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자명종이 없다

2000. 8. 12. 오전 1: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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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자명종이 없다.

한 번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 연장을 사용하는 사람이 우리 집엔 한 사람도 없다.

고3때였을까?

공부 좀 해보겠다고 새벽에 학원엘 다녔었는데(그 해가 고등학생도 입시 학원에 다닐 수 있게 허가가 난 첫 해였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시기엔 그 당시에 장사를 하시던 우리 어머니께는 참으로 가혹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참... 누구 딸인지.. 효녀났네!!!)

그래서... 나는 혼자 새벽 4시반에 일어나.. 밥하고, 도시락 싸고, 학원으로... 학교로... 그렇게 괜히.. 티내면서 다녔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의 타고난 게으름으로 인해 고3 티내는 건 2달 만에 끝장을 보고 말았지만...

우리 엄마 말대로.. 참.. 대단한 일이었다.

하루에 3번 쏟던 코피가 날 살려주었던 것이다(참고:그 2달에 지쳐서 그 이후로 나는 공부란 걸 하지 않았다... 엄마.. 죄송해요)

그 때에도 나는 자명종을 쓰지 않았다.

 

언젠가... 아마 내가 대학에 다닐 때였던 거 같은데..

그 때 나는 큰 맘먹고 자명종을 하나 장만했다.

역시 새벽에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였는데...

거금을 들여 산(자명종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냐마는.... 나는 이상하게 주님(?)을 모시는 일 외에 돈 쓰는 건 ... 차마시는 일도 아까웠다.. 그 당시엔 말이다) 그 시곈 이틀만에 그 생을 마감했다.

뭐 때문이냐고?

나는 한 번 잠에 빠지면... 거의 무아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온가족이 일어나고 나를 흔들어 깨우며... 성질들을 냈는데도.. 정작 일어나야할 나는,

자명종의 성능을 ..아니 내 귀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더 맘 편히 잠에 취해있었다.

급기야 산적같은(본 사람은 다 안다) 내 동생이 자명종을 집어던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듣지도 못하는 자명종을 대체 왜 산거야, 엉? 너, 한 번만 더 자명종 쓰면 .. 그 땐 널 던져버린다!!!"(내 덩치를 아는 사람들은 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역시 내 동생을 본 사람이라면... 이게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인정할 것이다)

 

우리 나라 과학이 이룬 쾌거 덕일까... 아님 아직 새거여서 그랬을까..

자명종은 무사했다.

그리고.. 동생의 그 악질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음 날 또 다시 자명종을 사용한 것은...

아직도 내 귀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라기 보다는(반드시 들을 수 있다는 뭐.. 그런..), 지금 생각해보면... 순전히 본전 생각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를 제외한 모든 식구가 일어났고...

엄마의 만류 덕에 내 대신 던져진 자명종은 박살이 났다.

말하자면... 자명종이 이틀 만에 생을 마감한 건 순전히 내 고집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우리 어머니는 나의 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을 하곤 하셨다.

"니가 자는 게... 그게.. 어디 자는 거냐... 실신하는 거지"

 

그래서.. 내가 외국여행을 나갈 때에도 또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그 아무도 내가 시차로 인한 고생을 하게 될 거라고는 사실..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럼 대체.. 아침에 어떻게 일어나냐고?

뭐.. 자명종 소릴 못 듣는 내가 전화벨 소릴 들을리는 만무하니, 모닝콜 같은 거에 기댈 걸 수도 없고...

엄마가 매일 깨워주셨나면...

물론.. 신체 일부분에 물리적 압박을 가하는 때에는 일어나기도 했지만..

우리 엄마의 평소 신조가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라이기 때문에... 부탁을 드리기 전엔 절대 깨우는 법이 없으시다.

 

그만 궁금하게 하고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방법을 공개하도록 하지..(뭐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 .. 이 부분이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인데...

엉덩이와 머리를 붙일 수만 있으면 이내 들어버리는 나의 잠은, 어떠한 물리적 현상으로도 깨울 수가 없는 데에 반해.. 이상하게도 나는 맘만 먹으면...

아무리 늦게 잠을 자도...

또, 아무리 일찍 일어나 나가야 해도...

시간을 못 맞추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여느 고3들 처럼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고서도 새벽 4시에 일어났어야할 때도 학원 한 번 빠져본 일이 없었고,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문앞에서 시계보며 기다리다가 들어오는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듣긴 했지만..

지각 한 번도(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으니까... 한 번 정도야...) 하질 않았다.

말하자면.. 외부환경에 대해 정신의 판단이 선행되어야만 신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나에게 신경성 증세들.. 이를 테면 안구건조증이나 편두통, 대장증상과 같은... 것들이 많은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정신이 신체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어떤 증거와도 같은 거였다.

(참고.. 신경성 증세라 함은.. 신체의 기질상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내 의지력에 높은 점수를 주곤 했었다.

 

그런데..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렇게.. 어떠한 악조건 하에서도 자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일어나야한다는 명분만 갖추어지면.. 얼마든지 자동조절이 가능했던 내가

깊은 밤에도 홀로 일어나 깨어 있고,

조금.. 과장해서.. 지나가는 바람소리에도 잠이 깨곤 한다.

아무리 자고 싶어도 잠을 잘 수가 없고,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도 때론.. 눈을 뜰 수가 없다. 아니.. 어느 땐 전혀 일어나고 싶지 않은데도 자그마한 소리에도 깜짝 놀라 일어나곤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절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거 같은데도.. 내눈은 점점 말라가서 인공눈물을 넣어주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래서는 안되는 거였다.

이렇게 신체가, 정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먼저 반응하는 일이 있어서는 정말 안되는 거였다.

신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일따윈 어린 아이 시절에나 했었어야 하는 거였다. 사람이 왜 짐승과 다른가 말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그런 시기에서..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할 일이 있고, 또 절대로 하기 싫어도 때론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인간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나의 신체들은.. 내 정신의 판단을 무시하고,

아니 미처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먼저 반응해 버리는 거였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더구나.. 내가 4년을 배운 심리학은..

그 원인이 외부에 있지 않고 반드시 내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심리적인 요인이라고 나를 부추겼다.

혹자는..

내가 나일 먹어서 잠이 없어지는 걸거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또.. 나역시도 그부분이 맘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뭐.. 그렇게 간단하게 답해질 수 있는 거였다면.. 이렇게... 긴 글을 쓸 이유가 첨부터 없지 않은가.. 그래.. 그러니... 그런 이유따윈 접어두기로 하자.

 

자.. 너무 힘들었으니까.. 잠깐 딴 얘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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