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10월20일(토)복음묵상
2012. 10. 19. 오후 11:31:43
글자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8-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묵상>
성당의 모임중에 생각나는 이름중에는 증거자의 모후라는 꾸리아단체가 생각납니다.
믿음을 성모님과 함께 증거한다는 의미로 쓰여진다고 생각해봅니다.
오늘 날 순교의 영성을 어떤방향으로 정립을 해야할 지? 궁굼합니다.
순교자 영성을 바라보면서
그 분들이 가졌던 신앙관 보다는
치명한 부분에 더 강한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예비신자들의 교육과정에는 성지순례 일정이 잡혀있으며, 성지에 참여하고
때로는 봉사자들로부터 안내설명을 듣습니다.
내용은 한결같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모진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기쁘게 참수형을 받았다고 이야기들합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죽어갔을 까?하는 물음은 던지지 않습니다.
무었 때문에 그들은 죽었나?하는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그시대에 많은 이들이 붙잡혀 죽고, 참수 당할 때
또한 많은 이들이 산으로 피신하거나 도망을 했을 겁니다.
외진 곳에서 그들은 숯을 구워 팔거나 옹기를 구워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죽은 이나 산이가 모두 신앙 안에서는 하나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박해나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증거하는 데는 너무나 무력함을 봅니다.
현대인의 삶은 풍요 속의 빈곤이 머무는 삶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직장이나 근로장소에 나가 일을 하여야합니다.
두사람이 벌어 한 집안을 꾸려가는 세대들이 참 많습니다.
수입이 없으면 오늘 하루를 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유야원에 맡기고, 저녁이면 아이들을 찿아 집으로 돌아갑니다.
2만불 시대에 육적인 삶은 좋아졌습니다.
가정공동체는 흘러간 가요처럼 잊혀져가는 시대입니다.
3대가 함께모여 아침 식사하는 세대는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부모님 따로, 나따로, 자녀따로 살아갑니다.
특별한 날이나 되어야 함께 모이게됩니다.
이정도 가정에서 한 발짜국 더나아가
남편따로 아내따로입니다.
이런 험난한 맘몬의 시대에 살면서
신앙을 증거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신앙을 증거한다는 것은
미사의 성찬예식에서, 사제가 빵을 들고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하고 성찬예식을 거행합니다.
이 미사경문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빵과 포도주를 드시며 만찬석상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모습만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나의 편협한 교리적인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나를 기억하여..."라고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전인격적인 모습을 통채로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께서 가난한 이, 불쌍한 이, 고통받는 이,귀신들린 이,병든 이, 죽은 이 등등
세상에서 고통받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해 주시는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는 것과
아버지를 증언하신 그 모든 말씀들을 안고 있다는 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와서 마셔라"하고 항상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어둠보다는 빛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라.
부족하지만은 가진 것을 조금씩이라도 이웃과 나누어라
또한 가진 것의 일부라도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내어 놓아라
생각과 말과 행위가 항상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노력하여라
비록 네 자신이 나약하고 힘없다 할 지라도 나를 바라보며 나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가 네 안에 도래되도록 노력하여라.>
이러한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울림이 "기억하여"와 함께 생각나는 것들입니다.
예수마음을 실천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자기를 버리는 아픔이 없이는 예수님 따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버리는 아픔 안에서 기쁨이 샘물처럼 솥아나기를 희망해 봅니다.
여인이 아기를 출산할 때의 고통 후에는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생명을 통하여 큰 기쁨을 얻기 때문일 것입니다.
삼가 믿음이라는 생각속에서
신앙을 증거하고 수호하신 우리의 순교자님들과 산 속 깊은 곳에서 힘겹게 삶을
연명하신 신앙의 증거자분들께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을 표하고 싶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