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묵상

2006. 3. 7. 오후 11: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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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르실료-사순 제2주간 묵상


 

    <<<산에서 내려오는 것(사순 제2주일 묵상)>>> 말씀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태 17,4) 묵상 예수님은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으며, 당대의 사람들은 그분을 놀라운 예언자라고 대단한 기적과 아름다운 연설을 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훌륭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까지도 이 사실을 진심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 중 세 사람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다시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산에서 내려와 예수님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어떤 산일까요? 믿음의 산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세례를 받는 것만으로, 성당에 다니는 것만으로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도 모습이 달라져야 합니다. 즉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이신 예수님, 믿음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 위에 당신의 성령을 보내주십시오. 저도 변화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당신처럼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 딸이 될 수 있도록.... 아멘. 실천 나도 어떻게 해야 모습이 변화되어 점점 더 하느님의 선택된 아들, 딸이 될 수 있을까?
    <<<용서하시오, 그러면 용서받을 것입니다(월요일 묵상)>>>
    말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묵상 예수님의 이 말씀을 좀 자주 기억한 한다면, 우리는 물론 사람들에게 악보다는 선을 더 많이 행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지 말씀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진정으로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계속 우리를 신뢰하십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우리를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그분의 위로와 은총을 보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은 우리에게 달린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삶을 원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가르쳐주신 바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 자비로우신 아버지, 당신의 사랑에, 용서에, 그리고 평화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저의 모든 형제들과 자매들 안에 현존해 계시며, 그들을 사랑할 때 그들 안에 계시는 당신을 사랑하게 됨을 점점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소서. 아멘. 실천 나는 자비로운가? 누구에 대해 자비로운가? 그리고 나는 진정 용서할 줄 아는가?
    <<<종이 되는것(화요일 묵상)>>>
    말씀 "너희 가운데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마태 23,11~12) 묵상 자, 여기 예수님의 또 한 가지 “이상한”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니 말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하려고 합니까? 우린 성인이 아니란 말입니다. 주위를 둘러봅시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를 살펴봅시다. 모두가 명령하려 합니다. 모두가 권력과 명예를 추구합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약자로 보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 모순인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종이 된다는 것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산다는 뜻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이 행복할 때에만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주어진 선물이며, 우리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사회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약자라고 부를지라도……. 기도 하느님과 인간들의 종이신 예수님, 저희에게 섬김의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저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에게 정성껏 봉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멘. 실천 나는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가? 나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린이와 같이 되는 것(수요일 묵상)>>> 말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묵상 가엾은 제자들! 그들은 부자가 되고 권력을 손에 쥐게 될 줄 알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종이 되고 어린이처럼 되며,
    목숨을 얻기 위해 잃으라고 하십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보다 더 모순적인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구원의 논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을 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이므로, 서로 상대편의“발을 씻어주어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즉 사랑을 실천하면 됩니다. 우리가 주위를 잘 살펴보면, 우리의 봉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기도 우리처럼 인간이 되신 예수님, 봉사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나눔의 의미와 무상으로 내어주는 행위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멘. 실천 일반적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봉사 받기를 원하는가?
    <<<나의 라자로는 누구인가?(목요일 묵상)>>> 말씀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루카 16,20~21) 묵상 우리는 모두 사회적인 존재들입니다. 즉 그룹을 지어 살아갑니다. 사실, 아무도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대편에 대한 선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 우리의 문제, 우리의 꿈에 대해 너무도 마음이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곁에는 우리의 사랑, 우리의 시간,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짓는 가장 큰 죄들 중의 하나는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기회가 무척 많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자주 잃어버리곤 합니다. 한편 우리가 깨어 있으면, 우리는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는“라자로”들이 주변에 많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기도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이신 하느님, 애정, 희망, 기쁨이 부족한 사람들을 충분히 동정할 줄 모르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의 무성의와 무관심을 용서해 주십시오. 제 마음을 바꾸어주시고, 당신이 그들을 사랑하셨듯이 저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아멘. 실천 나는 나의 이기심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나도 살인하는 소작인이 아닐까?(금요일 묵상)>>> 말씀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마태 21,38) 묵상 사람의 육체를 죽이는 것만이 살인은 아닙니다. 감성적인 면에서나 영신적인 면에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우정을 죽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내면에 계시는 예수님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요?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죄란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뜻을, 그분의 가르치심을 모두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을 실천하는 대신
    죄의 유혹이 있는 데로 관심을 돌리고 우리의 기호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계시는 그분을 죽이게 됩니다. 이기주의, 증오, 시기, 폭력, 분노 및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 등을 선택할 때마다 그분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심어주신 하느님의 말씀을 죽이지 말고, 죄를 향한 유혹의 소리를 죽여야 합니다. 물론 하루 이틀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에 인내와 겸손을 지니고 하루 또 하루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기도 아버지의 사절이신 예수님, 매일 저에게 오십시오. 제 마음을 변화시켜 정의, 나눔, 회개의 풍성한 결실이 점점 자라게 해 주십시오. 아멘. 실천 나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내 뜻을 선택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악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멈추어 서서(토요일 묵상)>>>
    말씀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루카 15,17) 묵상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 대해 피로, 권태, 실망을 느끼는 때가 참 많습니다. 언제나 많은 일을 하노라 서둘러 이리 저리 뛰면서, 가끔은 멈추어 서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므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도 멈출 필요가 있지만 또한 하느님과, 그리고 형제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도 멈추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아버지에게로 집으로 돌아가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집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한 멈추어 서서
    우리가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기도 중에 하느님을 만나야 하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내면에 현존하심을 느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행복의 샘터가 되셔야 합니다. 우리 부(富)의 샘터여야 하고 우리 삶의 동기여야 합니다. 멈추어 서서 이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도 충성스러우신 아버지, 당신의 달콤한 입맞춤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입맞춤은 제 삶의 메마른 순간 저를 지켜줍니다. 당신의 따뜻하고 튼튼한 포옹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포옹이 모든 악에서 저를 보호해 줍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당신의 미소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미소는 저로 하여금 당신의 아들이 되게 합니다. 아멘. 실천 나는 가끔 멈추어 서서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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