규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법의 목적은 애초에 삶을 제한하고 규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특정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 들을 규정지어서 더 많은 구성원들이 그 일로 인하여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지하고자 하는데 더 큰 목적과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법에 언급된 신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규정 역시도 같은 비중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259. ① 모든 주일과 대축일에 미사에 참여한다. : 1247조
<신자들은 주일과 그 밖의 의무축일에 미사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 또한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경배, 주님의 날의 고유한 기쁨 또는 마음과 몸의 합당한 휴식을 방해하는 일과 영업을 삼가야 한다.>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이 규정 때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들 합니다. 자유롭게 내 맘대로 신앙 생활을 하게 하면 되지 왜 의무로 삶을 옭아매는지 묻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간의 생활과 하느님의 관계는 뗄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신정일치(神政一致)의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하느님의 법을 알려줌으로써 인간의 생활이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데 이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주기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본 삶을 다짐한다면 그만큼 잘못 흐를 수 있는 인생의 길도 방어된다고 하는 게 바를 수도 있습니다.
260. ② 정한 날에 금육과 단식을 한다. : 1251조, 1252조
<1251조 : 연중 모든 금요일에는 대축일들 중의 어느 날과 겹치지 아니하는 한 육식 또는 주교회의의 규정에 따른 음식을 자제하는 금육제가 지켜져야 한다. 재의 수요일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신 성금요일에는 금육재와 금식재가 지켜져야 한다>
<1252조 : 14세를 만료한 자들은 금육재의 법률을 지켜야 하고 모든 성년자들은 60세의 시초까지 금식재의 법률을 지켜야 한다......>
의미는, 고기를 먹지 않는 일과 편의에 규정된 한끼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규정입니다. 서양의 입장에서 이 법이 만들어졌으니, 금육은 ‘주식(主食)인 고기’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1년 내내 매주 금요일마다 실시합니다. 대축일이라든가 민족 고유의 축제에 따라서는 이 규정이 용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1년 52주 동안 약 45회 정도 지킬 수 있는 규정의 한 가지입니다.
단식은 1년에 두 번이 있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인 수요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이 세상에 하직인사를 하신 수난 성금요일이 그 두 날입니다. 보통은 이 두 날에 단식을 하고 그 몫을 금전(金錢)으로 환산하여 나 보다 더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봉헌하기를 권고합니다.
261. <이슬람교에서는 라마단 단식일 때, 해가 뜨면 다시 해가 질 때까지 물도 먹지 못하게 하는 규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그들의 신 알라를 기억하며 기도하도록 권합니다. 이것에 비교하면 가톨릭의 규정은 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262. ③ 적어도 1년에 한번, 고해성사를 받는다. : 989조
<모든 신자는 사리를 분별할 나이에 이른 후 매년 적어도 한번 자기의 중죄를 성실히 고백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세계 교회법에 의한 것이고, 한국인들에게 적용되는 한국지역 교회법에는 두 번을 권장합니다. 물론 의무는 아닙니다. 이름하여, 판공성사라 이름하고, 그 시행을 위해서는 여러분의 교적이 있는 본당에서 ‘성사표’가 발행됩니다. 물론 성사를 하면서 이렇게 나누어드린 표를 회수합니다. 성사표를 회수한 다음에는 여러분의 교적에 개별적으로 기록합니다. 신앙생활을 최소한의 규정에 따라서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며, 계속하여 3년 정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냉담(冷淡)신자로 구별하여, 별도관리합니다.
여러분이 사시는 곳을 달리하여 이사하실 때에는 교적도 가까운 본당으로 옮겨가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계속하여 성사표는 발행이 되지만 같은 사람이 해당 주소에 살지 않을 때는 냉담자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사가신 주소에서 신앙생활을 빠짐없이 하더라도 어쩔 수없이 나타나는 현상중의 한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263. ④ 적어도 1년에 한번, 성체성사를 한다. : 920조
<1항 :모든 신자는 지성한 성찬을 영하기 시작한 다음에는 매년 적어도 한번 성체를 영할 의무가 있다>
<2항 : 이 계명은 부활시기에 이행하여야 한다. 다만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연내 다른 시기에 수행하여야 한다>
이것도 세계 교회법에 의한 것이고, 한국인들에게 적용되는 한국지역 교회법에는 2항의 내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부활시기때만이 아니라, 사순절 재의 수요일부터 삼위일체 대축일까지입니다.<한국 천주교회 사목지침서 90조 1항> 성체를 영하라는 것도 의무가 된다면 심각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성체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우리가 삶을 통하여 끊임없이 도움을 받는 바로 그 분의 몸은 자주 받아 모실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그의 남용을 피하기 위하여 미사에 온전하게 참여하였을 경우에 한해서, <하루에 두 번>을 허락하기도 합니다.
<신자들은 원조요청에 의하여 주교회의에서 제정한 규범에 따라 교회의 유지비를 바쳐야 한다. >
교회는 신자들의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책임은 본당에 있는 사제가 지고 있지만, 교회는 굳이 따진다면 신자들의 것입니다. 이 말은 성당에 있는 것 모두를 맘대로 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정성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고, 특별한 애정으로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머리에서 그와 같은 생각이 떠났다면 문제는 좀 더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신자 여러분이 미사에 오셨을 때, 헌금과 교무금을 내는 것입니다. 헌금은 매 미사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교무금은 현재 가족과 가구단위로 내게 되어 있습니다. 금액을 정하는 것은 자유이이지만 개신교에서나 구약의 율법시대에서는 이것을 1/10<십일조>로 간주하였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십일조의 정신은 강조하지만, 금액에 대해서 같은 강조점을 띠고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여담으로 신자들이 교무금에 대해서 갖는 태도는 현재, 1/10은 없는 편인 것 같고, 1/20 또는 1/30, 1/40, 1/50 정도까지 다양합니다. 구약의 시대에 이것은 하느님께 내가 얼마나 충실한가를 따지는 척도로 삼긴 했었습니다.
265. ⑥ 혼인성사에 관한 규정을 지킨다. : 1059조
<가톨릭의 신자들의 혼인은 비록 한편 당사자만이 가톨릭 신자라도 하느님 법뿐 아니라 교회법으로도 규제된다. 다만 그 혼인의 국법상 효과에 관하 국가 권력의 관할은 보존된다.>
이 규정은 혼인을 앞둔 사람에게 적용되는 규정입니다.
교회법에는 ‘신자는 신자와 혼인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많지 않은 지방에서는 교회의 허락에 의하여 관면 혼인<=신자와 비신자간의 허락 혼인>이 있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혼인 어느 것도 하느님의 축복과 함께 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반드시 교회법에서 정한 규정을 강조합니다.
부득이한 사정에서 일반 예식장에서 혼인한다고 하더라도, 예식장 혼인 전에 반드시 교회법에 의한 <부부인정>을 하도록 권장합니다.
이러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는 그것을 가리며, ‘조당’이라고 이야기하고, 혼인 당사자에게 성사(聖事)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제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 다시 적법한 절차를 거치는 것을 가리켜서 ‘조당해소’라고 합니다. 이 규정의 실천을 위해서는 따로 묻고 상담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