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반공을 버려야 한다' 는 안병직씨 주장은 틀렸다!

2011. 2. 15. 오후 10: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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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갑제 닷컴 : 조갑제]

 한국은 반공주의만으로 자유민주주의만으로도 안 된다. '반공자유민주주의'라야 자유와 번영을 지킬 수 있다. 반공을 버린 보수는 시체로 남을 것이다.                                                                                        

  지난 8월 문화일보는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시대정신)를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는데 제목이“보수는 반공을 진보는 종북을 버려야 한다.”였다.

  [―한국의 보수주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에는 1960, 1970년대만 해도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보수주의는 없었습니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동양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비합리적이고 유교적인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었죠. 유교라는 것 자체가 지배계층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던 도구니까. 보수주의는 그렇게 변질된 채 내려왔죠.”

  안 씨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가 탄생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일이며, 그 뒤로도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극히 최근에 와서야 보수주의의 사회적 책임이라든가 하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용으로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한국의 헌법적 이념으로 정착되기까지는 기복이 많았지만 뚜렷한 역사적 흐름이 있었다.

  서구적 가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개화운동, 인권과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알린 기독교의 확산, 자주와 독립을 지향한 항일독립운동, 이승만이 주도한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한 헌법제정과 건국, 자유민주주의가 기능하도록 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개혁(농지개혁, 교육확충 등), 공산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지켜낸 6.25 전쟁, 자유와 번영을 지키는 울타리로서 한미동맹 건설.

그리고 박정희 영도하의 산업화와 한국적 민주주의의 실험, 학생과 지식인 중심의 민주화 운동이 중산층으로 확산되는 과정, 1980년대 전두환의 개방정책, 6월 사태와 6.29 선언, 직선제 개헌에 의한 노태우 정부의 출범, 서울올림픽의 성공과 한국사회의 선진화, 10년 연속의 좌파정권 등장과 보수세력의 반격, 그리고 이명박 중도정권의 등장.

100년이 넘는 모색과 실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있는 과정이고 한국의 보수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는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낸 생산과 건설에 성공한 정치이념인 것이다.

  안 씨는 한국 보수주의가 갖는 이런 역사성을 무시하고 ‘한국에는 1960, 1970년대만 해도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보수주의는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이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건설되는 과정에 대한 몰이해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대표격인 이승만 대통령은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아닌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이 정도로 기능하도록 물질적, 제도적인 바탕을 만든 박정희도 안 씨 눈에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인가?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없었는데 어떻게 이 정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는가?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가 탄생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일이다’고 했는데 그러나 이들이 1960, 70년대의 한국을 건설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란 이야기가 된다.

  안 씨는 반공주의를 버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자를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1950년, 60년대에 그런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들’이 한국을 통치했더라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는 중산층, 제도, 경제력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미국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려고 했다면 한국은 진작에 공산화되었거나 필리핀이나 파키스탄처럼 되었다고 본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위대성은 민주주의의 이상뿐 아니라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그 두 대통령은 국가를 지키는 것이 온전한 자유민주주의를 실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박정희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한국에 그대로 옮겨 심으면 나무도 죽고 밭도 버린다”고 확신했다. 장면 정부의 실패가 그 좋은 본보기 사례였다.

  이승만은 29세 때 벌써 "자유를 바탕으로 나라를 세우면 부국강병한다"고 갈파했다. 그는 한국인으로 가장 먼저 공산주의를 비판했고 한국인으로서 가장 확실하게 자유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통찰했던 위인이다. 이 대통령은 무리가 있더라도 민주주의 하는 방식을 국민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6.25 전시임에도 언론검열을 하지 않았고 국회를 해산하지 않았으며 최대 규모의 선거를 실시했다. 전시하에 통화개혁을 할 때도 개인 예금 동결에 반대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의 불가피성을 인정했으나 “민주주의는 하느님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한국의 현실에 맞게 변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경험이 10년 남짓한 나라에서 수백 년간 성숙된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야당세력을 ‘가식적 민주주의’ ‘사대적 민주주의’라고 비판했으며 자신의 주체적인 모색을 '민족적 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역사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한국 민주주의의 2대 건설자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야당과 학생 및 지식인들이 외친 민주주의는 두 대통령이 독재화의 길로 가는 것을 견제한 공은 있으나 그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한 이들아지 실천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미국도 흑인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965년 이후다. 그러나 한국은 건국 당시부터 모든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었다. 정변이 몇 차례 있었지만 있어야 할 선거가 중단된 적도 없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의 3대 조건인 선거의 자유, 언론자유, 사유재산권에 대한 본질적인 제한이 있었던 기간도 매우 짧았다. 그처럼 한국의 보수주의는 1948년 이후 한번도 중단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다. 서구의 선진 민주주의를 평가기준으로 하면 지금도 한국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없다. 그러나 한국식 기준으로 평가하면(이것이 현실적이다)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 즉 현실과 사실을 기초로 하여 최선의 길을 모색했던(실사구시:實事求是) 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과 자유가 가능했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동양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비합리적이고 유교적인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었죠’라는 안 씨의 말도 사실과 크게 다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서구적인 이념에 기초한 것이다. 이승만은 동양적 교양을 바탕으로 서구식 민주주의를 소화한 대통령이고 박정희는 국가주의적인 성향에다 미국식 조직경영술을 더하여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했던 대통령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낡은 동양적 전통과 주자학적인 전근대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이념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이승만과 박정희였으며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한국의 보수세력(자유민주주의 세력)이었다. 나쁜 동양적 전통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것은 김정일 정권인 것이다.

  안 씨는 또 이렇게 말했다.
  “6·25전쟁 때문에 한국의 보수주의가 색깔론으로 뒤덮이게 됐습니다. 한국의 보수는 대부분 반공주의를 앞세우는 게 문제예요. 반공주의가 보수주의의 전부가 아닙니다. 북한과 내통하고 협력하는 종북주의를 제외한 다양한 사상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유주의 속에 모든 사상을 다 포용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사상의 자유가 없으면 한국 사회는 선진화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길입니다.”

  한국이 사상의 자유가 없는 나라이고 그 책임이 반공적인 보수주의자에 있다고 보는 안 씨의 생각은 틀렸다. 반공이 자유를 무리하게 제한했던 시절은 옛날에 갔다. 그는 오래전에 사라진 반공주의자들을 마치 지금도 활동중인 것처럼 말하고 또 그들 때문에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처럼 비판하고 있다.

그는 보수주의가 가진 반공성을 비판하면서도 또 다른 측면에선 반공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데 ‘북한과 내통하고 협력하는 종북주의를 제외한 다양한 사상을 존중해야 합니다’라는 안 씨의 말은 맞다. 종북주의를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자는 것이 반공이며 안 씨도 그런 면에서는 반공적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거의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지금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버려야 할 반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를 완벽하게(실질적인 면에선 미국과 유럽보다 더 많이) 보장하고 있는 한국에서 반공을 버리라는 말은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뜻 아닌가.

 한국의 반공은 사상의 자유는 인정하되 그 사상이 행동으로 나타나 공동체를 위협할 때 제재하는 정도이다. 이 정도의 반공적 자세도 버리라는 것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적 앞에 무방비 상태로 드러내라는 말과 같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이란 방패와 울타리가 없으면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을 허용하여 체제가 무너져 죽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반공은 생과 사의 문제'인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한국의 국가이념은 반공자유민주주의이다. 반공을 하더라도 자유민주적으로 해야 하며(즉 법치주의에 의하여), 자유민주주의를 하되 공산주의를 배제하여야 한다.

  안 씨는 “보수는 반공을 버리고 진보는 종북성을 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야말로 균형감각이 없는 극히 위험한 양비론이다. 안 씨가 말한 진보는 진정한 진보가 아닌 친북세력이 중심인 좌익세력이며 이들이 종북성을 버려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그들은 결코 버리지 않게 돼 있고 그래서 보수는 반공을 버리면 안 된다.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이며 반역사적인 자칭 진보세력과 대한민국 정통 세력인 보수세력을 동격으로 놓고 양비론을 펴는 것은 형사와 살인범을 동등하게 놓고 충고하는 것과 같은 불균형인 것이다.

  안 씨는 "사회운동을 해도 대한민국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옳다. 그런데 보수주의자들이 반공적 자세를 버리는 것은 대한민국의 토대를 허무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반공은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1. 민족반역세력에 대한 반대
  2.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반대
  3. 反시장주의 세력에 대한 반대
  4. 反민주세력에 대한 반대
  5. 反법치 세력에 대한 반대
  6. 惡에 대한 반대

  자유와 민주를 지켜주는 반공태세를 버리면 한국의 어린 자유민주주의는 적 앞에서 무장해제 된다. 한국은 통일 후에도 반공태세를 버리면 안 된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공산당의 불법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라. 서독의 자유민주세력이 반공을 포기했었다면 공산세력의 내부 분열 공작에 걸려 동독을 흡수통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브란트 수상이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공산주의자들과 나치주의자들의 공무원 임용을 금지시킨 것은 '전투적 자유민주주의'라야 공산주의에 이길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온 정책이었다. 서독은 우리처럼 동독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도 체제를 수호하는 제도에 있어 한국보다 훨씬 더 엄격했던 것이다.

  공산주의는 또 악의 세력이다. 그 악의 세력이 자유민주체제를 죽이려 하는데도 반대하면 안 된다고 하는 데 그럼 죽으라는 이야기 아닌가? 한국에서 반공과 자유는 같이 가야 서로가 산다. 반공을 버리면 자유도 잃는다. 악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악의 편에 서게 된다. 그래서 반공주의만으로 자유민주주의만으로도 안 된다. 반공자유민주주의라야 자유와 번영을 지킬 수 있다. 반공을 버린 보수는 시체로 남을 것이다.

 [ 2010-09-11, 2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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