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정훈·사회부 차장대우
얼마 전 모처럼 만난 고교 동창과 저녁식사를 했다. 삼겹살에 마늘까지 곁들인 뒤라 계산할 때 식당 주인이 건넨 껌을 입에 넣고, 친구에게도 내밀었다. 친구는 "난 그런 껌 안 씹는다"며 주머니에서 껌 한통을 꺼냈다. 그는 "치아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치과에 들인 돈과 시간이 얼마인지 모른다"며 "기왕이면 치과의사협회에서 인증하는 껌을 씹는 게 '내 몸 아끼는 길' 아니겠느냐"고 했다. 친구가 꺼낸 껌은 '자일리톨'이었다. 롯데제과의 간판 상품인 자일리톨 껌은 2000년 5월 출시 이후 지난 4월까지 9년 동안 약 1조10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500원짜리 코팅껌으로 환산하면 약 185억개, 31억갑이나 된다. 제과시장에서 월 매출 최고액, 단일 제품 연간 최고 매출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충치 예방효과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이 껌이 처음부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에 비슷한 제품을 냈다가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쓴맛'을 봤던 회사 측은 새로운 곳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2001년 2월 대한치과의사협회와 인증 계약을 맺은 것이다. 껌의 제품 포장에는 '대한치과의사협회 공식 인증상품'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충치와 최전선에서 싸우는' 치과의사들이 공식 인증한 제품이라는 홍보는 적중했고, 소비자들의 경계심은 단박에 무너졌다.
이후 웰빙 열풍과 맞물리면서 '공식 인증상품'은 유행이 됐다. '팬솔트', 'V12비타민워터'(이상 대한의사협회), '내몸에 흐를 류'(대한한의사협회), '비타 500'(대한비타민연구회), '수험생 졸음 올 때 씹는 껌'(대한약사회), '순백차'(대한한방피부미용학회)…. 각종 단체에서 공식 인증을 받았다는 상품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이 '공식 인증'이라는 게 속을 들여다보면 요지경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인증 대가로 제조업체로부터 적지않은 후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증은 서류 심사로만 이뤄졌다. 실제로 실험을 통해 검증한 것은 없다. 인증도 '껌에 자일리톨이 50% 이상 들어 있다'는 '함량 인증'이다. 껌의 효능에 대한 직접적인 인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CJ제일제당의 '팬솔트'는 대한의사협회의 공식 인증상품이라고 홍보해왔다. 300만명으로 추정되는 국내 고혈압 환자들은 마음 놓고 짠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선물'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일반 정제 소금보다 나트륨 함량이 40% 정도 적다는 걸 인증하는 것뿐"이라는 것이 대한의사협회의 해명이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인증한 음료 '내몸에 흐를 류'는 한방에서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 알려진 한약재가 들어갔다는 것을 인정한 게 전부다. 당연히 그 함량이나 효능에 대한 '보장'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른 '공식 인증상품'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오는 8월부터 이 같은 '뻥튀기 인증 마케팅'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현행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허위 표시·과대 광고 및 과대 포장의 범위'에 '정부기관이 아닌 단체나 협회의 인증 또는 보증'을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돈벌이를 위해 이름을 빌려준 뒤 "효능까지 인정하진 않았다"고 발뺌하는 단체나, 정작 성분 표시는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공식 인증상품'이라고 요란하게 선전한 업체들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8년이 넘도록 뒷짐만 지고 있다가 이제야 대책을 세운 식약청을 향한 소비자들의 시선은 따갑다 못해 싸늘한 상황이다. 국민들은 뒷북 치는 식약청이 아니라 앞서가는 식약청을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변명 뒤에 숨는 모습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