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묵상

2006. 3. 26. 오후 1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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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르실료-사순 제4주간 묵상

    ***나도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4주일 묵상)*** 말씀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요한 9,36~37) 묵상 때때로 우리는 단지 성서 안에서나, 본당의 감실 안에서, 혹은 우리가 거행하는 성사 안에서(특히 성체성사), 또는 우리의 기도 안에서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데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고 특히 우리 각자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쉽게 잊곤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눈을 뜸으로써, 예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아볼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매 순간, 특히 우리가 기대하지도 않던 상황이나 사람들을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삶의 긴 여정을 그분이 함께 걸어가고 계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듯 느껴질 때에도 말입니다 .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면 우리는 충분히 그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다면 당연히 우리 삶의 방식이 바뀔 것입니다 .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 인류의 희망이신 예수님, 제 눈을 열어주시어 당신이 제 곁에 계심을,
    알아보게 해주십시오. 당신을 알아봄으로써, 당신과 함께, 당신을 위해,
    당신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실천 매일 나는 삶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는가? 그렇다면, 어디서 그분을 발견하는가?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보는 것(월요일 묵상)*** 말씀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요한 4,53) 묵상 물론, 우리는 많은 경우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이것 혹은 저것들을 청했지만…. 그분은 오랜 침묵으로 답을 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그분에게 화를 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그분은 우리에게 답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도 아니고, 우리가 기다리던 그 시간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실 많은 경우 그분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만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청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매우 큰 행운에 잠겨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요청에 응답하시면 그분을 믿고,
    응답하시지 않으면 믿지 않는 그런 얄팍한 신앙만 지닐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그분에게로, 그분의 왕국에로, 그리고 보다 더 뚜렷한 책임의식에로 우리를 데려가야 합니다. 즉 우리는 구체적인 행위들로써 그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 역시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청하실 수 있게 해드려야 합니다. 기도 나의 형님이신 예수님,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러나 내 믿음은 항상 부족합니다. 당신은 내가 약함을, 게으름 속에 주저앉아 있음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그저 입술로만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무엇보다도 삶으로써 기도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실천 일반적으로 나는 기도할 때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특히 나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가?
    ***일어나 걸어가라(화요일 묵상)*** 말씀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요한 5,8~9) 묵상 우리도 무거운 죄에 짓눌려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오로지 하느님만이 사랑과 자비로써 우리의 존엄을 되찾아 주시고, 죄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그분의 용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특히 화해의 성사를 통해 그분이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시고, 우리에게 다시 그분의 은총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용서는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그 선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형제들에게 우리의 용서를 선물함으로써 하느님의 희망과 위로를 전해야 함을 잊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기도 고통 받는 이들의 희망이신 예수님, 제 마음의 병을 고쳐주십시오. 제가 항상 충만한 삶, 하느님의 삶을 향해 힘차게 걸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실천 내 마음의 가장 큰 병은 무엇인가? 이 병을 고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버지의 뜻을 아는 것(수요일 묵상)*** 말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 5,19) 묵상 예수님께서는 특히 저녁 때 오래 동안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와 함께 머무셨습니다. 사실, 그분은 자주 산으로 피해 가셨고,

    거기서 여러 시간을 아버지와 함께 머무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또 성령의 힘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는 산을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와의 은밀한 관계로부터 예수님의 사명이 태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이 사명을 우리에게도 맡겨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알아야 하며, 그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을 알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점점 더 그분과 은밀한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분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서, 그리고 알아들은 바를 실천에 옮기는 데 필요한 성령의 힘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 아드님을 통해 당신의 뜻을 알려주신 아버지, 저로 하여금 당신과 점점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점점 더 당신의 아들 예수님의 사명과 생활방식에 가까이 다가서게 해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멘. 실천 나는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겉으로만 그분을 알고 있는가? 나는 그분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보여주는 것(목요일 묵상)*** 말씀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요한 5,36) 묵상 실천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믿음이 드러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병자들을 고쳐주시지 않으셨다면, 죄인들을 용서하시지 않으셨다면,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여겨지던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거짓말쟁이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분이 이루신 업적이 그분의 메시지가 참되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매번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증거해 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너무도 강한 것이며,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처럼 우리도 시대적인 흐름을 거슬러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사회에서 회개의 표시가 되어야 하고…. 반대의 표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착하신 아버지,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평화, 당신의 용서, 당신의 연민, 당신의 기쁨을 전하면서, 당신에 대한 저의 신앙과 사랑을 보여줄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아멘. 실천 나의 행동은 무엇을 반영하고 있는가? 하느님에 대한 나의 신앙인가…. 아니면 많고 많은 작은 우상들인가?

     

    ***신비에 대한 믿음(금요일 묵상)*** 말씀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주실 것이다.”(지혜 2,18) 묵상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고통을 느꼈으며, 이렇게 자문하곤 했는지요?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나는 착하고 겸손하며 아무에게도 손해를 입히지 않는 사람이 아닌가? 왜 하느님께서는 이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 안에 무언가……. 의미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한 일입니다. 고통은 언제나 하나의 신비로 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수난과 죽음 역시 우리에게는 신비입니다. 비록 우리를 죽음에서 구제하기 위해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기는 하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우리에 대한 사랑에서 고통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을 받음으로써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어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우리 형제들을 통해, 특히 전쟁, 폭력, 증오의 희생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죽어가고 계십니다. 고통은 또한 우리를 하느님께로……. 특히 우리의 형제들에게로 더욱 가까이 접근하게 합니다. 우리가 이 같은 사실을 믿는다면,

    그 때 우리는 일생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로 알고 살아가기가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 기도 예수님, 당신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저희에게 사랑의 지혜를 주십시오. 저희가 고통 속에서 당신이 멀리 떠나가셨다고 느낄 때에도 저희의 부족한 신앙을 탓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멘. 실천 고통은 나를 하느님께로, 그리고 형제들에게로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가?

     

    ***특별한 인간(토요일 묵상)*** 말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였다. (요한 7,46) 묵상 예수님의 말씀은 물론 매우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의 하느님과 또한 형제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 말씀들은 그 안에 가득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희망, 생명, 기쁨, 사랑, 신뢰, 고귀함, 용서,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또한 회개, 봉사, 겸손, 포기, 십자가, 고통, 항거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왕국의 씨앗이 자라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이 적합한 공간을 찾지 못하면, 그 때에는 우리도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과 다름이 없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기도 아버지의 말씀이신 예수님, 제 위에 당신의 성령을 내려주십시오. 제 마음의 문을 열어주십시오. 당신의 말씀을, 당신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당신과 아버지와의 관계, 당신과 형제들과의 관계를 저도 본받을 수 있도록……. 아멘. 실천 루가복음 6장 46절~49절 묵상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댓글 1

  • 2006년 3월 26일 오후 11:25

    본인한테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간사 말뚝하시죠 잘꾸며놓시니 넘넘 좋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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