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시의 만류 묵살하고 시리아 원자로 폭격
2007년 여름 이스라엘 수상 오메르트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했다. 그는 시리아가 북한의 도움을 받아 짓고 있는 원자로를 미군이 폭격해달라고 요청했다. 부시는 안보관계 참모들에게 검토를 시켰다. 답은 부정적이었다. 특공대를 보내 부수어버리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위험이 크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2007년 여름 이스라엘 수상 오메르트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했다. 그는 시리아가 북한의 도움을 받아 짓고 있는 원자로를 미군이 폭격해달라고 요청했다. 부시는 안보관계 참모들에게 검토를 시켰다. 답은 부정적이었다. 특공대를 보내 부수어버리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위험이 크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국 CIA 부장 헤이든은 문제의 시설 안에 북한의 도움으로 만들어지는 원자로가 있을 가능성은 높지만 핵무기 제조시설이 보이지 않아 시리아의 핵무장 의도에 관한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고 보고했다.
부시는 오메르트 총리에게 "우리 정보기관이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시설이란 점을 확인하지 않는 한 다른 주권국가를 공격할 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부시 회고록에 의하면 이때 오메르트는 "이 건은 우리나라의 신경을 매우 심각하게 자극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시리아의 핵개발 계획은 우리에겐 생존 차원의 문제이다"고 덧붙이면서 "귀하의 전략은 나에겐 매우 실망스럽다"("Your strategy is very disturbing to me.")"고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부시는 통화를 끝낸 뒤 옆에 있던 보좌관에게 "그래서 이 사람이 좋단 말야. 그는 배짱이 있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공군기는 2007년 9월 시리아의 원자로 시설을 폭격하여 몽땅 부숴버렸다. 때린 쪽은 물론이고 얻어맞은 시리아도 침묵했다. 부시는 회고록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의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부시는 또 얻어맞은 시리아가 침묵했고 폭격 받은 시설을 서둘러 위장한 것으로 봐서 '핵무기용 원자로를 짓고 있었음이 확실해졌다'면서 CIA의 조심스런 평가에 대해 '정보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란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평했다.
국가생존에 관련된 문제는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해결해야지 아무리 우방국이라도 외국에 매달리면 안 된다는 것이 이스라엘 지도부의 확고한 철학이다. 부시는 이 폭격 작전의 성공을 널리 알리는 게 어떠냐고 이스라엘 총리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면 시리아의 지도자 아사드를 아려운 코너로 몰 것이라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2, 믿을 것은 우리뿐이다.
이스라엘은 2009년 1월 하마스 조직을 섬멸하기 위해 그들의 거점인 가자 지역을 침공했다. 그들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하마스 섬멸 작전은 국제여론에서 많은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유엔 안보리가 즉시 휴전을 결의한 데 대해 오메르트 당시 총리는
이스라엘은 2009년 1월 하마스 조직을 섬멸하기 위해 그들의 거점인 가자 지역을 침공했다. 그들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하마스 섬멸 작전은 국제여론에서 많은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유엔 안보리가 즉시 휴전을 결의한 데 대해 오메르트 당시 총리는
"우리는 이를 무시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국가는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문제에 대하여 외부기관이 결정권을 가지도록 동의한 적이 없다. 이스라엘 국방군은 국민들을 지키기 위한 작전을 계속할 것이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식자들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하여 우리가 응징할 경우 유엔헌장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놓고 말씨름을 벌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가안보를 모든 정책의 최상위에 둔다. 안보문제에 대해선 "유엔도 미국도 이래라 저래라 해선 안된다. 국가생존 문제는 우리가 결정한다"는 자세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다수 아랍인들에 의해 포위된 가운데 있으면서 한 번도 외국군대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지킨 적이 없다. 미군은 물론이고 어떤 외국군대의 주둔을 허용한 적도 없다.
외국군대가 주둔하여 안보를 도와주면 국민들의 정신상태가 해이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회도 자주 격돌하지만 정치의 주제는 항상 국가 생존이다. 거창한 주제를 놓고 벌이는 정치투쟁은 나름대로의 미학이 있으며 그에 비하면 한국처럼 안보를 무시하고 사소한 데 목숨거는 정치는 추하기만 하다.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전에 대해 국제여론은 몹씨 비판적이었지만 이스라엘 국내에선 지지여론이 90%였다. 가자 전투에서 1,202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고 5000명 이상이 부상했으며 이스라엘 군인은 10명이 전사하고 2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발표되었다.
2010년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로 구호품(이스라엘은 위해물품이 있다고 주장)을 싣고 가던 터키 배를 공해상에서 정선시키고 반항하는 운동가 9명을 사살했다. 국제사회에서 비난 여론이 높았으나 네탄야후 수상은 직후 연설에서 한 마디도 사과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이스라엘 군의 조치를 옹호하면서 배가 또 들어오면 똑같이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부터 구호선은 이스라엘 군대의 정선, 검문, 검색에 순응하고 있다.
이스라엘군과 정보기관의 특공작전은 그 발상의 기발함과 행동의 대담성에 있어 ‘다이하드’와 같은 영화를 연상시킨다. 특공작전은 이스라엘식 생존방식을 보여준다. 학살과 핍박의 희생양으로 오랫동안 경멸받던 나약한 유태인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신생국가 이스라엘의 결의에 찬 행동이고 그러한 과거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며 건너온 다리를 불을 질러 없애 버리는 모진 자기다짐인 것이다.
그들은 국제법을 어기고 국제여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특공작전도 사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만 국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600만 유태인이 학살될 때 당신네들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쏘아붙이면서 “믿을 사람은 우리뿐”이라고 서로를 일깨우는 사람들이다.
3, 중국을 협박하여 굴복시킨 이스라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0년 6월 핵무기 개발 의혹을 사고 있는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2표 반대 2표로 통과시켰다. 브라질과 터키가 반대표를 던졌으며 레바논은 기권했다.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당초 추가 제재에 부정적이었으나 이스라엘이 강하게 중국을 압박해 결의안에 동조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2월 중국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중국 측에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지를 담은 비밀문서를 보여주고 국제사회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하겠다고 통고하였다고 한다. 그럴 경우 원유의 11%를 이란에 의존하는 중국 경제가 어떤 타격을 받게 될지도 자세히 설명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스라엘의 전력으로 보아 이런 압박이 공갈이 아님을 잘 알았을 것이다.
한국이 중국에 대표단을 보내 "만약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한 북한을 중국이 계속 감싼다면 우리는 북한의 잠수함 기지와 해안포대를 폭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었을 때 광주 아시안 게임이 제대로 치러지겠는가"라고 압박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4,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 "지도자는 앞에 서는 사람"
작년 여름 방한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중앙일보 김영희 기자로부터 "대통령께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스라엘은 핵보유국입니다. 핵을 가진 이스라엘이 남의 나라에 대해 핵을 갖지 말라고 요구할 도덕적 권위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스라엘의 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스라엘은 누구를 먼저 공격한 적이 없어요. 위협을 받는 건 우리입니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의혹이 있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리고 이런 의혹 자체가 억지력이 될 수 있다면 그걸 왜 마다하겠습니까. 핵을 이용하는 것보다 핵보유 의혹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지요. 예전에 아랍연맹 사무총장이 내게 이스라엘 핵시설이 있다고 의심되는 지역을 좀 가보자고 해요. 내가 말했지요. ‘내가 미쳤습니까? 가보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의혹이 해소되고 나는 목이 잘릴 거요.’ 의혹으로 충분해요.(웃음)”
87세의 페레스 대통령은 세계 국가원수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그는 리더십의 원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 위에 서지 않고 낮은 자세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 위가 아니라 앞에 있는 것뿐입니다. 리더가 되려면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에는 '돌격 앞으로!"가 없다고 한다. 장교는 항상 "나를 따르라!"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에 의한 수에즈 운하 국유화 사건 때 프랑스·영국과 합세하여 대 이집트 작전에 가담한 것을 기회로 삼아 프랑스와 비밀핵개발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프랑스 기술의 도움으로 네게브 사막에 재처리시설과 원자로 등 핵무기 개발 단지를 만들었다. 당시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인 벤구리온 총리는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나 골다 메이어(뒤에 총리 역임) 등 반대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국방차관으로서 비밀 핵개발을 지휘했던 페레스는 회고록에서 그 과정을 자세히 썼다. ‘핵무장 선택권’이란 의미지만 사실상 핵개발을 뜻하는 ‘뉴클리어 옵션’(Nuclear Option)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비밀핵개발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돌파해야 했던 여러 난관들을 설명했다.
그중의 하나. 페레스 당시 국방차관이 1959년 아프리카의 세네갈을 방문하고 있을 때 벤 구리온 총리로부터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라는 연락이 왔다. 비상사태가 발생한 줄 알고 돌아와 보니 벤구리온 총리, 골다 메이어 장관, 정보기관인 모사드 책임자 하렐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총리의 설명은 소련의 첩보위성이 네게브 사막의 핵시설 건설공사 현장을 촬영했고 이 사진을 갖고 그로미코 소련 외무장관이 지금 워싱턴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덜레스 미 국무장관에게 그 사진을 들이대고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 이스라엘에 대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으려 하는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사를 미국으로 보내 간청을 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페레스는 단호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우리가 미리 이실직고하면 약점을 잡히게 된다. 그냥 가만히 있자. 도대체 소련 첩보위성이 찍은 사진에 뭐가 나오겠나. 땅을 판 구멍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딱 잡아떼면 그만이다.”
이런 취지의 설득이 통해서 이스라엘 정부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핵개발을 계속 추진해 지금은 핵강국이 되었다. 이스라엘만이 유독 핵무장에 성공한 것은 벤구리온과 페레스 같은 배짱 있는 정치인의 리더십과 자주국방에 대한 정치권의 전면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한국처럼 미군에 국방을 의존하고 있었다면 핵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5, 라빈, “테러두목 죽었다고 애도하란 말인가”
북괴정권은 남파간첩의 존재를 인정하고 2000년 9월에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을 데리고 가 영웅으로 대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역대 정권들은 북파 공작원의 존재조차 숨겼다. 북한으로 공작원을 들여보내는 것을 무슨 큰 죄를 짓는 일로 생각한 것이다. 공작원을 영웅으로 예우하는 체제와 죄인시하는 체제가 대결하면 승부는 보나마나다.
이스라엘은 북한식이다. 시리아 고위층에 잠입하여 골란고원의 병력 배치상황을 파악하는 등 조국을 도왔다가 붙들려 사형집행된 코헨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스라엘은 테러리스트 암살 작전도 거의 공공연하게 인정한다.
본 기자는 1996년 11월 초 라빈 당시 수상을 인터뷰한 일 있는데 그가 피살되기 하루 전이었다. 그 당시 이런 문답을 남겼다.
<며칠 전 '이슬라믹 지하드'의 지도자가 말타에서 암살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모사드의 관련설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총리께서는 올해 초 지하드를 지칭하여 “우리는 당신들을 추적하여 제거할 것이다. 어떤 국경도 당신들의 보호막이 되지 못할 것이다”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접 국가의 주권도 침범할 각오가 돼 있다는 뜻입니까?>
<1993년 이후 이스라엘과 PLO 사이의 평화 협상이 진전되어 갈수록 지하드와 하마스 조직에 의한 테러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동차 폭탄으로, 수류탄으로, 자살공격법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모든 테러 희생자의 70%가 이스라엘人들입니다. 그들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치적인 방법으로 평화협상에 반대하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해온 방식 그대로 그들에게 대항하고 있습니다. 지하드 두목을 누가 죽였는가는 먼 장래에 역사가 알려 주겠지요. 우리는 그 가증할 테러 조직의 두목이 제거된 데 대해서 애도할 입장은 아닙니다.>
6, 뮌헨 올림픽 테러 관련자 20년간 추적하여 모두 암살
1972년 서독의 뮌헨 올림픽 기간에 선수촌으로 침입한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 이 이스라엘 선수 및 코치 11명을 죽였다. 독일 경찰과 총격전으로 테러단 5명이 사살되고 세 명이 잡혔다. '검은 9월단'은 그 뒤 서독의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납치하여 서독 정부를 위협한 끝에 잡혀 있던 세 명의 동료를 구해냈다.
화가 난 골다 메이어(여성) 이스라엘 총리는 이 테러를 기획하고 가담한 범인들을 암살하는 조직을 만들게 했다. 정보기관 모사드와 이스라엘군이 합동으로 특수조직을 구성했는데 이 팀의 첫 작전은 1973년 4월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침투하여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정보책임자 모하메드 유수프 알 나자르 등 세 명을 죽이는 일이었다.
이 특공작전의 지휘관은 나중에 참모총장, 그리고 수상이 된 에후드 바락(현재 국방장관)이었다. 이 국가공인 암살단은 주로 유럽과 중동을 돌아다니면서 팔레스타인 테러단을 추적하여 죽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실수를 했는데 1973년 6월 노르웨이 릴리함메르에서 한 모로코인을 뮌헨사건 관련자 알리 하산 살라메로 오인하여 암살했다가 요원 다섯 명이 잡힌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끈질긴 외교 교섭 끝에 옥살이하던 요원(여성 2명, 남성 3명)을 2년 뒤 전원 송환받았다.
이스라엘 암살 팀은 살라메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1979년 1월22일 그를 베이루트에서 찾아내 원격조종 폭탄으로 죽였다.
뮌헨 보복작전은 '신의 분노'라는 암호명으로 행했으며 1992년까지 20년 동안 계속되었다. 얼마나 많은 테러관련자들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십 명으로 추정된다.
뮌헨 보복작전은 '신의 분노'라는 암호명으로 행했으며 1992년까지 20년 동안 계속되었다. 얼마나 많은 테러관련자들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십 명으로 추정된다.
만일 한국이 이스라엘 같이 보복했다면 1·21 청와대 습격사건 관련자,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 관련자, 아웅산 폭파사건 관련자, KAL기 폭파사건 관련자들은 다 죽었을 것이다. 거기에 김일성, 김정일이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의지의 핵심은 보복의지이다. 보복의지의 핵심은 애국심과 분노일 것이다.
7, 외국군 주둔하면 국민정신 망가진다.
1996년 기자가 이스라엘 군대를 취재할 때 만난 군사전문기자 지브 쉬프씨를 잊을 수 없다. 그는 당시 텔아비브시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하레츠(HAARETZ)의 국방부장으로 이스라엘에서 제일 가는 안보분야의 전문기자였다. 이스라엘 상류층에서 “라빈 수상도 쉬프 기자에게 보고한다더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였다.
쉬프는 “자주국방을 위해 중요한 것은 방위산업의 기초이다”고 했다. 그는 “방위산업의 독자적 운용이 있어야 무기수입이 금지되는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기 때문에 그 국가는 외교적으로 여유를 갖게 된다”고 충고했다.
그에 본 기자가 물었다.
“유태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군사적 천재성은 발견되지 않는데 어떻게 이처럼 독창적인 군사조직과 전술을 개발하여 나라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습니까.”
“유태인은 군사 면에선 아주 형편없는 전통밖에 가지고 있지를 못했지요. 우리는 군대를 조직할 때(영국 식민지 시대) 다른 나라와 아주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비밀전투요원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전통 속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탄생했으므로 우리는 IDF(Israel Defense Force)를 국민군(People's Army)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건국 주역들은 농업을 일으키는 데 주력했고 그 뒤에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엔 무역이나 산업처럼 인력수요에 대한 다른 경쟁부문이 없어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군대로 몰려들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유태인들 중에서도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이 기초를 놓은 조직이란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유태인들 중에서도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이 기초를 놓은 조직이란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또 하나 이스라엘 군대를 강군으로 만든 요인은 싸우지 않으면 국가와 국민의 생존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생존이냐 멸망이냐, 여기서 살 것인가 다시 쫓겨날 것인가, 예속이냐 독립이냐의 상황에서 우리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노 아더 초이스’(No other choice) 이 말을 기자는 이스라엘 취재 중에 수십 번은 더 들어야 했다. 용감하게 싸우는 수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벼랑에 선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강박관념이 맹렬한 투지로 전환된 곳에 이스라엘 군대가 있다는 얘기다. 쉬프 기자는 잊을 수 없는 충고를 했다.
“우리는 수십 배의 국력과 병력을 가진 아랍의 적들에 의해 포위돼 있지만 우리의 영토에 외국군이 장기 주둔한다는 것은 국가의 단합성과 정신무장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았습니다.”
가끔 ‘웰빙 체질’ 와 ‘살찐 돼지’로 표현되는 한국의 국가 지도부와 ‘야윈 늑대’ 같은 북괴정권의 지도부를 비교하면 북은 이스라엘, 남은 아랍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가령 한국이 북 처지가 되었다면 어떻게 행동하였을까?
1. 동서 냉전에서 국제공산주의 세력이 승리하여 미국과 일본이 적화되고 한미동맹도 사라진다.
2. 북괴정권은 미국, 일본과 수교한다. 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수교하지 못해 외교적으로 고립된다.
3.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고립된 한국은 미국, 일본 시장을 잃고 성장동력을 상실, 실업률이늘고 무역적자가 계속된다.
4. 북괴는 중국, 소련, 일본, 미국과 교역을 하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계속한다.
5. 2010년 현재 북괴의 1인당 주민소득은 2만 달러를 넘고 한국은 300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6. 드디어 한국에서 아사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을 탈출, 중국을 거쳐 북한지역으로 넘어가는 인원이 한 해에 5000명 정도 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국의 대통령, 여당, 군대가 지금과 같다면 과연 북괴의 공세에 며칠을 버틸 것인가? 전쟁도 못해보고 자진하다시피 북한에 흡수당하는 건 아닐까?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김정일의 북괴정권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이스라엘처럼 외국군의 도움 없이 자주국방을 하고 있고 한국은 유리한 조건에서도 미군의 도움으로 국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북괴정권의 투지가 한국 지도부의 그것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역사는 잘 사는 나라가 못 사는 유목민족에게 당한 사례를 수도 없이 기록해놓았다. 북방유목민족들이 만든 거란, 금, 몽골에 차례로 당한 송나라는 부자나라였다. 여진족에 당한 명과 징기즈칸 군대에 당한 이란의 문명도 찬란했다. 신라에게 당한 백제도 그러했다.
한국의 풍요가 가난한 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한국의 군대와 정치인들은 좋은 권총을 갖고도 몽둥이 뿐인 악당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비겁자들인 것이다. 부를 무기와 용기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빼앗기게 돼 있다.
나쁜 세력은 자동적으로 망하고 착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이긴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착한 사람과 똑똑한 사람이 모자라서 망한 나라는 없었다. 악당에게 몽둥이를 드는 용감한 사람이 없어 망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