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앙 성장에 있어서 첫 번째 원리 1. 심령이 가난한자의 복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마음이 가난하다. 신앙생활은 마음에 있다. 보통 외적인 것에 기준을 둔다. 예수님의 신앙의 기준이 외적인 면에 있었을까? 예수님의 메세지의 99%는 내면적인 것이다. 마음도 가난하고 물질적으로도 청빈한 삶이 그리스도인으로 바람직하다. 마음이 가난하면 정말 편안하다. 무애 무소유 정신 편안하다. 마 4:23-25, 마 9:35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니 ⇒ 예수님의 3대 사역 <말씀 연구> 1. 가난한 자 : 예수님의 사역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가난'이란 원어 적으로 상대적인 가난이 아닌 절대 빈곤(최저 생계비 이하)상태이다. 5장 - 9장은 3대 사역 10장 이하는 더 세밀하게 묘사 가, 가난이란? '가난'의 상태를 빨리 깨달을수록 빨리 복음 받아들임 - 정말 사소한 것 때문에 천국을 빼앗긴다 (사소한 자존심, 작은 인간적 갈등, 콩나물 500원 때문에... - 빼앗겨져 있는 상태가 '가난한 자'이다. 가장 가련한 사람은 천국을 빼앗긴 자이다. 심령이 욕심으로 차 있으면 천국을 잃어버린다. 예수님의 사역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가난이란 원어 적으로 절대빈곤의 상태이다. 영적으로 아주 빈곤한 상태이다. 예수님은 영적 빈곤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심령이 가난한 상태란? 눅 5:1-10 ;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상태 시몬의 배에 올라 오셔서 시몬더러 육지에서 배를 조금 띄우라고 청하셨다. 시몬은 배를 저으며 배 안에서 예수님 말씀을 듣게 된다. 시몬의 말씀을 듣는 중에 믿음이 생겨서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는 데에 순종할 수 있었다. 또 4:38-39에 보면 이전에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다. 안드레의 소개로 예수님 만났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낚는 게 목적이지 고기를 많이 낚는 게 목적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과 동업하려고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하였다. 저 바다 속도 아는 주님, 내 속도 아실 터. 자기의 부족(영적으로 피폐되어 있고 가난한 상태)을 스스로 충분히 깨닫는 사람(느끼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시몬은 바다의 물고기도 아시는 주님이신데, 내 마음 속도 다 아실 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하고 고백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는 고백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마음이다. 자기의 부족함과 죄인 됨을 통절하게 깨닫고 돌이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이다. 목사나 장로가 되었다해도 자신의 심령이 가난한 자의 심령임을 깨달아야 진짜다. 당시 제자들은 북부 갈릴리 계통 사람들이다. 천한 계층, 그들은 겸손했고 심령이 가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유대 땅 지식인 계층은 없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감하지 말고 봐야. 나. 눅 4:18, 19의 말씀 구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려 하셨던 사람들을 살펴보자 <눅 4:18-19>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기름부음'이 가르치시고, 즉 성령이 가르치시고 (요 14:26) <요 14:26> "보혜사 곡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포로 된 자 ⇒ 자유" "내가 진리로 너를 자유케 하리라" 성경 적인 것 cf 관습적인 것, 여기서 오류는 관습에 매었지 말씀에 매인 게 아닌 것이 문제가. (관습적인 신앙과 성경 적 신앙) 율법(바리세인과 서기관), 전통 관습(천주교도), 자녀, 물질, 명예 등에 포로 된 자 히12:1, 나를 포로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눈멀었다고 볼 수 있는 사례 눌린 자의 상태. 무엇에 주려 눌려 있는지. 나의 가난도(度) 측정해보기 예를 들어, 술의 문제가 성경 적이냐 관습적이냐" 이는 우리 역사의 배경에서 유래한다. 국채보상 운동에서 금주령 내리므로 해서 교회에서 관습화되었다. 이로 인해 복음 전파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주일 성수"의 문제 : 평일과 안식일이 모두 같다는 개념이 싹트고 로마인은 일요일(태양신의 날)에 쉬었다. 주일은 거룩한 날, 평일은 속된 날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관습의 허점에 매인 경우이다. 6일의 산 예배(삶의 제사)를 잘 드려야 하루 예배도 잘 드리는 것이다. 율법에 매여서 하는 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마음에 우러나서 해야 한다. 구약은 신약을 조명해 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롬 14: 5-6> "혹은 이 날은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포로 된 자, 사람들은 대개 어떤 것에 포로 되어 사는가? 영적 포로(귀신 들린 자), 물질, 사상(주의 잘못된), 사람(남편, 자식), 권위, 명예(목사님의 총회, 나이 들어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일, 또 자존심(무게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것이 나를 가장 무겁게 한다. 설교 들으면서 자존심 세우는 자, 자아가 살아 있는 자, 갈 2:20을 외워라,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책망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기심(자기를 위하는 마음 "나를 좇으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할 수 있으면 신앙이 거의 완성 ,개인의 이기심도 있지만 집단 , 내 교회, 내 가정에 대한 이기심도 있다. 정과 욕심은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나로부터 자유로워와야 한다. 유대인 가족을 가스실로 보내는 장교가 자기 가족은 끔찍이 사랑하는 내용의 영화, '나' 중심의 문제. 한국교회는 '내 교회의식'이 너무 강하다. 집단이기심, 교파주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교회를 다니는가 인간적인 자기 중심적인 리로 교회 다니고 있는가. 인간의 이기심의 무서움을 경계하라. "모든 무거운 것(마음의 고통에 눌려 있는 상태, 얽매이기 쉬운 것(형식적인 것, 습관적인 것)을 벗어버려라"고 히브리서에서 말한다. 창피를 주고, 목욕을 주어도 "아멘"할 수 있는, 책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되어야 한다. ) 질투심 : 사울 왕의 질투심, '다윗은 만만이요 사울은 천천이다" 여자의 질투심, 남자의 질투심, 교회에 중책이 되면 질투심 경계해야. 사랑, 인정 가까이 가려는 질투. 질투에 포로 되어 버리면 치졸, 야비, 유치해져 버리지만 그 당시는 그것을 모른다. 옹졸. 오해 질투 때문에 교회가 풍지박산 난 경우도 있다. 경쟁은 선의의 경쟁도 하지 마라. 서로 협력해야지. 비교하지 말고 내일만 잘해야. 질투는 하나님의 덕이 되지 않는다. 자존심, 이기심, 질투심은 사람을 포로 되게 하는 기본이다. 명예에 포로 된 자 : 목회자들 '선거 감시인 단'으로 나선다(?0 장로 되면 몇 천만 원 내는 관례, 명예직이 아니라 사역직 이어야. 물질주의에 포로 된 교회 대형주의에 포로 된 교회 (결과로서 대형화는 좋으나 대형주의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수직이동이 되어야 하는데 수평이동이 되는 현실이다. 부흥이냐 비대화냐. 비교 complex이다. 인생의 고통은 비교에서 비롯된다. 자존감, 자기애 없이 열등감 저열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산다. <눅 5:1-11의 묵상> 호숫가에 서서 말씀을 하실 때 시몬은 예수님 가까이 있었음에도 말씀을 안 듣고 그물만 씻고 있었다. 밤새 허탕 친 그물이었다. 예수님은 짐짓 일부러 시몬에게 다가가 그 시몬의 배를 띄우게 하고 그 위에 서서 무리를 향해 말씀을 하셨다. 그럼에도 시몬은 그물만 만지작거리며 말씀을 듣지 않았다. 예수님은 말씀을 다 마치고 시몬에게 다가가 말씀을 하셨다. 시몬은 이제껏 예수님의 말씀을 안 들은 게 미안하기도 해서 권위에 순종해서 말씀대로 한다. 만약 시몬이 그때까지도 불순종했다면 시몬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못 갔을지도 모른다. 바다의 물고기도 아시는 주님이신 데 내 마음 속은 더 훤히 아시리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하고 고백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자기의 부족함과 죄인 됨을 통절하게 깨닫고 돌이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2. '눈먼 자'에 대하여 - '영적인 소경' 봐야 될 것을 보지 못하는 자, "위엣 것을 찾으라"(골) 그러나 아랫것(땅의 것)만 보는 자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경우 영적인 것에 어두워서 내 중심적으로 바라보니까 내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쪽으로 성경을 보자. 성경이 도구화되면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예수님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시는가 내 시각으로 읽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읽어야 하나님의 뜻을 배운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쓴 편지이므로 쓴 사람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심정, 하나님의 뜻으로 읽어야 한다. - 히11장(믿음의 장) 하나님의 뜻이 아닌 현실(땅)에서 땅을 위해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을 믿음으로 본다는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휘장을 넘어서 영원한 나라로 들어간다는 소망, 그 영원한 나라를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믿음이다. 10장 말미에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8, 13, 14, 16, 38, 39, 40절에 근거해 보면 믿음의 내용을 알 수 있다) 구약 적인 믿음, 영원한 나라를 바라는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위엣 것을 찾는 믿음으로 땅엣 것을 찾는 믿음으로 보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이다. 위엣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낫 놓고 'ㄱ'자 모른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지 않는 문제. 인간적인 생각에 빠지면 하나님 생각 모른다. 하나님께 안테나를 맞춰야 한다. 성경을 놓고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뜻 모르면 소경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보아야 한다. 사람의 상황에 맞춰 말씀을 바꿔 설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화하면 변질된다. 본문 한 절 놓고 엉뚱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고 나를 위로하는, 내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화는 배제해야. 주술적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땅엣 것 때문에 위엣 것 바라보지 못하는 것, 땅엣 것에 메어있으면 위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성령님께서 하실 일이 있도록 하는 것이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3. '눌린 자'에 대하여 상황 두려움 근심에 눌린 자이다. 압박감, 중압감 걱정 염려에 쌓인 자이다. 영이 눌리니까 질식한다. 병이 된다. 정신 육신 영혼이 서로 상관관계에 있다(의학적) 요즘 교인들은 눌린 게 많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는 말씀에 위배된다. 봉사의 짐, 사명감당의 짐, 교회의 집에 눌린 사람도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중요시하는 것. 내 욕심으로 하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하느냐는 다르다. 사랑하면서 하는 일은 절대 짐이 되지 않는다. * 가난한 자란 결국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사 61:1-2> "주 영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the broken hearted)를 고치며 포로 된 자(the captives)에게 자유를, 갇힌 자(those who are bound)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the day of vengeance)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one who mourn)를 위로하되" <사 42: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 결국 '가난한 자'란 , 1. 마음이 상한 자, 2. 포로 된 자, 3. 갇힌 자, 4. 슬픈 자, 5. 영적 소경, 6. 상황 내면에 갇힌 자, 7. 흑암에 처한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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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성장의 첫번째 원리
2008. 7. 28. 오전 1: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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