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좌익무장유격대의 5.10 총선거 방해 상황
굿게시판에 의외의 글이 올라 읽어보니 왜곡이 심하여, 회원님들에게 바로 알리고자 이 글을 올린다.
굿토론방에 올리지 않은 것은, 토론방 주제와 성격이 다르고 분란만 일어날 것이기에 자제하기로 했다.
네이버 백과사전이 그처럼 왜곡하고 있다면, 요즘은 백과사전도 믿을 수 없으니 어쩌면 좋은가.
1, 정부보고서가 본 제주 무장폭도들의 5.10선거 방해공작
노무현 정부의 고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가
진상조사 후 발행한 정부보고서 206~210쪽에는, 제주4.3폭도들의 선거사무소 피습현황이 기록돼 있다.
선거방해 행위는 4월 18일부터 5월 10일까지 계속됐고, 특히 선거 당일의 방해책동은 대단했다.
4월 18일 새벽 제주읍 도평리 투표소 피습, 선거기록 틸취
19일 조천면 신촌리 투표소 피습, 화재로 선거기록 소실
21일 동일리 선거사무소 피습, 선거기록 탈취
모슬포 면사무소 피습
21~22일 이호리 선거사무소 피습, 선거기록 탈취
내포리 선거사무소 피습, 선거기록 탈취
22일 대정 선거사무소 피습, 선거관리위원장 피살, 선거기록 탈취
30일 새벽 대정면 신평리 선거관리위원 피살
5월 1일 제주읍 도평리 마을 선거위원장 피살
3일 조천면 조천리 선거위원 전원 사퇴
5일 화북리 선거위원장 피살
5일부터 폭도들이 주민들을 산으로 안내, 5.10 총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
10일 중문면 투표소 피습
성산면 투표소 60명(폭도:필자 주)에 의해 방화
성산면 투표소 피습, 4명 피살
제주읍 다이나마이트 2개 폭발
제주공항 300여 명(폭도:필자 주) 총격전
표선면 투표소 기습, 2명 피살, 투표용지 파손
표선면 가시리 투표소 피습, 이장과 학교장 피살
구좌면 송달리 투표소 피습, 2명 피살, 1명 부상, 가옥 7채 방화 소실
조천면 북촌리 투표소 방화 소실
조천면 투표소 14곳 제 기능 못함
당시 제주도 3개 선거구 총유권자 85,517명 중, 53,690명(62,8%)이 선거에 참여했으며
남제주군 선거구는 86,6%가 참여하여 무소속 오용국이 당선되었으나, 북제주군 을구는 46,5%로 2개
선거구가 무효되었다.
※ 북한과 좌익유격대를 두둔한 노무현 정부보고서도, 좌익들의 선거방해와 폭력테러 행위들을 위처럼
인정했다.
2,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본 5.10총선거 방해작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내한하여 조사한 후, 유엔에 보고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방해 책동이 있었지만, 제주도를 제외하고 선거가 조용히 그리고 능률적으로 진행됐다.
5월 8일에서 10일간의 선거 주말 동안 57건의 습격이 있었다. 2월 7일부터 5월 14일까지 선거종사자와
후보자 17명이 살해되었고, 65명이 부상당했다. 경찰관과 그 가족 56명이 살해되었고, 142명이 부상을
입었다. 반면 공산주의자들과 폭도 261명이 살해되었고, 123명이 부상을 입었다.
3, 남로당 기관지가 본 5.10총선거 방해작전
1948년 5월 20일 전후로 발간된 남로당 기관지 '노력인민' 92ㅡ94호에는, 4.3투쟁에 대한 기사와 함께
5.10 '망국단선 분쇄투쟁' 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있고, 대략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당일에는 비가 내렸다. 제주도의 애국적 인민들은 투표소로 가지 않고 인민자위대가 있는 산악으로
올라왔다. 갈대를 엮어 임시 지붕을 만들고 그 밑에서 1,000명 또는 400명 단위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연기가 나는 모든 곳에는 모두 인민들이 집결해 있었다.
경찰서와 재판소 등 놈들의 권력기관들이 모여 있는 '성내'를 빼놓고는 완전히 투표를 보이코트하였다.
투표소들은 수류탄으로 폭파되었고 반동들은 숙청됐다. 도 전체에 걸쳐 공포와 전율이 극도에 달했고
인민들은 무서워서 감히 투표소에 나설 수 없었다.
경찰이 투표하라고 하면 인민들은 "우리가 투표하면 매국노라 인민재판으로 맞아 죽는데 누가 하느냐"
하면서 받아쳤다. 감히 투표상자를 나를 인민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남녀노유가 곤봉을 들고 나와 투표함을 가져온 자에게 들이댔다. "아무리 돈벌이라 해도
나라 파는 그릇을 짊어지고 다니는 놈이 어디 있느냐" 며 질타하여 쫒아버렸다. 투표상자를 지고 가던
서청 단원들(서북청년단)은 모두 행방불명되었다. 국경(국방경비대)이 나서서 투표를 강요했다.
인민들은 "우리는 못 나간다"했고, 국경은 "안 나가면 쏜다"고 행패를 부렸다. "쏘아도 나갈 수 없다"
"그러면 몰살당해도 원망하지 마라" 이에 숨어 있던 인민들이 모두 가슴을 풀어 제키고 "쏠래면 쏴라"
하며 들이댔다. 국경들은 이 기개에 기가 죽어 돌아갔다. 이에 인민들은 "인민공화국 만세"를 불렀고
이 소리는 고을을 메아리쳤다.
4, 북한이 본 5.10 총선거 방해작전
북한의 제주4.3사건 전문가인 력사학자 박설영은, 1991년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발행한
력사과학 론문집 147~150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는데, 남로당 기관지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북남련석회의 결정과 호소문에 적극 호응한 제주도인민들은, 거기에서 제시된 숭고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하여, 선거를 파탄시키기 위하여 투쟁에 과감히 돌입하였다. 선거날을 며칠 앞두고 약 5만 명 제주도
인민들은, 한나산(필자 주:한라산의 북한식 표기)에 올라가 집단적으로 투표참가를 거부하였다.
단독선거가 강행되는 5월 10일 새벽에 제주도인민들은 총과 수류탄, 칼과 몽둥이, 낫과 망치를 들고
원쑤들을 향하여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봉기한 군중들은 제주읍의 투표장으로 되었던 관청과 세무서,
신한공사 출장소 등을 습격 파괴하였다.
청년학생들은 서로 어깨를 걸고 단선결사반대를 소리 높이 웨치면서 시위를 단행하였으며, 농민들은 적
토벌대의 준동을 저지시킬 목적으로, 도처에서 교량과 통신시설을 파괴하고 중요 도로에는 바위돌을
쌓아놓거나 웅뎅이를 파서 적들의 기동을 차단하였다.
5월 10일 오전 9시에는, 조천면에서 봉화투쟁이 벌어지고 군중들의 함성시위가 일어났다. 조천ㅡ함덕간
도로를 위시하여, 각지 도로는 시위 군중에 의하여 차단되었다. 함덕에서는 9일 밤부터 밤 새워 봉화가
올랐으며, 이것을 신호로 전도민이 봉기하였다. (로동신문 1948,5,12)
유격대는 한나산에서 일제히 내려와 경찰지서들을 습격하고 반동을 처단하는 투쟁을 벌였다. 유격대는
이날 외도, 고산, 무름, 삼양, 세화, 도리, 화순, 남원, 위미, 아라, 중문 등지의 수많은 경찰지서와
출장소들을 습격 파괴하고, 악질 경찰들을 처단하였으며 감금된 인민들을 구출하였다.
삼양경찰지서 습격에 참가한 60여 명의 봉기자들은, 견고하게 구축한 화점을 과감하게 까부시고 악질
경찰 3명을 처단하였으며, 급보를 받고 달려온 적 응원대를 불의에 포위 습격하여 수십 명을 살상하고
무기를 비롯한 많은 장비들을 로획하였다.
봉기자들은 또한 평대, 인덕, 조천의 선거사무소를 습격하고 불태웠으며, 국방경비대 병영과 반동들의
소굴을 습격하였다. 인민들의 이러한 거세찬 투쟁의 불길은, 적지 않은 반동지배층 내에 동요와 분렬을
조성시켰으며, 일부 선거위원장, 선거위원들은 선거사업을 포기하고 인민의 편으로 넘어왔다.
이리하여 제주도에서 5.10 선거는 완전히 파탄되었다. 이에 대하여 당시의 유피통신은 "제주도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선거관리의 반수는 사임하여 버렸다. 그리하여 선거가 불가능하게 되어 6월 23일
로 연기되었다."고 비명을 올렸다. 당시 제주도 선거위원장이란 놈은, 중앙선거위원회에 선거 성적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로동신문 1948,5,22)
"북제주의 134개 투표구 중 투표함을 거둔 것이 겨우 64개, 그 중 62개의 투표함에는 몇 표씩밖에 들어
있지 않았고, 2개의 투표함은 빈통이었다. 남제주에서도 71개의 투표소에는 전혀 투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1982년 평양 조국통일사가 펴낸 대남공작 력사책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119~122쪽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봉기자들은 적군 와해공작을 진공적으로 벌였다. 국경(국방경비대)에 침투하여 5.10 단선의 매국적인
본질을 해설 선전하였으며, 애국자들과 인민을 학살하는 데 가담하지 말라. 인민들과 함께 반미구국투쟁
에 궐기하라고 호소했다.
4월 27일에는 국방경비대의 한 개 중대 100여 명 군인들이, 련대장을 처단하고 애국의거를 단행함으로서
(중략) 적들도 놈들대로 '선거놀음'을 기어이 성사시켜 보려고 '5.10토벌공세'를 준비하였으며, 증강된
미군부대 외에 1,500명의 무장경찰, 3,000명의 국방경비대, 수천 명의 무장테러 집단과 비행기까지 동원
하여 토벌작전을 시작하였다.
※ 이하 무장유격대들의 투쟁실적에 대하여 장황하고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비슷하여 생략한다.
이 내용은 제주4.3사건에 대한 정부보관 자료(약 400쪽) 중에서 극히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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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유격대들이 4월 18일부터 5월 10일까지 약 3주동안, 거의 매일 투표소를 습격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선거관리요원들을 살해하고, 선거인 명부를 탈취하여 불태우고, 제주도민을 산으로 끌고가 선거를 하지
못하게 하고, 경찰과 공무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살해한 만행을 저지른 일에 대하여
고건과 박원순은 제주4.3사건 진상조사규명 정부보고서를 발행하면서, 그러한 사실들을 모두 빼버리고
제주무장유격대의 모든 행위가, 마치 미군정과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만행과 횡포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순수한 '민주항쟁' 인 것처럼 내용을 작성했다.
해방이전부터 시작된 제주도 공산화운동은, 단선ㅡ단정 저지를 통하여 적화통일을 이룩하려는 치밀한
계획하에 진행됐으며, 5월 10일을 전후하여 전국, 그리고 제주도에서의 선거방해공작은 바로 소련과
김일성을 수괴로 한 북로당 및 남로당의 선동에 놀아난 제주도 좌익들과 그에 동조한 '사돈의 8촌' 식
제주도 특유의 씨족사회가 벌인 일대 관란극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올바르고 정상적인 사고의 제주도민들과 유지들, 그리고 나라를 지키려는 군인 및 경찰과
그 가족들이 짐승만도 못한 폭도들에게 희생당한 것이다. 아무 힘도 없고 이념이 뭔지 모르는 도민들은
낮에는 토벌대에게, 밤에는 좌익유격대에게 적에게 협조했다고 의심받으며 마구 짓밟힌 것이다.
이처럼 애당초 제주도를 학살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측은 제주도 공산주의자들이고, 가만히 있는 제주도
내의 경찰들을 모두 싹쓸이 제거하려고 한 것이, 4월 3일 새벽 2시에 일어난 기습테러였다.
따라서 제주도의 비극은 미군정과 경찰의 만행과 무자비한 탄압 때문에 일어난 순수 민중항쟁이 아니라
남로당 좌익들이 미군정 책임자와 경찰의 무능을 이용하여 5.10선거를 저지하려고 일으킨 폭동이었고
소련ㅡ김일성ㅡ박헌영으로 연결된 계획적인 한반도 공산화 책동에 의한 비극이었다.
그리고 좌익들이 국방경비대를 상대로, 장장 7년 7개월의 장기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중요한 것은
당시 제주도민들 중에 좌익들을 적극 도우며 동조한 이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그처럼 피아를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한 상황이, 무고한 양민이 억울하게 희생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고건과 박원순이 오랜 조사를 마치고 작성한 정부보고서는
미군정과 경찰, 그리고 서청의 만행과 탄압에 저항하여 일어난 순수한 '민중항쟁' 이라는 내용 일색이다.
따라서 그 보고서는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 보고서이지, 대한민국 정부 보고서가 아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