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나는 전속부관 자리를 자기발전의 발판으로 활용하기로 작정했다. 장군을 떠났을 때 내 위상을 염두에 두면서
참모들에게 겸손하게 행동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참모들이 장군 결재를 위해 부속실을
들어설 때마다 나는 언제나 활짝 웃으면서 반겼다. 그들은 결재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차도 마셨다.
" 어이, 강 대위, 담배 안 피우나?"
"예, 못 피웁니다."
그들은 나에게 담배를 얻을려고 물은 건데, 담배가 없을 때 그들은 주기도 하고 얻어 피우기를 자주 했다.
"어이, 원호참모, 담배 있어?"
"아니, 나도 마침 없어 얻어 피우려고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본 나는 다음날부터 윈스턴, 말보로, 켄트, 살렘, 럭키스트라이크 등등 여러 종류의 담배를 사다
놓았다. 그리고 이 담배갑들을 동동 걷어 올린 팔소매 틈에 찔러 넣었다. 한 쪽에 3갑씩 6갑을! 거울에 비춰
보니 화려한 색깔로 치장된 듯한 팔뚝이 제법 괜찮아 보였다.
이 모습을 본 참모들은 웃으면서 내게 다가와 자신이 좋아하는 담배를 한 개씩 뽑아 피웠다. 사무실의 고참
병장이 이런 나를 보고 웃더니 그도 자기 일을 찾아서 했다. 차에 대한 참모들의 취향을 일일이 기록했다가
참모들이 오면 자동적으로 그 참모가 좋아하는 차를 대접했다.
참모들이 결재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보였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참모들에게 부지런히 전화를
걸었다. 결재 제목, 소요 시간, 긴급 정도를 물어서 결재 시간을 예약해 주었다. 그리고 참모들에게 도움될
만한 뉴스와 정보도 알려 주었다. 장군과 소원한 관계에 있는 참모들의 장점을 메모했다가 차 속에서 하나씩
장군에게 풀어놓기도 했다.
"참모장님, 부관참모 말입니다. 고전 음악에 참 조예가 깊더군요. 마작도 수준급이라 하고요. 참, 족보 있는
개를 키우고 있는데 이번에 강아지를 몇 마리 낳았다 합니다."
"오, 그래?"
"혹시... 내일 아침 조찬 때 자리가 하나 남는데 부관참모를 추가시킬까요?"
"그래, 그렇게 해봐."
부관참모! 부관병과 장교들은 임관 때부터 소대장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부대배치를 위한 인사명령을 내는
장교들이다. 이른바 사람 장사를 하는 셈이라 부탁 때문에 골치를 앓는 사람들인데 월남에서는 훈장 장사를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무늬만 군인이지 실제로 하는 일이 행정 일이라 행정관이었다.
"내 아들을 좀 좋은 데로 보내 주십시오."
"나 누군데, 내가 말하는 사람을 어디 어디로 보내 주었으면 하는데 어떤가?"
나는 그들에 대해 들은 말들이 부정적이어서 별로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모시는 장군 역시
그랬다. 육군본부에 있을 때 장군은 지인에게서 청탁받은 한 병사를 바로 이 부관참모에게 선처를 부탁한 일
있었다. 그때 사정이 어려우면 이러저러 해서 곤란합니다. 하면 될 것을 이 부관참모는 그냥 무시해 버렸다.
육군본부에서 부관병과 대령이면 웬만한 장군 이상의 끗발이 있었지만,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말
그대로 두 사람이 하필이면 주월한국군사령부에서 직속 상하관계로 만난 것이다. 부관참모인 대령도 마음이
괴롭겠지만 결재를 해줘야 하는 장군 마음도 개운치 않은 입장이었다.
두 사람의 이런 어색한 관계가 전속부관인 나의 주선으로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마작의 고수라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가까워졌음은 물론이다. 이런 나의 사이공 생활은 불과 5개월로 끝났다. 어느 날 갑자기
장군이 나를 불렀다.
"강 대위, 내일 백마부대 포병사령관에게 가봐. 아마 포대장 자리를 줄 꺼다. 나가 봐."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왜 갑자기 장군이 그런 결심을 했고, 그리고 왜 장군의 얼굴이 밝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불쾌하기도 했다. 무언가 서운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장군에게
"저는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하고 물으면 금방이라도 화를 낼 것 같아 그대로 나왔다. 당시 파월된 병사들은 워낙 거센데다 총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포대장 직책은 한국에서 이미 포대장 경력을 쌓은 고참 대위들로 보직됐으며, 통상 나보다 4~7년
선배들이 하고 있었다. 임관 4년생인 임시대위가 나갈 수 있는 자리가 절대 아니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알려고
인사참모인 대령을 찾아갔다.
"참모님, 참모장님께서 갑자기 저에게 백마부대로 가라 하시는데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어, 그거? 우리 몇몇 참모들이 강 대위를 키워주기 위해서 만들어 준 자리야. 여기서 전속부관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백마부대 포병사령관에게 다 연락이 돼 있으니 가서 좋은 경력을 쌓아. 강 대위는 잘 커야 해."
인사참모 설명을 듣고보니 3명의 포병 출신 참모들이 평소 나에게 툭툭 던진 말이 생각났다.
"이 사람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되는데..."
알고보니 내가 없는 동안에, 이 세분들이 장군에게 진언을 했다고 한다.
"강 대위를 그만 쓰시고 놓아주십시오. 백마부대 포대장으로 내 보내시지요."
이 말을 들은 장군은 나를 의심한 듯 했다.
" 강 대위 놈이 참모들을 꼬드겨 나를 떠날려고 한 거 아닌가?"
나는 곧 수송기를 타고 포병 사령부로 날아가 사령관에게 신고를 했다. 그랬더니 9사단 포병사령관이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세 분의 주월사 참모들이 차례로 나에게 전화를 했네. 자네 주월사령부에서 아주 좋은 평판을
얻었더군. 자네의 행동이 갸륵해서 장군에게서 억지로 떼어내 나에게 보내는 것이니 각별히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이 왔었네. 자네, 옛날에 30포병대대에서 근무했지? 그리로 가서 포대장을 맡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