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者 丁若鍾 아우구스티노 審問記錄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심문기록)
1801년(순조 1년) 2월 12일(음력)
정약종(丁若種) 42세
심문관 "너는 사악한 천주학에 푹 빠져 ...
네게서 압수한 문서 속에 " - 책롱사건의 문서
정약종 "올바른 학문인 정학(正學)이라고만 알지,
사악한 천주학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압수된 책들은 틀림없이 제 집에서 나온 것이 맞습니다."
정약종 "사악한 천주학이라고 알면 어찌 감히 했겠습니까?
大公至正極眞實之道
매우 공명정대하고 지극히 진실한 도로 압니다.“
정약종“ 故年前邦禁之後初無攺革之心
때문에 몇 해 전 나라에서 금지한 후에도 애당초 바꾸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정약종 “ 雖萬被刑戮少無悔悟矣
비록 수없이 형벌을 받다가 죽임을 당할지라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심문관 "천주학을 섬겼던 방법은 어떤 형태로 시행했는지 바르게 말하라."
정약종 "제가 천주를 모시는 것은 어디서든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심문관 “네가 첨례(瞻禮) 때에 걸어 놓았던 것은 무엇이냐?"
(심문관이 첨례(瞻禮)를 압니다. 책롱사건으로 압수된 정약종의 문서에서 보았을 듯 합니다.)
정약종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천지주재(天地主宰)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천주화상(天主畵像)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칠일마다 첨례(瞻禮)보면서 의지하며
사모하는 정성을 드립니다.“
심문관 "너의 집에서 압수한 문서 중에 신부(神父)라고 불리는 자는 도대체 누구냐?"
정약종 "서양과 중국에는 모두 신부(神父)가 있는데 우리나라만은 아직 없습니다."
(주문모 신부를 보호하려고 없다고 합니다. 정약종은 주문모 신부에게서 명도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정약종이 저술한 주교요지를 주문모 신부가 인준해주었죠, 한가지 의문은 1795년 을묘실포사건(을묘박해)로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입국했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심문관은 왜 몰랐을까요? - 최두호의 개인 의견일 뿐입니다. 참고로 추국청에 참여한 사람들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정승들입니다.)
심문관 "너는 이미 이 '천주학은 진실하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
정약종 "비록 '진실하다'고 배웠지만, 죽을 때는 혼자 죽지 어찌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5형제중에서 바로 아래 동생 정약용이 목숨이 아까워 살겠다고 술술 불어댄 것과 비교됩니다.)
심문관 "너의 천주학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무엇이 두려워 다른 사람을
말하지 않았느냐?" (집요한 심문입니다. 또한 심문관 조차 천주학이 - 정약종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는군요.)
정약종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니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의리를 배반하면서까지 살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정약종 “天主卽 天地之大君大父也
천주는 곧 온 천하의 위대한 임금님(大君)이며 훌륭한 아버지(大父)이십니다.“
정약종 “不知事天主之道 卽是天地之罪人生不如死矣
천주의 도(천주를 섬기는 도)를 알지 못한다면, 바로 이는 온 천하의
죄인이니, 살아 있어도 죽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지금부터 214년전에, 심문관 앞에서, 정약종 복자의 생생한 신앙고백입니다.)
정약종 “또한 패거리를 꼭 집어 말해서 나라에서 정도(正道)를 행한 어진 사람으로
인정하여 관직을 주고 상을 준다면, 어찌 꼭 집어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러하지 않고 번번이 형벌을 내려 죽이니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杖第十三度停刑 장 13대를 때리고 멈추었다. (대비 정순왕후조차 정약종을 미리 죽이지 말고 완전히 알아내라는 지시를 해서 적게 맞은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