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불」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청소기를 돌리다 말고 무심히 받아들고는 느긋하게,
“여보세요?”
“야! 너 엄마한테 전화 좀 빨리 드려봐라”
다급한 언니의 목소리에 또 다시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왜 또 오, 무슨 일 있어?”
“아니, 어제 꿈자리가 하도 뒤숭숭하고 집에 전화 드려본지도 며칠 됐길래 전화를 걸어봤더니 글쎄 엄마가 기운이
하나도 없이 받으시더라. 그래서 어디 편찮으시냐고 했더니 어제 읍에 나가시다가 넘어 지셔서 또 오른쪽 팔이 부러
지셨단다 어쩐다니?“
병원에 근무하는 나는 어머니를 비롯하여 시댁이든 친정이든 식구들 중 누가 환절기에 고뿔만 들려도 불러내는 우
리 집 119다. 나는 조퇴를 하고 장자인 오라버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오빠의 차를 타고 급히 내려가 보니 통나무처
럼 부어있는 환자의 팔에는 허술한 붕대만 칭칭 감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넘어지신 지가 이틀이 되었다고 한다. 그
동안 식사도 못하시고 아파서 쩔쩔매고 계셨다. 혼자 사시는 분이 팔까지 부러졌으니 밥을 해다 바쳐도 못 드실 판
에 당신이 조석을 끓여 잡숫는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뇨와 혈압중복으로 약을 드시고 계시는 어
머니는 식사를 하지 않았을 때 저혈당으로 혼수가 올 수 있을 것이고 그 상태에서 혈압은 상승할 것이므로 곧 응급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아이구 엄마! 이 상황이 됐는데 전화를 안 하면 어떻게 해. 엄마가 자식이 없어?”
“뼈가 부러진 줄 알았간디? 읍내 병원에 갔더니 뿌러졌다잖여.”
“그럼 바로 서울로 전화를 하셨어야지 왜 그냥 있었슈? 이 팔로 혼자 조석해서 잡숫겄다고? 아유 정말 내가 속상해서 죽겠어.”
“느이들 걱정할까봐서… 처음에는 부러진 줄 모르고 침이나 맞어볼라고 한약방을 갔었는디….”
“그런디. 한의사가 침이나 맞으면 낫것다고 허든감유?”
“암말도 안하고 침만 놔 주길래 집에 왔는디 밤새 여간 아퍼야지. 그래서 오늘은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니
께 부러졌다잖여.”
“그 빌어먹을 돌 파리 한의사 고발해 버릴까부다. 이렇게 퉁퉁 부었으면 골절 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어 봐야지 어이
구, 촌사람들 불쌍혀. 가만, 지금 내가 성질만 부리고 있을 때가 아녀.”
나는 우선 간단한 요기부터 하시게 하고 곧장 서울로 올라와 내가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시켰다. 부
기가 빠지는 동안 혈압과 당뇨조절을 하고 일주일 만에 수술을 했는데 이것이 네 번째의 골절이다. 사지가 전부 돌
아가면서 한 번씩 골절상을 당한 것이다.
“팔다리가 네 개였기에 망정이지 아마도 다섯 개였다면 아직 한번이 더 남지 않았으까?”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에야 우리 형제들은 비로소 어머니와 농담들을 할 수 있었다. 팔십을 넘긴 어머니
는 십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골 종가 집 맏며느리로서 선산을 지키신다고 지금껏 혼자 살고 계셨다. 그 큰 종
갓집을 혼자서 건수 하신다는 것이 좀 체로 쉬운 일은 아니겠는데 평소 유난히 급하신 성품은 팔십이 넘어서도 여전
하여 기차시간 안 놓치려고 달리는 사람처럼 서두르시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덕 사나운 시골길에 잘 넘어
지게 되고 골다공증이 심한 노인의 뼈는 즉시 골절로 반응을 했다. 어머니는 양쪽 팔다리 사지를 모조리 한 번씩 재
해로 골절상을 당하시고도 여전히 혼자 사시는 것을 고집했다. 병원에서는 박박순 할머니가 직원 어머니이기도 해
서겠지만 이름도 특이했고 여러 번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도 유명해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기억들을 한다. 팔십 노인
이 노인답지 않게 항상 책을 보시는 분으로도 회진하던 의사들은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근무시간 틈틈이 시간을 내어
병실에 들른 딸에게 어머니는 방금 회진을 마치고 돌아서는 의사를 눈짓으로 가리키면서 아주 민망한 듯이, 그리고 부끄럼 타는 처녀같이 고개를 약간 숙이더니,
“저 의사는 나만 보면 저렇게 피식피식 웃어야. 내가 하도 입원을 자주 하니께 저 늙은이 또 왔구나 하고 웃네비여.”
“어 얼래, 엄마는. 저 선생님 인상이 원래 웃는 인상이거든?”
어머니는 이번에도 의외로 회복이 빨라 다시 그리던 고향으로 모셔다 드렸고 형제들은 번갈아 가면서 매주 내려가 뵙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해 오월 어느 날 저녁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무심코 전화기를 드는데 또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
“야! 너 놀래지 말어. 엄마가 뒤꼍에서 낙엽을 태우다가 산불을 냈단다.”
“뭐? 산불이 왜나?”
“불씨가 남은 것을 모르고 다 꺼진 줄 알았댜. 근데 그 불씨하나가 산으로 올라갔던게비여. 119가 와서 방금 끄고 갔댜.”
“엄마는? 다친데 없댜? 괜찮어?”
“당신은 괜찮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노인네가 놀랜 것 같어야 니가 전화 좀 드려봐.”
“알었어.”
이번에는 뒤꼍에서 낙엽을 태우다가 불씨가 집 뒤 조상님들을 모신 선산으로 옮겨 붙으려고 하는 찰나에 동네사람
들이 119 에 신고를 하여 소방차가 방금 끄고 간 사건이었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상태가 의심스러워서 나는 그 길로
내려가고 형제들은 놀래고 허할 때 먹는다는 보약을 한제 지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랴부랴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로 아들은 부여군청에 들러 벌금을 해결 하고 딸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하여 오랜만에 자식들에 둘러싸
인 어머니는 산불커녕 성냥불도 보지 않으신 분 같이 여전히 당당했다. 자식들 얼굴을 보는 어머니는 무척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환갑이 지난 오빠가,
“어머니! 자식들이 보고 싶으면 그냥 보고 싶다고 하쇼. 괜히 애매한 팔다리나 부러뜨리고 산에 불이나 질러서 내려
오게 만들지 말고….”
그리고 꼭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퇴근을 하여 막 집에 도착하니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언니의 다
급한 목소리에 내 가슴은 또 천 길 낭떠러지다. 이번에도 산불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선산을 모두 태우고 산 너머 마
을까지 타들어 가기 직전에 119가 와서 불길을 잡았다는데 그것이 어제 일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또 걱정이었다.
노인만 괜찮으시다면 온 집안이 다 타 버려도 상관없을 것 같은 마음이다. 요즘에는 농촌에도 집집마다 LPG가스통
에다 보일러 기름통들을 매달고 있는 판에 불길이 마을을 덮쳤더라면 그 화마를 어쩔 뻔 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오
싹 소름이 돋는다.
다른 형제들은 다음날 내려오기로 하고 우리 집 119인 내가 먼저 내려 가 보니 세상에, 어머니는 탄광에 매몰되었다
가 방금 꺼내놓은 사람 같았다, 세수도 못하셨는지 머리는 산발하여 두억시니 같고 손목은 때가 꼬질꼬질한 붕대로
칭칭 동여매져 있는 것이. 두 눈은 쾡 하니 심리는 들어가고 눈알은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느이들 걱정 할 것 같어서 안 알리려고 했는디….”
나는 속으로 ‘어이구 참! 자식들 놀란 가슴 가라앉히기도 전에 온통 일은 맡아 놓고 저지르는 양반이 하시는 소리 보소….’
작년에 산불을 낸 것도 꼭 오월 이때였다. 오월 한낮에는 불길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여 ‘여수불’ 이라고 한다. 한낮에
낙엽이나 쓰레기를 태우다가 그 여수불씨를 놓칠 수가 있어 여간 위험 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시골에서는 혼
자 사는 노인들이 낙엽을 태우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노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불씨 하나가 담
장사이로 뱀이 빠져 나가듯이 유유히 빠져나가 바스러지도록 잘 마른 나뭇잎에 옮겨 붙어 순식간에 화마로 변해 버
렸으리라.
갑자기 불이 번지자 너무나 놀랜 어머니는 얼떨결에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번져가는 불길을, 그것도 맨 손으로 어
찌 해 보겠다고 하신 것이 나중에 보니 손가락 두개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기상이 바싹 틀려버린 어머니를 뵙자 나
는 가슴이 아파서 한참을 힘들어 했다. 나는 먼저 어머니의 상처를 보기위해 붕대를 풀어보았다. 그런데 이런, 보기
도 끔찍할 만큼 손가락 두 개가 말갛게 부어있었고. 손가락이 썩어가고 있는 것처럼 살색이 까맣게 착색되어 있는
것이, 군데군데 누런 고름이 보이면서 심한 염증 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렀는데 어머니는
딸을 안심시킨다고 하신 말씀이 세상에,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제 119가 불을 끄고 간 뒤 동네 이장은 어머니의 상처를 보고 서둘러 자기 차에 태워 병원에 가서 화상치료를 하고
진정제 주사도 한 대 맞혀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마을에는 어머니 보다 세 네살 아래인 집안 대소가 할머니가 한
분계셨는데 그 분은 당뇨합병증으로 잘 걷지 못하시는 분이었다. 보행기를 의지하여 마당을 한번 내려오려면 한나
절이 걸리는 노인에게 어머니는 틈만 나면 마실을 가서 말벗도 해주고 은행일도 보아주고 택시를 불러 병원에도 데
리고 가고 장날이면 필요한 물건도 사다주고, 기꺼이 봉사를 하고 계셨다. ‘나 같은 늙은이를 필요로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 필요한 존재라 감사하다.’ 하시면서.
어제도 병원에 다녀와서 많이 진정이 된 어머니는 이런저런 얘기도 하실 겸 그 할머니 집에 마실을 가셨던가 보다.
비록 걷지는 못하실망정 옛날부터 양반집 종손 며느리로 꽤 입바른 소리 잘하시고 집안일, 동네일 간섭 안하시는 것
이 없는 이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듣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아이고 큰일 나유. 병원에 다녀봐야 고생만 허지 낫지도 않고 말짱 헛거유. 잘못 허면유 손가락 병신 되유. 화상에
는 뭐니 뭐니 혀도 그저 간장에 담그는 것이 제일 속혀유. 나도 소싯적에 끓는 물을 허벅지에 몽땅 쏟아서 한쪽 다리
가 꽈리처럼 부풀고 진물이 나고 했지만 간장에 담그고 나서 그 다음 날 부터는유 밭에 나가서 밭일도 하고 그 많은
집안일을 다 했슈.”
걷지도 못하는 양반이 앉아서 뭉그적대며 씽크대로 가더니 간장을 한 그릇 쭐쭐쭐 부어가지고는 어머니한테 다가와
서 상대방 의사는 물어보나 마나, 닭 모가지 비틀 때 닭 의사와는 상관이 없듯이 다짜고짜로 병원 치료를 받고 싸맨
붕대를 거침없이 풀어 제치더라고. 처음에는 어머니도 버티다가 너무나 확신에 차서 덤벼드는 노인네 말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더라나. 상처가 간장에 닿자마자 쩌르르 살을 도려 내는듯한, 팔목을 둔탁한 몽둥이로 내려치는 듯한
통증에 소리를 지르며 잡아 뺏더니 노인네는 길거리에서 맞닥트린 빚쟁이 옷자락 움켜잡듯이 어머니의 팔을 잡고
는,
“내일이면 끄들끄들 해 지고 다 나슬텐디 조금만 참어유우.”
간장 속에서 팔을 빼지 못하게 있는 힘을 다 해서 붙들고 안 놔 주더라고 했다. 그날 밤, 그러니까 어제 밤, 어머니는
밤새도록 손가락이 아닌 팔 전체가 송곳으로 도려내듯이 쑤시고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밤을 꼴딱 새웠는데 새벽에
겨우 통증이 가라앉아서 조금 주무셨다고 한다. 지금은 심하게 아프지 않아서 살 것 같다나.
당뇨나 혈압 환자는 외상을 입거나 감기라도 걸려 컨디션이 나쁘면 혈압 당뇨의 수치가 갑자기 상승하기 때문에 곧
응급상황인 것인데. 그런 위험에 처해있는 어머니가 만약 상처의 균이 혈관에라도 침입했다면 어쩔 번했는가. 기가
막힌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화를 내고 있기에는 너무 늦었다 싶어 부랴부랴 어머니를 다시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어제 다녀간 할머니를 알고 있던 의사가 상처를 보더니 나만큼 놀래고, 씩씩거리는 딸한테 자초지종을 들은
의사는,
“할머니! 아이고 참. 할머니 팔 하나 자르고 싶어서 그래유? 큰일 날라고 왜 그랬슈?”
아무리 노인이지만 그렇게 무식한 할머니가 있단 말이냐, 그런 무식한 할머니 말을 믿고 따른 할머니도 한심하다는
듯한 의사의 말에,
“글쎄유, 내가 부족한 탓이지….”
누굴 원망 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시무룩한 어머니, 어리석은 당신 자신한테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다. 입원까지는
하지 않고 응급 처치와 주사를 맞히고 돌아오면서 나는 기여 어머니한테 핀잔을 해 버렸다.
“그래. 그 옛날에 중학교 까지나 나오셨다는 양반이 그 일자 무식쟁이 앉은뱅이 노인한테 붙잡혀서 상처 난 손가락
을 간장에 절구고 있었어? 장조림처럼 불에다 조리자고는 안합디까? 의학이 발달하여 죽은 사람도 살리는 요즘 같
은 문명시대에 상처 난 손가락을 간장에 절궜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라나? 창피하지도 않어유?. 어휴 속 터
져, 정말. 그 빌어먹을 노인네 혼자만 앉은뱅이 된 것이 억울한 가베. 멀쩡한 사람 팔 하나 잘리는 것 볼려고 그러나?
다시는 그 노인네한테 가지 말어. 그 동안 봉사해준 대가가 그래 겨우 멀쩡하게 치료받고 온 상처 풀어 헤쳐서 간장
에 절궈?”
그러나 그런 딸에게 어머니는 침착한 목소리로,
“너무 그러지 말어. 그 할머니도 빨리 낫게 해 줄라고 그런 것이지 일부러 그랬것냐 내가 어리석었지.”
“인제 알것슈? 당신이 어리석은 것을?”
삼일동안 계속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며 치료를 하였더니 이제 그 기승을 부리던 염증이 한풀 꺾이듯 위기는 모면한
것 같았다. 아무튼 주말을 끼고 형제들이 내려왔다. 군청에 들러 벌금을 내고 대문을 들어서던 작은 아들이 어머니
손을 잡고는 킬킬거리더니,
“박박순씨! 방화범 전과자로 올라갔더구먼. ‘요 관리 대상자’로 분리되어 군청에서 따로 관리 헌댜.”
형제들은 박장대소를 하고 박박순씨, 태연하게 웃지도 않고,
“그래 재범이라고 벌금이 많지야? 내가 주마.”
“다 우리 선 후배들인데 뭘, 그냥 술 한잔 먹기로 했으니 걱정 마슈.”
아들은 어머니를 안심시키더니 우리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다. 이 백만원 들었다고. 아들
은 다시 어머니 손을 잡고,
“전과자 박박순씨! 아버지 산소도 다 탔것네?”
“아녀. 느이 아버지 산소는 용케 피했다야.”
“허허이 참 열녀문 새워 드려야 것구먼그려. 아버지 젊어서 어머니 속 썩힌 생각 허면 아버지 산소만 홀딱 태워버렸
다고 해도 어머니헌티 말할 사람 아무도 읎는디?”
어머니를 골리는 작은 아들의 느물거리는 소리에 큰아들은 장남답게 비식비식 웃으면서도 모시지 못하는 장남으로
서의 깊은 책임을 통감하는 듯 어머니 얼굴에서 눈을 거두지 못하고 나는 깔깔거리면서도 간장에 담갔던 상처가 어
쩌면 잘못되었을 수 도 있었을 상황을 떠 올리게 된다. 지금 이렇게 웃고 있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한 숨 돌린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현장으로 올라가 보았다. 머리를 시커멓게 태운 조상님들이 죄다 앉아서 ‘너희
들 왔냐? 하신다. 정말 아버지 산소만 용케 말짱한 것이 오히려 면구스러워서 조상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아이고 우리 조상님들, 종손 며느리덕분에 머리나 끄실르고 수난이 말이 아니시구먼유.”
또 작은아들의 느물거리는 소리에 박박순씨 한마디 하신다.
“벌레 들이 다 죽어서 잔듸는 잘 자랄껴.”
“거 벌레 두 번만 죽이다가는 우리가 놀래서 먼저 죽겄어.”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입을 비쭉거리는 아들, 또 한바탕 웃는다. 언덕 너머에 있는 마을에서는 불길이 넘어 올 것을
대비하여 물동이에 물을 담아 놓고 전쟁터에서 발사 명령을 기다리는 화살부대처럼 포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늦은 밤까지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무사한 어머니를 보며 마음을 놓던 형제들은 상처 난 손가락을 간장에 절군 사연
을 듣더니 하나같이 분통을 터트렸다. 나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다시 길길이 뛰었고 상처를 풀어헤친 그 노인에게
차라리 저주에 가까운 감정을 뱉어내었다. 그런 나에게 언니가 한마디 한다.
“야! 그 노인 원망 할 것 없다. 걸음도 못 걷는 앉은뱅이 노인이 도망가는 엄마를 쫓아와서 붙잡은 것도 아니고 그래
두 다리 멀쩡해 가지고 앉은뱅이 노인한테 붙잡혀서 간장에 담그란다고 담그는 엄마가 어리석지 뭐.”
다시는 그 노인네한테 가지 말라고 우리는 성화를 부렸다. 그러나 침착한 언니가 또 한마디 한다.
“에이. 그렇게만 생각 할 것은 아니고 하느님께서 큰 위험에 처한 엄마를 낫게 해 주신 것은 그 동안 그 할머니한테
봉사를 많이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계속 보살펴 드리라는 뜻 인 것 같어.”
“그람 그람, 나 같은 늙은이를 누가 불러 주것냐, 그래도 나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나는 항상 하느님께 감사하다.”
“그러슈, 가셔서 간장독에 몸이라도 담그라면 또 푹 담그고 기슈.”
자식들은 행여 잘못 되었을 수 도 있었던 상황을 떠 올리며 어리석은 어머니를 핀잔했다.
그 할머니는 젊어서부터 고집과 대가 세기로 유명했다. 얼굴도 잘 생긴 정경부인감 이었다. 영감님은 물론 문중 사
람들은 그 할머니 고집을 꺾을 사람이 없었다. 늙고 병이 들어 앉은뱅이가 된 지금까지도. 작년에는 집안에 초상이
났는데 망인이 소실소생 이었지만 시동생 벌이었다. 망인의 자손은 종손인 큰 어머니를 찾아와서 묘 자리를 얘기했다.
“이? 그 자리는 내 자리여 내가 들어갈 자리란 말여 안 되야.”
“아이구 참 큰 엄니도, 돌아가시지도 않으신 양반이 무슨 묘 자리를 잡아 놓구 그런데유?”
“왜 못혀. 나도 금방 갈틴디.”
죽은 사람이 임자라는 종중산인데 죽지도 않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당신 자리라니, 어이가 없는 망인의 아들은
늙은이 노망이려니 했다. 다음날 사람을 분간키 어려울 첫 새벽에 포크레인 장비를 불러 올라 갔는데 그 자리에 그
만 허연 할머니가 흰머리는 새벽 실바람에 나풀나풀 날리면서 떡 버티고 앉아 있더라고. 그 새벽에. 귀신인줄 알고
혼비백산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은 그 자리를 피해서 묘를 쓸 수밖에 없었다. 산을 내려 올 때는 망인 자
손의 등에 업혀서 내려 왔다. 걸음도 걷지 못하는 노인이 아무리 뒷산이라지만 평지도 아닌 곳을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 갈수 있었을까. 보행기에 의지해서 마당에 한번 내려오려면 한나절이 걸리는 노인이 말이다. 동네사람들은 혀를 내 두르며 기가 막혀 했다. 그렇게 집요한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의 자손들은 자라면서 어머니에게 거역이란 있을 수도 없었다. 있었다면 곧 형틀에 묶지만 않았을 뿐 태형
으로 다스렸으니까. 허옇게 늙어가는 자손들은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은 그것도
할머니의 복이려니 한다.
생계가 농업에서 산업으로 바뀐 현대의 농촌에는 어디를 가나 젊은이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고 노인들만 고향을 지
키고 있다. 기력이 쇠한 노인들은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고 울안에만 있어서 집집마다 소나무 껍데기 같이 메마른
노인들이 유령처럼 지키고 있는 시골은 대 낮인데도 텅 빈 것이 마치 죽은 마을 같다. 사람이 없는 대로에는 배 깔고
누워 있는 개들이 자동차가 와도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개(犬)님께서 비켜주기를 기다리다 못한 자동차가 급
기야 ‘빵’ 하고 경적을 울리면 개(犬)님께서는 마지못해 일어나면서 그것도 냉큼 비키지 않고 부르르 몸을 한 번 털
고는 고개를 돌려 자동차를 비웃듯 쳐다보면서 느릿하게 비켜선다. 우리는 친정 나들이 할 때마다 ‘충청도는 개도
느려.’ 하면서 웃는다.
이렇게 노인들만 살고 있는 시골에서는 크고 작은 산불이 왕왕 일어나고 있었다. 어떤 노인은 우리 어머니처럼 낙엽
을 태우다가 산불을 내고 말았는데 자손들은 다시는 낙엽을 태우지 못하도록 경고 한답시고 벌금이 오백만원이나
나왔다고 부풀려서 얘기를 했던가 보다. 노인은 산불에 놀란 데다 그 많은 벌금까지 나왔다고 하자 기가 팍 죽어서
몇날며칠을 속으로만 끙끙 앓더니 결국 치매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두 번씩이나 벌금을 내고도 어머니 걱정하실까봐 술 한 잔 먹기로 했다고 둘러대는 동생이 얼마나 대견하던….
다음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산불과 관련된 직원 하나가 ‘산불조심’이란 빨간 어깨띠를 두르고 선하게 웃으며 대문을
들어선다.
“할머니! 별일 없으시쥬?”
‘요 관리 대상자’ 로 분류된 전과자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들러보는 산불 담당자였다. 우리는 직원의 손을 붙잡고 음
료수를 대접하면서 고맙고 미안함을 전했다.
여왕의 계절인 오월은 올해도 천상의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며 뽐내는데 우리에게는 여전히 머리를 까맣게 그을
리고 앉아있던 조상님들 묘만 생생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