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동호회에 가입한 지도 한 달이 좀 넘은 것 같고, 그래서 하루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은 동호회의 전 게시판에 들어간다.
그리고, 글이라면 나도 쓸만큼 쓴 것 같다. 늘 뭘 해달라는 거 아니면, 뭐가 어떻게 됐다는 안내의 글만...
난 차...암 바쁘다. 엄청히, 끝내주게, 정신 없이 바쁘다.
아니, 사실 그냥 보기에는 한가해 보이기도 한다.
왜냐면, 문도 열지 않는 월요일에도 회관 방에 대낮부터 나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에게는 좀 바쁜 듯이 느껴진다.
학교도 다녀야 하고, 그에 따른 숙제도 만만치가 않고,
남들처럼 시험도 본다. 그리고 그것이 다가 아닌 까닭에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무엇을 해야할 지 찾기 위해서
학교 생활과는 조금 무관하게 나를 바쁘게 하는 것도 있다.
둘째로 레지오 생활을 해야한다.
일반 레지오 단원들처럼 주에 한 번 주회를 가고, 내려진 활동배당을 하면 끝이 아니라
(물론 그런 사람들이 바쁘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그에 따르는 제반 사항이나, 혹은 그것과는 무관한 그렇지만 레지오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을 하기만 할 뿐 아니라, 준비해야 하고 검토해야 한다.
(파티마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단장들이 그러하듯이)
물론 인간관계도 만만치가 않다.
먹은 나이만큼이나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까닭에
그만큼 다양한 접대(?)도 요구된다.
가끔 전화나 편지를 해야하고, 힘들어 보이는 후배나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어줘야 하고
혹은 연애하랴 바쁘면서도 자기 연인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질투(?)없이 봐줘야 한다.
차나 밥을 함께 먹기도 해야 하고(사야할 때도 많다) 때론 술을 요구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기도 한다(물론 대다수는 내가 원하는 자리였지만)
참, 요즘은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 레지오 동호회를 관리하는 일이다.
처음 시삽자리를 넘겨받을땐, 그저 회원이나 가입시켜주고,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이나
확인하면서 혹 미풍양속을 해치는(?) 글이 올라오지 않는가 감시(?)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컴맹까지는 아닐지라도 숙제할 때 컴퓨터 사용하는 것을 최고(?) 수준 정도로 알고 있던
내가 복잡한 이 일을 맡게 된 자체가 아이러니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내가 맡은 일인 것을..
나는 밥챙겨 먹어야 할 때에 밥을 안먹으면 짜증이 나는 사람이다.(갑자기 나의 체격 유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거릴 많은 회원들의 얼굴이 떠오르는군)
근데, 그런 내가 요즘 가끔 밥 먹는 일 자체를 까먹을 때가 있다.
왜냐구? 바빠서...지 물론...
이밖에도 나는 성서모임도 해야하고, 또 고등학교 동문회 우리 기수 대표일도 해야하고..
하여간 이래저래 참견할 일이 많다.
그래서 가끔은 전부 놓아버리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이렇게 바쁜 나도 꼬박꼬박 챙겨 나오는데
사람들이 안나올 때,
안나오는 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전화도 안할 때,
꼭 할 것처럼 끝까지 말 없다가, 당일 날 그것도 시간에 임박해서야 못한다고 연락할 때,
자기들은 하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 면박줄 때(물론 대다수의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격려하는 줄 안다)
한다고 했는데 못했다고 혼날 때,
그리고 나 스스로가 만족을 못할 때
그럴 땐 정말이지 다 그만두고 싶다.
왜냐하면, 나도 나 스스로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싶어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당장 그만두지 뭐할라고 투덜대면서 계속하냐고?
뭐, 여러가지 이유가 많지만 아주 간단한 대답이 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몇 개월간 흰손으로 지낼 때 나의 소원은
너무 바빠서 과로로 쓰러져보는 거였다!!!
물론 지금은 쓰러지기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아무런 목적없이 바쁘기만 하지 않기를 바란다.
바쁘다는 건,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적어도 내 스스로에게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일에 필요한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미소한 움직임이라도 우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고,
그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를 지어내신 그 분의 숨결이 우리에게 머물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더구나 바쁘다는 건 그런 우리의 움직임들을 활기있게 하는 것이기에...
오늘 나는 바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그래서
내 안에 자리한 그분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에 대해
그분께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