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 홍제동 본당 이철호(암브로시오)신부님
장소: 홍제동 성당
2003년 2월 9일 교중미사에서
(이신부님께는 허락받지 않고 강론내용을 게재했음을 지면상으로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의사와 다르게 전달될지도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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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자, 오늘 복음 말씀을 잠시 다시 생각해 봅시다. 마르코 복음 1:29-39절 말씀으로, 시몬의 장모님을 포함한 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기 위한 전도여행을 떠나시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여러 가지 묵상할 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 최소한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분석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열병에 걸려 있던 시몬의 장모님을 치유해 주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에 대한 점입니다. 그리고 보면 시몬은 그 시대에도 장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던 점을 알게 되기도 하는군요!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신 것은 어떻게 보면 오늘날 교회에서 사제들이 수행하는 병자성사와 연결해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이러한 기적을 행하신 후 먼동이 트기 전에 외딴 곳에 가셔서 기도를 하신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시간을 내어 휴식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생활에서 휴식을 하고, 주일에는 성당에서나 조용한 장소를 택해서 기도 중에 반성을 하고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갖어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영과 육으로 합일이 되어 있는 존재, 인격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삶을 살기 위해서도 일을 해야하고 또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휴식과 재충전을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영과 육의 치유>
시몬의 장모님은 나이가 많이 들으셔서 아마 손님이 오시더라도 시중을 들 나이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아 일으키시자 열이 내리고 병이 낫게 되었지요. 그러자, 이미 시중들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감격스러워서 예수님께 좋은 음식을 만들어 드리면서 정성스러이 시중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즉, 육체의 치유를 통해서 영적인 치유까지 함께 받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우리 삶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너무나 많은 사랑을 생각하면 감격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에 합당한 응분의 답례를 되돌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우리 생활에서 경험하는 그러한 기적, 은총에 대해서 꼭 그 응답을 드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병자주일의 하루입니다. 내일, 2월 11일은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프랑스 루르드에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님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제 11차 세계병자의 날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에게 병이 생기지 않으면 오죽 좋으련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잠시 고통을 겪는 병에 걸리기도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발자욱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고통을 겪는 것은 오히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당하신 고통을 만분의 일이라도 함께 나누는, 그 고통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죽을 병에 걸려서 힘들 때야 말로 어쩌면 그 분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 중의 하나일 수도 있겠습니다.
<병자성사>
한편, 병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오늘은 잠시 병자성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로부터, 죽을 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가까이 맞이하게 되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사제로부터 병자성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신자들이 병자성사나 봉송체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든 분들에게는 자주, 또는 매달 봉송체를 모실 수 있도록 자식들이 배려해야 하나 이렇게 잘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이렇게 한들 저렇게 한들...어떠하리...뭐 대단히 차이가 있으리...하는 것 같은 태도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자 여러분, 실제 우리 신자들에게는 세상에서 어떤 일이 가장 불행한 일이 될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바로 냉담 중에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도 못해보고 죄 중에 죽는다면 그야 말로 이 이상 더 불행한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남 보기에 평생 잘 살았다 할 지라도, 죄 중에 죽는다면 어찌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말씀에 있듯이 늘 깨어 있으라, 늘 준비하고 있으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병자성사를 받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질병 중의 고통을 감소시키고, 죄를 용서받은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건강을 회복시키는데도 도움이 되게 하고 나아가 하느님의 은혜를 더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개인적 경험에 있어서도 병자성사를 통해서 은혜를 크게 받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참으로 의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치유의 경험이 은혜로 내리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정말, 의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병자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심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참으로 어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가 병자성사를 소홀이 하는 것에 대해 가슴이 아프게 생각된답니다. 병자성사를 통해서 육과 영의 치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병자성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다보니까, 우리들 각자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할까...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군요. 여러분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여러분의 죽음을 맞고 싶으십니까? 저희들 신부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는...가장 바라는 죽음은 미사를 드리다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무대에서 쓰러지기를 희망한다고도 하지요?
한 4 년 전에 80대의 한 할머님께서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가시다가 유명을 달리하시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이야말로 말 그대로 곧바로 천당으로 가셨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신자로서는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으셨다고 생각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 지은 죄를 다 고해하고, 다 사함을 받은 뒤, 그 마음자리가 어찌했을 것인지....얼마나 홀가분했을까요?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세례를 받았을 때나 큰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마치고 죄의 사함을 받았을 때, 어떠하셨습니까? 날아갈 것 같은 행복감 속에서 돌아가는 길이었지 않았겠습니까? 어떤 분은 십자가의 길을 뫼시다가 돌아가신 분이 계시는데, 그 분 또한 참으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보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면, 역시 냉담 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신자들이야말로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늘 준비하는 가운데 계시기를 빕니다.
예전에는 교회법에 종부성사라고 해서 운명하기 전에 딱 한 번 성사를 주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드신 분들을 위해서는 몇 번이라도 청하면 성사를 받을 수가 있도록 교회법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환절기에는 특히 나이드신 분들이 갑작스러이 유명을 달리하시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혹시 여러분들이 지혜가 있다면(저희 본당은 어르신 미사라도 해서, 교중미사 시간과 달리 나이드신 분?들을 위한 미사가, 아직은? 제가 참석하는 교중미사 시간과 달리 마련되어 있답니다) 어르신들을 위해서 자주 고해성사를 보시도록 하시고 적절히 병자성사를 받으실 수 있도록 마음을 쓰시는 것이 효도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병자성사를 드릴 때는 평생 죄짓는 일을 해온 우리들의 오관, 눈, 코, 입, 귀, 손발?에 기름을 발라줍니다. 그래서 그 오관을 통해서 지은 죄를 씻어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죄를 고백하여 이를 사함을 받은 뒤에 운명을 하게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른 선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활 속에서 기도를 통한 휴식을 취하여 할 필요성>
요즈음에는 군대에서 병사 1인당 1 종교 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종교를 갖고 마음에 안정을 취하도록 해 주는 것이, 군대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는 것이 이미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특수상황에 처하여서 그 젊은 끓는 피를 억누르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여자친구가 그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준다구요? 물론 그런 부분이 조금은 있겠지요마는...그것만으로는 크게 도움이 안된다고 합니다. 하여간 그래서 군대 지휘관들이 요즈음은 주일날이 되면, 병사들을 한 묶음씩 모아 가지고, 예배당으로 성당으로 그리고 법당으로 가도록 돕고 있다 하지요. 심한 훈련만 하다가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사고를 낼 수가 있기에 이러한 기도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미국 등 해외에서 교포로 살고 있는 분들을 아시는 분이 계시지요? 그분들 생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봅시다. 대부분 사업이나, 상업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한 곳에서, 흑인들이 무서워서, 한인들이 장사를 하는데 물건을 파는데 손님과 주인 사이에 방탄유리가 되어 있어서 그 뒤에서 돈을 받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미국의 경우에 교포 10 명 중 7-8 명은 개신교 신자들이고 약 2 명은 가톨릭신자라고 합니다. 한국에서처럼 친척들이나 친구들하고 즐기고 놀고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결국 주말에는 성당에 모여서 만남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외국에 사는 교포들은 연일 외국인 속에서 사는 그 스트레스가 심하기에 주말에 휴식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성당에 와서 한국동포들 속에서 편안함을 누리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방에 눈에 보이는 것이 십자가가 달려있는 예배당이나 성당인데도 예배당이나 성당을 찾지 아니하고...노느라고 바쁘게 살고 있지요? 우리는 눈뜨면 볼거리가 많고 틀기만 하면 우리 한국사람들한테는 입맛에 맞는, 재미있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어서 문화적으로? 너무 편리하게 놀고, 살기에 편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만이 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조용한 시간을 택해서, 영과 육으로 구성된 우리 인격체가 항상 합당한 휴식을 취하고, 우리의 생활을 반성을 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바른 계획, 새로운 계획을 세울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바로, 전도와 병자치유를 통해 하느님의 일을 하시러 오셨던 예수님께서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듯이,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하러왔다'하시고 전도여행을 또 떠나셨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일, 사업, 행사를 다시 잘 치루어 내기 위해서도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반성을 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하고 살아가는 그러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을 꼭 놓치지 않도록 하십시다.
장소: 홍제동 성당
2003년 2월 9일 교중미사에서
(이신부님께는 허락받지 않고 강론내용을 게재했음을 지면상으로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의사와 다르게 전달될지도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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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자, 오늘 복음 말씀을 잠시 다시 생각해 봅시다. 마르코 복음 1:29-39절 말씀으로, 시몬의 장모님을 포함한 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기 위한 전도여행을 떠나시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여러 가지 묵상할 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 최소한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분석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열병에 걸려 있던 시몬의 장모님을 치유해 주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에 대한 점입니다. 그리고 보면 시몬은 그 시대에도 장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던 점을 알게 되기도 하는군요!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신 것은 어떻게 보면 오늘날 교회에서 사제들이 수행하는 병자성사와 연결해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이러한 기적을 행하신 후 먼동이 트기 전에 외딴 곳에 가셔서 기도를 하신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시간을 내어 휴식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생활에서 휴식을 하고, 주일에는 성당에서나 조용한 장소를 택해서 기도 중에 반성을 하고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갖어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영과 육으로 합일이 되어 있는 존재, 인격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삶을 살기 위해서도 일을 해야하고 또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휴식과 재충전을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영과 육의 치유>
시몬의 장모님은 나이가 많이 들으셔서 아마 손님이 오시더라도 시중을 들 나이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아 일으키시자 열이 내리고 병이 낫게 되었지요. 그러자, 이미 시중들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감격스러워서 예수님께 좋은 음식을 만들어 드리면서 정성스러이 시중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즉, 육체의 치유를 통해서 영적인 치유까지 함께 받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우리 삶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너무나 많은 사랑을 생각하면 감격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에 합당한 응분의 답례를 되돌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우리 생활에서 경험하는 그러한 기적, 은총에 대해서 꼭 그 응답을 드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병자주일의 하루입니다. 내일, 2월 11일은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프랑스 루르드에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님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제 11차 세계병자의 날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에게 병이 생기지 않으면 오죽 좋으련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잠시 고통을 겪는 병에 걸리기도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발자욱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고통을 겪는 것은 오히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당하신 고통을 만분의 일이라도 함께 나누는, 그 고통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죽을 병에 걸려서 힘들 때야 말로 어쩌면 그 분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 중의 하나일 수도 있겠습니다.
<병자성사>
한편, 병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오늘은 잠시 병자성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로부터, 죽을 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가까이 맞이하게 되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사제로부터 병자성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신자들이 병자성사나 봉송체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든 분들에게는 자주, 또는 매달 봉송체를 모실 수 있도록 자식들이 배려해야 하나 이렇게 잘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이렇게 한들 저렇게 한들...어떠하리...뭐 대단히 차이가 있으리...하는 것 같은 태도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자 여러분, 실제 우리 신자들에게는 세상에서 어떤 일이 가장 불행한 일이 될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바로 냉담 중에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도 못해보고 죄 중에 죽는다면 그야 말로 이 이상 더 불행한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남 보기에 평생 잘 살았다 할 지라도, 죄 중에 죽는다면 어찌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말씀에 있듯이 늘 깨어 있으라, 늘 준비하고 있으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병자성사를 받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질병 중의 고통을 감소시키고, 죄를 용서받은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건강을 회복시키는데도 도움이 되게 하고 나아가 하느님의 은혜를 더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개인적 경험에 있어서도 병자성사를 통해서 은혜를 크게 받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참으로 의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치유의 경험이 은혜로 내리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정말, 의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병자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심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참으로 어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가 병자성사를 소홀이 하는 것에 대해 가슴이 아프게 생각된답니다. 병자성사를 통해서 육과 영의 치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병자성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다보니까, 우리들 각자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할까...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군요. 여러분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여러분의 죽음을 맞고 싶으십니까? 저희들 신부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는...가장 바라는 죽음은 미사를 드리다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무대에서 쓰러지기를 희망한다고도 하지요?
한 4 년 전에 80대의 한 할머님께서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가시다가 유명을 달리하시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이야말로 말 그대로 곧바로 천당으로 가셨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신자로서는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으셨다고 생각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 지은 죄를 다 고해하고, 다 사함을 받은 뒤, 그 마음자리가 어찌했을 것인지....얼마나 홀가분했을까요?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세례를 받았을 때나 큰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마치고 죄의 사함을 받았을 때, 어떠하셨습니까? 날아갈 것 같은 행복감 속에서 돌아가는 길이었지 않았겠습니까? 어떤 분은 십자가의 길을 뫼시다가 돌아가신 분이 계시는데, 그 분 또한 참으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보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면, 역시 냉담 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신자들이야말로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늘 준비하는 가운데 계시기를 빕니다.
예전에는 교회법에 종부성사라고 해서 운명하기 전에 딱 한 번 성사를 주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드신 분들을 위해서는 몇 번이라도 청하면 성사를 받을 수가 있도록 교회법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환절기에는 특히 나이드신 분들이 갑작스러이 유명을 달리하시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혹시 여러분들이 지혜가 있다면(저희 본당은 어르신 미사라도 해서, 교중미사 시간과 달리 나이드신 분?들을 위한 미사가, 아직은? 제가 참석하는 교중미사 시간과 달리 마련되어 있답니다) 어르신들을 위해서 자주 고해성사를 보시도록 하시고 적절히 병자성사를 받으실 수 있도록 마음을 쓰시는 것이 효도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병자성사를 드릴 때는 평생 죄짓는 일을 해온 우리들의 오관, 눈, 코, 입, 귀, 손발?에 기름을 발라줍니다. 그래서 그 오관을 통해서 지은 죄를 씻어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죄를 고백하여 이를 사함을 받은 뒤에 운명을 하게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른 선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활 속에서 기도를 통한 휴식을 취하여 할 필요성>
요즈음에는 군대에서 병사 1인당 1 종교 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종교를 갖고 마음에 안정을 취하도록 해 주는 것이, 군대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는 것이 이미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특수상황에 처하여서 그 젊은 끓는 피를 억누르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여자친구가 그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준다구요? 물론 그런 부분이 조금은 있겠지요마는...그것만으로는 크게 도움이 안된다고 합니다. 하여간 그래서 군대 지휘관들이 요즈음은 주일날이 되면, 병사들을 한 묶음씩 모아 가지고, 예배당으로 성당으로 그리고 법당으로 가도록 돕고 있다 하지요. 심한 훈련만 하다가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사고를 낼 수가 있기에 이러한 기도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미국 등 해외에서 교포로 살고 있는 분들을 아시는 분이 계시지요? 그분들 생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봅시다. 대부분 사업이나, 상업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한 곳에서, 흑인들이 무서워서, 한인들이 장사를 하는데 물건을 파는데 손님과 주인 사이에 방탄유리가 되어 있어서 그 뒤에서 돈을 받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미국의 경우에 교포 10 명 중 7-8 명은 개신교 신자들이고 약 2 명은 가톨릭신자라고 합니다. 한국에서처럼 친척들이나 친구들하고 즐기고 놀고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결국 주말에는 성당에 모여서 만남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외국에 사는 교포들은 연일 외국인 속에서 사는 그 스트레스가 심하기에 주말에 휴식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성당에 와서 한국동포들 속에서 편안함을 누리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방에 눈에 보이는 것이 십자가가 달려있는 예배당이나 성당인데도 예배당이나 성당을 찾지 아니하고...노느라고 바쁘게 살고 있지요? 우리는 눈뜨면 볼거리가 많고 틀기만 하면 우리 한국사람들한테는 입맛에 맞는, 재미있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어서 문화적으로? 너무 편리하게 놀고, 살기에 편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만이 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조용한 시간을 택해서, 영과 육으로 구성된 우리 인격체가 항상 합당한 휴식을 취하고, 우리의 생활을 반성을 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바른 계획, 새로운 계획을 세울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바로, 전도와 병자치유를 통해 하느님의 일을 하시러 오셨던 예수님께서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듯이,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하러왔다'하시고 전도여행을 또 떠나셨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일, 사업, 행사를 다시 잘 치루어 내기 위해서도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반성을 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하고 살아가는 그러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을 꼭 놓치지 않도록 하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