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제목: '오늘의 신앙인'
강론자: 김정택신부님
장소: 서강대학교 이냐시오 성당
일시: 2002년 11월 10일 일요일 11:45-13:00
자, 여러분, 견진성사를 받고 나신 후 어떻게 살기를 바라십니까? 정말,새로워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쁨을 안고 살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이런 성사를 받게 되는 것은 단지 형식이 아닙니다. 참으로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 은총을 입으시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감사하게도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을 더욱 깊이, 해나가게 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 어찌...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바로 이 강론을 들으러 오시기 전에 주일 미사에 참여하시었고 그 미사 중, 파견(퇴장) 성가로서 청년성가 378번(가톨릭 성가 406번)을, <세상에 외치고 싶어>를 함께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잠시, 그 내용을 함께 되돌이켜 보십시다.
<세상에 외치고 싶어>
세상에 외치고 싶어 당신이 누구신지
세상에 외치고 싶어 깊고 크신 사랑
세상사람 다 알게 되리 왜 내가 늘 기쁜가
진정 그들은 놀라리라 내겐 두려움 없음을
세상에 외치고 싶어 당신이 누구신지
세상에 외치고 싶어 주의 크신 사랑
주의 크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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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준비가 되셨습니까? 예. 준비가 되셨습니다.예수님 당신이 누구신지...그 깊고 깊은 사랑을 내가 이제 알게 되었고 체험하고...정말, 당신을 닮고 싶어...그렇게 되고 싶어...라고 외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교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누군가 우리를 바라볼 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기쁘게 사는가, 궁금해 하게 되고, 아 알고 보니 저 사람 삶은...
바로 아...그랬구나...!
바로 그래서 그랬구나!
바로 저 사람은 크리스찬이구나!
하도록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견진성사는 이러한 모습이 되도록 힘을 받는 성사입니다. 세상에서 지위, 명예, 부의 많고 적음과 관련없이 예수님 모습 닮아가는 삶을 통해서 기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의 힘을 받는 성사인 것입니다.
잠시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그 기원은 성령강림절, 5순절?에 불효의 모양으로 성령이 내린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께서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때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알아 듣게 되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었던 것도 사도 바오로에게 성령이 임하심에에 의했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로부터 사도들도 성령을 받으시고? 사도들의 후계자에게도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로부터 특별히 견진성사를 통해서 성유 바름을 통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저희는 성령으로 무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교회에 내려주신 성령의 은총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성령과 구원을 받았는데 이제 또 다시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을 받아 이 기쁨을 더욱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이미 성령을 받았는데, 왜 견진성사를 통해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렇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성령의 선물을 이미 받았지만 아직 그 성령의 힘을 제대로 활성화 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너무 큰 선물을 받아서 우리의 능력으로는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신앙생활을 통해서 이 선물을 잘 활용할만한 자격도 생겼습니다. 또한 그동안 신앙생활을 잘 해옴으로 인해 더욱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갖추었고 또한 그에 합당한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제 이런 특별한 견진성사를 통해서 귀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고마움을 잘 알고, 바로 활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후 견진성사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군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해병대 출신입니다. 해병대에는 99가지의 기합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별기합이 다 있겠습니다. 하여간 해병대 훈련은 알아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받게되는 훈련은 전장에 투입되는 경우 바로 싸울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견진성사를 받기 위한 견진교리 강좌를 듣는 것 또한 이와 진배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장에서 진짜 싸울 수 있는 훈련인 견진교리를 듣고 견진성사를 받게 되면 여러분은 하느님의 군사로서 그 책임이 크게 됩니다.
스스로도 기도 생활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교인임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또한 당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끔 영세를 받은 사람들도 식당에서 성호 긋는 행위를 하는 것이 눈치가 보여서 잘못한다고 고백성사에서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괜히 난체하는 것 같아서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견진성사를 받고 나서까지도 그렇게 되서는 아니됩니다.
이는 크리스찬으로서 아이덴티티가 아직 정립이 안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타인들에게 자신이 크리스찬임을 자신있게 내어 보일 수 있는 사람,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서, 그리고 식사를 할 때도 감사의 기도를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은혜를 청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 견진성사를 받을 분들과 베론 성지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신학당이 1855년?에 설립된 곳이기도 합니다. 한 100가구 정도의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고 마을을 둘러싼 산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골짜구니는 배 밑바닥 모양 같이? 생겼다 합니다. 이곳은 천주교의 박해 시절 때,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신앙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셨던 대단한 곳이기도 합니다.
대원군에 의한 병인박해시에 불란서 선교사 2명과 이곳의 천주교 신자들의 회장이었던 요셉님이 잡혀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었다 합니다. 이 불란서 선교사들은 포졸?에게 돈을 주고, 소위 뇌물을 주고 요셉회장은 풀어주도록 청하여 그렇게 약조를 받았다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선교사가 포승줄에 매어 끌려가다가 뒤를 돌아다 보았더니,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요셉님이 뒤에 딸아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 돈받고 요셉님을 풀어주기로 약조한 포졸에게 '아니, 이보시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왜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시오'하고 항의를 하였다 합니다. 그랬더니 포졸이 당황해 하며 하는 말인 즉 '나도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소, 저이더러 가라고 포승줄도 풀어주었건만 이리 따라오고 있으니,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소. 그러니 낸들 어찌하겠소'라 하였다 합니다. 결국, 요셉님도 두 선교사와 함께 순교를 당하셨다 하지요.
여러분, 어디서 이러한 정신이 나오는 것일까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이는 그 분이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identity가 철두철미하게 되
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세례를 통해서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해 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이 세상 것들, 지위, 명예, 재물 등에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아니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자신의 삶으로부터 밀어내고 자신의 삶을 견진성사를 통해서 성령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 참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살아가도록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이로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몸에서 베어나고, 바로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특히 견진성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총으로 주어지는 성령에 대해 다시 한번 알아보도록 하십시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 역사 속에서 알아보도록 하십시다.
구약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을 바람, 숨결, 하느님의 기운, 입김,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도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감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모든 생명을 살게 하는 기운이 성령이라고 합니다.
이번 여름에 태풍의 피해가 참으로 극심했지요. 태풍이 지나간 후에 저는 북한산의 백운대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커다란 나무들도 픽픽 쓰러져 있는 것이 참으로 비참하더군요. 정말, 그 바람의 힘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만큼 바람의 힘은 무서운 것이지요. 하물며 농경시대에는 이 비바람 침에 의해 한 해의 농사가 좌지우지 되었으니, 그 바람에 대한 경외감, 그 바람에 대한 불가사의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겠고 바람을 하느님의 기운으로? 느낄 수도 있었겠지요.
구약의 출애급기를 보십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로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서 인도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역사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어온 역사인 것입니다.
구약의 예제키엘서 11장 17절 이하를 보십시다. 성령이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으로서 돌로 된 마음을 빼내고 살로 된 마음을 집어 넣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화끈하게? 잘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례를 받고 나면 그리스도교인로서는 그렇게 살면 아니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고난에 처하면 살려주십시오 하고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지나가고 나면 잊어버리고, 그 때만 지나면 감사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기도도 하지 않고 살아가고 맙니다. 일이 잘 풀리면 자기가 잘해서 그런 줄 알고 그저,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습니다.
영세와 견진성사를 받음으로써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는 은총을 받게 되는 것은 참으로 얼마나 큰 은혜를 입는 것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예수님께 일어날 일, 그리고 일어난 일에 대해 쓰여진 구약이나 신약 양쪽의 글을 살펴 보십시다. 이들은 다 성령의 개입에 의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에 의해 마리아에게 수태 고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잉태되신 것은 성령의 개입에 의해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30 세가 되도록 나자렛 부모님 슬하에서 지내다가 마침내 자신의 identity를 찾아 나섭니다. 이 또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40일 기도를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도 중에 마귀의 유혹에서 예수님을 지키는 것 또한 성령의 힘이었습니다. 물론 이미 그 전에도 성령의 인도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예, 예수님의 삶 또한 죽 성령의 인도와 성령과 함께 한 삶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너희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서 인간의 삶 안에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의 인성과 내 안에 심어 주신 신성이 절묘하게 하나가 되게 됩니다. 이 어찌 신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이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신비한 일
이 아닙니까?
지금까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크리스찬 영성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진정한 크리스찬으로 살아 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Christian spirituality를 갖추어야 합니다. 즉 성령강림과 성령의 심화에 의해 변화가 오게 되고 이는 회개를 동반하게 됩니다. 이로써 영적인 자유, 내적 자유를 갖게 됩니다. 나를 자유롭게 해방시키게 됨으로써 바른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 기쁨으로 인하여 삶에 향기가 피어나게 되고 삶의 목적이 변경된 삶을 더 더욱 기쁘게 살아가게 됩니다.
토니 안토니에 의하면 크리스찬 영성이란 다음과 같이 비유로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예를 들어, 인도의 유명한 각자와 그의 제자가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합니다.
Q. 스승이시여 무엇이 the spitituality입니까 ?
A. 사람을 능히 안으로 바꾸어 놓을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느니라.
Q. 하지만 옛 스승들에 의해 세워진 전통적 방법을 따라 찾는다면 그 또한 영성이 아니온지요?
A. 그것이 네게 제 구실을 한다면, 가령 담요를 덮어서 너를 따뜻하게 할 수 있을 때 담요로서의 구실을 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더 이상 담요라고 말할 수 없듯이, 영성 또한 그러하니라(?)
바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면 아래의 내용으로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참된 크리스찬은 내적 변화 즉 inner transformation 이 있어야 합니다. 즉 안에서부터 바꾸어져서 새롭게 외부를 볼 수 있는 vision이 생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적 변화를 통해서 외부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만 합니다. 즉 New paradigm(by Thomas Kuhn)이 생겨야 합니다. 좋은 집을 갖추어 놓고 살고, 명예 등이 소중했던 생의 목표가 다른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나보다 덜 가진 사람들과 나보다 더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도와줌으로써 기쁨을 느끼는 변화가 와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더 윗자리에 있거나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보면 열등감이 생기게 되지요. 따라서 오히려 재산, 지위, 명예, 권력 등, 내가 더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라면 나누어 가져야 할 책임을 가진 것입니다.
나의 가치가 물질적, 세속적인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으로, 즉 시야와 안목을 바꾸어 놓을 수 있어야 됩니다. 바로 이것이 영성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십시다.
벗을 위해 목숨 버리는 것은 참으로 귀하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몸소 실천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뜻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돌아가셨습니다. 정신적 고통이 극심하면 실제 등에서 흐르는 땀에 피가 함께 섞여 나온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땀에 피가 같이 섞여서 흘리셨다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우선으로 하여 자기를 음해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도 다 용서하고 돌아가신 그 분의 가치관이 바로 우리의 가치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먼저 기도할 수 있고, 남의 성장을 우선 시 할 수 있고, 가정에서도 나보다 다른 가족을 먼저 고려하는 사람, 바로 그런 자유인인, 크리스찬이 많은 공동체에 활기찬 나아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러한 비젼을 보는 시야는 언제 생기는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체험을 얻기 위해서는 늘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봅시다
먼저, 새로운 Vision을 가지게 된 우리에게는 세상이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느껴지게 됩니다. 특히 자연 속에서는 신의 손길을 더욱 더 가까이 느끼게 되고 산에 가는 경우에 더욱 새롭게 느끼게 되면서 참으로 감사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동료들을 대할 때도 그들이 저희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귀한 자녀임을 느끼게 되고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내적 자유를 얻게 됩니다. 결국 물질에서 해방되어 앞서 말씀드렸던 우리 신앙의 선조이신 요셉님이 그러하셨듯이 죽음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세상 것들에 대한 애착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착까지도 다 편안히 털 수 있고 자신만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애착, 자신만을 내세우고 싶어하고 유능하게 들어나고 싶어하는 이런 것들에 대한 집착도 다 털어버릴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영세를 받고 견진성사의 은총을 입게 된 저희들은 Inner transformation에 의해서 진정한 새로운 비젼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 변화를 거쳐 하느님에 대한 끝없는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러한 믿음을 Mother Theresa님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분을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나시지요?
조그마한 체구에 소박한 옷차림 그리고 얼굴은 주름 투성이 이십니다. 그러나 그 분은 이러한 내적변화에 의한 믿음에 의해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전 세계를 뒤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바로 가난한 사람, 저희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귀한 자녀인 바로 그들을 위해 온 몸을 바쳐 삶을 살아가신 그 분이십니다. 그 분의 일을 계승하기 위해 인도로 오는 젊은 봉사자들이 전세계 여러나라로 부터 줄을 잇고 있습니다. 최근에 참으로 고무적인 현상은 우리 한국 젊은이들도 참여하는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봉사자들은 전혀 보조를 받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먹고, 자고 하는 비용을 다 자기가 마련하여 봉사에 참여하는데 참여자들은 한결같이 더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감사해 한다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Mother Theresa님에게 관련된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그 중에도 이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재정담당 수녀가 와서 어려운 얼굴로 이렇게 Mother Theresa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하지요.
'저희가 오늘도 식사를 챙겨야 할 식구가 9000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저희에게 남아있는 것이 지금 하나도 없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들으신 Mother Theresa은 한줌 주저함, 망설임이 없이 '염려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다 살펴서 알아서 해주실 것입니다'라고 편안히 답하시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식사를 나누어주어야 할? 9시 경에 웬 트럭이 오더니 트럭 가득히 빵을 가득 싣고 왔더라는 것이지요. 상황인 즉슨 그날이 갑작스럽게 정부에 의해 임시 공휴일이 되고 학교에 급식으로 보내는 빵을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게 되어 이를 Mother Theresa님께서는 사용처가 있으실 것 같아서 가져왔다...라고했다는 겁니다.
Mother Theresa님은 그 때 '이 날, 학교 문이 닫치게 된 것도, 다 하느님 뜻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저희를 돌려 보내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매사에 그렇게 자상한 분이십니다.'라고 편안히 말씀하셨다 합니다.
또 한 일화는 이렇습니다. 인도에는 너무나 병자가 많고 약이 많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한 결과 결국 국제구호기관에서 여러나라로 부터 남은 약들을 수집해서 제공받을 수 있도록 인도 정부가 허락을 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가 Mother Theresa님이 계신 곳을 방문하여 청을 드렸다 합니다. 그 사람은 그는 아들이 불치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는데 어떤 특별한 약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를 애타게 구하고 있음을 말씀을 드리고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그 약은 인도에서는 아직 판매가 허가가 나지 않은 약이었다 합니다. 그 때 어느 수녀님이 그 방에 들어오셔서 국제 구호기관에서 온 약 들에 대한 보고를 하느라 한 약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그 약바구니의 제일 위에 바로 그 인도에 없는 약이 놓여 있는 것을 그 남자의 눈에 번쩍 들어왔다고 합니다. Mother Theresa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날 아침에 그 약 바구니 위에 그 약을 놓아 주신 것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라고
이렇듯이 Mother Theresa님은 예수님의 음성을 내적으로 들으면서 믿음으로 일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필요할 때 하느님께서 알아서 주신다는 바로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그 많은 일 하면서 믿음을 전세계에 전파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크리스찬 영성 중 또 하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자신이, 바로 내가 하느님이 만들어 준 가장 멋진! 고귀한 작품이다...라는 사실입니다. 내 안에 이렇게 고귀한 것을 심어 주셨구나! 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고마움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라는 존재가 신의 걸작품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때로는 많은 고통과 많은 질곡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사도 바오로에 의한 고린도전서 5 장?에 말씀이 있듯이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고 살아가는 것이 저희의 몫이라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이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내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남이 가진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뺏고... 저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내 안에 있는 진짜 보석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토니 드뮬러? 신부와 어떤 늘 불평많고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하는 신자와의? 말씀을 잠시 되돌이켜 보고 싶습니다.
Q. 왜 저만 빼 놓고 주위의 다른 사람은 모두 행복합니까?
A. 도처에서 아름다움과 선함을 보기 때문이지요
Q. 왜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 제게는 보이지 않습니까?
A. 그대가 밖에 있는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기 안의 귀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각자 안에 있는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예수님의 모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웃 사랑은 바로 자기 자신의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에페소서 2장 8절? 말씀을 잠시 보겠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여러분이 구원을 믿고 구원을 받으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신의 선물이고 작품임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려면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영성을 갖게 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경험을 하여야 합니다.
바로 이 견진교리와 견진성사를 통해서 여러분은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더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세를 받았습니다. 또 견진성사를 받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준비를 합니까? 예수님을 닮아서 그 분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내가 견진성사를 받아서 하느님의 군사되어 이웃에 증거하고자 하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라서 되겠습니까?
이제 견진성사를 받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이미지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한번 돌아 보십시다. 그런 다음, 내 자신의 잘못을 자비롭게 용서하도록 하십시다. 그리하여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 또한 갖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생활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 우리 함께 생각해 봅시다. 돌아가신 지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부활의 열매를 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리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에는 하늘나라에서 군대가 나타나고 갑자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 오시고...이러한 환상을 가졌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예수님이 한 사람의 도둑과 다를 바 없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보았을 때 제자들의 실망이 그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길래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옛날 고향으로 돌아가,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고기잡이를 하게 된 것이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의 이 제자들의 태도 변화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들의 놀랍게 변화된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다락방 속에 숨어서 덜덜 떨고 있었던 바로 그 제자들이 그동안 예수님께 받았던 그 가르치심을 새롭게 이해하고, 재조명하게 되고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보십시오. 아무리 감옥에 잡아 넣고 또 잡아 넣어도 이젠 더 이상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지 않았습니까? 바로 완전한 내적 자유를 얻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로서 사도들은 그들의 믿음을, 예수님의 부활을 전세계에 증거하고 퍼뜨렸던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도 바로 그 영향을 받아서 그 부활의 열매가 제자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까지도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영세를 받았을 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생활을 하다가 삶을 계속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없어져 갑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 후 사랑하시는 제자들이시기에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나타나셔서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하늘 왕국에 대해 다시 가르치심이 필요했던 것처럼 저희들에게도 영세를 통해서 얻은 믿음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바로 또 다시 깊은 내적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견진성사의 은총이 필요한 것입니다.
루가 24장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대화를 통해서 복음의 참뜻을 말씀해 주십니다. 즉 제자들에게 필요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 인생 여정에도 우리가 필요할 때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크리스찬에게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그리하셨던 것처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여러 사람 형태로 닥아 오신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태로 나타난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복음의 참 뜻을 제대로 모르고 있을 때 예언자들 말씀과 모세의 말씀, 율법서의 말을 빌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인생과 삶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성서와 미사 그리고 친구와의 만남, 피정 등등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속 가르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 양식을 제공하시고 나서는 떠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떠나려 하실 때야 제자들이 알아보게 됩니다. 엠마오는 저도 가 보았는데 예루살렘에서 기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성지입니다. 이 곳에서 제자들은 빵 떼는 순간을 기억함으로써 그 때에사 겨우 예수님을 알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속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미사를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알게 하고 나누어 주시는 영적 양식을 받아 먹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깨닫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저희를 잠시 또 떠나가 계십니다. 필요할 때 함께 계셔 주시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떠나십니다. 이는 저희들의 영적 성장과 자유를 위해서 배려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독립적으로 성장을 해 나갈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바른 성장을 위해서는 독립심을 키워주어야 하고 바로 독립을 하여야 바른 성장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독립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를 보십시오. 마마 보이가 되고 말지 않습니까? 우리들에게도 심리적 독립이 필요한 것입니다제자들의 삶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셨던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저희들의 삶 속에서도 곳곳에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를 알 때 저희는 저희들의 삶의 여정에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됩니다. 바로 사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모래 위의 발자욱>에 대한 얘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어느 교인이 죽어서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 뵈었더니 예수님께서 늘 너와 함께 했었노라고 말씀을 하시자, 이 사람이 무슨 말씀을 하시냐고, 자기가 죽을 고비에 있었을 때 예수님이 도대체 어디에 계셨느냐고 항의를 했다지 않습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그의 인생 여정을 보여주는 바닷가 그림 한 폭을 건네 주셨다지요. 늘 그 교인이 예수님과 함께 걸어간 발자욱 네 개가 바닷가 모래 위에 죽 놓여 있는 그림 말입니다. 그런데 그 교인이 가장 힘들게 고민과 갈등을 가지고 죽음에 직면하였었다는 바로 그 때에는 놀랍게도 네 개의 발자욱이 있는 대신에 두 개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이거 보십시오. 바로 제가 당신이 가장 필요할 때 당신이 제 곁에 계시지 않았지 않습니까? 하고 소리를 쳤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아들아 그 두 개의 발자국을 자세히 보거라'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두 개의 발자욱국은 다른 발자욱들 보다 훨씬 모래 속에 깊게 패여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깊게 패여진 것은 네가 너의 인생 여정에서 삶의 질곡 속에서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바로 내가 너를 업고 걸어간 때문이니라' 하셨다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 삶의 여정에서 무엇이 두려울 것 있겠습니까?
이 두려움에 관련하여 <무사와 장님>에 대한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일본에서 칼을 가장 잘 쓰는? 달마누? 라는 제일의 무사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깊은 산 속에서 절벽 사이에 놓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 외나무 다리 아래로는 천길 계곡이 놓여 있었다 합니다. 그 일본 제일의 무사도 두려움이 느껴져 선뜻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바로 외나무 다리 건너편에
서 한 장님이 지팡이를 들고 겁도 안내고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그 외나무 다리를 건너 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이 세상 삶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예수님만 알고 길을 걸어가면 두려움이 없을 것을 너무나 쓸데 없는 것을 많이 알기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일 겁니다. 예수님 가시는 그 좋은 길을 따라, 그 아름다운 산 속에 놓인 그 다리를 편안한 마음으로 건너듯이 예수님만 믿고 건너가면 되는 것을...
저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 등산을 아주 좋아해서 가끔, 전문적으로 바위를 타는 것은 아니지만 ridge를 타는데? 종종 두려움에 바짝 긴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번은 야간에 등반을 하게 되었는데 헤드라이트를 머리에 달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낮에는 많이 떨리든 곳인데? 오히려 밤에 떨리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낮에는 골짜기에 이것 저것 다 보이게 되니까 그러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 길 가는데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면 됩니다. 무엇을, 왜 두려워 합니까?
이제 여러분들은 견진성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 만나기 위한 노력을 배가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서를 더욱 더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투신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바로 알기 위한 commitment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머리로, 생각만으로는 안됩니다. 꼭 성서를 읽어야만 합니다. 예수님 체험하시려면 성서를 읽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에게 성서읽기에 대한 한 일화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뉴욕에 살고 계시는 한 교포신자를 만났었지요. 그 분의 일화입니다. 그 분은 컴퓨터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비지니스가 잘되어 확장 일로에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망하게 되었는데...전 재산이 다 없어지고...방법이 없어서 죽으려고 약도 먹었으나 죽기는커녕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합니다. 그러다가 성서를 읽게 되었다지요. 그 분은 성경베끼기를 시작하였다고 말하더군요. 바로 그 사람은 인생을 포기하고자 했던 그 때 성경 필사를 시작하면서 그 성경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회생하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성경을 필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읽을 때와 베낄 때가 참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는데, 바로 이렇게 성심으로 성경을 읽는 행동을 통해서 참 하느님을 성경에서 만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견진성사를 받고 나면 첫째, 여러분들은 신약성서부터 다시 읽어나가도록 하십시오. 4 복음서를 읽어 나가십시오.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신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과 병자를 돕고 사셨던 그 분을 왜 닮고 싶은지 자신에게 확인하여 보십시요. 둘째로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전례 생활에 참여하십시오. 일요미사는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하지만 때로는 일미사도 참여하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중 2에? 영세를 받고 신앙의 불이 붙어 있었을 때라고 생각됩니다.그 때는 거의 6개월 동안이나 매일 새벽에 새벽미사에 참여하러 깜깜한 새벽길을 나섰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그 때 많은 은혜를 받았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바로 그로 인해 성소와 연결 된 것 은총을 받은 것 같습니다. 고백성사를 자주 하십시오. 고백성사는 화해의 성사입니다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본당 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봉사 활동도 성심으로 하십시오. 그리고 꾸준한 기도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두 차례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서에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기도서의 도움을 받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늘 내 뜻대로가 아니고 하느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여달라고 기도드리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질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꾸준히 기도해야만 크리스찬 영성이 성장을 합니다. 식사 전후의 기도도 잊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하십시오. 하루를 마칠 때는 무사히 하루가 지난 것에 대해 감사기도 드리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를 먹고 자라는 것 Christian spirituality입니다. Mother Theresa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침묵의 열매는 기도요
기도의 열매는 봉사요
봉사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저는 1983년 미국에서 부제 서품을 보스톤에서 받고 세인트루이스로 옮겨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부제품을 받으면서 하느님으로부터 큰 은총을 받았던 것에 대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당시 저는 유명한 골초였지요. 강의 사이에 담배를 피우는 것이 저의 낙이었으니까요. 미국에 오기 전에도 한국에서 김정택수사는 골초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지요. 물론 저도 고심도 많이 했고 수도 없이 담배를 끊어 보았으나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순절 때, 부제품을 받게 되는데 갑자기 강론 중에 갑자기 가슴을 탁 치는 듯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늘 말하면서 너 자신은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한 것이 없지 않느냐!'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재의 수요일 하루만'이라도 담배를 끊겠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저로서는 하루를 끊는다는것은 그 당시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목이 신선하고 시원하게 느껴진 것이었지요. 단 하루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수도 없이 실패한 일이라서 끊겠다고는 결코 말할 수가 없었기에 '하루만 더 연장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 하루, 하루가 가면서...매일 더도 말고 하루만...이...지나서...어느 사이 40일이 지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담배가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제가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서품을 받으면서 함께 받은 은총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나 수십 번씩 struggle을 하면서 끊고자 했으나 번번히 실패한 저...입니다. 하도 자주 맹세하고 실패했기에 다시는 맹세하지 않겠다. 담배 끊는 것을 포기한다. 뭐 처자식도 없는데 빨리 죽고 말지...라고 했던 제가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제 견진성사를 받게 되는데...어떤 은총받고 싶은지 하나 청하십시오. 특별한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여러분 견진성사 받고 나서 왜 저 사람은 저리도 기쁘게 살까?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를 빕니다. 이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바로 견진성사로부터크나큰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광송
강론자: 김정택신부님
장소: 서강대학교 이냐시오 성당
일시: 2002년 11월 10일 일요일 11:45-13:00
자, 여러분, 견진성사를 받고 나신 후 어떻게 살기를 바라십니까? 정말,새로워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쁨을 안고 살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이런 성사를 받게 되는 것은 단지 형식이 아닙니다. 참으로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 은총을 입으시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감사하게도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을 더욱 깊이, 해나가게 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 어찌...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바로 이 강론을 들으러 오시기 전에 주일 미사에 참여하시었고 그 미사 중, 파견(퇴장) 성가로서 청년성가 378번(가톨릭 성가 406번)을, <세상에 외치고 싶어>를 함께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잠시, 그 내용을 함께 되돌이켜 보십시다.
<세상에 외치고 싶어>
세상에 외치고 싶어 당신이 누구신지
세상에 외치고 싶어 깊고 크신 사랑
세상사람 다 알게 되리 왜 내가 늘 기쁜가
진정 그들은 놀라리라 내겐 두려움 없음을
세상에 외치고 싶어 당신이 누구신지
세상에 외치고 싶어 주의 크신 사랑
주의 크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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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준비가 되셨습니까? 예. 준비가 되셨습니다.예수님 당신이 누구신지...그 깊고 깊은 사랑을 내가 이제 알게 되었고 체험하고...정말, 당신을 닮고 싶어...그렇게 되고 싶어...라고 외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교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누군가 우리를 바라볼 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기쁘게 사는가, 궁금해 하게 되고, 아 알고 보니 저 사람 삶은...
바로 아...그랬구나...!
바로 그래서 그랬구나!
바로 저 사람은 크리스찬이구나!
하도록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견진성사는 이러한 모습이 되도록 힘을 받는 성사입니다. 세상에서 지위, 명예, 부의 많고 적음과 관련없이 예수님 모습 닮아가는 삶을 통해서 기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의 힘을 받는 성사인 것입니다.
잠시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그 기원은 성령강림절, 5순절?에 불효의 모양으로 성령이 내린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께서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때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알아 듣게 되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었던 것도 사도 바오로에게 성령이 임하심에에 의했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로부터 사도들도 성령을 받으시고? 사도들의 후계자에게도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로부터 특별히 견진성사를 통해서 성유 바름을 통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저희는 성령으로 무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교회에 내려주신 성령의 은총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성령과 구원을 받았는데 이제 또 다시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을 받아 이 기쁨을 더욱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이미 성령을 받았는데, 왜 견진성사를 통해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렇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성령의 선물을 이미 받았지만 아직 그 성령의 힘을 제대로 활성화 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너무 큰 선물을 받아서 우리의 능력으로는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신앙생활을 통해서 이 선물을 잘 활용할만한 자격도 생겼습니다. 또한 그동안 신앙생활을 잘 해옴으로 인해 더욱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갖추었고 또한 그에 합당한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제 이런 특별한 견진성사를 통해서 귀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고마움을 잘 알고, 바로 활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후 견진성사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군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해병대 출신입니다. 해병대에는 99가지의 기합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별기합이 다 있겠습니다. 하여간 해병대 훈련은 알아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받게되는 훈련은 전장에 투입되는 경우 바로 싸울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견진성사를 받기 위한 견진교리 강좌를 듣는 것 또한 이와 진배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장에서 진짜 싸울 수 있는 훈련인 견진교리를 듣고 견진성사를 받게 되면 여러분은 하느님의 군사로서 그 책임이 크게 됩니다.
스스로도 기도 생활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교인임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또한 당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끔 영세를 받은 사람들도 식당에서 성호 긋는 행위를 하는 것이 눈치가 보여서 잘못한다고 고백성사에서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괜히 난체하는 것 같아서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견진성사를 받고 나서까지도 그렇게 되서는 아니됩니다.
이는 크리스찬으로서 아이덴티티가 아직 정립이 안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타인들에게 자신이 크리스찬임을 자신있게 내어 보일 수 있는 사람,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서, 그리고 식사를 할 때도 감사의 기도를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은혜를 청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 견진성사를 받을 분들과 베론 성지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신학당이 1855년?에 설립된 곳이기도 합니다. 한 100가구 정도의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고 마을을 둘러싼 산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골짜구니는 배 밑바닥 모양 같이? 생겼다 합니다. 이곳은 천주교의 박해 시절 때,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신앙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셨던 대단한 곳이기도 합니다.
대원군에 의한 병인박해시에 불란서 선교사 2명과 이곳의 천주교 신자들의 회장이었던 요셉님이 잡혀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었다 합니다. 이 불란서 선교사들은 포졸?에게 돈을 주고, 소위 뇌물을 주고 요셉회장은 풀어주도록 청하여 그렇게 약조를 받았다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선교사가 포승줄에 매어 끌려가다가 뒤를 돌아다 보았더니,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요셉님이 뒤에 딸아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 돈받고 요셉님을 풀어주기로 약조한 포졸에게 '아니, 이보시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왜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시오'하고 항의를 하였다 합니다. 그랬더니 포졸이 당황해 하며 하는 말인 즉 '나도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소, 저이더러 가라고 포승줄도 풀어주었건만 이리 따라오고 있으니,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소. 그러니 낸들 어찌하겠소'라 하였다 합니다. 결국, 요셉님도 두 선교사와 함께 순교를 당하셨다 하지요.
여러분, 어디서 이러한 정신이 나오는 것일까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이는 그 분이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identity가 철두철미하게 되
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세례를 통해서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해 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이 세상 것들, 지위, 명예, 재물 등에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아니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자신의 삶으로부터 밀어내고 자신의 삶을 견진성사를 통해서 성령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 참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살아가도록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이로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몸에서 베어나고, 바로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특히 견진성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총으로 주어지는 성령에 대해 다시 한번 알아보도록 하십시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 역사 속에서 알아보도록 하십시다.
구약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을 바람, 숨결, 하느님의 기운, 입김,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도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감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모든 생명을 살게 하는 기운이 성령이라고 합니다.
이번 여름에 태풍의 피해가 참으로 극심했지요. 태풍이 지나간 후에 저는 북한산의 백운대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커다란 나무들도 픽픽 쓰러져 있는 것이 참으로 비참하더군요. 정말, 그 바람의 힘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만큼 바람의 힘은 무서운 것이지요. 하물며 농경시대에는 이 비바람 침에 의해 한 해의 농사가 좌지우지 되었으니, 그 바람에 대한 경외감, 그 바람에 대한 불가사의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겠고 바람을 하느님의 기운으로? 느낄 수도 있었겠지요.
구약의 출애급기를 보십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로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서 인도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역사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어온 역사인 것입니다.
구약의 예제키엘서 11장 17절 이하를 보십시다. 성령이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으로서 돌로 된 마음을 빼내고 살로 된 마음을 집어 넣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화끈하게? 잘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례를 받고 나면 그리스도교인로서는 그렇게 살면 아니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고난에 처하면 살려주십시오 하고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지나가고 나면 잊어버리고, 그 때만 지나면 감사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기도도 하지 않고 살아가고 맙니다. 일이 잘 풀리면 자기가 잘해서 그런 줄 알고 그저,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습니다.
영세와 견진성사를 받음으로써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는 은총을 받게 되는 것은 참으로 얼마나 큰 은혜를 입는 것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예수님께 일어날 일, 그리고 일어난 일에 대해 쓰여진 구약이나 신약 양쪽의 글을 살펴 보십시다. 이들은 다 성령의 개입에 의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에 의해 마리아에게 수태 고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잉태되신 것은 성령의 개입에 의해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30 세가 되도록 나자렛 부모님 슬하에서 지내다가 마침내 자신의 identity를 찾아 나섭니다. 이 또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40일 기도를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도 중에 마귀의 유혹에서 예수님을 지키는 것 또한 성령의 힘이었습니다. 물론 이미 그 전에도 성령의 인도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예, 예수님의 삶 또한 죽 성령의 인도와 성령과 함께 한 삶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너희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서 인간의 삶 안에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의 인성과 내 안에 심어 주신 신성이 절묘하게 하나가 되게 됩니다. 이 어찌 신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이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신비한 일
이 아닙니까?
지금까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크리스찬 영성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진정한 크리스찬으로 살아 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Christian spirituality를 갖추어야 합니다. 즉 성령강림과 성령의 심화에 의해 변화가 오게 되고 이는 회개를 동반하게 됩니다. 이로써 영적인 자유, 내적 자유를 갖게 됩니다. 나를 자유롭게 해방시키게 됨으로써 바른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 기쁨으로 인하여 삶에 향기가 피어나게 되고 삶의 목적이 변경된 삶을 더 더욱 기쁘게 살아가게 됩니다.
토니 안토니에 의하면 크리스찬 영성이란 다음과 같이 비유로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예를 들어, 인도의 유명한 각자와 그의 제자가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합니다.
Q. 스승이시여 무엇이 the spitituality입니까 ?
A. 사람을 능히 안으로 바꾸어 놓을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느니라.
Q. 하지만 옛 스승들에 의해 세워진 전통적 방법을 따라 찾는다면 그 또한 영성이 아니온지요?
A. 그것이 네게 제 구실을 한다면, 가령 담요를 덮어서 너를 따뜻하게 할 수 있을 때 담요로서의 구실을 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더 이상 담요라고 말할 수 없듯이, 영성 또한 그러하니라(?)
바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면 아래의 내용으로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참된 크리스찬은 내적 변화 즉 inner transformation 이 있어야 합니다. 즉 안에서부터 바꾸어져서 새롭게 외부를 볼 수 있는 vision이 생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적 변화를 통해서 외부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만 합니다. 즉 New paradigm(by Thomas Kuhn)이 생겨야 합니다. 좋은 집을 갖추어 놓고 살고, 명예 등이 소중했던 생의 목표가 다른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나보다 덜 가진 사람들과 나보다 더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도와줌으로써 기쁨을 느끼는 변화가 와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더 윗자리에 있거나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보면 열등감이 생기게 되지요. 따라서 오히려 재산, 지위, 명예, 권력 등, 내가 더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라면 나누어 가져야 할 책임을 가진 것입니다.
나의 가치가 물질적, 세속적인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으로, 즉 시야와 안목을 바꾸어 놓을 수 있어야 됩니다. 바로 이것이 영성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십시다.
벗을 위해 목숨 버리는 것은 참으로 귀하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몸소 실천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뜻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돌아가셨습니다. 정신적 고통이 극심하면 실제 등에서 흐르는 땀에 피가 함께 섞여 나온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땀에 피가 같이 섞여서 흘리셨다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우선으로 하여 자기를 음해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도 다 용서하고 돌아가신 그 분의 가치관이 바로 우리의 가치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먼저 기도할 수 있고, 남의 성장을 우선 시 할 수 있고, 가정에서도 나보다 다른 가족을 먼저 고려하는 사람, 바로 그런 자유인인, 크리스찬이 많은 공동체에 활기찬 나아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러한 비젼을 보는 시야는 언제 생기는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체험을 얻기 위해서는 늘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봅시다
먼저, 새로운 Vision을 가지게 된 우리에게는 세상이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느껴지게 됩니다. 특히 자연 속에서는 신의 손길을 더욱 더 가까이 느끼게 되고 산에 가는 경우에 더욱 새롭게 느끼게 되면서 참으로 감사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동료들을 대할 때도 그들이 저희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귀한 자녀임을 느끼게 되고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내적 자유를 얻게 됩니다. 결국 물질에서 해방되어 앞서 말씀드렸던 우리 신앙의 선조이신 요셉님이 그러하셨듯이 죽음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세상 것들에 대한 애착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착까지도 다 편안히 털 수 있고 자신만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애착, 자신만을 내세우고 싶어하고 유능하게 들어나고 싶어하는 이런 것들에 대한 집착도 다 털어버릴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영세를 받고 견진성사의 은총을 입게 된 저희들은 Inner transformation에 의해서 진정한 새로운 비젼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 변화를 거쳐 하느님에 대한 끝없는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러한 믿음을 Mother Theresa님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분을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나시지요?
조그마한 체구에 소박한 옷차림 그리고 얼굴은 주름 투성이 이십니다. 그러나 그 분은 이러한 내적변화에 의한 믿음에 의해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전 세계를 뒤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바로 가난한 사람, 저희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귀한 자녀인 바로 그들을 위해 온 몸을 바쳐 삶을 살아가신 그 분이십니다. 그 분의 일을 계승하기 위해 인도로 오는 젊은 봉사자들이 전세계 여러나라로 부터 줄을 잇고 있습니다. 최근에 참으로 고무적인 현상은 우리 한국 젊은이들도 참여하는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봉사자들은 전혀 보조를 받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먹고, 자고 하는 비용을 다 자기가 마련하여 봉사에 참여하는데 참여자들은 한결같이 더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감사해 한다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Mother Theresa님에게 관련된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그 중에도 이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재정담당 수녀가 와서 어려운 얼굴로 이렇게 Mother Theresa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하지요.
'저희가 오늘도 식사를 챙겨야 할 식구가 9000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저희에게 남아있는 것이 지금 하나도 없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들으신 Mother Theresa은 한줌 주저함, 망설임이 없이 '염려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다 살펴서 알아서 해주실 것입니다'라고 편안히 답하시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식사를 나누어주어야 할? 9시 경에 웬 트럭이 오더니 트럭 가득히 빵을 가득 싣고 왔더라는 것이지요. 상황인 즉슨 그날이 갑작스럽게 정부에 의해 임시 공휴일이 되고 학교에 급식으로 보내는 빵을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게 되어 이를 Mother Theresa님께서는 사용처가 있으실 것 같아서 가져왔다...라고했다는 겁니다.
Mother Theresa님은 그 때 '이 날, 학교 문이 닫치게 된 것도, 다 하느님 뜻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저희를 돌려 보내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매사에 그렇게 자상한 분이십니다.'라고 편안히 말씀하셨다 합니다.
또 한 일화는 이렇습니다. 인도에는 너무나 병자가 많고 약이 많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한 결과 결국 국제구호기관에서 여러나라로 부터 남은 약들을 수집해서 제공받을 수 있도록 인도 정부가 허락을 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가 Mother Theresa님이 계신 곳을 방문하여 청을 드렸다 합니다. 그 사람은 그는 아들이 불치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는데 어떤 특별한 약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를 애타게 구하고 있음을 말씀을 드리고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그 약은 인도에서는 아직 판매가 허가가 나지 않은 약이었다 합니다. 그 때 어느 수녀님이 그 방에 들어오셔서 국제 구호기관에서 온 약 들에 대한 보고를 하느라 한 약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그 약바구니의 제일 위에 바로 그 인도에 없는 약이 놓여 있는 것을 그 남자의 눈에 번쩍 들어왔다고 합니다. Mother Theresa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날 아침에 그 약 바구니 위에 그 약을 놓아 주신 것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라고
이렇듯이 Mother Theresa님은 예수님의 음성을 내적으로 들으면서 믿음으로 일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필요할 때 하느님께서 알아서 주신다는 바로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그 많은 일 하면서 믿음을 전세계에 전파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크리스찬 영성 중 또 하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자신이, 바로 내가 하느님이 만들어 준 가장 멋진! 고귀한 작품이다...라는 사실입니다. 내 안에 이렇게 고귀한 것을 심어 주셨구나! 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고마움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라는 존재가 신의 걸작품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때로는 많은 고통과 많은 질곡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사도 바오로에 의한 고린도전서 5 장?에 말씀이 있듯이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고 살아가는 것이 저희의 몫이라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이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내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남이 가진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뺏고... 저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내 안에 있는 진짜 보석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토니 드뮬러? 신부와 어떤 늘 불평많고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하는 신자와의? 말씀을 잠시 되돌이켜 보고 싶습니다.
Q. 왜 저만 빼 놓고 주위의 다른 사람은 모두 행복합니까?
A. 도처에서 아름다움과 선함을 보기 때문이지요
Q. 왜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 제게는 보이지 않습니까?
A. 그대가 밖에 있는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기 안의 귀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각자 안에 있는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예수님의 모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웃 사랑은 바로 자기 자신의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에페소서 2장 8절? 말씀을 잠시 보겠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여러분이 구원을 믿고 구원을 받으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신의 선물이고 작품임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려면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영성을 갖게 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경험을 하여야 합니다.
바로 이 견진교리와 견진성사를 통해서 여러분은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더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세를 받았습니다. 또 견진성사를 받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준비를 합니까? 예수님을 닮아서 그 분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내가 견진성사를 받아서 하느님의 군사되어 이웃에 증거하고자 하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라서 되겠습니까?
이제 견진성사를 받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이미지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한번 돌아 보십시다. 그런 다음, 내 자신의 잘못을 자비롭게 용서하도록 하십시다. 그리하여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 또한 갖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생활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 우리 함께 생각해 봅시다. 돌아가신 지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부활의 열매를 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리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에는 하늘나라에서 군대가 나타나고 갑자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 오시고...이러한 환상을 가졌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예수님이 한 사람의 도둑과 다를 바 없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보았을 때 제자들의 실망이 그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길래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옛날 고향으로 돌아가,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고기잡이를 하게 된 것이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의 이 제자들의 태도 변화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들의 놀랍게 변화된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다락방 속에 숨어서 덜덜 떨고 있었던 바로 그 제자들이 그동안 예수님께 받았던 그 가르치심을 새롭게 이해하고, 재조명하게 되고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보십시오. 아무리 감옥에 잡아 넣고 또 잡아 넣어도 이젠 더 이상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지 않았습니까? 바로 완전한 내적 자유를 얻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로서 사도들은 그들의 믿음을, 예수님의 부활을 전세계에 증거하고 퍼뜨렸던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도 바로 그 영향을 받아서 그 부활의 열매가 제자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까지도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영세를 받았을 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생활을 하다가 삶을 계속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없어져 갑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 후 사랑하시는 제자들이시기에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나타나셔서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하늘 왕국에 대해 다시 가르치심이 필요했던 것처럼 저희들에게도 영세를 통해서 얻은 믿음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바로 또 다시 깊은 내적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견진성사의 은총이 필요한 것입니다.
루가 24장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대화를 통해서 복음의 참뜻을 말씀해 주십니다. 즉 제자들에게 필요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 인생 여정에도 우리가 필요할 때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크리스찬에게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그리하셨던 것처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여러 사람 형태로 닥아 오신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태로 나타난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복음의 참 뜻을 제대로 모르고 있을 때 예언자들 말씀과 모세의 말씀, 율법서의 말을 빌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인생과 삶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성서와 미사 그리고 친구와의 만남, 피정 등등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속 가르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 양식을 제공하시고 나서는 떠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떠나려 하실 때야 제자들이 알아보게 됩니다. 엠마오는 저도 가 보았는데 예루살렘에서 기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성지입니다. 이 곳에서 제자들은 빵 떼는 순간을 기억함으로써 그 때에사 겨우 예수님을 알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속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미사를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알게 하고 나누어 주시는 영적 양식을 받아 먹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깨닫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저희를 잠시 또 떠나가 계십니다. 필요할 때 함께 계셔 주시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떠나십니다. 이는 저희들의 영적 성장과 자유를 위해서 배려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독립적으로 성장을 해 나갈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바른 성장을 위해서는 독립심을 키워주어야 하고 바로 독립을 하여야 바른 성장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독립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를 보십시오. 마마 보이가 되고 말지 않습니까? 우리들에게도 심리적 독립이 필요한 것입니다제자들의 삶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셨던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저희들의 삶 속에서도 곳곳에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를 알 때 저희는 저희들의 삶의 여정에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됩니다. 바로 사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모래 위의 발자욱>에 대한 얘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어느 교인이 죽어서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 뵈었더니 예수님께서 늘 너와 함께 했었노라고 말씀을 하시자, 이 사람이 무슨 말씀을 하시냐고, 자기가 죽을 고비에 있었을 때 예수님이 도대체 어디에 계셨느냐고 항의를 했다지 않습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그의 인생 여정을 보여주는 바닷가 그림 한 폭을 건네 주셨다지요. 늘 그 교인이 예수님과 함께 걸어간 발자욱 네 개가 바닷가 모래 위에 죽 놓여 있는 그림 말입니다. 그런데 그 교인이 가장 힘들게 고민과 갈등을 가지고 죽음에 직면하였었다는 바로 그 때에는 놀랍게도 네 개의 발자욱이 있는 대신에 두 개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이거 보십시오. 바로 제가 당신이 가장 필요할 때 당신이 제 곁에 계시지 않았지 않습니까? 하고 소리를 쳤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아들아 그 두 개의 발자국을 자세히 보거라'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두 개의 발자욱국은 다른 발자욱들 보다 훨씬 모래 속에 깊게 패여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깊게 패여진 것은 네가 너의 인생 여정에서 삶의 질곡 속에서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바로 내가 너를 업고 걸어간 때문이니라' 하셨다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 삶의 여정에서 무엇이 두려울 것 있겠습니까?
이 두려움에 관련하여 <무사와 장님>에 대한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일본에서 칼을 가장 잘 쓰는? 달마누? 라는 제일의 무사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깊은 산 속에서 절벽 사이에 놓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 외나무 다리 아래로는 천길 계곡이 놓여 있었다 합니다. 그 일본 제일의 무사도 두려움이 느껴져 선뜻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바로 외나무 다리 건너편에
서 한 장님이 지팡이를 들고 겁도 안내고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그 외나무 다리를 건너 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이 세상 삶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예수님만 알고 길을 걸어가면 두려움이 없을 것을 너무나 쓸데 없는 것을 많이 알기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일 겁니다. 예수님 가시는 그 좋은 길을 따라, 그 아름다운 산 속에 놓인 그 다리를 편안한 마음으로 건너듯이 예수님만 믿고 건너가면 되는 것을...
저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 등산을 아주 좋아해서 가끔, 전문적으로 바위를 타는 것은 아니지만 ridge를 타는데? 종종 두려움에 바짝 긴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번은 야간에 등반을 하게 되었는데 헤드라이트를 머리에 달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낮에는 많이 떨리든 곳인데? 오히려 밤에 떨리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낮에는 골짜기에 이것 저것 다 보이게 되니까 그러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 길 가는데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면 됩니다. 무엇을, 왜 두려워 합니까?
이제 여러분들은 견진성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 만나기 위한 노력을 배가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서를 더욱 더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투신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바로 알기 위한 commitment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머리로, 생각만으로는 안됩니다. 꼭 성서를 읽어야만 합니다. 예수님 체험하시려면 성서를 읽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에게 성서읽기에 대한 한 일화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뉴욕에 살고 계시는 한 교포신자를 만났었지요. 그 분의 일화입니다. 그 분은 컴퓨터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비지니스가 잘되어 확장 일로에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망하게 되었는데...전 재산이 다 없어지고...방법이 없어서 죽으려고 약도 먹었으나 죽기는커녕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합니다. 그러다가 성서를 읽게 되었다지요. 그 분은 성경베끼기를 시작하였다고 말하더군요. 바로 그 사람은 인생을 포기하고자 했던 그 때 성경 필사를 시작하면서 그 성경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회생하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성경을 필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읽을 때와 베낄 때가 참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는데, 바로 이렇게 성심으로 성경을 읽는 행동을 통해서 참 하느님을 성경에서 만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견진성사를 받고 나면 첫째, 여러분들은 신약성서부터 다시 읽어나가도록 하십시오. 4 복음서를 읽어 나가십시오.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신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과 병자를 돕고 사셨던 그 분을 왜 닮고 싶은지 자신에게 확인하여 보십시요. 둘째로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전례 생활에 참여하십시오. 일요미사는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하지만 때로는 일미사도 참여하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중 2에? 영세를 받고 신앙의 불이 붙어 있었을 때라고 생각됩니다.그 때는 거의 6개월 동안이나 매일 새벽에 새벽미사에 참여하러 깜깜한 새벽길을 나섰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그 때 많은 은혜를 받았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바로 그로 인해 성소와 연결 된 것 은총을 받은 것 같습니다. 고백성사를 자주 하십시오. 고백성사는 화해의 성사입니다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본당 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봉사 활동도 성심으로 하십시오. 그리고 꾸준한 기도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두 차례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서에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기도서의 도움을 받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늘 내 뜻대로가 아니고 하느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여달라고 기도드리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질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꾸준히 기도해야만 크리스찬 영성이 성장을 합니다. 식사 전후의 기도도 잊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하십시오. 하루를 마칠 때는 무사히 하루가 지난 것에 대해 감사기도 드리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를 먹고 자라는 것 Christian spirituality입니다. Mother Theresa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침묵의 열매는 기도요
기도의 열매는 봉사요
봉사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저는 1983년 미국에서 부제 서품을 보스톤에서 받고 세인트루이스로 옮겨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부제품을 받으면서 하느님으로부터 큰 은총을 받았던 것에 대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당시 저는 유명한 골초였지요. 강의 사이에 담배를 피우는 것이 저의 낙이었으니까요. 미국에 오기 전에도 한국에서 김정택수사는 골초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지요. 물론 저도 고심도 많이 했고 수도 없이 담배를 끊어 보았으나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순절 때, 부제품을 받게 되는데 갑자기 강론 중에 갑자기 가슴을 탁 치는 듯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늘 말하면서 너 자신은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한 것이 없지 않느냐!'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재의 수요일 하루만'이라도 담배를 끊겠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저로서는 하루를 끊는다는것은 그 당시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목이 신선하고 시원하게 느껴진 것이었지요. 단 하루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수도 없이 실패한 일이라서 끊겠다고는 결코 말할 수가 없었기에 '하루만 더 연장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 하루, 하루가 가면서...매일 더도 말고 하루만...이...지나서...어느 사이 40일이 지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담배가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제가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서품을 받으면서 함께 받은 은총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나 수십 번씩 struggle을 하면서 끊고자 했으나 번번히 실패한 저...입니다. 하도 자주 맹세하고 실패했기에 다시는 맹세하지 않겠다. 담배 끊는 것을 포기한다. 뭐 처자식도 없는데 빨리 죽고 말지...라고 했던 제가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제 견진성사를 받게 되는데...어떤 은총받고 싶은지 하나 청하십시오. 특별한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여러분 견진성사 받고 나서 왜 저 사람은 저리도 기쁘게 살까?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를 빕니다. 이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바로 견진성사로부터크나큰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광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