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를 마친 우리 아버님!
어느 날 우연히 신부님께서 연로하신 어른이나 움직이기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서 출장교리를 허락 하셨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구십을 바라보시는 시아버님이 계시기에 나는 귀가 번쩍 띄었다. 마침 남편이 출장을 가고 없는 틈을 타서 아버님과 식사를 하면서 나는 넌지시 운을 떼어 본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응은 상상을 넘었다. 양손을 번쩍 들어 훠이훠이 내저으면서 천 부당 만부당 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늘 끝조차도 안 들어 갈 것 같이 단호하게 부정을 하시는데 저 외소하고 꺼질 듯한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찬 몸짓을 할 수 있는지 오히려 내가 놀라고 있었다.
결코 쉬울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저렇게까지 하느님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갑자기 지금껏 한솥밥 먹고 부비며 살던 아버지가 아주 생소한 타인 같은 느낌이, 그것도 징그럽게 싫은 남처럼 느껴지는 나 자신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고 세상적인 예를 들면서 설득하기 시작 했다.
“아버지한테 지금 10억이란 재산이 있는데 작은 아들은 아버지보고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고, 큰 아들은 저 노인네는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 한다면 아버지는 그 재산을 어떤 아들에게 주실거여유?”
“쟤가 지금 내가 그런 재산이 워딨다고 그러냐 너는?”
“만약에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 재산을 누구에게 주실거냐구요. 아버지라고 하는 작은 아들을 주실거유? 아니면 저 노인네가 무슨 우리 아버지냐, 나는 모르는 노인네다하는 큰아들을 주실거유.”
“나는 그런 돈도 읎고 말여 그런 아들도 없으니께 골치 아픈 얘기 그만 혀라.”
“하늘나라도 세상 이치와 같은 거여요.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도 하는님이 건강의 복을 주셨기 때문이고 아버지나 아버지 자손들이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분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단 거라구요. 할머니가 아버지를 낳지만 사실은 하느님께서 할머니 배를 빌려 아버지를 이 세상에 내어 보내신 거라구요 그리고 지금 잡숫고 계시는 밥도 하느님이 며느리인 제 손을 빌려서 아버지가 잡수실 양식을 마련하신 거거든요, 그러니까 짐승만 빼 놓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느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이랍니다. 지금 아버지가 하신 행동을 하느님께서 보고 계셨을 텐데 하느님 마음이 어떠셨을까유?“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며느리가 못마땅해서 죽겠다는 표정을 하시며 의자를 박차고 방으로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물귀신처럼 따라 들어가서 나는 고해성사거리지만 신부님을 팔기 시작했다. 신부님께서 특별히 아버지를 지적 하시며 여태껏 그대로 방치해 놓았다고 애비를 나무라셨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설득을 해 보았다.
“신부님이 그렇게까지 말씀 하셨는데도 아버지가 정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네유 머.” .
고개를 외로 꼬고 며느리를 외면하고 계시는 아버지는 속으로‘그러면 그렇지 내가 싫다는디’하고 마음을 놓으시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아버지를 향해 아주 비장한 결론을 내린 것처럼,
“저희들도 신부님 볼 면목이 없으니 앞으로 성당에 못 갈 것 같네유. 그렇지만 저희들이 아버지 때문에 하느님을 저버린다는 것은 차라리 세상을 저버리는 편이 더 쉬울 것 같거든요? 그러니 아버지가 예산에 내려가실 수밖에 없네유.”
가셔서 절에 다니는 작은 아드님하고 사시라고 마지막 카드를 제시 해 보았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막무가내 인지라 이렇게 사채업자 똘마니들처럼 협박과 엄포까지 놓고서야 비로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 숙인 남자가 아닌 한 풀꺾인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아니 꼭 내가 싫다는 것은 아니고 말여. 애비 오면 상의해서 다시 생각해 보겄다고.”
“애비가 출장가면서 저보고 아버지께 말씀드려 확답을 받아 놓으라고 했는데유?그리고 애비도 그러던 걸유. 아버지가 정 싫다고 하시면 예산에 내려가서 사시게 해야 될 것 같다고 그랬슈.”
당신 아들이 그랬다는 소리에 고개를 획 돌리시더니 며느리를 쳐다보시는데 지금까지 고집으로 굳어있던 눈두덩이가 조금은 겁을 먹은 듯이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버지 방을 나오는 나는 알 수 없는 쾌감까지 느꼈지만 하느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실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하느님을 핑계 삼아 아버지의 옹고집을 아웃시킨 것이 더 재밌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리고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외출해서 돌아온 시 어머니한테 일러바치는 시누이처럼 자초지종을 소곤대고는 이제는 아버지의 의향을 묻는 대신에 교리 받는 날 자를 잡아 버렸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고행은 시작이고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 보시는 낯설음으로 새벽 다섯 시부터 준비를 하시는 바람에 우리는 늘 상 새벽잠을 설치는 대가를 치뤄야 했다.
고삐를 끌려야만 움직이는 외양간 소처럼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교리가 어느덧 끝이 났는데 그것은 칠십 중반을 바라보시는 교리반 선생님(최익곤 바오로어르신) 의 열정이 일주일에 3회씩 방문하시어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신 덕분이었다. 한 영혼을 구한다는 사명감에 지칠 줄 모르는 어르신이 존경스러웠다.
그 동안 우리가 식탁에 앉아 식사기도를 드릴 때면 엉뚱한 천장이나 바라보시며 딴 짓을 하시던 분이 이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시면서 이마와 가슴은 오른손으로 제대로 하시다가 양쪽 어깨는 어김없이 왼손까지 들먹이는 바람에 결국 양손을 들고 허우적대시다가 또 한바탕 웃게 된다.
“아버지 지금 오케스트라 지휘 하고 계슈?”
남편이 민망한지 농담하는 내 허벅지를 꾹 찌르며 웃음을 참느라고 애쓴다.
지금은 그런 아버지가 내 눈에도 그렇게 이쁜데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이쁠까 생각한다. 하루는 퇴근하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아버지께서 아주 심각하게 부르시더니,
“저기 말여 어떤 방에 들어가서 포장 쳐 놓고 신부님한테 고 허는게 있다며?”
“아 예! 고해 성사라는 거예요. 그 동안 아버지가 진 죄를 모두 고하시면 하느님께서는 아버지가 그 동안 알고 진 죄나 모르고 진 죄나 전부 사해주시고 아버지는 영적으로 이 세상에 깨끗한 영혼으로 새로 태어나시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말인디 니가 가서 대신 고혀라. 우리 아버지는 죄가 없다고 말여,”
웃음도 나왔지만 나는 장난기가 도져서 시침 뚝 떼고,
“예? 아버지가 죄가 없다고? 그럼 아버지 젊어서 바람도 안 피셨슈?”
“그건 왜 묻니?”
아주 민망한 듯, 못 마땅하신 듯 힐끗 쳐다보시다가 고개를 외로 트시면서 대꾸를 하신다.
“음, 분명히 피시긴 피셨군. 저보고 신부님께 대신 고하라고 하셨으니 제가 고 할려면 아버지의 젊어서 행적을 다 알아야 하니까 솔직하게 말씀 해 보슈. 에! 또 육하원칙에 의해서 그래 바람은 왜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몇 번이나 피셨남유?”
“에이 참! 어려워”
당신 방으로 피하시는 아버지를 또 쫓아가서는,
“제가 알기로는 남도 엄청 많이 미워 하시던데 뭘. 며느리인 저도 미워하시고 예산 작은 며느리는 안 볼세라 미워하시고는 무슨 죄가 없다고 저 보고 거짓말로 고하라는 거유? 그것 보셔유. 저한테 고하시는 것 보다는 포장 쳐 놓은 방에서 신부님께 고하시는 것이 훨씬 낫쥬?”
또 한참을 고개를 틀고 계시다가 나오셔서,
“그럼 니가 글로 좀 써 다오. 잘한 것도 고혀야지?”
“얼~래 어이구 참 아버지가 잘 하신 것이 뭐가 있남유? 지나가는 나그네 데려다가 밥 한술을 줘 보셨슈?. 언젠가 집에 거지가 오니까 막 야단치시더니 10원짜리 하나 던져 주시더구만.”
놀려대는 며느리를 피해서 방으로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물귀신이 또 따라 들어간다.
“왜 또 들어오니?”
들어오는 며느리를 밀어내는 아버지, 밀고 들어가는 물귀신,
“아버지 원래 선행은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잖어유. 그래서 내가 행한 선행은 하느님이 다 아시는 것이므로 고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유.”
아버지의 교리가 끝나고 나서부터 이렇게 우리 집은 날마다 웃을 일이 많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