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전례

2005. 2. 3. 오전 10:16:19

글자
 

하느님의 어린양

“사형수 삼 명 영세 입교.” 어느 교회신문 기사 제목이다. 여의도 차량 질주범. 총기 난사 사건의 경찰관. 말다툼 끝에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 등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순간의 실수로 생명을 빼앗기는 사형수가 된 것이다. 그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믿음과 회개와 사랑으로 새 사람. 새 삶을 택하였다는 뜻이다. 비록 사형의 쓴 잔은 마신다고 하여도 그들은 죄악에서 은총을, 순간에서 영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들은 첫영성체 할 때 받아 모신 성체가 진정 “생명의 빵”이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이신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실감하였을 것이다.


빵을 나눔

빵을 굽거나 쪄 먹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000년 이전으로 본다.

이때부터 빵은 피와 숨과 더불어 생명의 3대 기본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도 빵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다(아모 4.6)..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일용할 빵”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도록 “주님의 기도” 속에 포함시키셨다.

빵의 의미도 먹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고통을 당하며 하느님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눈물의 빵, 고뇌의 빵, 재 맛의 빵을 먹는다(시편 42.4). 반면 기쁨이 충만한 자는 기쁨의 빵(전도 9.7)을, 죄인은 불의의 빵(잠언 4.17)을 먹는다.

빵은 생존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나누어 먹는 “나눔의 정"의 증표인 것이다. 빵을 나눔은 형제애의 가장 좋은 표현이며(잠언 22.9) 손님접대를 위한 음식이기도 하다(창세18.5; 루가 11.5). 또한 빵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인간 노동의 결실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오순절에 감사의 뜻으로 맏물의 빵을 하느님께 바쳤다.

빵이 교회 예절에서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예수님의 최후 만찬 때부터였다. “우리가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1고린 10.16)


미사란 빵을 나눔이다

빵을 나누는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 때에 행하신 것으로서 사도들 시대에는 미사 전체를 ‘빵을 나눔’이라고 불렀다. 이 예절은 우리 모두가 영성체로써 그리스도 자신이신 같은 한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심으로써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을 표시한 것이다(미사경본 총지침. 56항). 빵은 바로 그리스도이며. 나누어진 빵을 먹는 이들은 그분의 생명에 참여한다.

9세기경부터는 신자수의 증가로 작은 제병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래서 신자들은 더 이상 집에서 구운 빵을 가져올 필요가 없었다. 누룩 안 든 제대용 빵과 신자 영성체를 위한 작은 빵을 수도원에서 만들어 공급하게 되었다. 12세기에 작은 제병 사용이 보편화 되었지만 빵을 나누는 예절은 남았다. 사제는 큰 제병 하나를 삼등분하여 작은 부분은 성작에 넣어 섞었다. 두 큰 부분은 사제의 영성체 때 사용하였다. 따라서 초세기의 빵을 나누어 먹던 의미가 사라졌다. 바오로 6세 교황은 다시 옛 의미를 살려 사제가 큰 제병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적어도 몇몇 신자들에게 성체를 영해주도록 하였다. 특히 합동미사, 작은 집단, 혼인성사, 견진성사에 이런 방식을 사용하도록 권하였다.

현행 미사 예절 중 사용하는 빵은 순밀가루로 새로이 만든 것이어야 하며 교회 전통에 따라 누룩이 안 든 것이다. 미사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포도 열매(루가 22.18 참조)로 생산된 순자연술이어야 한다. 즉 아무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포도주이어야 한다. 이 빵과 포도주는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야 한다. 빵이 변하거나 너무 굳어지지 않도록 하며 포도주는 시어지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새 미사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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