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리는 비 [29]

2012. 2. 22. 오후 7:16:50

글자

29.

부대에 포대장은 없는 존재와도 같았다. 단체 행동도 해 본 적이 없었고, 단 한번도 병사들을 집합시킨 일도
없었다. 모두가 그들 마음대로 했다. 마음대로 했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포대장이 있었다. 사단에서
소령이 지휘검열을 나왔다. 그가 왔을 때도 9개 분대원들은 제 각기 할 일을 했다.
 

어떤 분대는 영내 25m 사격장에서 사격을 했고, 어떤 분대는 포를 가지고 훈련했으며, 어떤 분대는 인접한
분대와 배구를 했고, 어떤 분대는 내무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각 분대 단위로 작성된 시간표가
포대장에게 제출돼 있기 때문에 포대장은 각 분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겸열관의 눈에는 포대가 오합지졸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포대가 군대가 아니라 완전 개판"
 

나의 직속상관인 대대장에게 뀌띰했다. 그러나 당시 이신오 대대장은 싱긋이 웃으며 2포대장은 절대로 그런
포대장이 아니고, 2포대는 주월사령부에까지 잘 알려져 있는 모범부대라며 포대의 생활개념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드셌던 병사들은 어느새 양같이 순해졌고 행동이 민첩해졌으며 포사격과 소총사격이 가히 경지에 이르렀다.
그들은 일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스스로 찾아서 했다. 어느 날 대대본부에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십여 대의
차량들이 분해되어 있었다. 적재함을 분리하여 해묵은 녹을 긁어낸 후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들은 포를 분해하여 녹을 제거하겠다고 졸랐다. 그들의 등쌀에 못이겨 나는 사단에 부탁해서 병기
전문 하사관을 지원받아 포의 정밀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도하게 했다. 그의 감독과 지도하에 포대원들은 단
하루 만에 모든 포를 새포로 만들었다.
 

수류탄, 탄창, 소총탄약도 반질반질하게 기름으로 닦았다. 이 모두는 내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 어느새 병사
들이 생활습관이 돼버린 착안과 부지런함이 스스로 찾아낸 일들이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소총 사격에 대한 일이다. 한국에서나 월남에서나 소총 사격장은 부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안전지대에 설치돼 있다. 병사들이 사격을 하려면 거창하게 날을 잡아 부대단위로 행군해 가야
했다. 1개 분대가 사격을 하는 동안 나머지는 소위 PRI 라고 하는 사격자세 연습을 했다.
 

땡볕에서 사격을 할 때는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사격장에는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군기잡는 기합
얼차려가 당연한 과정인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사격하러 나간다는 말만 들어도 주눅이 들고
상을 찡그렸다. 사격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각종 기합이 주어졌다.
 

사격점수를 정신점수로 착각하는 것이다. 정신이 똑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시격점수가 좋지 않았다는 신념하에
기합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자세만 강조하는 식으로는 사격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또 어떤 지휘관들은
 

"사격은 무조건 많이 쏴 봐야 해. 많이 쏘는데는 아무도 못당한다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그들과 달랐다. 나는 불도져를 빌려다 영내 한 쪽 끝에 사람 키만큼 깊은 도랑을 파서 25m
사격장을 만들었다. 사거리가 겨우 25m인 것이다. 파낸 흙을 표적(Target) 지점에 올려 쌓은 후, 병사들이
엎드리는 사격선에는 모래주머니를 깔고 지붕을 만들어 시원하게 해주었다.
 

이 사격장을 만드는 동안 바로 이웃에 인접해 있는 보병대대 참모들과 나의 직속 상급대대 참모들이 제발 그만
두라고 성화를 했다.
 

"감히 영내에 어떻게 사격장을 만들 생각을 다 하는가?"

"뭘 몰라서 저러는 것이다."

"사고가 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이 사격장은 따분한 병영생활에 상당한 활력소가 됐다. 9개 분대가 매일 한 시간씩 사격을 했다. 무조건
많이 쏴봐야 한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다. 잘 쏘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사격을 잘 하는
요령에 대해 토의를 했다.
 

이 경우 병사들에게 무조건 생각해 보라고 하면 착상을 하지 못한다. 마치 거북등처럼 딱딱해 보이는 주제에
실마리를 풀어줘야 토의가 진행될 수 있다.
 

"사격을 잘 하려면 먼저 무엇부터 따져봐야 할까?"

"자세입니다."

"어떤 자세?"

"자세가 정확하고 숨을 멈추고 방아쇠 당실 때 조심하는 거, 그거 있지 않습니까?"

"그게 뭔데?"

"왜 있지 않습니까? 애인 가슴 만지듯 부드럽게 당기라는 것 말입니다."

"야, 그건 방아쇠를 당길 때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고, 방아쇠 당기기 전에 정확히 조준을 해야 하잖아?"

"그렇습니다. 조준부터 잘 해야지요."

"어떻게 하면 잘 하는 건데?"
 

여기서부터 막힌다.
 

"야, 조준이라는 게 뭐냐? 조준구멍을 통해 목표물을 조준대(가늠대) 위에 정확히 올려 놓는 거, 그거 아냐?"

"맞습니다. 바로 그걸 잘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게 잘 하는 건데?"
 

여기서 또 막힌다.
 

"조준구멍(가늠구멍)을 눈에 바짝 갖다 대면 구멍이 크게 보이냐? 작게 보이냐?"

"크게 보입니다."

"멀리 갖다 대면?"

"작아 보입니다."

"자, 그럼 구멍을 크게 만들어 조준해야 정확하겠냐. 작게 만들어 조준하는 게 정확하겠냐?"

"구멍을 크게 해야 조준이 정확합니다."
 

그제야 진수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 총과 몸이 30도 되게 하라는 식은 잊어버려. 가늠구멍을 눈동자에 더 가까이 갖다 댈 수 있도록 스스로
자세를 만들어 봐. 얼굴에 광대뼈 나와 있는 사람들은 고개 꽤나 돌려야 할 걸."
 

병사들이 각기 자기에게 가장 알맞은 폼을 개발하느라 열심이었다. 자신있는 병사들부터 두 세 사람씩 가서
쏘았다. 하루에 9발만 주었다. 표적지에 각자 이름을 쓰고 9발씩 쏜 후에 그 표적지를 분대별로 모아서 내
책상 위에 갖다 놓도록 했다.
 

명중도가 좋지 않은 표적지를 따로 뽑아 놓고서 표적지 주인들을 불렀다. 이들 중에는 제법 똘똘한 병사들이
많았는데도 점수가 시원치 않았다.
 

"너 왜 이렇게 막 쏘았냐? 눈이 안 좋으냐?"

"아닙니다. 눈도 좋고 신중하게 쏘았습니다."

"그래?.... 그럼, 성적이 좋았던 총을 가져와 봐."
 

명중률이 좋았던 총을 이들에게 주고 쏘라고 했더니 9발 모두 한 구멍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병사에게 결함이
있었던 게 아니라 소총에 결함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찾아낸 불량 소총이 18%나 됐다. 100점을 맞혔다
해도 불량 소총 때문에 82점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불량 소총을 모아서 바꾸어 달라고 대대로 보냈다. 그 후 사단 병기부대장은 주월한국군 전체에서
불량 소총을 찾아내 교체한 부대는 우리 부대 하나 뿐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런 사격 생활을 한지 10개월 만에
주월한국군사령부에서 전투력 점검단이 내려왔다.
 

이웃에 있는 대부분의 보병 중대들은 소총사격 점수가 60점이하를 받았다. 이런 부대들은 처벌을 받을거라며
모두가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속한 포병대대 본부 기지에 있는 제1포대 역시 60점 이하를 받아 대대장
입장이 실로 난처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40분에 걸쳐 지프차를 몰고 달려가 주월한국군사령부에서 검열단장으로 내려온 강복구
해병 대령을 졸랐다. 그는 부대 내에 지어진 정자에서 보병 연대장과 맥주를 한잔 하면서 쉬고 있었다. 그런
그를 갑자기 찾아가 졸라댄 것이다. 하도 졸라대니까 연대장도 거들어 주었다.
 

"강 대위가 자기 실력을 꼭 보여드리고 싶어 저토록 조르는데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던 검열단장이 드디어 명령을 내렸다. 그 연대장은 보병 제28연대장이었는데 그는 포병
대위에 불과한 나를 이뻐했다. 긴 작전을 하고 철수했을 때 내가 연대장 이하 연대 지휘부 참모들을 초청하여
포대장실에서 식사를 대접한 일 있었다.
 

나는 사이공 사령부에서 매일 열리는 파티에 익숙해 있던 터라 파티에 대한 안목이나 매너가 야전에만 있던
장교들과 사뭇 달랐고 연대장 이하 연대참모들이 식사내내 나를 칭찬해준 적이 있었다. 이러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적극 도와 준 것이다.
 

검열단장 깅복구 대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검열단으로 나온 영관급 장교들이 나를 쏘아 보았다. 검열단 앞에선
모두 벌벌 떠는데 새파란 대위가 감히 어디라고 겁도 없이 단장을 졸라 자기들을 귀찮게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검열단원들은 육회와 야채, 생선회 등을 차려놓고 냉장고에서 막 꺼낸 시원한 맥주를 즐기려고
한판 벌이려는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더운 날에 그보다 더 설레는 음식은 없었다. 나는 포대를 떠나 연대로 출발하면서 뾰족하게 솟아있는
앞산의 시커먼 봉우리에 대고 105m 6문, 155m 2문의 포를 집중 사격할 수 있게 미리 연습을 해 놓으라고 했다.
검열관들이 내 부대의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약속한 대로 앞산 봉우리에서 포탄들이 작렬했다.
 

그들을 환영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화가 잔뜩 난 소령들은 도착하기가 무섭게 당번병, 취사병, 행정병 등
평소 사격훈련에 열외되기 쉬운 병사들을 포함해 무작위로 36명을 불러 모으더니 서슬 시퍼런 표정으로 손등에
도장을 찍었다. 실거리 사격장은 6중으로 둘러 쌓인 철조망 밖에 있었다.
 

검열관들의 명령에 따라 36명 병사들은 50m에서 350m에 이르기까지 표적지에 1인당 50발씩 사격했다. 그런데
병사들은 내가 봐도 전혀 흔들림없이 민첩하게 쏘았다. 병사들은 탄창 속에 오물이 끼어 실탄을 잘 밀어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탄창 내부를 분해하여 기름칠까지 해 놓았다고 했다.
 

물론 내가 시킨 게 아니라 내가 연대로 출발하자 그들이 스스로 착안하여 기다리는 동안 한 일이었다. 이런 걸
어찌 포대장 혼자 다 알아서 하고 시킬 수 있는 일인가. 36명이 쏜 1,800발 모두가 표적지에 명중했다. 그러나   
매우 기이하게도 칭찬을 해야 할 검열관들이 기분 나쁜 얼굴로 내 얼굴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여보, 포대장, 야마시를 쳐도 좀 그럴 듯하게 치소. 100점이 뭐요, 100점이?"

제가 어떻게 장난을 칠 수 있겠습니까? ... 그러시면 좀 불편하시더라도 검열관들님께서 표적지를 손수 꽂아
주십시오."
 

이번에는 그들이 손수 병사들을 인솔해 나가서 표적지를 설치했다. 그런데도 또 100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말을 했다.
 

"여보, 포대장, 도대체 애들을 얼마나 잡아놨오? 아이들이 움직이는 게 아주 민첩한데 저렇게까지 만들려면
애들을 얼마나 잡았겠오?"
 

그들의 눈에도 확실하게 100점을 맞긴 했지만 그들은 도저히 100점으로 기록해 줄 수 없다고 했다. 100점으로
보고하면 사령관에게 자기들이 이상하게 비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나는 순간 머리를 회전시켜
대대장의 난처한 입장을 살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시면 1포대 점수와 우리 포대 점수를 합친 평균으로 해 주십시오."

"알았오. 의논해 보지요."
 

이렇게 해서 대대장의 고민이 해결됐다. 대대장은 내게 신세를 졌다고 말했지만, 이는 그가 참모들의 온갖
고자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굳게 믿어준 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대대장이 굳게 믿어주자
나에 대한 참모들의 간섭이 줄어들었다.
 

엄격하기 그지 없는 전쟁터의 군생활이지만 그만큼 자유공간이 확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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