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식2

2005. 1. 19. 오후 6:29:17

글자

평화의 예식

평화의 예식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평화를 위한 사제의 기도.

둘째, 사제와 신자들 간의 인사 교환과 응답.

셋째, 모인 신자들의 상호 인사와 표시.

  순서를 바꾸어 평화의 기도는 뒤로 미루고 둘째 부분부터 설명해 보자.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라고 인사말을 하면서 사제가 팔을 벌린다. 그것은 기도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신자를 한꺼번에 포옹하려는 사랑과 평화의 자세이다.

  2세기경 평화의 인사는 성찬 전례 직전에 교환되었으나 5세기부터는 감사기도 후로 옮겨져 영성체 준비 예식이 되었다. 6세기에는 주님의 기도의 다섯 번째 청원인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를 확인한 다음 평화를 받으라는 뜻으로 주님의 기도 후로 다시 옮겼다. 이것은 당시 영성체를 하지 않고 미리 퇴장하는 사람들을 위한 파견 축복도 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평화의 인사는 꼭 해야 하는가? 권고 사항이지 의무 조항은 아니다. 교회와 인류 가족의 평화와 일치를 간구하며 성체를 나누기 전에 사랑을 표시하는 것이다. 꼭 이런 방식이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인사하는 것이 타당한가? 평화의 인사 방법은 지역 주교 회의가 지역의 특성과 풍습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한국교회는 어떻게 결정하였는가? 행동없이 ‘평화를 빕니다.’란 말마디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도록 결정하였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아무 말 없이 악수나 고개 숙임으로 인사 표시를 하고 있다. 개정의 여지가 있다.


피흘려 이룩한 평화

  평화 예식의 첫 부분인 사제의 기도는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일찍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 하셨으니….”

  이 기도를 들으면 최후의 만찬 장소를 연상케 된다. 당시(수난 전) 예수께서는 장엄한 고별 설교를 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요한 14,27).

예수님이 주고 가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당시 그분 앞에는 죽음의 위협과 침울한 분위기만 감돌고 있었다. 그날 밤(게세마니 동산의 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평화가 깨어지는, 오직 하느님의 분노만이 있는 두려움의 상태였다. 그런데 십자가의 핏방울로써 예수 성탄 날(베들레헴의 밤)에 시작된 하늘의 평화가 죽음의 순간 골고타 언덕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구나”(이사 53,5).

이렇게 이룩한 값진 평화를 그분은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그분은 “내 평화”를 준다고 하셨다. 평화는 주님의 것, 주님의 소유, 주님의 마음, 주님 자신이시다. 더 이상 걱정, 불안, 고뇌, 혼란, 갈등, 다툼, 불화 따위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 이 평화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이 아니겠는가.


교회의 믿음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되게 하소서.” 우리 죄를 보지 말라는 청원은 바로 이 값진 평화와 일치를 깨트릴 수 있는 모든 잘못을 없이하려는 일종의 속죄 기도이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마태 5.23-24).
회개와 믿음이 있어야 평화를 청할 수 있다. 구약성서
(이사 9.6)에서 예언된 ‘평화의 왕’인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원천이 되셨다. 따라서 영성체할 사람은 다시 한번 주님 앞에 속죄하며 주님과 일치하고 형제와 하나가 됨으로써 참 평화를 누리도록 기원할 것이다.

참 평화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다. 주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다. 실제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너희에게 평화(샬롬)가 있기를.”(요한 20.19) 하고 인사하며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부활이 없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현존하실 수 없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참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새 미사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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