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요한 세례자가 광야에서 회개와 세례, 죄의 용서를 부르짖자 그를 마귀가 들린 사람이라고 여기고,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는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시 세대를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놀이하는 것에 비유하십니다. 당시의 세대가, 아이들이 장터에 모여 한쪽에서 춤을 추면 상대편에서 곡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 곡을 하면 맞은편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맹자』에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입니다. 임금이 백성에게 고통을 주면서 자기만 즐긴다면 백성은 반발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임금이 백성과 늘 함께한다면 임금이 즐기는 것을 백성도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여민동락’은 백성을 위한 통치자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비단 통치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보가 고약한 자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사목 헌장’에서는 변화하는 현대 세계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헌장의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무릇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이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슬픔과 고뇌에 함께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만일 소외된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판하신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