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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년을 맞고 보니 지나가는 임산부 를 보면 저아이가 세상에 나와 대학갈 무렵이면
어쩌면 나는 이세상 사람 아닐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답니다..
그러면 지금껏 나는 어떻게 살았나 생각 하게 되고
그리고 어리섞게만 살아온 세월이 그냥 아쉽고
억울하고 분하고 그렇게 밖에 살수 없었던 내가 미웁고
그래서 한동안 우울하고.. 그래요.
그러다가 우울을 탈피한답시고
"그래도 나는 나름데로 최선을 다했어"
그렇게 자위를 하고는 위안을 가지려는데.
그러나 그 최선이라는 것이...
소와 사자가 결혼을 하고 살았답니다. 소는 열심히 사자에게 풀을 먹이며 사랑을 하였지요 .
그러나 사자는 죽을맛이였답니다. 사자도 열심히 소에게 고기를 먹이며 사랑을 하였지만 소는 소데로 죽을맛이 였겠지요. 둘이는 참는데 한계를 느끼고 헤어졌는데 서로에게 하는말이,
"나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이렇게 상대를 배려 하지 않는 최선은 어쩌면 상대 에게는 최악일수 도 있음을 어리섞은 인간에게 깨우치는
이 우화가 내가 세상을 사는동안 수없이 반복되고 있었슴을 알겄도 같답니다.
저는 직장과 가정을 소유한 댓가로 두배의 노력을 해야만 했고
그 노력이 그다지 빛도 나지 않으면서 고달프기만 하는 그런 삶의 연속이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사례가 종종 있었답니다.
직장에서 돌아와 그짧은 시간을 이용해 가사노동을 시작하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와 ,
"여보"
부르면 다정하게 웃음으로 맞이하기는 커녕 쳐다볼 시간도 아까워서
"나 지금 바쁘거든?"
쳐다보지도 않고 내 할일만 계속하는 아내의 등짝이나 머리통을 한번 쥐어박고 방으로 들어가는 남편에게 또 한마디.
"나 지금 샤워해야 되거든? 식탁에 차려놓은 것 드세요 .찌게는 내일 끓여주께 응?"
그리고 대답이 없는 남편이 그래도 걸리는 양심은 있어서 욕실문을 살짝열고 ,
"여보 삐졌수?"
어느 날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들을 누구에겐가 풀지 않으면 않될 긴급 상황이 벌어졌다 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언어.
'당신이 지금껏 남편에게 해준것이 무엇이냐. 아침에 옷을한번 챙겨주었냐.
손수건을 한번 챙겨 주었냐.넥타이를 한번 메주었냐 . 남편 밥상에 신경 한번 썼는냐' 등 등....
그러면 나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억울 할수가 없어서
"당신은 손이 없소 발이없소 지능이 저능아요 도데체 멀쩡한 사람이 생각이 그렇게도 없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소."
그리고 분하고 또 너무 분한 나머지 여자들의 가장 큰 무기인 눈물도 안나오는 그런 상황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다투게 되고..
시간이 약이더라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잠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 하면
어느새 상대방이 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프고.
서로 등을 돌리고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면 팔베게를 하고 있는 서로에게
멋적어서 떠다 밀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기 일쑤고.
떨어진 상대방이 혹시 다치지는 않았나 놀래서 살펴봐 주다가 화해 란것이 겨우 이루어 지는
그런생활 의 연속이었지요.
왜 그리 내 십자가가 길게만 느껴지던지 다른사람의 짧은 십자가에 비유하게 되고
또 그 긴 십자가가 억울해서 별별 수단으로 짧고 가볍게 하려니 또다른 그만큼의 무게로
다시 다가서는 십자가를 인식 못했던 어리섞음..
그런데 무겁기는 매 한가지인 십자가 위에다
기왕 무거운김에 사랑이란 무게를 하나 더 얹어 보았더니
이게 왠일일까요. 도데체 부피는 같은데 무게가 없어요.
사랑이 결여된 십자가는 단 한발짝도 힘겹지만
사랑이 겸비된 십자가는 한평생을 간다해도 무게를 모르는것이
하느님의 섭리임을 60년의 세월을 밟고온 지금에 와서 어렴풋이 알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그 최선을 다 했노라고 자만하지 말고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만 한다"
그 말씀이 바로 김덕중(로사)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임을 아주 겸손하게 받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