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음악 :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 이노주사 노래)
서 문 - 그리스도의 생애 (풀톤 J. 쉰 저, 1993)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의문에 해답을 구하고자 책을 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기존의 해답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10여년 동안 대단한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위안을 얻고자 이 책을 썼다. 내가 겪은 시련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련을 어떻게 대처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숙히 들여다 보기 시작했을 때, 복음서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왔다는 것이었다. 죽음은 그의 인생의 목표였으며 그가 찾던 보물이었다.
당신이나 나나 이 세상에 살기 위해 태어났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그가 죽음으로 끝났기 때문에 죽음은 하나의 단절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그리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씨앗이 먼저 땅에 떨어져 죽어야 새로운 생명이 오르듯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삶 속에서 성금요일(聖金曜日)이 없으면 부활주일을 결코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십자가는 텅 빈 무덤 곧 부활의 조건이며, 가시관은 찬란한 빛을 내뿜는 후광의 서막이다.
결국 인생에는 두 가지 철학이 있을 뿐이다. 첫째 철학은 우선 먹고 마시며 축제를 즐기다가 숙취로 끝나는 삶이 그것이고, 두번째 철학은 먼저 단식을 하다가 나중에 잔치의 기쁨을 맛 보는 삶의 그것이다.
희생을 통해 나중에 얻게 된 기쁨이야말로 언제나 비할 데 없이 감미롭고 더 없이 오래 남은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환희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로 시작한다. 정신적 희열로 시작하는 환희의 종교들은 흔히 환멸과 실망으로 끝난다.
자신에 대해 죽는 것은 참 생명의 관문으로서 너무도 중대한 것이기에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를 포기하고자 하는 세 가지 대시도가 있었다. 그리스도가 공생활을 시작할 때에 악마는 세상을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지름길을 제시하였다. 사도 집단의 으뜸인 베드로도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를 단념하도록 권하다가 "사탄"이라는 욕을 들으며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끝으로 골타에서 십자가 밑에 서 있던 그리스도의 적들이 도전적인 공격을 한다 -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러면 믿겠다." 그들은 자기 목숨을 버림으로서만이 그 목숨을 구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그리스도가 내리기만 한다면 그의 가르침은 뭐든지 믿을 것처럼 말했다.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십자가를 제외시켜버린다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으며 그리스도교도 없어져버릴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인생의 무대에서 우리의 "대역(代役)"을 해주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죄인인양 우리의 죄를 대신 떠맡으시어 죄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갚아야 할 죽음이라는 빚을 갚아주셨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단순한 교사나 농민 혁명가가 아니라 우리의 구세주시다. <중략>
현대 세계의 정치 종교적인 전체 상황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결렬시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오른편에 세워두고 그리스도 없는 십자가를 왼편에 세워 둬보라.
누가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선택하겠는가? 그런 선택을 하는 자는 퇴폐적인 서구 문명일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도는 약하고 유약하며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몰아낼 권한도 없고 극기와 억제, 금욕에 대해 한 마디도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없는 십자가를 선택할 자는 누구인까? 러시아나 중국과 같이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강과 권위를 사용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이데올로기에 몰두하는 나라일 것이다. 그러나 규율과 권위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는 수천 가지 정신병과 노이로제로 고통을 주는 죄책감의 무거운 짐을 지울 뿐이다. 그리스도없는 십자가는 결국 굴라그 군도(群島)인 다카오(Dachao) 안에서 국가라는 집단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알과 같은 수백만의 생명을 수탈하고말 것이기 때문에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없다. <중략>
마침내 땅이 빈 무덤이라는 극심한 타격을 받았을 때 십자가는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아무 것도 필요치 않으셨으나, 죄에서 세상을 구하실 때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가 필요하셨다. 내 생애 중 가장 축복받은 날들이었다고 생각하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나눈 감미로운 친교가 이 책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 내가 배운 교훈을 독자들에게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즉 모든 시련은 "사랑스럽게 쭉 뻗어 어루만져주는 그리스도의 손의 그림자"라는 것을......
- 풀턴 J. 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