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경비대 그리고 인민유격대와 공비

2011. 9. 28. 오후 9: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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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경비대 그리고 인민유격대와 공비

해방 후 미군당국은 치안질서 확립을 위해 군정청 산하에 국방사령부를 설치하고 그 예하에 국경(국방경비대)을 발족했다. 국경은 1946년 1월15일 태릉 육사 자리에 창설한 제1연대를 효시로 하여 동년 12월31일까지 9개 연대를 창설했다. 대전, 이리, 광주, 부산, 대구, 춘천, 제주에 각 1개 연대를 창설한 것이다. 제주도 9연대는 1946년 11월6일 제주 서남해 항구인 모슬포에서 창설되었다.

그런데 제주도가 문제인 것은 처음에는 군사작전이 경찰과 서북청년단에 의해 수행되었는 데 항상 제주도 경찰들과 반목했다. 9연대 대부분이 제주도 주민들이고 공비들이 많이 침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9연대장 김익렬 대령과 대대장 오일균 소령, 중대장 문상길 중위 등 주요 간부들이 무장인민유격대(4.3폭동 주체) 사령관인 김달삼과 내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작전계획이 수립과 동시에 다 새나갔고 김익렬 대령의 후임 연대장인 박진경 대령이 중대장 문상길 중위에게 총으로 살해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미군정청은 이 같은 심각한 상황을 고려하여 육지의 부대들을 제주도에 투입하면서 '선 선무활동 후 토벌' 작전을 지시했다. 집과 식량과 의료를 지원하며 따뜻하게 대해 주어 그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한 것이다. 마치 주월한국군이 월남민들에게 대민봉사를 제1의 작전으로 수행했듯이 한 것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군이 주민들을 무조건 학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경 즉, 국방경비대가 공비소탕작전을 한 것은 제주도 4.3폭동으로 이어진 빨갱이들의 무장폭동을 토벌한 것이 처음이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국방경비대가 국군으로 정식 발족하자 이때 북한 김일성은 수천 명의 인민유격대를 남파했으며 그리고 남파돼 있던 간첩들과 자생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지방공비들이 창궐했다.

그 당시 국군의 주 임무는 이 인민유격대와 무장공비들을 소탕하는 일이었다. 소탕작전은 주로 지리산, 덕유산, 오대산, 태백산, 보현산 일대의 산간벽지 지역에서 있었고 제주도 지역에서도 수행되었으며 6.25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국군은 6.25 직전까지 인민유격대와 공비들을 대부분 소탕했지만 그들과 싸우느라 6.25 남침을 막을 준비를 미쳐 하지 못했다. 물론 이 같은 인민유격대와 공비들의 준동은 북한과 소련의 치밀한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인민유격대와 공비들은 대한민국의 철천지 원수들이 분명한데도 오늘날 그들의 자식들과 그를 두둔하며 옹호하는 무리들이 민주화 열풍을 타고 자신들이 공산주의자라 말하지 않고 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라고 하지도 못하면서 민주항쟁이니 뭐니 애매한 말을 떠들며 우리 사회를 친북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그 당시 국방경비대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양민들을 억울하게 인민유격대와 공비로 몰아 무참하게 학살했다며 대통령이 제주도에 내려가 머리 숙이고 사과하면서 두둑한 보상금까지 주었다.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을 위로한다며 당시 폭도들의 훈련장이던 장소 12만평에 4.3평화공원이라는 묘역을 만들어 성역화하고 매년 정부 주도로 추도회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묘역에 유격대장 김달삼과 내통하며 모든 작전계획을 누설시켜 수많은 젊은 토벌대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죽게 만든 푸락치들과 그들의 역적짓을 묵인하며 사실상 동조한 제주9 연대장 김익렬 대령이 늙어 죽었음에도 그 묘역에 묻혀 있고 매년 많은 국민들이 참배하고 있다 하니 도대체 이 처럼 기 막힌 일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는가?

남로당의 지령에 의하여 제주도당책임자 안세훈과 군사부장 김달삼 등이 일으킨 제주4.3무장폭동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10년을 거치며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한 민주항쟁 또는 민중봉기로 왜곡 변질되었으며 그 같은 후안무치한 역사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할 이명박 정권은 오늘도 그들 눈치 보느라 정신 없고 오히려 그들과 한 패인지 모를 정도이니 도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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