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일] 엠마오 길에서 (루카24,13-35)

2026. 4. 17. 오후 6: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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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9일 일요일

[부활 제3주일] 엠마오 길에서 (루카24,13-35)



1독서<예수님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사도2,14.22-33)

오순절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22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27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화답송>시편16,1-25.7-8.9-10.11(11) 주님,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나이다.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께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주님.”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저를 타이르시는 주님 찬미하오니, 한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깨우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제 마음 기뻐하고 제 영혼 뛰노니, 제 육신도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은 제 영혼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구렁을 보지 않게 하시나이다.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2독서<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해방되었습니다.>(1베드1,17-21)

17 여러분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각자의 행실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니, 나그네살이를 하는 동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내십시오.

18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19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

20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뽑히셨지만,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21 여러분은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시어,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

 

복음<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24,13-35)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부활 제3주일 제1독서(사도2,14. 22ㄴ-33)

 

"이스라엘인 여러분이 말을 들으십시오여러분도 알다시피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2)

 

사도행전 2장 22절부터 32절까지는 계속되는 베드로의 설교 가운데베드로가 시편 16장 8-11절에 나오는 다윗의 예언을 인용하여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란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이러한 새로운 내용의 선포를 시작함에 있어서베드로가 자신의 설교를 듣고 있는 청중들을 가리키는 호칭이 2장 14절과 다르다.

 

2장 14절에서는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이라 하면서청중들의 혈통과 더불어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비중을 두고 있다.

즉 '유다인이 종족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면본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인'은 종교적 측면을 더 강조한다다시 말해서 본문의 '이스라엘인'이라는 호칭은 그들과 하느님 사이의 계약에 비중을 두는 호칭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혈통적인 직계조상은 야곱이다그는 야뽁강가에서 하느님과 겨루어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받고다시는 야곱으로 호칭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이스라엘은 바로 축복을 약속하는 이름이다.(창세32,24-30)

 

유다인들은 이 축복받은 이름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백성들이 된 것이다베드로가 유다인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청중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 깨닫고그 이름을 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의미를 지닌다.

 

베드로가 여기서 주로 예수를 비하시키는 사람들이 흔히 사용했던 '나자렛'이란 지명을 언급한 것은예수께서 유다인들에게 고난당한 사실을 강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이처럼 예수의 수난을 강조하여 말하는 것은주로 유다인들로 이루어진 청중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이러한 베드로의 의도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삼천명이나 세례를 받게 되었다.(2,37-41)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22)

 

'여러 기적'으로 번역된 '뒤나메시'(dinamesi)의 원형 '뒤나미스'(dinamis)는 '능력'(권능)이라는 뜻으로여기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행해지는 행위를 가리킨다그리고 '이적'으로 번역된 '테라시'(terasi)의 원형 '테라스'(teras)는 주로 자연계에 나타나는 이적적 현상을 가리키는데 주로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표징'에 해당하는 '세메이오이스'(semeiois)의 원형 '세메이온'(semeion)은 반드시 초자연적인 일은 아니더라도행해진 일이 진리에 대한 증명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기적'의 본질은 하느님의 권능(능력)을 보이는 것이며, '이적'의 효력은 놀라움을 가져오는 것이고, '표징'은 영적인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3년이라는 공생활 동안에 '기적과 이적과 표징'을 통해서자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임을 밝히 드러내셨다그럼에도 불구하고유다인들은 어리석게도 이러한 예수를 못박아 죽였다는 사실을예수님의 지상에서의 행적을 특징짓는 세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베드로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여러분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3)

 

'무법자들'(법없는 자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손을 빌려'라고 번역된 희랍어 '다이 케이로스'(dia cheiros)는 히브리어 '뻬야드'(beyad)에서 온 단어이다. '뻬야드'는 유다인들이 사용하는 관용구로서 '~의 방법을 사용하여혹은 '대리자를 사용하여'라는 뜻이다.

 

유다인들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권력,즉 총독 빌라도의 권위에 의지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사주했었다.(로마2,14 ; 1코린9,21) 따라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로마인들에게 보다는 유다인들에게 있다.

 

한편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일이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측면과 무법자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내용은예수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구속사업이 하느님의 계획의 실현과 인간의 사악함이 그 도구로 사용된 사실을 동시에 드러내 준다.

 

이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하느님의 필연적 계획이 결코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역설적 진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하느님의 계획이 있었다고 하여 인간의 사악함이 죄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고인간이 사악하다고 하여 하느님의 계획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1)

 

27절의 시편 16장 10절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 내용은실제로 다윗이 자신의 영혼이 죽지 않고자신의 육신으로도 썩지 않게 된다는 고백을 한 것이 아니라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한 것이다베드로는 본절에서 시편 16장의 저자인 다윗이 예언자적 계시와 영감을 가지고 미래의 사건을 미리 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2)

 

베드로가 본 설교에서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다윗의 예언이 아니라 바로 부활하신 예수이다다윗이 예수의 부활을 예언했다는 사실이나 부활 그 자체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부활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시다.

 

예수께서 바로 부활의 주 이시고예수께서 복음 그 자체이시다과거에 예수의 십자가 수난의 의미에 대해서 못 알아듣고예수를 부인까지 했던 베드로가 이런 놀라운 깨달음과 확신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 진리를 전파하게 된 것은실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이다.

 

이제 베드로는 자신 만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주님의 성실한 증인 (martyres ;순교라는 말이 여기서 나옴)임을 천명하고 있다여기서 '에스멘'(esmen)이라는 현재형 동사가 쓰인 것은 이 증인됨이 과거와 현재 뿐만아니라 영원토록 계속될 일임을 보여 준다.

 

 


[부활 제3주일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에 관한 이야기를 부활 제3주일의 복음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루카가 전하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 이야기를 듣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명의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부활 증인입니다.

주간 첫날여인들이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한 날에(24,1-12 참조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1.1km)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두 제자가 걸어갔던 그 길은 그릇된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어야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장소로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실 터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여 예루살렘을 떠났던 것입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는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다가가시고 나란히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부활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성경 말씀을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때는 그분께서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그들은 올바른 길로 돌아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심지어 피하려던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등지고 걷는 길 위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수난과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을 떠나 그릇된 길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정진만 안젤로 신부)





 

부활제 3주일 복음(루카24,13~35)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15.31)

 

엠마오의 제자들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님께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그것도 영적인 몸이 아닌겉으로는 보통의 육체를 가진 사람처럼 친히 나타나셔서 동행하신다.

 

루카 복음 24장 14절에 나오는 데로 그동안에 일어난 예수님께 관한 '모든 일에 관하여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제자들이라면예수님의 얼굴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터인데그들은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며 이야기를 나누시고 있는지척에 있는 예수님을 알지 보지 못했다그런데 루카 복음사가는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눈이 가리어'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눈이 가리어'에 해당하는 '에크라툰토'(ekratunto; were holden; were kept)는 '억제하다'를 뜻하는 '크라테오'(krateo)의 미완료 수동태이므로직역하면 '그들의 눈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계속 억제되었다'가 된다이것은 엠마오의 두 제자들의 의식과 시각이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함이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이런 수동적 표현에는 하느님의 행위가 암시되어 있는데뒤에 나오는 루카 복음 24장 31절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 보게'될 극적인 반전을 경험하게 하기 위한 '하느님의 의도적인 가림'으로 이해한다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영적 상태에 이상이 있음을 나타낸다.

 

아마도 과월절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던 제자들일 가능성이 많기에 그들은 뜻하지 않은 예수님의 십자가형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루카 복음 24장 30절 이하에 보면엠마오의 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그것도 '성찬', 혹은 '성만찬'을 의미하는 '빵의 나눔' (Fractio Panis)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알아뵙지 못했던 영적 무지에서 탈출한다.

 

루카 복음 24장 31절의 희랍어 원문에는 '그들의 눈이 열려'에 해당하는 '아우톤 데 디에노익테산 호이 옵탈모이'(auton de dienoichthesan hoi ophthalmoi)'에서 '그들의'에 해당하는 '아우톤'(auton; their)과 ''에 해당하는 '옵탈모이'(ophthalmoi; eyes)가 떨어져 있어 문법적으로 어색하게 표현되어 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영적 무지 가운데 있었던 제자들의 눈이 떠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서 눈이 '열려'에 해당하는 '디에노익테산'(dienoichthesan; were opened)은 '열다'를 뜻하는 '디아노이고'(dianoigo)의 부정(不定과거 수동태 3인칭 복수로서 그들의 눈이 자신들의 노력이나 의지에서가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그것도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떠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눈이 밝아지고 나서야 그들은 함께 식사한 낯선 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알아보았다'에 해당하는 '에페그노산'(epegnosan; they knew; they recognized)은 '충분히 알다','완전히 알다'를 뜻하는 '에피기노스코' (epiginosko)의 부정(不定과거형으로서 하느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눈을 뜬 제자들이 또렷하게 예수님의 모습을 알아보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사라지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칭대명사 주격(autos)을 사용하고 있다사라지신 분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에 해당하는 '카이 아우토스 아판토스 에게네토 아프 아우톤'(kai autos aphantos egeneto ap' auton)에서 '사라지셨다'로 번역된 단어는 '아판토스(aphantos; out of sight) 에게네토(egeneto; vanished; disappeared)'이다.

 

여기서 '보이지 아니'로 번역될 수 있는 '아판토스'는 부정접두사 ''(a)와 '나타나다'를 뜻하는 '파이노마이'(phainomai)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지신 것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천사들이 인간의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처럼(2마카3,34) 사라지셨는데이렇게 갑자기 사라지셨다는 의미는 영광중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시간과 공간에 더 이상 제약되지 않은 영적인 몸을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은 쪼개어진 빵곧 성체 안으로 들어가 현존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영적이고도 인격적이며 살아있는 생생한 체험을 원한다면주도적으로 주님께서 영안을 열어 주셔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주도적인 주님의 절대적 개입과 성령의 능력의 터치도 마리아 막달레나나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그것을 받을만한 주님께 대한 애달픈 갈망과 사랑이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고항상 우리들의 영안을 열어 주시도록 '오소서성령님!'을 간절히 불러야만 하는 것이다.

 

 


 

 20260419일 일요일

[부활 제3주일]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직접 보고 들은 목격자요 증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그 사건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또한 예수님께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를 고백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루카 24,21)으로 바라보며, 그분께 모든 기대를 걸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졌고, 실망과 좌절에 사로잡힌 그들의 발걸음은 엠마오로 가는 길 위에 놓입니다.

바로 그 길에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걸으면서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죽음이라는 과거의 사건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어 부활이라는 현재의 신비를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음에서 부활로 건너가신 파스카에 계시는데,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그 길을 건너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기록들을 설명해 주십니다. 그리고 함께 걸으시며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그들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자, 그들은 마침내 예수님을 초대합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24,29).

그 초대에 응답하신 주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시는 순간, 두 제자는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말씀과 성체성사를 통하여 지금도 우리 곁에 현존하시며, 파스카의 눈을 열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현재 나를 짓누르는 바쁜 일과 걱정,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 또한 눈이 가리어지금 내 곁에 계시는 예수님, 부활하시어 새롭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을 향한 이 초대가, 이 시간 우리의 기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24,29).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부활 제3주일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세상의 안식을 찾아 다시 돌아가는 육의 사람으로 남지말고예수님의 안식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루카 24,13-31)

13 주간 첫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두 사람선악의 두마음으로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그 생명을 받지 못한 두 사람입니다.

그 생명 그 하나를 가진 자 (모노게네스-독생자), 그 구원의 독생자(예수)를 못 알아보고그분의 구원의 길에서 예순 길 떨어진 자신들의 옛모습(본능으로 다시 돌아가는 제자들입니다다시 육의 안식그 본능()의 안식(엠마오-따듯한 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예순(60)- 숫자6 - 사람()을 뜻합니다하늘의 생명을 깨닫지 못한 땅의 사람제자들입니다.

창조6일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쉼안식그 하나를 깨닫지 못한 육입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하늘의 생명안식을 못 알아보는 눈입니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 혼자만선이 악을 덮는 생명을 가지신 분입니다예수님만 외아들독생자(모노게네스)이십니다.

그 예수님과 하나 되었을 때생명 그 하나를 가진 자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오늘독서에서

(사도2,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신 예수께서 인 우리의 를 덮으셔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이 미리 정해진 하느님의 계획과 예지였습니다.

 

(에페1,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유대인자신들은 선민사상으로 구원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로마 식민지에서 해방시켜 풍요로웠던 다윗시대로 회복시켜줄 메사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 생각이 그들의 눈을 가리어하느님의 뜻인 영원한 생명이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회 의원인 니고데모에게 ~‘누구든지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3,3) 하신 것입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어리석은 자들아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믿지 못하는 것완악한 마음어리석음입니다그것이 나쁜생각죄입니다.(마르7,22)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성경 전체는 모두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말씀을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십자가의 예수님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루가2,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율법의 니고데모그의 제사와 윤리의 의로움이 부인되는 그 쓰러짐으로십자가의 대속그 의로움으로 다시 일어나는살아나는 것그것이 구원의 표징예수님입니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ㄱ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성찬례 때 주셨던 새 계약의 예수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루가22,18-20)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19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31ㄴ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예수님을 알아보았기에 사라진 것입니다어디로그들의 마음속으로~

우리의 생명새 마음으로그리스도의 영으로 들어가신 겁니다.

 

(에제36,26)<새계약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요한16,8) 보호자(성령)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선악의 심판인 죄와 의로움이 그릇된 것이고 대속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증언 하십니다.

그래서~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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