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섞는 예식
사제는 나누어진 빵 조각을 성작에 넣으면서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거룩하게 혼합하여 모시오니,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빵이 굳어지는 관계로 빵을 물이나 술에 섞어 먹는 관습은 초세기부터 있었다. 특히 성체를 가정으로 모셔갈 때 섞을 필요가 생겼다. 더구나 성체를 포도주에 담그면 포도주도 축성된다고 생각하였다. 8세기에는 교황이나 주교가 특별한 축일에 축성한 성체를 인근 교회의 신부들에게 전달하여 다음 미사 때 성작 안에 섞게 했다. 그것은 교황이나 주교와의 일치를 나타내는 의미였다. 그러나 현재의 미사에는 이런 설명이나 의미가 없어졌다. 다만 성체 성혈이 합쳐져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고 우리 신자들도 이 부활에 참여한다고 보는 것이다.
하느님의 어린양
빵을 나누어 성작에 담긴 성혈에 섞는 동안 성가대나 독송자가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을 외우면 교우들이 응답한다. 노래로 하든지 큰소리로 왼다. 이 노래는 예절이 계속되는 동안 몇 번이든지 반복하고 마지막에는 “평화를 주소서.”로 끝맺는다(56항).
나누는 빵이 참된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세르지우스 1세 교황(687-701년)이 미사 중에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도록 하였다. 11세기 에는 이 노래가 평화의 인사와 연결되어 마지막 후렴에 “자비를 베푸소서...” 대신 “평화를 주소서”라고 응답하도록 하였다.
또한 위령미사 때에는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라고 하였으나 현행 미사경본에는 이를 없애버렸다.
오시는 주님
예수께서 오시는 것을 본 세례자 요한이 이렇게 외쳤다.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요한 1. 29). 묵시록은 “희생되신 어린양은 권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묵기 5.12)라고 기록하였다.
한편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강조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셨으므로 이제 여러분은 누룩없는 반죽이 되었습니다.”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고 찬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하느님의 어린양...”은 기쁨의 노래요 찬미의 노래이다.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시고 다시 부활하시어 제대 위에 현존하신 주님이시다. 자비와 평화를 주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이제 우리는 그분께로 나아가 성체를 받아 모시게 된다. 우리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삶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고 느낄 적에 기뻐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기도하면서 가슴을 치던 관습이 있다. 현행 미사 지침에는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금지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가슴을 치는 것은 속죄의 표시를 좀더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새 미사 해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