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처럼 순결한 첫사랑

1999. 12. 1. 오후 1:39:28

글자

@    흰 눈처럼 순결한 첫사랑     @

 

                                          이정하 님 (시인)

 

 

   처음 사랑. 사랑 중에도 처음이었던 사랑. 처음이라는 건 참 느낌이

   좋다. 더군다나 그것이 사랑이라면 더욱더. 그러나 불행히도

   내게는 첫사랑이 없었다, 라고 해야겠다. 그건 나의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었으므로. 내가 마음에 담고 있었던 그녀는 그때

   이미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때문에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어 다만 먼 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나로서야

   오죽 심정이 쓰라렸을 것인가.

 

   그랬다. 다른 무엇보다 달콤하고 황홀할 것이라고 상상하던 내게

   사랑은 너무 혹독한 시련으로 제일 먼저 다가왔다. 긴 밤 내내 전해

   주지도 못할 사연들만 끄적이다 날이 뿌옇게 새던 그날들.

   세상에는 사랑으로 인해 더없이 행복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때로는

   슬픔만 안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그때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눈 오는 날엔 /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 있는데 /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 눈 오는 날엔 그래서 /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

 

   그때는 왜 그리 눈도 많이 내렸던지. 눈도 얼마든지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나는 그때 알아차리며 무수한

   고독과 싸워야 했다.

 

   하루는, 내 삶에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던 그날, 우연히 그녀를

   길거리에서 맞닥뜨린 그 눈 내리는 날, 늘상 함께 다니던 사람 없이

   혼자 걷고 있던 그녀를 발견한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를 인근의

   제과점으로 데리고 갔다.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시켜 놓고 둘이서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다 결국 돌아왔지만, 그녀의 사랑 또한

   결코 순탄치 않다는 것을 직감한 날이었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그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녀를 위해 그녀를 내

   마음속으로부터 떠나보내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좁은 새장으로야 어디 새를 사랑할 수 있으랴.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내 안에서 날 수 있도록 내 자신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임을 나는

   참으로 가슴 아프게 깨닫고 있었다.

 

   그랬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이성을 처음 사랑한 그 시절, 지금

   생각해 보니 참 풋내 나는 시절이었지만 그때만큼 순수하고

   진실했던 때는 다시 없을 성싶다. 아프고 괴로웠던 한 시기였지만

   그로 인해 내 삶이 더욱 성숙해지고 풍성해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람 하나를 사귀더라도 저 사람이 내게 도움이 될까 안

   될까부터 따지는 요즈음, 계산과 이해 득실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그 순수함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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