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묵상

2006. 4. 2. 오후 1:32:38

글자
꾸르실료-사순 제5주간 묵상
 
      >>>제일 좋은 나의 친구(5주일 묵상)<<< 말씀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요한 11,38) 묵상 예수님은 참된 하느님이시며, 참된 인간이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느 사람이나 다름없이 그분에게도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복음사가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셨는지에 대해 매우 자세한 내용을 전하지 않지만, 그분은 물론 친구들과 꽤 많이 즐거운 시간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 중 몇 몇 친구들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그 중 세 남매의 이름을 들면, 라자로, 마르타, 그리고 마리아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친구 라자로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우시는 모습을 볼 때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이시므로 우리가 그분과 참된 우정을 나눌 때 우리는 점점 더 하느님에게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시며, 우리 삶의 매 순간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해 현존하십니다. 고통의 순간에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기도 저의 참된 친구이신 예수님,
      이기적이고 교만한 저의 마음을 바꾸어 주시고, 저로 하여금 우리 가운데 계시는
      당신의 현존을 증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멘. 실천 나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에 기초를 두고, 참되고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이 있는가?

       

      >>>저도 또한 죄인입니다(월요일 묵상)<<< 말씀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요한 8,9) 묵상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여인에게만 벌을 주려 했을까요? 왜 이 여인과 함께 간음을 했던 남자에게는 벌을 주려 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돌을 던지려던 사람들 중 몇몇은 간음을 했지만 시치미를 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사회에서는 약한 사람들을 벌하기가 더 쉬었을 것입니다. 사실, 오랜 역사를 통해 여인들은 항상 착취당해왔고, 권리를 박탈 당해왔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상황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 역시 때때로 이 남자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지는 않는지요? 때때로 우리도 잘못을 저지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잘못만 들추어내곤 하는 일은 없는지요?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덮어 씌우기는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고 싶을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한다면,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는 못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아버지의 용서를 가르쳐주신 예수님, 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더욱 겸손하고 너그러울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남을 판단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용서와 우정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를 도와주십시오. 혼자서는 못하겠습니다. 아멘. 실천 나에게는 무엇이 더 쉬운가?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을 단죄하는 것인가? 

       

      >>>신앙의 모범(화요일 묵상)<<< 말씀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마태 1,24) 묵상 요셉 성인에 대해 우리는 거의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깊고 강한 믿음을 간직한 채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려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 그분도 의문을 느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느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을 지닌다는 것은 비록 답을 얻지 못할 때에도 하느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어떻게”와 “왜”에 대해 알고자 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과학에 대해 생각해보면 충분합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매우 어려운 질문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에 대해 답을 찾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창조주가 되려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쓸 데 없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 우리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즉 삶과 행복의 참된 의미를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성 요셉께서 믿음의 모범을 보이셨으니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처럼 저도 당신을 진정 신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저의 삶을 통해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을 섬기게 해 주십시오. 아멘. 실천 믿지 않는 사람에게 나의 신앙을 설명해야 할 때가 있었는가? 만일 그렇게 해야 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예수님,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분(수요일 묵상)<<< 말씀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 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묵상 우리의 세계는 수많은“복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복음만이 유일한 복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쉽사리 많은 복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즉, 행복을 약속하는 많은 연설을 듣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행복을 약속하는가요? 고통이 없는, 얻기 쉬운……. 행복들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때로는 조건이 너무도 어려워서 그 조건을 채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행복(즉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의 삶)은 하루 이틀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 일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누가 그렇게 오래 기다리기를 좋아합니까? 흔히 우리는 지금, 당장, 즉각적인, 손에 닿는 즐거움으로 만족하기 위해 이것 저것을 원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를 청하고는 즉시 그 담이 도착하기를 원합니다. 이는 아직 우리가 우리의 죄, 우리의 자아, 우리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로지 하느님만이 우리를

      이 모든 것에서 해방시켜 주실 수 있으십니다. 기도 저를 해방시키시는 예수님, 저를 노예처럼 묶고 있는 사슬을 끊어 주십시오. 이기심, 두려움, 무익한 욕망에서 해방시켜 주십시오. 저의 마음을 씻으시어 당신의 진리를 온순히 따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멘. 실천 나는 무엇에서 해방되어야 할까? 나의 삶에 있어 가장 습관적인 사슬은 어떤 것들인가?

       

      >>>계약의 하느님(목요일 묵상)<<< 말씀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창세기 17,4) 묵상 계약의 사건은 구약성서 제일 뒷부분에 나옵니다. 사실, 하느님은 계약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러면 이 계약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이시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계약에 충실하셨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은 자주 계약을 잊어버리거나 배반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그분의 사랑만 계시하시지 않고 그분의 충실하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우리와도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언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세례를 받던 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분에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때로는 충성스럽지 못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충성을 배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구함의 은총, 충실함의 은총을 그분에게 청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차츰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계약의 아버지, 저는 당신의 사랑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크고 큰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당신의 말씀에, 당신의 뜻에 충성하기 위해 이 돌의 마음을 부수시고,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주십시오. 아멘. 실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나는 어떻게 다른가?

       

      >>>눈에 보이는 신앙(금요일 묵상)<<< 말씀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7~38) 묵상 예수님께서 기적과 놀라운 일을 하지 않으셨다면, 물론 그분의 말씀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다면 그것은 좋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기보다는 그가 한 말을 스스로 실천에 옮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하면서, 혹은 좋은 말이나 들려주면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구체적 행동으로 그것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우리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무리들은 그분이 훌륭한 일을 하였는데도 왜 믿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서 항상 듣기 좋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꼭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도 얼마나 여러 차례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너무도 불편하다고 생각했는지요? 매일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자주 빠져들곤 했는지요? 기도 고통 받는 종이신 예수님, 저로 하여금 오로지 사랑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게 해주십시오. 오로지 십자가만이 더러움을 씻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주십시오. 오로지 당신 안에만 부활이 있음을 선포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실천 나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평화의 하느님(토요일 묵상)<<< 말씀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에제키엘 37,26) 묵상 예수님은 이 계약의 완성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과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분의 뒤를 이어 하느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 현존함을 선포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세계는 평화를 시급히 필요로 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평화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청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 자신들을 통해서도 우리의 기도를 이루십니다. 즉 우리가 사랑을 청하려 한다면 우리가 사랑을 실천해야 하며, 평화를 청하려 한다면 평화를 이루어야 하고, 용서를 청하려 한다면 우리가 용서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와 맺으신 계약에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이 계약에 충실하시듯이……. 기도 계약의 완성이신 예수님, 제가 당신의 사랑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 마음을 열어 당신의 법을 받아들이며,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아멘. 실천 나는 자주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가? 어떤 평화를 청하는가? 세계 평화인가? 아니면 내 마음의 평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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