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의미 - 장석홍신부님

2008. 8. 4. 오후 8:42:44

글자
언제: 2003년 2월 23일
어디서:서강대학교 이냐시오 성당
강론:장석홍신부님

(하기 내용은 게재자가 신부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강론내용을 적어 올린 바, 내용에 오류가 있는 경우는 게재자의 책임임을 밝혀 드리며, 또한 신부님이 전달코자 하였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는 경우 양해를 바라면, 오류가 심한 경우에는 지적해 주시면 수정을 할 것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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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면서, 저도 한 때 대구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 사람이어서 그 중앙로 역사가 뇌리에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 미사를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을 위해 바치면서 다시 한번 사람의 삶에 대해서...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삶, 진정 저희들은 이 삶을 정말 어느 순간에 떠나게 될지....알 수 없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게 됩니다.

저희들 손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이 삶, 저희의 힘에 의하지 않고 이렇듯 하루 하루가 펼쳐나가지는 이 삶 그 자체가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한편,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우리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우리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특히, 우리들의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 주님은, 아니 우리들에게, 우리 주님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들 삶에서 어떤 몫을 담당하고 있는지, 아니 구체적으로 저의 삶에서 저의 주님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는지, 아니, 저는 주님께 어떤 자리를 내어드렸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서, 매일의 생활에서 주님께 여러분 마음의 한 부분을 맡기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지요! 물론 계시겠지요! 그렇겠지요!

한편, 많은 신자들의 경우에 주님을 이렇게 주일 미사에 와서 겨우 모시는 것, 뵙는 것은, 우리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볼 때를 대비한 의무방어전이라고 생각하여 오는 것일지도, 그래서 오늘 것일 뿐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느냐구요?

우리 삶에서,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매일 매일 만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주변을 보면, 신자들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 자리, 권력, 그리고 자녀들 걱정만이 갈수록 태산같이 늘어나기만 하는 것 같이 생각되어 그 걱정에 싸여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을 봅니다. 일 자리 걱정, 돈 걱정, 그저 걱정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저 돈!돈!돈! 걱정 속에서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염려되어 한마디 드리면 대답이 그렇습디다. 도대체 돈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현실은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십디다. 그런데 여러분들께 제가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한테 언제 당신을 완전히, 온전히, 우리자신을 온전히 맡겨 본 적이 있으시냐구요? 그렇게 한 번 온전히 맡겨 보신 다음에도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건지, 저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걱정 속에서 살다보니, 가정 안에서도 서로 사랑을 나누고 살기 보다는, 심한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가정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 내에서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돈이나, 자리나...이것들이 모두 여러분들의 생활에 먼저,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니, 결국, 여러분들의 삶에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 있게 됩니다. 바로 삶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 우리 삶 안에 계시는지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우리 삶 안에서, 주님의 자리에 놓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남과 비교해서 더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잘났느냐, 라는 것을 비교해 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즉, 이런 생각 안에 갇혀서 나날을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 생활에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을 우리는 바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처럼 생각하고 멀리 멀리 놓아두고 살고 있으니 저희 삶에 기쁨이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자, 여러분, 저는 물론이고, 우리 얼굴을 한번 거울에서 바라봅시다. 거울에서 얼굴을 바라보면, 여러분 얼굴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보입니까? 얼굴에 흐릿하게나마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보입니까?

저는 아주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고해성사를 하면서, 대부분의 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면,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많이 받은 사람인 줄 알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면, 현재는 너무나 세상 살아가는데 걱정거리가 많아서 하느
님의 은총이 함께 하고 있는지...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현재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다. 내가 주님을 오늘 내 생활의 주인으로 두지 않고 있는데, 주인으로 모시고 있지 않는데, 어떻게 주님께서 저희 생활에 주인역할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신자로서 우리의 몫이 무엇입니까? 우리 삶에 주님 자리를 만드는 것, 만들어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내 얼굴에 먹구름이 끼어 있기도 하고, 화창한 봄날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어찌 우리들의 얼굴에 어두움이 자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정말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해 봅시다. 이제 성체를 영하시게 되실텐데, 여러분은 어떤 청을 드리실 것입니까? 성체를 영하면서 기쁨을 느끼십니까? 참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쁨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성당 문 밖으로만 나가버리면, 세상사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냥, 미사가 끝나면 이 성당 안에 주님을 그대로 팽개쳐 놓고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누구이신지 모르고, 어쩌면 세례 받은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세례를 왜 받았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 주인으로 받아 들이고 그분을 따라 그분처럼 살겠다고 맹세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우리 주변을 돌아 보십시다. 어떤 경우, 30년 이상을 한 직장에 다녀도, 그가 천주교 신자인지 알지도 못하고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합니다. 영세명은 물론 부르지도 않고, 더욱이 식사할 때, 성호경을 긋지도 아니하니...직장 내에서 그가 가톨릭신자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결국,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드러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신자가 아닌 것처럼 은둔생활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성체를 영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결심은, 우리 생활 안에 주님을 모심으로써, 늘 모심으로써, 주님이 우리 삶 안에 계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늘 기쁨 가운데 있다는 것, 그리스도께 우리 삶에서 그분의 자리를 내어드리겠다는 <영세>때의 맹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그리고 가톨릭 신자로서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입장이 늘 희생해야한다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내 삶, 그래서 희생의 삶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아니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 것을 희생한다고 말할 수 있답니까? 무슨 자격으로 말입니까? 우리가 우리 것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언제 어느 때라도 부지불식간에 데려가시면 그것들 우리 것이라고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저희는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참으로 잘 압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의 불완전한 그 바로 그 빈자리에 우리가 무엇을 채워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그저 세상 걱정, 근심으로 채우면, 바로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내리고 그 자리에 주님을 채우면 기쁨으로 아름다운 봄날 같은 얼굴 빛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내어 놓는다구요? 그래요. 인간대 인간 관계에서는 그런 말이 성립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주님과의 관계에서는 이는 완전히 착각하여 하는 말일 뿐 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가진 것이 없는데 무엇을 내어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잘난 점, 못난 점, 모두 포함한 우리를 완전히 주님 앞에 드러내놓아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도 그대로 들어내 보여야 합니다. 자꾸 우리 자신이 주님대신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자신을 온전히 내 놓으셨겠습니까?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주님께 우리 부족한 면에, 그 빈자리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곳에 큰 기쁨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불행히도 아직도 우리는 화, 질투, 미움, 긴장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자, 이제...온존히 우리를 내어 놓으십시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 주변에 중증환자, 바리사이파,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너무나 많은 사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어찌 너희는 그런 표정을 짓느냐,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 이런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의 표정을 한번 그려 봅시다. 화를 내시는 것으로 생각됩니까? 그래서 찡그린 표정을 할 것 같습니까? 아니예요,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그 바리사이파의 구원에만 관심이 계신 구원자이십니다. 어찌 성내는 표정을 지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과 나와의 관계로 돌아와 다시 생각해 봅시다. 주님, 그 분은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냥, 사랑에 탁 걸려 넘어지셔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목숨까지 내어 놓은신 분입니다. 그러신 분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에서 <야곱아, 너는 나를 찾지 않았다.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정성을 쏟지 않았다. 너는 죄를 지어 나의 화를 돋우었고 불의를 저질러 나의 속을 썩였다. 네 죄악을 씻어 내 위신을 세워야겠다. 이 일을 나밖에 누가 하겠느냐? 너의 죄를 나의 기억에서 말끔히 씻어 버리리라>고 하십니다. 주인공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를 내어놓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어둠 속에 살게 되지도 않고 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두움, 그 죄, 바로 그 자리에, 그리고 그 빈 자리를 그 분께 드리십시오, 걱정과 불안,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희들의 빈자리 찾아 그 자리에 기쁨으로 채워주시기 위한 것 아닙니까? 이제부터 그 분께 주인이신 그 분께, 그 빈자리를 맡겨 드립시다. 세상일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도록 우리를 내어 드리십시다. 우리는 정말 아둥 바둥 살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특권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이 특권, 잘 사용해야, 잘 써먹어야 합니다!

오늘의 화답송에서 시편 40장 말씀으로 <주님 고쳐주소서. 당신께 죄를 얻었나이다> 말합니다. 내일 미사의 복음 말씀에서, 마르코 복음의 9장 14-29절 말씀 안에서,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 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부족함, 죄많음에 부끄러워하여 지레 움츠려들지 맙시다. 우리 당당하게 우리 주님 앞에 부족한 우리 자신을 내어 놓으십시다. 감사함으로 내어 놓으십시다. 주님께서 알아서 고쳐주시도록 내어 놓으십시다. 자비로운 그 분께 내어 드립시다.

여러분 늘 그렇듯이 오늘도, 자비송과 대영광송을 우리가 미사에서 드렸습니다.

이는 슬픔의 노래가 아닙니다. 기쁨의 노래입니다. 주님께 어서 오시어 이 부족한 우리를 구원해 주십사고 청하며, 또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믿으며 부르는, 기쁨으로! 환희로! 가득찬 노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확실하게 우리를 끌어 주시도록, 이끌어 가시도록, 내어드리고 기쁨으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미사를 통하여, 성체를 영하고 나서, 밖에서 세상에 나가서, 세상 살아나갈 힘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청하는 간곡히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그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저희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세상 속에서 기쁨을 안고 밝은 표정으로 아름다운 표정으로, 우리들 삶에, 우리들의 얼굴에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베어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저희에게 주신 이 선물에 대해 이 어찌 감사드리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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