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라 메> 살아 있는 불과 인정사정 볼것없이 맞짱떠라!
내 아버지는 소방관이었다.
그래서 불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때문에 집에는 방방마다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낮잠을 주무시다가도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아~’하는 홍서범의 노래만 나왔다 하면 벌떡 일어나서 수돗가로 달려갔다. 때문에 그 노래는 우리 집의 절대 금지곡이 되었다. 어떤 때 노래는 꼭 부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지는 법, 나도 모르게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아~’하고 그 노래를 흥얼거린 날,
"이 싸가지 없는 자슥! 불이 춤춰? 불이 춤추면 좋은 줄 알어? 불놀이하다 디진 놈이 한둘인 줄 알어?"
하는 청천벽력과 함께 눈앞에 불이 번쩍 했다. 한번도 아니고, 자그마치 다섯 번이었다. 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
불장난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친구들과 쥐불놀이를 하고 돌아온 일곱 살의 정월 대보름날 아버지는 눈에 불을 켜고 내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매질을 했다. 성냥은 호한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서운 재난의 씨앗이었다. 성냥개비로 탑을 쌓다가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각목으로 맞아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맞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어느 여름밤. 나는 ’불이야!’하는 4옥타브 가량의 괴성에 잠에서 깨었다. 창 밖을 내다보니, 옆집에 불이 나서 소방차가 출동하고 난리였다. 나는 밖으로 나가 구경꾼들 틈에서 불구경을 했다. 이미 ’불이야!’와 동시에 뛰쳐나간 아버지는 직업 의식을 발휘해 반바지에 겨드랑이가 늘어난 ’난닝구’ 차림으로 소방관 모자만을 쓴 채 불을 끄고 있었다. 소방 호스를 붙들고 불길에 물을 뿌리던 아버지는 검뎅칠된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윙크를 했다. 그러나 멋있게 보여야 정상일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겐 추접스럽게 보였다. 때는 7월 말 더위가 한창인 한여름이었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불구경을 하고 있으려니, 더 더웠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들고 나온 부채로 부채질을 했다. 그러자, 하필 그 때 불을 끄고 있던 아버지가 다시금 돌아보더니,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이 싸가지 없는 자슥!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 불난 집에 부채질을!!!"
나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내 얼굴에 부채질을 하려고 한 거라 변명하려 했지만, 이미 아버지의 호스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나를 강타한 후였다. 소방 호스에서 나온 물줄기가 얼마나 위력이 센 줄 아는가. 나는 뒤로 3미터는 족히 허공을 날아 하필이면 개똥밭인 골목 모퉁이로 나가 떨어졌다.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개똥범벅이 되어 나는 아버지에게 한번만 물을 더 쏴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버지는 돌아서서 들은 척도 안 했다.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석사 학위까지 땄던 아버지가 어떻게 말단 소방관이 되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고, 아버지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을 만큼 아버지는 무식했지만, 아버지가 독일어를 전공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해준 것은 우리 집의 가훈이었다. <하면 된다>나,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휘호 대신 우리 집에는 붓글씨로 커다랗게 ’LIEBE’라 쓰여진 독일어 단어가 액자에 담겨 거실벽에 걸려 있었다. 그렇다. 아버지가 만든 가훈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단 한 점의 사랑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불보다, 불을 증오하는 아버지가 더 무서울 뿐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와 기숙사에 살면서 나는 점점 불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종교도 ’불교’를 믿었고, 제 2 외국어도 ’불어’를 들었고, 사랑도 불같은 사랑 아니면 하지 않았다. 음식도 늘 ’불량식품’만 골라 사먹었고, 술도 마시면 목에 불이 붙는 듯한 ’빼갈’이나 양주만 마셨고, 책도 세계의 ’불가사의’와 관련된 책만 읽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억압되어 있던 불에 대한 내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기숙사 소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점점 불에 미쳐갔다.
불로 태울 수 없는 건 없었다. 소각장에서 모든 쓰레기들을 까맣게 태우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공 본드를 마셨을 때보다, 부탄 가스를 마셨을 때보다 더 황홀했다. 기숙사 건물 전체를 태운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계획을 세웠다.
먼저 가연성 연료가 필요했다. 나는 행정실의 비상키를 훔쳐 기숙사 방방마다 잠입해 부탄가스 하나씩을 침대 밑에 감추어 두었다. 그리고 모든 부탄가스에 도화선을 연결해 옥상으로 끌어 모아 두었다. 옥상에 방해자가 접근할 때를 대비해 말통으로 휘발유를 사다가 놓아두었고, 화염병도 몇 개 만들어 놓았다. 준비는 끝났다.
드디어 D-데이. 나는 연막탄에 불을 붙인 뒤 ’불이야!’를 소리치며 기숙사 복도를 뛰어다녔다. 우리나라는 ’사람 살려’에는 무심해도 ’불이야’에는 민감하다. 이내 무수한 기숙사생들이 뛰쳐나왔다. 복도에 자욱한 연기는 사생들로 하여금 우루루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었다. 화재 경보가 요란하게 울렸고, 오래지 않아 소방차까지 출동했다. 나는 옥상에 앉아 한 손엔 도화선을, 다른 한 손엔 불티나 라이터를 들고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면 이 건물 다 날려버리겠어!"
언제 왔는지 아버지가 소방차의 사다리를 타고 나에게 접근해왔다.
"야이~ 싸가지 없는 자슥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 난리여? 엉?"
나는 눈물을 떨어뜨리며 소리쳤다.
"아버지가 해준 게 뭐가 있어요! 날 한 번이라도 사랑한 적 있나요? 가훈이 리베(Liebe)라메요? 리베라메? 가훈은 리베라면서 정작 날 한번이라도 사랑해준 적은 있나요? 리베라메... 흑흑흑..."
나는 눈물을 떨어뜨리며 불티나 라이터를 켰다. 한데 너무 흥분을 해서인지 라이터돌이 튀웅 하면서 퉁겨져 나갔다. 무안해진 나는 다시 호주머니에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준비한 성냥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불을 붙여 도화선에 당겼다.
"안 돼애애애애~"
역시 아버지는 소방관이었다. 성냥불이 도화선에 닿기 직전 정체 불명의 물줄기가 날아와 성냥불을 꺼뜨렸다. 아버지는 급한 대로 성냥불을 소변기 삼아 ’멀리 쏘기’를 하신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다른 성냥을 꺼내어들었지만, 물줄기는 방향을 틀어 성냥갑을 통째로 적시고나서야 수그러들었다. 이럴 줄 알고 뒷주머니에 딱성냥 하나를 더 준비해뒀지. 득의양양해져서 딱성냥을 하나 더 꺼내든 순간 수그러든 줄 알았던 물줄기가 다시금 최후의 한 방울을 쥐어 짜내어 쏘아 그것마저 적셔버렸다. 그렇게 내 일생 일대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방화미수로 연행되어 가던 경찰차 안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니 맘은 충분히 이해헌다. 허나 세상일은 허고 싶어서 환장을 허겄어도 허면 안 되는 일이 있는 것이여. 석사 학위까지 딴 내가 왜 소방관이 된 줄 알어?"
그리고 아버지는 소방관이 된 사연을 말씀하셨다. 그 사연으로 난 아버지가 소방관이 되어야 했던 이유와 불이라면 왜 그렇게 질색을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학위를 따기 위해 대학원 기숙사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어느 날 친구들이 놀러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다 한 친구가 소리나게 방귀를 뀌었는데 아버지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얌마. 담배 필라고 라이타 키는데, 가스를 보내면 어쩌냐. 방구에 불 붙는 거 몰르냐?"
한동안 아버지와 그 친구는 방귀에 붙이 붙는다, 안 붙는다로 옥신각신했는데, 그 친구가 지금 또 한번 나올 것 같으니, 그럼 어디 한번 실험을 해봐서 지는 사람이 술값을 내자고 제안했다. 결국 친구는 힘을 주어 가스를 분출했고, 그 순간 라이터를 친구 엉덩이 부근에 대고 있던 아버지가 라이터를 켰는데, 친구가 그날따라 속에 가스가 너무 많이 찼었는지, 엄청난 양의 가스가 터져나왔고, 가스에 라이터불이 어마어마하게 부풀어 거의 화염방사기의 화염이 되어 침대보에 불이 붙었고, 순식간에 창가와 커튼에 불이 번졌다. 아버지는 얼떨결에 불을 끈답시고 병에 담겨 있던 물을 불에 끼얹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소주였고, 불은 소화 불능이 되어 타올랐다. 친구들과 아버지는 황급히 밖으로 대피했지만, 가스의 주인공인 친구는 끝내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뒤늦게 소방관들에게 구조되긴 했지만, 친구는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방구...에도... 불이... 붙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