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마리아)자매님의 글을 읽으며 생각나는 글이 있어 같이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기 옯깁니다.
몇년전 제가 어느 성가대 홈피에 올렸던 글입니다.
관상...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멀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얼마나 맛보고 싶은 일인지 해보고 싶은 일인지 모릅니다.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아보신 적이 있으세요?
연서(戀書)를 받으면 몇 번이나 읽을까요.
글쎄요. 대개는 읽고 또 읽어 담아보낸 마음을 다 헤아릴 때까지 읽지요.
선택해서 쓴 단어의 의미,
반복해서 쓴 단어, 혹은 문장의 의미, 생략한 표현까지...
행간(行間)에 있는 의미까지 읽어냅니다.
다 읽고도 가끔 거기에 담긴 마음 속에 잠겨있지요.
애틋한 사랑 속에...연인사이에 편지가 아니라도
부모님께서 보낸 편지,
혹은 자제분의 편지,
혹은 소중한 친구의 편지,
존경하는 분이 보내주신 편지 등
마음을 담아보낸 편지들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처음 접할 때 짜릿하도록 아름다움을 느끼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한편의 詩이기도 하고,
한 폭의 그림이기도,
또 하나의 음악이기도 합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그것에 동화됩니다.
제가 그 안에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대부분 ..
그것을 자꾸 접하게 될 땐 무언가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스치듯 지나간 그 아름다움보다,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을 그 무엇인가를 더 깊이 감상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표면의 아름다움만으로는 그 짜릿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작가에 대해서 알고 싶고,
연주자에 대해서 알고 싶고,
또 그들의 삶에 대해서 알고 싶어집니다.
저 안에 그들의 어떤 마음을 담아내려 했는가 알고 싶어집니다.
이 곡안에 흐름을 이루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
또 어떻게 작가는 그 흐름을 변화시켜 보여주고 있는가..
그러면서 그 안에 진정으로 담겨져 있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모르겠습니다.
미술작품을 더 깊이 감상하려면, 아마 그 그림을 내가 직접 그려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아마 그 곡을 연주해 보는 것이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차를 타고만 지나치던 길을, 차를 놓고 걸어가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건물들이 있었음을 보게 되는 것처럼..
내가 직접 그려보고, 연주해볼 때 미처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의 곡을 선곡하기위해 정말 많은 곡들을 접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필(feel)이 꽂히는 곡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곤 그 곡을 수십번 아니 그 이상 듣고 또 부르고 연주해 봅니다.
그러다가 그 곡을 우리 성가대에 가지고 와서 연습을 하다보면,
점점 곡에 혼이 불어넣어지고 완성되어가면서 처음의 감동보다 더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
성가를 지도하면서 ..
<음악적 완성도>와 <기도의 마음>에 대해 묵상하고 고민합니다.
<하느님은 음악이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성가이든 그 음악이 완성에 가까워지면,
굳이 하느님을 마음에 담으려 애쓰지 않아도, 그 자체가 바로 하느님께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
아직 풀지 못한 저의 과제입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다리며 기다림의 자세로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뵙기를,
하느님과 일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온전히 자신을 비우고 의탁하는 것.
이 영역은 온전히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관상에 대해 설명한 글입니다.
문득문득 우리 성가대와 성가를 하면서 빠져보는 그 느낌과 많이 닮았다 생각하곤 합니다.
그 아름다움에 빠져 헤어나오기 싫은 그런 때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