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신록이 생동감 넘치는 좋은 계절입니다.
그런데 황사 때문에 그 좋은 느낌이 반감되어 안타깝군요.
엇그제 산에 갔었는데... 황사 그거 참,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동안 안녕 하셨지요?
이제 몇번 글을 드리고 받은 사이가 되었군요.
아직은 만나진 못한 사이고 서로의 신분도 모르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딘지 친근감이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이게 다 하느님 은총 아니겠습니까?
전 지금은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는 한 회사에서 약 20여년을 근무한 바 있습니다.
그동안 정신 없이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 사이에 나이만 많이 막었습니다.
그래선지 요즘은 이런저런 살아온 지난 날들을 새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때문에 관심이 있어도 어쩔 수 없었던 종교도 이제야 겨우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위에 언급했습니다만
워낙 오랫동안 회사에 몸 담아 지내온 탓인지 그에 익숙한 정도를 넘어
어느 단제든 공동체든 그 조직의 목적 또는 목표의 효율성 면을 가장 중시하게 되고
직제체계 쪽이 개별보다 훨씬 더 효율성이 월등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사회구조가 다 그렇게 조직화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만....
이야기 하다보니 교황관련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되었는데
21세기 문명시대에 국가든 공동체든 왕과 황 호칭은 어딘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교황의 공식 신분은 주교이고 일반적으로는 교황이 주교들의 수위권을 가지고 있어
그렇게 호칭하고 있다고 저는 알고 있고요.
아시다시피 가톨릭은 단일교회입니다.
전세계 약 11억의 거대한 공동체이고 그처럼 거대한 조직을 보다 능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그러한 직제 운영이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제 생각이 억지일까요?
저는 전번 질문을 통해 그에 대한 님의 의견을 듣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는 우리 교회에서 그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을 알고서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터넷에서 본 다른 개신교 신자분들과 많이 다르고 상당한 경륜의 분 같습니다.
보통은 가톨릭을 비판하는 일 없지만 누가 물어오면 신랄하게 비판한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온건하신 분이라 생각되고 제가 별로 아는 게 없어 대화가 안 되는 것이 아쉽습니다.
하느님 은총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웃 형제들을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서로가 어렵고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상대에게 좀더 다가가고 친교를 나누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그런 점에서 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지금까지의 그것은 매우 훌륭하시다 말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질문드린 사항에 대해 제 필력이 부족한 탓으로 다소 잘못 이해하신 듯 합니다.
물론 전혀 님의 허물이 아니고 순전히 제 탓입니다.
가톨릭은 십자고상과 성모상 등 성물을 숭배하여 모시라거나 절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의식하고 잊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 방편일 뿐입니다.
바쁜 일상에서 자칮 잊고 지내기 쉬운 인간들의 속성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개념이므로 삽자가 목걸이도 마찬가지 가정은 물론 직장에도 비치하라고 권합니다.
나가거나 들어오나 항상 또 길거리든 어디서든 잊지 말고 하느님을 생각하라는....
그 외의 성물도 주님 관련 물품들이므로 일반의 다른 물품처럼 함부로 하지 말라는
하느님을 공경하고 흠숭하는 자녀로서 윗분에 대한 동양적 도리와 효 그 이상이 아닙니다.
조상제사 문제,
이 역시 동양적인 것으로 부모와 조상에 대한 효를 바티칸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한 것인데
조상이든 누구든 당연히 '신'은 절대로 배제합니다.
제 생각이지만 처음 국내 전례시기에는 당시 사회의 전통적 관습상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개신교처럼 추모 정도로 무방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자주 만나지 못하는 흩어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도 됩니다.
그럼 어차피 음식도 준비해야 하는데 좀더 신경써 돌아가신 어른들께 먼저 드리고 먹는...
살아계신 어른들께 드리는 공경과 효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인데 일부 잘 모르는 신자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고쳐야 할 일입니다.
고백성사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있지만 전 그와 다른 관점에서 말씀 드릴까 합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고의든 실수든 죄를 많이 짓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어쩔수 없는 실수가 아닌 고의적 죄를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실수도 물론 가능한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요.
그런데 인간은 남에게는 엄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것이 문제 아닙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면 나중엔 그것이 죄인지조차 모르게 되고요.
설사 알더라도 별 것 아닌 일로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약점이고 속성인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사회든 그를 규제하는 법이 존재하고 말로서 안 되니까 처벌하는 것이고요.
저는 개신교 신자들이 고의든 실수든 죄 지음에 있어 교회에서 어떻게 하는지 모릅니다.
혹시라도 하느님께 죄를 회개하며 용서를 비는 것만으로 용서받았다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잘못인 줄 모르고 지은 죄(실수)는 그 정도 회개만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쁜 죄임을 잘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계속 죄를 지어도 계속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 성서에 7번이 아니라 그 열배의 죄를 짓더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있습니다.
사리분별력이 없는 어릴 때 다친 상처는 커 가면서 혼적이 차츰 없어지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철이 들어 성인이 되어 입은 상처는 죽을 때까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즉, 잘못인 줄 알고서 지은 죄(상처)는 흔적(죄)이 없어지지 않고 남는다는 이야기지요.
이게 다 하느님께서 역사해 놓으신 일들 아니겠습니까?
사람도 그렇지만 나무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릴 때 생긴 옹이는 성장하면서 없어지지만 커서 부러진 가지 자욱은 그대로 남습니다.
성서의 말씀은 당연히 진리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그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문제는 성서를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 차이 때문에 그동안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옛부터 훌륭한 많은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그 문제를 연구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성서가 부족하고 미흡한 인간들의 언어로 말씀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한 하느님의 뜻이 아닐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닌지요?
어릴 때와 성장한 후의 사람과 나무의 예에서 보듯이 죄임을 알고 지은 죄는 벌하고
그런데 성서는 진정으로 회개하면 몇 번이고 용서받고...
그래서 저는 성서의 '진정 또는 진심으로' 라는 말씀에 의미를 둡니다.
알면서 계속 반복하여 짖는 고의적인 죄는 '진심으로, 진정으로' 와 거리가 있다...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 짖는 행위를 우습게 생각하여 반복하는 것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는 고백성사의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말씀의 뜻에 더 가깝지 않는가...
또한 고해실에서 고해사제에게 죄를 고백하지 않아도 하느님은 우리 마음을 잘 아십니다.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그렇듯이 저도 고해성사를 여러번 받았습니다.
나이가 있고 철이 들어선지 사제에게 고해하는 것이지만 심리적 부담일까. 부끄러움일까.
정말 죄를 지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온통 짓누르더군요.
칸막이 때문에 고해자가 누구인지 사제는 모르고 설령 알아도 곧 잊는다고 들었습니다.
연말 판공성사 경우는 외부에서 지원나온 사제가 하기 때문에 서로 알지 못합니다.
제가 사업을 하니까 거래처 파트너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거의 매일 접대하는 처지에 어찌 그 많은 날을 '죄'안 짓고 지낼 수 있겠습니까?
사업상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반복해서 짓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주님께 너무 죄송하고 고해를 반복하며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게 몇 번째였던가.
고해사제에게서 제가 지은 죄에 대한 댓가 즉, 보속명령은 '십자가의 길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는 성당에 가서 1처에서 14처까지 부지런히 해도 50분정도 걸립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고해사제님은 그 기도와 함께 더 무거운 다른 보속명령을 또 주셨습니다.
저의 사정이 어떻든 모든 노력을 기울여 상대에게 저의 진심을 보이도록 노력하라는....
그러면 주님께선 항상 함께 하시니 결국은 그들도 저를 이해할 것이라고.....
하지만 제가 상대하는 그들은 사실상 제 사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들이고
그래서 이런 구실 저런 핑계로...이쯤만 해도 저의 고충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신자들은 사도직을 수행하시는 사제님들을 주님의 대리자로 생각하면서 예우합니다.
주님께서 사도직 수행의 사제에게 맺고 푸는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으니 당연한 일이며
사제복을 입고 공식 업무를 수행할 때에 한해서라 하지만 때를 구분할 필요 있습니까?
그 때문에 죄를 피하기 어려운 곤란한 처지가 되면 제일 먼저 고해 약속이 떠오릅니다.
그러면서 현실과 약속 사이에서 망설이며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을 어떻게 감히 거역할 수 있습니까?
순간적인 내면의 싸움은 곧 끝나고 약속을 지키기로 합니다.
성당의 많은 교우들이 보고 있는데 고해소 앞에서 자주 대기하는 것도 창피하고요.
그러나 저는 또 거래처 파트너들에게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간다는 이유는 그들에게 사업을 안 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 시대에 사업하는 이들 모두가 저와 비슷할텐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이것이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는 외적 부분에서 말씀드리는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고해성사가 인간을 정화함에 있어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 입니다...
십계명 문제
각 조항의 문귀가 어떻든 교회는 개신교의 십계명과 다르지 않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상문제를 문귀로 하지 않은 것은 죄송한 표현으로 무지한 신자들을 위해서라는...
그것을 염려한 것인데도 성모상에 절하며 우상을 모시듯 구원도 받을 수 있다는 듯
지금도 적지 않은 신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톨릭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부 또는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서에 없는 내용들, 성모님 몽소승천과 무염시태 등이 그 한 예 입니다.
그것은 근래에 선포한 공의회 결정사항인데 그에 대해 교회에선 이렇게 가르 칩니다.
초기교회 때부터 알려진 사실이고 오늘까지 전승시켜온 내용이다.
그게 거짓이었다면 1,500년 동안 수많은 교부들과 신학자들과 가만두지 않았다.
처음 성서를 만들 때 여자를 무시했던 시대적 환경에서 주님 위주로 만들게 되었고
성모님 관련 내용이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진위여부를 떠나 오랜기간 신앙 선배들이 믿어온 전승을 믿는 것은 딩연하며
더구나 효와 예를 중시하는 것이 우리 전통적 관습이고 성모님은 주님 모친이신데
공경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제가 처음 게시판에서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을 보시고 님께서 메일을 보내신 것이지요.
"서로 같은 하느님인데 왜 그들은 그렇게 달겨들며 욕하고 난리를 치는 것일까?"
"서로 이해하며 잘 지낼 수는 없는 것일까?"
그에 대하여,
"비판과 사랑은 다른 행위이며 사랑하므로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라는 요지의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참으로 훌륭하고 좋으신 말씀입니다.
저도 주님을 믿는 신자로서 님의 그런 점이 너무 부럽고 한편으론 부끄럽습니다.
말씀대로 가톨릭 신자들은 선교는 물론 성서도 읽지 않는 사람 많습니다.
저 자신 포함하여 신자들 모두가 아주 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리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개신교와의 벽이 매우 두텁고 높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렇겠지요. 장장 1,500여년이나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대로 주님께서 일치를 허락하시는 그 때까지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종교와 교리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일처럼 어려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에서 우리 교우들끼리 주고 받은 댓글 이야기를 님께서 읽으신 것인데
여하튼 안 보고 안 듣는다 해서 함부로 말하는 행위는 옳지 않습니다.
그 점은 저도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내용이 매우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무 때 건 심심할 때 시간이 허락할 때 보시면 되는 내용입니다.
전 오늘 마침 약속이 깨져 시간이 많아 이렇듯 장문의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급히 답변하시려 하지 마시고 아무 때 언제라도 편하실 때 주시면 됩니다.
물론 어떤 내용도 좋습니다.
서로 그렇게 하기로 처음에 약속했지 않습니까?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