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와 관련된 성인

2008. 8. 19. 오후 3:27:06

글자
장 마리 비안네 신부 (1786~1859)

‘고해성사를 받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사제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믿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용서의 은총을 주시리라는 ‘희망’,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인도해주며 우리가 그분에게 잘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우리 마음속에 심어주는 ‘사랑’, 이렇게 세 가지다’ (마크 주렝, ‘장 마리 비안네의 짧은 생애’ 중에서)

1786년 5월 8일 프랑스 리옹 근교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장 마리 비안네는 1815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1818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부임했다.

그는 이곳에서 42년 동안 사목하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열렬한 신심을 불어넣었고, 그 결과 설교자와 고해신부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됐다. 매년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비안네 신부를 찾아왔기 때문에, 그는 성무일도와 식사,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약 18시간 정도 고해성사를 줘야 했다.

비안네 신부는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해신부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으며, 교황 비오 11세는 1925년 월 31일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암브로시오 주교 (339~397)

‘매번 죄를 고백하러 사람들이 암브로시오 주교를 찾아 올 때마다 그는 항상 같이 울곤 했습니다. 자신도 함께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죄의 고백을 들은 그는 주님만을 신뢰하며 기도했습니다.’(바울리노, ‘암브로시오의 생애’ 중에서).

암브로시오는 339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에서 갈리아(Gallia)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에서 인문 교육을 받았으며 수사학과 법학,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35세 때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품에 오른 그는 정통 그리스도교를 평생 옹호했다.

암브로시오 주교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과는 함께 울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특히 죄인들에게 늘 동정심을 가지고 대했으며, 죄인들이 용서받는 것에 대해 절대로 질투하지 말라고 신자들에게 당부하곤 했다.

그는 또한 “라자로가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다시 부활했듯이, 죄 속에 묻혀 죽어 있던 사람도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예를 들며, 어떠한 죄도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요한 보스코 신부 (1815~1888)

‘올바른 고해성사야말로 올바른 길을 걷게 하는 방법입니다. 보통 이 점을 소홀히 하죠. 기도서대로, 또는 십계명을 순서대로 살펴 늘 성찰해야 하며, 모든 고백을 하고 싶으면 종이에 죄를 써서 고해신부님께 읽어드려도 좋습니다’ (파디 라민, ‘돈 보스코 이야기’ 중에서)

요한 보스코는 1815년 8월 16일 북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베치에서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841년 사제로 서품된 그는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설했고, 한 평생 청소년 사목을 위해 많은 힘을 쏟았다. 특히 그의 ‘예방교육’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예방교육’은 신체적 처벌을 지양하고, 잘못될 상황을 배제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선도하는 조치를 말한다. 그는 ‘예방교육’과 함께 고해성사와 영성체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청소년들에게 ‘솔직한 고해성사’를 해야 함을 당부했다.

청소년들을 위해서 생애를 헌신한 그는 1934년 4월 1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댓글 1

  • 2008년 8월 20일 오후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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