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인생

2007. 8. 30. 오후 5: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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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분은 조선말기 무렵 어느 재상이었다는 손녀딸로 태어났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유모의 팔에 안기어 성장을 하면서 발바닥에 흙을 묻힌 날이 흙을 안 묻힌 날보다 적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이 속해있는 세상은 일제 식민지로 바뀌고 그 분도 나이가 차서 과년한 규수가 되니 혼담이 있었고 매파들의 입김으로 혼인을 하게 되었다.

시댁 가세에 있어서는 친정과 감히 비교가 될 수 없었지만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을 한 신랑감이 왜정시대에 사업가로서 손색이 없고 똑똑하고 잘난 인물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하여 혼인을 하였다.

규수는 성장을 멈춘 듯한 아주 자그마한 키에 40kg에서도 한참 빠지는 외소한 몸이지만 얼굴만은 그린 듯이 새참하였다.

그 분은 홀시어머니로 부터 며느리가 아닌 상전 모시듯 받듦을 받으면서 그 외소한 몸으로 슬하에 오남매를 낳고도 그 자식들에게 등 한번 내밀어 업어보지 않고 왕비같이 고고하게 행동했다.

자녀가 어쩌다 말대꾸라도 하면 머리 싸매고 누워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가 조용 하고 교양 있게 일러바치어 아버지로 부터 왕비 같은 어머니의 심신을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십이 조금 넘어 며느리를 맞고 부터는 위로는 홀시어머니가 받들고 아래로는 며느리가 받들고 하여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안방 세도 가 로서 군림하기를 육십 여년.

재산이라고는 시골 집 한 채 달랑 깔고 앉아 장남을 불러들여 며느리를 마치

무수리 부려먹듯 하고 살았다.

며느리가 어쩌다 친정에 한번 다녀 오려하면 몇날 며칠을 조석으로 벼르다가 마지못해 허락 은 하되 그것도 머리에 치마끈을 질끈 동여매고 자리 펴고 누워서 다녀오란다.

배짱 없는 며느리는 ‘어이구 징그러’탄식과 함께 친정계획을 접고 다시 무수리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되는 친정 길을 나섰다가는 돌아와서 미음 조차도 안 넘어가는 시늉을 하며 산송장 노릇을 하는 시어머니로 인하여 며느리는 그 자손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시골인데도 지체 높은 체를 하는 그 집 문턱을 이웃들은 아예 넘어 오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고고한 당신이 이웃 친구가 있을리 없고 말동무가 없으니 밖에 나갈 일이 없는지라 며느리도 대문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눈만 뜨면 보는 것이 며느리 발 뒤금치 밖에 없으니 그 발뒤금치가 계란 같다고 못마땅해 하는 것이 시어머니라는데 사사 건건 흠을 잡고 심상이 사나우면 머리동여 매고 누워 밥상을 거부하면서 며느리가 빌고 또 빌어야만 못 이기는척 일어나 앉아 밥상을 받는 시위를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했다.

요즘 어떤 며느리는 밥상을 거부하는 시어머니에게 두 번도 권하지 않고 솥에 있는 밥을 모조리 감춰 버리고 모른 척 했더니 사흘 굶어서 남의집 담장 안 넘는 사람 없더라고 두 끼를 굶고 나서도 며느리가 권하지 않자 슬그머니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 솥을 열어보니 밥 한 톨도 없는 빈 솥을 보고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 밥상 거부하는 시위를 다시는 하지 않더란다.

문제는 그 자손들 의 사고였다

다른 한 인생을 구기는데 그 자손들은 한몫들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자기 어머니의 왕비 병을 당연시 하면서 어머니 앞에서 언제나 장남 며느리를 닦달 함으로 자기들 의 자식 된 도리를 다 한 것처럼 과시하였고 작은 며느리들은 어쩌다가 한 번씩 내려와서는 왕비시어머니 앞에 나부죽이 앉아서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조차도 자기 것으로 살아보지 못한 큰 며느리 가 그동안 당신을 받듦에 있어서 소홀했던 점을 왕비 시어머니가 나열하기 시작하면 거기에 맞장구를 쳐주며 혀처럼 놀아주다가 형님이 차려주는 밥상만 상전처럼 받아먹고 는 행여 왕비님께서 "나 좀 너희 집으로 가련다" 하실 것이 두려워 이 핑계 저 핑계 세상 핑계만 한참 을 주절거리다가 뒤 덜미라도 붙잡힐세라 몸을 한껏 옴추려 가장 작은 몸을 하고는 대문을 바람처럼 빠져 나가 버린다.

왕비께서는 당신이 말하기 전에 작은 며느리가 먼저

“어머님 저와 함께 서울 저희 집으로 가시죠”

이 말을 고대 했다가 허사가 되자 잡힌 고기 놓친 얼굴을 하고 돌아서서 또 애매한 큰 며느리에게 보라는 듯이 머리에 치마끈 동여매고 누워 버리면서

“나 밥 안 먹을란다”

그러면 큰 며느리는 그때부터 또 비상이다.

“.어디가 또 편찮으세유? 어머니 죽 좀 쑤어 올릴까유?. 약 사다 드릴까유?”....

이런 때는 며느님도 모른 척 해 버리면 좋으련만 만일 그랬다면 저녁 굶은 시어머니 심술이라는 옛말 그대로 밤새도록 부엌을 들랑거리게 만들고야 말았다.

이 며느님께서도 자식들이 장성하여 며느리들을 얻게 되었는데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그동안 왕비시어머니한테 받았던 고통을 당신 며느리들에게 작정을 하고 모두 대물림 하려고 드는데 아시다시피 요즘 며느리들이 그렇게 마음대로 주물러 지나요 어디.

그러다 보니 늘 집안이 시끄러웠고 이제 대왕대비가 된 할머니는 그 시끄러운 가운데서까지 우아한 표정을 지으며 즐기듯 관망 하다가 당신 자손이라도 하나 들르게 되면 독립운동 거사라도 모의 하는 것처럼 당신 방으로 불러들여 놓고 이러 저러 하고 여차저차 하니 당췌 불안스러워 내가 병이 낫노라고 하며 머리를 또 동여매고 들어 누워 버린다.

사실 알고 보면 이 불 난은 왕비 할머니께서 며느님이 잠시 집을 비우고 서울에 사는 큰 아들집에 다녀온 사이 같이 사는 작은손자며느리 의 일 거수 일 투족 을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당신 며느리가 들어서자마자 낱낱이 일러바침으로 빚어지는 불화였다.

미련스런 며느님은 평소에 자기를 도외시 하시던 왕비 시어머니가 자기편에서서 정작 당신자식을 험담 하는 것조차도 황송스러웠던지 왕비의 고자질이 땅에 떨어져 흙이라도 묻을까봐 병력같이 당신 작은며느리를 닦달하게 되고 영문도 모르고 있던 손자며느리는 처음에는 이유를 모른 체 눈만 껌벅거리다가 끝내 부당함을 견디지 못하고 시어머니를 향하여 따지기 시작 한다.

“아니 어머니! 도대체 제가 뭘 어쨌다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소리를 지르시고 그러신데유?”

“저것이 워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여! 버릇읎이.어른한테 감히 말대꾸여 말대꾸가”

당신은 평생을 입 밖으로도 크게 내지 못하고‘어이구 징그러’한숨만 오십 여년을 뱉으며 살아오면서 한번만이라도 왕비님께 저렇게 말대꾸라 도 해 봤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당신 며느리가 서슴없이 고개 바짝 치켜들고 따지는 것을 보자 부럽다못해 사실은 그래서 분한 것을 버릇없음을 핑계 삼아 호령을 하고 있었다.

옥신각신 급기야 며느리는 분해서 울고 시어머니는 괘씸해서 씩씩대고 있으면 지금것 딴전 피듯 하면서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보던 왕비님은 그 자그마한 몸을 우아하게 일으키며 치마꼬리를 획 거머쥐고 나가면서 “아이 나는 불난 싫여”한마디 함으로써 이 불 난은 나하고는 상관없음을 알리고는 대청마루를 가로질러 당신 방으로 숨어버린다.

그리고 방문에 귀를 바짝 대고는 후궁 첩자처럼 채신없이 바깥동정을 엿 듣다가 천방지축 으로 나대는 증손자가 벌컥 할머니 방문을 여는 바람에 들켜버리고 말았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다가 급기야 손자며느리는 남편에게 단호하게 요구하여 시골아파트를 얻어 분가 하면서

“어머니나 평생 한자밖에 안 되는 저 노인 손가락에 인형처럼 놀아보슈“

하고는 시댁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아무리 잡힌 고기한테 미끼 안준다지만‘ 한번 내 집에 시집온 니가 어쩔 것이냐’는 듯 미끼대신 그동안 왕비한테 당한 스트레스를 몽땅 며느리에게 풀려고 했으니 시도 대도 없이 미끼를 던져 줘도 시집이 지옥일진데 요즘 세상에 어떤 며느리가 층층시하 시집살이를 살거라고...

암튼 왕비의 며느님께서는 그야말로 당신도 오랜만에 말 좀 타보려고 고삐 잡다가 뒷발에 차인 격이 되고 말았다.

칠십이 넘은 며느님은 관절염으로 방바닥에 한번 앉으려면 골반이 으스러지는 소리를 내어야 하고 일어나려면 앉은자리에서 사방을 몇 번 헤매고 난후 “으이차”기압을 넣으면서 겨우 일어났다.

그런 며느님을 왕비께서는 냉큼냉큼 못 일어나고 뭉기적 대며 시어머니 보란 듯이꾀병을 한다고 생각하고 아주 못마땅해 하며 입을 비쭉거리면서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는 찬바람이 쌩 하게 방을 나가버리면‘ 어이구 징그러’의 탄식은 어김없이 또 천장에서 맴돌았다.

그런 날이면 유난히 며느님을 더 불러대어 꾀병임을 확인하려했다.

평생을 당신 자신이 사람이 보지 않는다 싶으면 송사리 방향 틀듯 잽싸게 움직이다가도 사람이 본다 싶으면 어지러운 듯이 한손을 머리에 얹고는 아주 중병환자처럼 걸었다.

어느 날은 휴가를 받고 내려온 큰 손자며느리가 시골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아래채를 향하여 잽싸게 달리듯 움직이는 할머니와 맞닥트리게 되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달리던 왕비께서는 그만 뒷간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손자며느리를 보자 혼비백산 하더니 얼떨결에 주저앉아 버린다는 것이 그만‘쿵’소리가 나면서 나 딩굴고 말았다.

할머니 보다 더 놀란 손자며느리는 혹시 고관절 골절이라도 되지 않았나 하여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고 살펴보았으나 워낙 체중이 가벼운지라 낙엽이 땅에 떨어지듯 말짱했다.

그리고 영락없이 왕비께서는“아이구 어지러워서 당췌...”하더니 즉각 머리에 손을 올린다,

“아니 할머니! 그렇게 빨리 달리시면서 왜 누구라도 있으면 꼭 중병환자 처럼 그렇게 못 걷는 척 하신데유? 이상하시네? ”

일부러 식구들 들으라고 짓궂게 큰 소리 를 지르면서 부축하는 손자며느리 를

아귀차게 뿌리치더니 또 다 죽어가는 시늉을 하며 마루로 올라가는 왕비 할머니를며느님은 민망해서 당신 큰며느리에게 주먹질을 하는 시늉을 하며 눈짓으로 나무라신다.

“어머니! 할머니 기운이 얼마나 세던지 소도 잡게 생겼어요. 제 팔을 뿌리치시는데 제 몸이 획 돌아가더라구요 글쎄“

큰 손자 며느리가 일부러 중병환자가 되어 겨우 기다시피 마루로 오르시는 할머니들으시라고 두 동서끼리 눈을 찔끔 거리며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것을 왕비님을 부축하려고 뒤뚱거리면서 나가시는 어머니가 보시고는 아랫입술을 깨무는 시늉을 하며 발까지 구르며 나무라시는 표정을 짓는다.

한참을 무수리처럼 왕비의 비위를 맞추고 나오시는 어머니는 두 며느리를 향해 눈을 홀기시는데 눈 꼬리가 밉지가 않은 것을 보면 저 양반도 어쩌면 며느리 덕분에 오랜만에 속이 다 시원 하셨으리라.

“느이들. 할머니한테 함부로 하지 말어!”기여히 속보이는 한 말씀 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너무 솔직해서 항상 손해를 보는 큰 며느리는 그만

“ 나중에 어머니도 저러실까봐 그래요”무심코 뱉어버렸다.

순간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처럼 너무 당황해 하시는 어머니를 보자 두 동서의 눈이 서로 마주치면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들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렇게 왕비께서는 평생을 온 식구들로 부터 당신이 보호 받으면서 살아가는 그 유일한 수단을 무수리처럼 부리는 며느님이 감히 행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할머니를 객지에서 사는 큰손자 며느리나 같이 살고 있는 작은 손자며느리는 노골적으로 가증스러워서 못마땅함을 표현하는 바람에 할머니는 손자며느리의 일거수 일 투족 을 고자질하는 복수를 하게 되고 그 결과로 손자며느리는 시집을 탈출하여 자유를 얻은 반면 미련한 왕비의 며느님은 더 큰 족쇄를 차고‘어이구 징그러’를 토하고 있었다.

그렇게 왕비께서는 며느님에게‘어이구 징그러’하는 한숨을 십년을 더 뱉어 내게 하고는 100살을 2년 남겨놓고 98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 세월을 살면서도 왕비는 그 몸에서 낳은 자손을 하나도 앞세우지 않고 지겨울정도로 평화만 누리다가 그 많은 자손의 임종 가운데 눈을 감았다.

왕비 며느님께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서럽게 곡을 하더니만 염을 하려고 시신을 드러내자 그만 자기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 아이고 어머니! 어이구 징그러’하는바람에 건성으로 곡을 하고 있던 다른 자손들은 눈물도 없는 뽀송뽀송한 눈들을 이리 저리 굴리며 처음에는 놀래다가 차츰 괘씸함을 각각 가슴에 담았다.

시집와서 육십 여년을 자기 인생한번 살아보지 못하고 무수리 인생을 살았으니 어찌 징그럽지 않으랴.‘어이구 징그러!’

왕비를 담은 화려한 꽃상여가 대문을 나서는데 꽃상여가 담아가는 한 삶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한 번도 남을 위해 살아보지 않고 삶의 아픔을 동반해보지 않은 이유로 그렇게 초라해 보일수가 없었다.

차라리 가마니에 둘둘 말아 지게에 얹혀있는 고달픈 삶이 그 보다 더 초라해 보일까 싶었다.

‘이제가면 언제 오나. 어허이 어허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가 주춤대며 늑장을 부리는 초라한 꽃상여가 염치없어 보였다.

한 인생을 구기는것 외에 아무런 의미 없이 살아온 어느 인생의 삶은 결국 미물만도 못함이었다.

그리고 평생을 ‘어이구 징그러’를 뱉었던 며느님은 왕비가 떠난 후 자신의 삶을 겨우 3년을 더 살아보고는 유명을 달리 하였다.

이렇게 한 인생은 다른 어느 인생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듯이 그렇게 서둘러 뒤따랐다.

그러나 며느님을 담은 꽃상여가 대문을 나서는데 꽃상여가 담아가는 한 삶이 토해낸 육십 여년의 탄식은 이 세상에 태어난 책임과 의무를 다 하고 훨훨 가벼운 날개 짓을 하며 춤추듯 화려했다.

구슬픈 상두가 에 맞춰 화려한 만사지가 펄럭 펄럭 펄럭이며 어느 인생에 의하여 무수리 인생을 살았던 한 징그런 삶을 이제야 마감한 한 영혼을 멀리 멀리 보내는데 외롭지 않게 동행하고 있었다.

 육십 여년의‘어이구 징그러’의 탄식의 삶은 그 의미가 충분함이었다.

(김덕중로사)

       

                                                                                      

댓글 3

  • 2007년 9월 3일 오후 12:57

    <img src=http://park12.wakwak.com/~miwako/s/ki/062.gif><p>로사형님, 오랫만에 노원홈피에서 만나 반가워요. 아직까지 낮에는 더워서 나무 그늘과 의자 두개 준비했어요. 시원한 그늘로 오세요.

  • 2007년 9월 3일 오후 5:27

    바실리아 기왕이면 마실것도 준비하지..^ ^ 우리 얼굴본지 오래됐지? 보고싶네.

  • 2007년 9월 16일 오전 12:22

    <img src=http://www.pennyparker2.com/aniangel.gif><p>형님 반가워요 저 잘하고 있지요

놀이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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