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태생(胎生) 소경 치유 (요한9,1-41)

2026. 3. 11. 오전 7:10:24

글자

20260315일 일요일

[사순 제4주일] 태생(胎生) 소경 치유 (요한9,1-41)


뷰어 이미지


1독서<다윗이 이스라엘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다.>(1사무16,1ㄱㄹㅁㅂ.6-7.10-13)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6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0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화답송>시편23,1-3.3ㄴㄷ-4.5.6(1)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2독서<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에페5,8-14)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10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11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12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13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14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복음<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요한9,1-41)

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4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8 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9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으니, 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17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18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그들에게 물었다.

19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20 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하고 말한 것이다.

24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25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26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

27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30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32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8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39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4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사순 제4주일 제1독서 (1사무16,1ㄹㅁㅂ.6-7.10-13ㄴ)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13)

 

인본주의적 통치로 실패한 초대 임금은 사울의 뒤를 이어서하느님께서 새롭게 준비하신 임금인 다윗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다윗'이란 이름의 어원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상징적으로 '사랑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도드'(dod)를 어근으로 해서 '사랑을 받는 자'(beloved one)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사실상 사무엘서의 중심인물인 '다윗'이라는 이름을 지금까지 숨기고 있다가 기름부음이 이루어지는 사무엘기 상권 16장 13절에서 갑자기 등장시킨 것은 이사이의 아들 중에 하찮게 여김을 받은 사람이 결국 위대한 '다윗 왕'이 되었다는 것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다윗이 몇 살 때 기름부음을 받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하지만 다윗이 친교제 이후 공동 식사에도 불참한 것으로 보아 성인(成人)으로 인정되던 20세에도 이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그는 B.C.1025년경약 15세에 처음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다윗은 두 번 더 기름부음을 받았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임금이 된 B.C.1010년경약 30(2사무2,1-4)때와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임금이 된 B.C.1003년경약 38세 때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2사무5,1-5).

 

이처럼 다윗은 임금으로서 처음 기름부음을 받고 정식 임금으로 등극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며그 기간 동안 하느님께로부터 많은 단련을 받았다.

 

한편, '들이닥쳐'에 해당하는 '왓티츨라흐'(wathitsllah; and came)의 원형 '찰라흐'(tsallah)는 '갑자기 엄습하다'(rush)라는 뜻을 갖는다.

특히 이 단어가 본문의 표현처럼 '위에'라는 의미를 지닌 ''(el; upon)과 같은 전치사를 동반하여 사람과 결합될 때에는 '주님의 영이 간택한 자의 위에 내리는 것'을 나타낸다(판관14,16; 10,6).

 

'주님의 영'이 과거 사울에 내리셨던 것처럼(1사무10,6; 11,6), 이번에는 다윗에게 내리셨다그러나 두 경우에는 차이가 있다.

사울의 경우에는 기름부음을 받을 때 곧바로 주님의 영이 내린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돌발적으로 내렸다.

하지만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을 때 곧바로 주님의 영이 내렸으며 그 능력은 줄곧 지속적인 것이었다이러한 차이점도 결국 하느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간택하셨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제 사무엘기 상권 16장 13절은 사무엘기 상권 16장 1~13절의 사건을 마무리하는 부분으로서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라는 명시적 표현으로 막을 내린다.

 

반면에 다음에 이어질 사무엘기 상권16장 14~23절의 악령으로 말미암은 사울의 번뇌와 다윗이 사울의 손발이 되는 내용은 '주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라는 명시적 표현으로 시작된다.

이로써 인본주의적인 임금의 시대에서 신본주의적인 임금의 시대로 서서히 이동해 가는 것이다.

 

 



[사순 제4주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2독서인 에페소서의 이 말씀은 마치 복음서의 주제를 요약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 복음은 빛과 어둠의 이야기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빛과 어둠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사람을반대로 어둠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빛이 없는 상태에곧 어둠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오늘 복음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동시에 애써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과 그것을 통하여 드러나는 예수님의 신원이 있습니다

눈먼 사람은 빛을 볼 수 없습니다그러나 예수님과 만남으로 그는 빛을 선물받습니다

그는 이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갑니다

눈을 뜨게 된 사람과 대조되는 이는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들은 볼 수 있는눈이 멀지 않은 이들이지만 빛을 거부합니다

다른 의미로 눈은 뜨고 있지만 진정한 빛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의 생각에 눈먼 것은 죄의 결과이고눈먼 사람은 죄인입니다.

바리사이들에게는 죄의 여부와 안식일에 지켜야 할 규정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안식일 규정을 어긴 예수님 또한 바리사이들의 눈에는 죄인일 뿐입니다

죄만을 생각하고 죄를 찾는 눈에는 죄가 보일 뿐입니다

빛을 생각하고 빛을 찾는 사람에게는 빛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에페 5,9).

 

(허규 베네딕토 신부)

 

 

 


공동변역성서

태생소경 치유 (요한 9.1-7)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자기 죄입니까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4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하고 말씀하셨다. ( 실로암은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구원하여 하느님 나라를 완성시키겠다고 계획하셨을 때 그 전체 밑그림을 그리셨을 거 아니에요 인간에 구원에 주도권 그리고 하느님나라에 완성의 주도권이 하느님에게 있다이것만 확인이 되면 계획은 당연한 거죠

하다못해 개집을 하나 짓더라도 우리 이렇게 밑그림 그리잖아요 요건 지붕 요건 앞문 뒷문 그거 안그리면 뒷문을 앞에다 갖다 붙이고 앞문을 뒤에다 갖다 붙이고개집을 지을때도 밑그림을 그리는데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구원과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시겠다고 계획하셨을 때 그 밑그림을 안그리셨겠냐구요 그렸단 말입니다거기에는 어떤 이들이 들어가야 할 거 까지도 정해 놓으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세전에 우리에 이름이 불렸고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라고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성경에서 계획은 항상 영적 관점에서인 거에요 

내가 이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 복음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그렇게 감사하고 기뻐하며 찬양하면서 살 수 있었지 라고 돌아보니까 하느님이 나를 이렇게 끌고 오셨구나

이 자리로 옮기려고 그런 많은 사건들을 이렇게 허락하셨구나그리고 그것들을 선용하여 나를 이렇게 이끌어 오셨구나,~~~~

 

오늘 본문이 어떻게 하느님의 주권과 열심에 의한 그 구원에 이야기를 전개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구원을 얻은 하느님의 백성들은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는지 한번 구체적으로 보자구요 먼저 1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

자 소경이 먼저 주님을 본게 아니라 주님이 먼저 소경을 보셨죠소경은 볼 수가 없으니까  여기에서 보다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에이돈은 알다 라는 뜻이에요 원래 알다라는 뜻과 같이 써요 그래서 종종 그 단어를 알다라고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우연하게 지나가다가 불쌍한 소경을 발견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셨으며 알고 있는 그를 찾아갔다.라는 의미에서 에이돈라는 단어를 쓴 것입니다.

소경은 주님이 오신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어요 그는 주님이 누군지도 몰랐고 주님이 어떤 능력을 가진 분인지도 몰랐어요 따라서 그는 주님께 눈을 뜨게 해달라는 부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게 바로 구원받기 전에 우리에 상태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노력하여 우리가 자격을 갖춰 구원에 이르겠다라는 그게 말이되나요그래서 성경에서 소경을 죄인들을 총칭하여 상징하는 단어로 자주 쓰는 거에요 

그리고 복음서에는 주님에 많은 치유사건중에 유독 소경이 고침받은 사건을 특별하게 많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치유사건은 귀먹은 벙어리 고친 사건이 하나중풍환자 고친거 하나열병 앓던 자 고친거 하나그리고 문둥병 고친거 둘또 다시 살려낸 사건 셋반면에 소경 고친거 다섯. 압도적으로 많죠

그것은 성경이 소경에 상태를 영적으로 어두움 가운데에 있는 죄인들에 상태라는 것을 강조해서 보여줌으로 해서 주님은 그런 영적 어두움에 상태에 있는 죄인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광명한 빛으로 인도해 내시는 분이심을 상징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거에요.

 

우리는 혼돈과 공허와 어둠속에서 갈길 몰라 해매며 살고 있던 그 성전 문앞에서 구걸을 할 수밖에 없는 거지같은 존재였더라는 것을 예수님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에요 그래서 날때부터 소경된 자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죄 속에 빠져서 거지같은 인생을 거지같은 삶을 살다가 거지같이 죽어야 되는데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하느님 없이 사는 삶은 전부 거지같은 삶이니깐요그게 죽어야 하는데 그 삶은 인간의 근원적인 죄에서 기인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인간은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날때부터 죄인이잖아요 그래서 하느님이 날때부터 소경인 자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너희들에 실존이였다 그래서 날때부터 소경된 자 날때부터 죄인이였던 우리를 어떻게 고치실 것인가를 보여줄려고 날때부터 소경된 자를 택하신 거에요 주님은 그 눈을 값없이 치료해 주심으로 해서 당신에 하실 일이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하세요 주님이 소경을 찾아가셨을 때 주님과 함께 있던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어요 본문 2절로 갑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자기 죄입니까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당시 유다인들은 모든 고난과 불행과 그 질병을 죄에 결과로 이해를 했어요 물론 그런 것들이 죄의 결과 인간들에게 찾아온 그 죽음에 증상들인 것은 사실이에요 아름답게 창조된 하느님에 피조세계에 고난과 불행과 질병이 찾아온 것에 그 근원적인 뿌리를 찾아가 올라가 보면 어디에요 아담에 죄잖아요 

그러니까 죄로 부터 온 것은 맞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당하고 있는 그 불행 고난 질병이 바로 당사자에 죄때문에 그런 것이다라고 이해하는 것은 착각이란 말입니다 고건 오해란 말입니다 그렇지 않단 말이에요

전생의 죄를 많이 진 사람이 이생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질병을 얻게 된다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 사상은 유다인들에게 조차 아주 편만하게 일반화되어 있었어요 무서운 거에요 

그러니까 영지주의에 영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여러분 모릅니다 

오늘날 까지도 있죠 그래서 그러한 환생 교리에 젖은 사람들은 자신들에 고통과 불행과 질병을 전부 전생에 죄로 돌려요 

물론 유다인들에 선생인 랍비들은 그 이론을 전혀 지지하지 않았어요 많은 유다인들이 거기에 넘어갔지만 랍비들은 그 이론을 지지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랍비들에 주장도 옳은 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들은 출애굽기 20장 4-5절에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5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라는 그 구절을 근거로 해서 죄의 유전으로 고통의 문제를 이해했어요 

그 아비 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 죄가 나에게 전가가 되어 유전이 되어 나에게 질병과 고난으로 내려오게 된다라고 이해를 했다구요 거기에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그런 주장이 나온 거죠 말도 안되는 거에요 

그런 책은 집에 있으면 빨리 갖다가 찢어 버리세요 그래서 이 제자들이 그가 소경이 된게 그 사람에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에 죄 때문입니까 라고 물어본 거에요 그런 사상에 영향을 받아서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태아가 어머니에 뱃속에서도 죄를 지을 수있다라고 생각했어요 성경을 근거로 한거에요 

 

창세기 25장 22-23절 보실까요

22 뱃속에 든 두 아이가 서로 싸우므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와서야 어디 살겠는가!' 하면서 야훼께 까닭을 물으러 나갔다. 23 야훼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태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두 부족으로 갈라졌는데한부족이 다른 부족을 억누를 것이다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거기서 죄 지은 놈들은 날 때 병얻어서나온다 이렇게 이해했다니깐요 시편 58편 3-5절 보세요

모태에서부터 잘못된 자들나면서부터 빗나가서 거짓말만 하는 자들, 4 독사같이 독이 서리고살무사처럼 제 귀를 틀어막고는 솜씨 좋은 마술사의 소리도홀리는 요술사의 소리도 듣지 않는다.

악인은 모태에서 부터 멀어졌다 거기서 죄를 지었다는 거에요 이러한 이해그러니까 이러한 구절을 근거로 해서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죄를 지으면 장애를 갖고 불행을 갖고 이렇게 태어난다라고 이렇게 믿기도 했어요 

이렇게 환생에 교리나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이론이나 모태속에서 지은 죄에 결과에 의한 그런 질병등에 이론은 참 더무니 없는 이론인 거에요 그런데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아서 이게 누구에 죄에 결과입니까 라고 제자들이 물어본 거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단호하게 대답해 주시죠 3절 보세요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이게 하느님은 자기가 하는 일을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장애를 갖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을 장애를 막 주어서 내보낸다는 이야기입니까자 우리말 성경은 헬라어 성경에 원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아주 엉뚱한 번역을 해 놓았어요 

그러면 3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하시는 일이라는게 뭘까요 지금 날때부터 소경된 자를 택하셔서 그 소경을 통해 하느님에 하시는 일을 지금 나타내겠다라고 하시는데 그 소경을 통해 나타내려고 하는 하느님 일이 뭐겠냐 말이에요 4절 보세요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조금더 명확해 져요 여기서 또 번역이 조금 잘못된 부분이 있어요 여기서 우리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사실 아이 머스트 워크 란 뜻이에요 '내가라는 거지 우리가 아닙니다단수에요 그러니까 제대로된 번역은 '나를 보내신 이에 일을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뜻이에요

 요한복음 3장 3절 보세요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하고 말씀하셨다."

볼 수 없음과 새로나지 안음을 동격으로 이렇게 올려놓고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이야기는 뭐에요 볼 수 없음 소경을 통해서 새로나지 않은 자들이 새로남을 설명해 주는 거에요 자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새로나게 하시는지 한번 볼까요 소경을 어떻게 고치는지 보면 알겠죠 9장 6절 보세요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주님께서는 소경뿐만이 아니라 많은 각양각색의 병자들을 고치셨죠그러나 오늘 본문처럼 지저분하게 흙에다가 침 뱉어 갖고 그걸로 이렇게 진흙 이겨서 눈에다 발른 적은 한번도 없어요죽은 사람도 심지어 죽은 사람도 나와라 하니까 나왔다니깐요 

문둥병자들 보고 깨끗해져라 하니까 깨끗해 졌다구요 심지어 어떤 여인은 예수님이 아무말도 안했는데 옷만 만졌더니 혈루병이 나아 버렸어요

그런데 왜 오늘에 이야기에서면 지저분하게 침으로 진흙을 이렇게 개서 눈에다 다 발라주고 그러는 거에요 그리고 또 가서 귀찮게 가서 씼으라고 왜요 하느님에 하시는 일을 가르쳐 주기 위해앞에 답이 나왔었잖아요 

우리가 전에 간음한 여인 이야기에서 본 것처럼 성경에서에 그 흙 그 티끌은 저주받은 죄인들과 그들에 죄를 총칭하는 소재였어요 

창세기 2장 7절 볼까요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이 흙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창세기 3장 14-19절 보세요 "14 야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너는 저주를 받아죽기까지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어야 하리라. 17 그리고 아담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내의 말에 넘어가 따 먹지 말라고 내가 일찍이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따 먹었으니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땅이 저주를 받았어요 흙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1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19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 먹으리라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이렇게 아담이 범죄한후에 흙은 저주받은 인간에 현실과 결국을 가리키는 소재로 등장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간음한 여인에 이야기에서 처럼 자신과 흙을 섞어서 개버리는 거에요 

예수님에 침이 나와서 이 저주받은 흙과 섞여 지는 것입니다하느님 하늘에 빛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저주받은 육신 안으로 들어와 버리시는 거에요예수님의 성육신 인카네이션을 이야기하는 거죠 주님의 인카네이션은 육신을 입으신 하느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로도 우리 죄인들에 구원에 방법을 담고 있어요

 

어떻게 하느님이신 그분이 죄인과 연합함으로 하느님이 죄인에게 전가되고 이 죄인에 실상이 하느님에게 전가되어져 버리는 거에요 그리고 이 하느님이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고 하느님이신 그 예수님 인카네이션한 예수님에 몸 안에 이미 구원에 방법이 들어가 있는 것이죠그렇게 하늘의 것 침과 흙이 개어져서 예수가 죽어야할 소경에 환부인 눈에 붙여지는 것입니다 

치료받아야할 부분에 붙여지고 예수님이 실로암 못가에 가서 물속에 빠져 죽으시는 것입니다 딲여져 내려가는 거에요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 고쳐져야할 환부가 낫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구원이라고 하는 거죠.

하늘의 주인이신 성자 하느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이 죄인들과 개어지셨단 말입니다 그들에 죽음을 품어 안아 버리시고 예수님이 물에 빠져 죽어버린 것입니다 홍수에 빠져 죽어버린 거에요 

그리고 그 죽음을 품고 죽어 버렸기 때문에 이들이 눈을 번쩍 뜨게 된 것입니다 구원을 받게 된 거에요 그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에 그대로 그려져 있는 거에요.

 날때부터 소경된 자에 이야기가 내가 세상에 빛이다라는 그런 선언뒤에 이렇게 붙여 있는지는 이제 이해가 가시죠 그것만 이해가 가셨으면 됐어요

그런데 잘 보면요 8장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그 일과 9장에 그 소경에게 일어난 일이 정확하게 같아요 

8장에서는 하느님에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가 세상에 빛임을 유다인들에게 이야기하자 유다인들이 득달같이 주님을 거짓말 쟁이로 몰아붙이죠 

볼까요 8장 12-13 "12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나를 따라 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13 그러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증언하고 있으니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 됩니다하며 대들었다.

 

9장에서는 눈을 뜨게 된 소경이 거짓말로 몰려요 빛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 소경도 거짓말쟁이로 몰립니다.

18 유다인들은 그 사람이 본래는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마침내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이 사람이 틀림없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그런데 지금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유다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아울러 8장에서는 주님께서 당신에 대한 아버지에 증거하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유다인들이 아버지의 증거를 알아듣지 못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볼까요

8장 18 내가 바로 나 자신을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증언해 주신다.'19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은 '당신 아버지가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예수께서는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뿐더러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너희가 만일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하고 대답하셨다.

9장에서는 어때요 소경의 부모가 아들에 대해 증거하죠 그런데 유다인들이 안 받아들여요 

9장 18-20절 "18 유다인들은 그 사람이 본래는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마침내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이 사람이 틀림없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그런데 지금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20 그의 부모는 '틀림없이 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저희 아들입니다."

부모에 증언이 나오죠 또 여기에 뿐만 아니라 8장에서는 주님에 말씀을 들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돌로쳐서 죽일려고 하고 9장에서는 그 소경의 말을 들은 유다인들이 그를 쫓아 내버리죠 뿐만 아니라 주님은 당신을 가리켜서 보내심을 받은자라고 8장에서 이야기하세요

 8장 16-18절 보세요"16 혹시 내가 무슨 판단을 하더라도 내 판단은 공정하다그것은 나 혼자서 판단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 판단하기 때문이다. 17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이 증언하면 그 증언은 참되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18 내가 바로 나 자신을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증언해 주신다.'

날때부터 소경된 자는 어때요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요 볼까요 

97절 보세요"7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하고 말씀하셨다. ( 실로암은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

아주 흡사한 구조로 8장과 9장이 대조가 되고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당신을 가리켜서 에고 에이미 라고 칭하시는데 그거는 하느님에 것에 쓰인 단어거든요 9장에서 예수님이 자기를 가리켜 '내가 그다에고 에이미라는 단어를 씁니다 

볼까요 8장 58 58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하고 대답하셨다.

이게 에고 에이미 내가 하느님이라는 뜻이란 말이죠 여기에서 나는~있었다 에고 에이미에요

 9장 8-9절 볼까요 그의 이웃들과 그가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9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였고또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을 닮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그 때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하고 말하였다.

에고 에이미 똑같은 단어를 쓰고 있어요 요한은 지금 8장과 9장에서 의도적으로 이같은 단어들과 내용들을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묘사하고 있는 거에요 

하느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께서 육신에 몸을 입으시고 다른 말로 더러운 티끌과 이겨지셔서 죄인에 환부에 붙여지시고 가장 비천한 죄인의 모습이 되셔서 실로암 물에 빠져 죽으심으로 죄인들이 구원을 받아요

그 보내심을 받은 주님의 십자가에 삶을주님께 보내심을 받은 소경이 그대로 판박이처럼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날때부터 소경인 자가 이제 그 눈에 진흙을 이겨 붙임으로 말미암아 가뜩이나 안보이는데 거기다가 진흙까지 덕지덕지 붙여놨으니 더 안보이죠

그리고 그것은 나는 소경입니다 하고 광고를 하는 낮아진 모습으로 서는 거에요 그 상태로 실로암으로 가는 것입니다 자기에 명령을 받은 그 목적지로 소경이 가는 거에요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라는 자기를 보내신 분에 명령을 확실하게 수행하기 위함인 거죠 그 목적지까지 가면서 그 진흙을 눈에 이겨 바른 그 소경은 온갓 조롱과 멸시를 받았을 거에요 그리고는 실로암 연못에 도달하죠

실로암 연못은 예루살렘 키드론 골짜기에 그 기혼샘에서 흐르는 물이 마지막으로 고여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성전에서 그 물을 떠다 썼잖아요 초막절에도 갖다 붓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실로암 물은 기혼샘에 가장 낮은 곳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가장 낮은 곳을 상징하는 거에요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를리는 없잖아요 

그 가장 낮은 곳에 조롱과 멸시에 모습으로 내려가서 그 자기를 보내신 이에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조롱과 멸시를 감수하고 내려가서 가장 낮은 곳에 도달하여 무릎을 꿇고 눈을 씻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자의 삶이라는 건 예수의 삶이 그랬다구요 하늘 보좌를 차지하셔도 아깝지 않은 그 분이 이 땅에 내려오셔가지고 이 세상에 죄악들과 이겨지셨어요 그리고 갖은 수난과 멸시를 받으시고 그러한 조롱과 멸시 속에서 하느님에 명령을 이루겠다고,

 ‘내가 너에게 준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마라라는 하느님에 명령을 이루겠다고 십자가까지 내려가신 거에요 내려가서 거기서 무릅을 끓고 죽어버리신 것입니다 그 삶이 소경의 삶에 그대로 전가되고 있다라는 것을 8장과 9장에 그런 단어들과 상황들을 통해서 요한이 일부러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보내심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하느님이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어디로 보내요 실로암 못으로 우리를 보내는 것입니다

구원에 완성 지점으로 우리를 보내시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온갓 조롱과 멸시와 억지와 천대와 이런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고 하느님을 니 목숨처럼 사랑하라 라는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실로암 못으로 낮은 곳으로 한발 한발 걸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삶인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에 삶 그것을 우리는 자기 부인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시편 116편 5절 볼까요 야훼께서는 너그럽고 의로우신 분우리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

이거 다윗이 쓴거에요 야훼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전하시어 내가 낫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다 다윗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재물과 권세를 한 손에 줬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어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범죄를 짓죠 밧세바를 범하고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자기에 욕정을 채울 수 있었는데 그걸로 안채워지니까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기에 만족을 채울 수밖에 없는게 인간이란 말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힘으로도 행복과 만족에 도달할 수 없어 그런데 가장 낮은 곳에 내려가 무릅을 딱 꿇었더니 주님이 거기서 나를 구원하시더라그때에 비로소 참 행복에 내가 도달할 수 있겠더라 라는 것을 다윗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한 심령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낮은 자리에 섰을 때 우리는 하느님에 구원을 경험하고 그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거에요.

 

교우여러분 세상에 힘을 쫓아 갈때는 그것에 눈이 팔려 절대 하늘의 것으로 기쁘고 만족한 삶을 맛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에 표지는 뭐에요 실로암으로 내려가는 낮아짐이에요 낮아짐 자꾸 나를 자랑하고 유명해지고 높아질려고 하는 그런 시도가 아니라 

낮아짐돈을 많이 벌고 못벌고 유명해지고 안 유명해지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아니고 이거 문제가 아니라 낮아짐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보잘것없는 나를 이렇게 전심으로 섬겨줄 때 참 우리 행복해 지지 않아요 낮아짐입니다.

뭐 개뿔도 가진게 없는 사람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눈에 그냥 진흙을 이겨 발른거 처럼 그런 부끄러워한 모습으로도 하느님 말씀에 순종 하겠다고 열심히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 우리는 감동 받지 않습니까그게 낮아지는 것입니다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의 상황 속에서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에 십자가에 삶 섬김에 삶 사랑의 삶을 살아 내라는 것입니다 그거에요 때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들 눈에 자꾸 그냥 침을 퇴퇴 뱉어 갖고 진흙을 이렇게 이겨 붙이는 듯한 그런 기분 나쁜 경험을 할 때가 있을 거에요.

 ‘아 더럽게 이걸 왜 자꾸 붙이시고 그래가 아니라 나는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하느님이 명령하신 니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좀 사랑해 달라는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그 상황에서 보여주는 거에요

덕지덕지 붙이고 그러나 마지막에 그거 다 닦아 주신다니깐요 영적으로는 예수님이 이미 그거 다 품어 안으시고 여러분의 고통 질병 불행 다 품어 안으시고 이미 다 불살라 버리셨다구요 그리고 나중에는 인제 그게 가시적으로 나타날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잠시 부끄러움 당하는거 뭐 어때요 괸찮아요 잘 참으세요 잘 참으시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실로암으로 내려가는 그 낮아짐에 삶을 잘 살아 내십시오

 

성경이 뭔지깨닫는 시간 허락하심에 감사를 올립니다아멘.

 

 



[ 사순제4주일](2) 

 

공동번역성서사용

 

참으로 눈먼자 

(요한9:8~41)

그의 이웃들과 그가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9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였고또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을 닮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그 때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하고 말하였다. 10 사람들이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는 '예수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시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기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띄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12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었으나 그는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13 사람들은 소경이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이번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또 그에게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물었다그는 '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발라 주신 뒤에 얼굴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는 '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면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하는 사람도 있었고 '죄인이 어떻게 이와 같은 기적을 보일 수 있겠소?' 하고 맞서는 사람도 있어서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17 그들이 눈멀었던 사람에게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다시 묻자 그는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8 유다인들은 그 사람이 본래는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마침내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이 사람이 틀림없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그런데 지금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20 그의 부모는 '틀림없이 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저희 아들입니다. 21 그러나 그가 어떻게 지금 보게 되었는지또 누가 눈을 뜨게 하여 주었는지는 모릅니다다 자란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제 일은 제가 대답하겠지요하였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유다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23 그의 부모가 '다 자란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24 유다인들은 소경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 놓고 '사실대로 말하시오우리가 알기로는 그 사람은 죄인이오하고 말하였다. 25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앞못보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잘 보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26 '그러면 그 사람이 당신에게 무슨 일을 했소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했단 말이오?' 하고 그들이 다시 묻자 27 그는 '그 이야기를 벌써 해드렸는데 그 때에는 듣지도 않더니 왜 다시 묻습니까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28 이 말을 듣고 그들은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너는 그자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29 우리가 아는 대로 모세는 직접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지만 그자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다하고 말하였다. 30 그는 이렇게 대꾸하였다. '분명히 내 눈을 뜨게 하여 주셨는데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도 모른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안 들어 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2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 준 이가 있다는 말을 일찌기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33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34 유다인들은 이 말을 듣고 '너는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선생님믿겠습니다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하고 말씀하셨다. 38 '주님 믿습니다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39 예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40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 하고 대들었다. 41 예수께서는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하고 대답하셨다.

 

요한복음 9장은 마른 뼈와 같은 죄인들을 대표적으로 상징하고 있는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이 요한복음 9장은 단순히 예수님의 질병치유나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십자가 복음이 그대로 용해되어져 있는 상징적 사건임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구원의 시작과 끝즉 구원의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아울러 구원의 즉각적이며 점진적인 다소 이율배반적인 양면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먼저 35절과 36절을 보겠습니다

 

(요한9:35-36) 35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선생님믿겠습니다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날 때부터 눈이 멀어있던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죄인의 대표로 선 그가 부르심(소명)을 입은 것입니다구원의 서정에서 부르심(소명)은 시작에 불과합니다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부르심을 입은 상태를 구원이 완성된 구원받은 상태로 봅니다맞습니까어떤 면에선 그래요 하느님의 부르심은 실수나 실패 없이 그 부르신 자를 하느님 나라에 반드시 세우고야 마시기 때문입니다하느님에게 있어서 시작은 곧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부르심을 입은 그 상태가 구원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원의 완성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그것을 신학에서는 구원의 즉각성 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보시는 바와 같이 이미 눈을 뜬 그 소경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누군가가 자기의 눈을 뜨게 해 주어서 감사는 해야겠는데 그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자기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 자신을 위해 일을 하고 계실 때에는 그가 여전히 소경이었기 때문입니다.

36절을 보시면 눈 뜬 소경이 내가 믿고자 합니다.’하고 말을 합니다. ‘믿습니다.’도 아니고 믿겠습니다.’도 아니고 믿고 싶습니다.’입니다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눈을 떠서 이제 그 눈을 뜨게 해 준 대상을 믿고 싶은데 그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여기서 알매니안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구원을 인간의 선택으로 보기 때문에 주장이 옳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많이 다르지요지금 눈을 뜬소경 앞에 예수님이 서 계십니다그런데 그가 주님을 못 알아보는 것입니다그 사람은 주님을 보고 그가 누구입니까?’라고 묻습니다그게 구원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에페2:1)상태에서우리를 살려주신 분이 누구이시며 어떤 일을 통해 우리가 살아나게 되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알고 예수를 믿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눈을 뜬소경이 내가 그를 믿고 싶은데 그가 누구입니까?’라 고 물은 것처럼구원받은 성도는 구원받은 이후에야다른 말로 눈을 뜬 후에야 예수에 대해 배우고인식하고이해하고깨닫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내가 믿습니다.’라는 온전한 신앙고백을 함으로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완성이 되는 것 입니다그러한 성숙되어지는 과정을 신학은 구원의 점진성 이라고 부릅니다어떠한 의미에서 구원을 즉각적이며 점진적이라고 하는지 아시겠지요?

이렇게 구원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그렇다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천년 만년 이 땅에 살면서 계속해서 가르치시지 왜 죽으십니까? 7장과 8장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예수님이 열심히 십자가 복음에 대해 설명을 하시는데 듣는 이들이 하나도 못 알아듣지 않았습니까구원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래서 주님이 소경을 찾아오셔서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출애굽기의 말씀처럼 주님이 신랑이 되어서 신부를 아무리 끌고 가려해도 신부가 말을 안 들어먹는 것입니다그래서 주님은 그 신부 속으로 들어가 그 신부와 한 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에레31:31-33) 어떻게요자신 이 죄인들과 이겨지셔서 물에 빠져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신부인 우리 성도 안에 거처를 잡고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그게 바로 소경의 눈이 빛을 보게 된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7장과 8장은 십자가 사건 이전인 구약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9장은 십자가와 그 십자가로 인해 눈을 뜨게 되는 교회의 모습인 신약즉 새 계약의 성취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죽으심에 관한 힌트가 나옵니다.

(요한9:35) 35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수님께서 눈을 뜬 그 소경을 만나셔서 당신을 인자라 칭하시며 네가 人子를 믿느냐?’고 물으십니다거기서 쓰인 人子사람의 아들입니다관사가 붙어 있습니다그러니까 그 인자는 구약의 어딘가에서 인용된 말이라는 것입니다그 단 어는 다니엘서 7장의 에나쉬 바르’‘인자를 받는 말이지요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영원한 하느님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시는 그분을 받는 말인 것입니다그런데 주님은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단어를 쓰실 때 항상 십자가를 예시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인자의 들림 받음’ 이라는 표현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표현합니다.

(요한3:14) 14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그리고 공관복음은 주님의 죽으심을 인자의 넘겨짐혹은 버려짐으로 표현을 합니다.(마르8:31, 9:9,12,31, 10:33,45, 14:21)

(마르8:31) 31 그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이렇게 인자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구하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왕으로 등극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분의 승귀(昇歸)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인자는 죽어야 할 자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 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르10:45) 45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하셨다.

이렇게 인자라는 단어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기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그래서 주님은 눈뜬 그 소경에게 너에게 일어난 사건이 어떻게 일어난 사건인지 아느냐?’는 질문을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하신 것입니다유다인들은 그 다니엘서 7장의 人子에 대해 잘 알고 있었거든요.

네가 바로 그 人子의 대속의 죽음에 의해 살아나게 되는 하느님 백성들의 표본이라는 것이지요

 

요한9장39절을 보면 조금 더 분명해 집니다.

(요한9:39) 39 예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당신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오신 인자’ 라 말씀하신 주님께서 당신은 심판을 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십니다그런데 그 심판의 내용이 재미있습니다심판이라 하면 좋은 것이 나빠지고 성한 것이 망가지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주님의 심판의 내용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시는 것입니다어떻게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는 것이 심판이 될까요물론 보지 못했던 자들에게 보게 되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恩惠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러한 은혜가 입혀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대신 심판을 받아야만 합니다바로 인자이신 주님께서 소경들 대신에 심판을 받으시고 소경들의 눈을 뜨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의 내용 중에 보지 못하는 자들이 눈을 뜨는 것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뜬 사건은 예수님의 대속 죽음으로 죽음에서 살아나게 되는 십자가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소명과 영적으로 새로남 뿐아니라 聖化와 榮光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지금부터는 그 성화의 부분과 영광의 부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눈을 뜨게 된 소경은 그 때부터 신앙생활이라는 구원의 여정에 돌입하게 됩니다잘 보시면 처음에는 눈을 뜬 그가 예수님을 가리켜 예수라 하는 그 사람(11)’이라 부릅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는 예수님을 가리켜 예언자(17)’라 부릅니다그런데 33절에 가서는 그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부터 온자’ 라고 고백을 하고 38절에서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눈을 뜬 후 점차적으로 자기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분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그러한 그의 신앙의 성숙은 다름 아닌 고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가 눈을 뜨자마자 유다인들이 몰려와 그의 눈뜸을 시기합니다그리고는 그를 바리사이인들에게 끌고 갑니다그는 바리사이인들과 자기의 눈을 뜨게 해 준 분에 대해 설전을 벌입니다.

 

그는 난 다른 건 모르겠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에는 내가 안보였는데 지금은 보인다는 사실이다라고 하며 

31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안 들어 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2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 준 이가 있다는 말을 일찌기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33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고 충고를 했습니다.

 이제 눈을 뜬 그 소경 이 세상과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는 그들에게서 출교를 당합니다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출교는 가족과 친지와 이웃과의 이별을 의미했으며 직업도 가질 수 없는 잔혹 한 벌이었습니다

출교당한 자와 함께 식사를 하면 그 사람도 죄인으로 정죄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출교당한 자들 중 많은 이들이 자살을 하거나 나그네로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살다가 비참하게 죽어갔다고 합니다그는 눈을 뜨자마자 그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도 외면 아닌 외면을 당해야 했습니다그 부모는 자기 자식이 아침에 눈먼 상태로 나갔다가 저녁에 눈을 뜨고 들어온 것을 분명이 보았습니다그런데 출교가 무서워서 모든 것을 아들에게로 전가시켜 버립니다

우리는 모르니 아들에 게 물어보라고요 아들이 모든 걸 뒤집어쓰고 출교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들은 살겠다는 것이지요.

보세요그냥저냥 동냥이나 하면서 한가롭게 살던 한 사람이 예수를 만나자마자 그의 삶에 폭풍이 몰아칩니다부모에게 버림받고 고향에서 쫓겨납니다그런데 그가 그렇게 쫓겨나서 가게 된 곳이 어디였습니까예수님의 품이었습니다.

 

(요한9:35) 35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쫓겨남과 외면당함의 수난을 통해 예수님을 배우고 자기에게 일어난 일의 진의를 알게 되어 결국에는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하며 내가 믿습니다.라는 성화의 완성의 자리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서정은 하느님의 은혜로 죄인이 구원을 받음에서 믿음 이후 올바르게 사는 삶으로 신령스럽게 됨으로 점진적으로 완성되어져 가는 것이며 그러한 성숙에 긴요하게 쓰여 지는 것이 바로 고난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쫓겨난다는 것이 결국 무엇을 의미합니까세상으로부터 구별된다는 것을 성경이 거룩(separate)’이라 부릅니다

그 말은 다른 말로 이제 눈을 떠 진리를 인식하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하느님나라를 보게 된 이들은 세상과 구별된 삶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적대시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느님 나라에 적합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숙되어지고 양육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따라서 교회의 멤버들 중에 조금 더디게 가는 사람이나 아직 미숙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단죄(斷罪)하거나 가짜로 매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너희 아빠가 누구야이 중에서 골라봐’ 내지는 밥 먹을 때는 쩝쩝 소리 내면 안 된다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것과 똑같이 우매한 짓인 거죠우리는 설사 그가 가짜라 할지라도 끝까지 기다려 주고이해해 주고감싸주고안 아주며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 담긴 마르코복음 8장으로 가볼까요?

(마르8:22-26) 22 예수의 일행이 베싸이다에 이르렀을 때에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대어 고쳐 주시기를 청하였다. 23 예수께서는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라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러자 그는 눈을 뜨면서 '나무 같은 것이 보이는데 걸어 다니는걸 보니 아마 사람들인가 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25 예수께서 다시 그의 눈에 손을 대시자 눈이 밝아지고 완전히 성해져서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26 예수께서는 '저 마을로는 돌아가지 마라하시며 그를 집으로 보내셨다.

 

역시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는 그의 눈을 뜨게 하시는 장면입니다그런데 눈을 뜬 그 소경이 사람들을 보면서 나무 같은 것들이라 합니다주님께서 다시 안수해 주시니까 그가 비로소 만물을 밝히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을 뜨는 것과 눈을 떠서 본 것을 인식하는 작업과의 사이에는 단계가 있으며 그 단계의 과정 간에는 상당한 시간상의 차이가 있다 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은혜로 영의 눈을 뜬 사람이 자기가 보는 것즉 이 세상이 아닌 하느님 나라의 것들을 인식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이 자기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배워서 스스로 믿어주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게 언어도단이지요.

 이 이야기의 배경은 이러합니다예수님께서 칠병이어(七餠二魚)로 4000명을 먹이시자 바리사이인들이 또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그러니까 주님께서 한탄하십니다.

 

(마르8:11-12) 11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하느님의 인정을 받는 표가 될 만한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12 예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가나는 분명히 말한다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

 

12절의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는 말은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죽겠다는 결연한 표현입니다주님께서 이 세대에게는 절대로 하느님이 표징을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선포를 하시는 것입니다표징이 뭡니까단순한 기적이 아닙니다

표징은 십자가 복음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주님은 이미 충분하게 그러한 표징들을 보여주셨습니다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표징들을 단순히 신기한 징조의 수준으로만 보았던 것입니다그렇게 죄인들은 표징조차도 분간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표징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그래서 주님은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표징은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인간의 구원은 무엇을 보고경험하고 배워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의 전가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기적을 한번 멋지게 보여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요아닙니다죄인들은 하느님의 은혜로 눈이 뜨여지지 않으면 그 무엇으로도어떤 방법으로도 하느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주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세대에게 표적을 보여주는 것으로 구원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탄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셔서 제자들 더러 바리사이인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그 말씀은 조금 전에 바리사이인들이 예수님에게 또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하신 것을 경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룩이라는 것은 해로운 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표징을 보여주면 믿을 수 있다는 바리사이인들의 교만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누룩 이야기를 하시니까 자기들이 빵을 한 개밖에 안 가져 와서 나무라시는가 보다 하고 자기들끼리 수군 거렸어요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하시면서 그 소경을 고쳐 주시는 사건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나 칠병(七餠이어로 많은 군중들을 먹이신 것은 바리사이인들이나 제자들의 생각처럼 이제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살게 해주실 메시아 왕국의 전주곡이 아니라 참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만 영적 굶주림이 해결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시려 했던 것인데 제자들이 여전히 이 땅의 빵으로 다투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아니 우리 교회에게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데 역시 침을 뱉어서 그 눈에 바르시고 (그 죄인과 연합 되셔서그 눈을 고쳐 주십니다그런데 처음에는 그 소경이 잘 보지 못합니다사람을 보고도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간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안수해서 또 치료해 주십니다그제 서야 잘 보이게 된 것입니다바리사이인들은 그렇다 치고 눈을 떴다고하는 주님의 제자들도 바리사이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에 주님께서 하나의 예()를 들어서 그들에게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괜찮다는 것이지요눈을 뜬 자들도 실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금방 다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렇게 우매하고 더딘 제자들의 영적 진보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신다는 것을 메시지로 주시는 것입니다그리고 반드시 그들을 환하게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것처럼 진리 앞에 세우실 것을 천명하시는 사건입니다.

그처럼 하느님의 열심에 의해 눈을 뜬 성도들은 실수와 넘어짐을 반복하면서 점점 오롯하게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배워가는 것이며 복음에 대해 깊이 이해를 하게 되고 비로소 주관적 믿음을 토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믿어서 구원 받았다는 말이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이사53:1-11) 1 그러니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 소식을 누가 곧이들으랴야훼께서 팔을 휘둘러 이루신 일을 누가 깨달으랴? 2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늠름한 풍채도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3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4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5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6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 멋대로들 놀아났지만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7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8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 자가 어디 있었느냐그렇다그는 인간사회에서 끊기었다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9 폭행을 저지른 일도 없었고 입에 거짓을 담은 적도 없었지만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하고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다. 10 야훼께서 그를 때리고 찌르신 것은 뜻이 있어 하신 일이었다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그리하여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오래 살리라그의 손에서 야훼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11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떠오르는 빛을 보리라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하리라.

 

여기에 하느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일을 시키신 하느님과 그 일을 수행하신 예수님 말고 다른 등장인물이 있나요우리는 6절의 말씀에 단 한번 나옵니다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 멋대로들 놀아났지만 그게 우리가 한 것이고 나머지는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하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지식과 이성과 경험을 통해 예수님을 확실히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에 대해 온전히 다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는지어떻게 그 분이 물위를 걸으셨는지어떻게 그 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는지언제 어떻게 그 분이 천지를 창조하셨는지 수많은 회의와 의심 속에서 믿음의 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 의심이 들기도 하고 때로 회의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뜹니다그러나 그 아기가 그 뜬 눈을 가지고 무언가를 보게 되는 것은 며칠이 걸립니다뿐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알게 되는 것은 평생이 걸리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듣는 이 마이크로폰도 실은 볼 수 없는 빛을 이용한 것이고 라디오나 티브이 방송도 볼 수 없는 빛을 이용하는 것입니다다른 한편우리 눈에 빛이 보인다고 해서 다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밤에 밖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면수많은 별들이 반짝입니다그 별빛을 보고 우리는 "저 멀리에 어떤 행성(planet)이 있겠구나!"라고 추측합니다만천문학자들 (astronomers)의 말에 의하면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별들 중 적지 않은 별들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행성으로부터 우리 지구까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그 행성에서 출발한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올 때가 되면 이 미 그 행성은 소멸되어(destroyed)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우리 눈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과연무엇이 허상(phantom)이고 무엇이 실상(reality)입니까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입니까우리 눈의 능력이 이렇게 제한된 것이라면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실상과 허상을 가려낼 수 있단 말입니까과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이 옳은 태도입니까그리고 눈에 보인다고 해서 존재 한다고 단정하는 것을 옳은가요?

그러니까 우리는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 더 많으며 보고 있는 것이 실상인지 허상인지도 잘 알 지 못하는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보고 있는 실상이 담고 있는 내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인식하는 데에도 아주 긴 시간이 걸립니다하물며 그것이 영적 인 것일 때는 어떠하겠습니까?

 

구원의 과정이 그러합니다하느님을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 하느님의 성령에 의해 눈을 뜨게 됩니다그제서야 그의 눈과 귀가 열려 하늘의 비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이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보이는 하느님 나라의 상을 또렷이 보기위해서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며 그 과정 또한 아주 서서히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뉘우치고 의심하며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경험하며 알아가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진보가 이렇게 더딘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눈을 뜬 후에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 분을 믿고 싶었음에도 그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열심에 의해 구원을 얻은 후에 예수님에 대해 너무 모를 수 있습니다그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확신이 가능할까요그렇지 않습니다그렇다고 그 사람이 구원을 못 받은 것이 아닙니다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님을 배우고 알아가게 되는 것이며 결국에는 내가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9:38) 38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의 예화(例話)들을 잘 구별하는 것입니다하나하나의 사건들을 대할 때 그 표면적인 사건에만 머물지 말고 그 속에 상징을 담아 전체 구원의 내용을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약도(略圖)속에 그려져 있는 각 지점들은 하나의 상징적 표시일 뿐입니다그리고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의 거리 또한 실제 거리의 몇 백분의 일혹은 몇 천분의 일에 해당하는 축약된 것입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가 하면 소경이 눈을 뜨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내가 믿습니다.’라고 한 것은 그 고백이 나오게 되는 순서와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지 그 고백까지의 시간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내가 믿습니다.’라는 참 고백이 나오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의 날 때부터 눈이 먼 소경이 눈을 뜨고 결국에는 내가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은 우리의 시작과 결과에 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자기를 찾아오신 주님에 의해 눈을 뜨게 된 신자가 그에게 맡겨진 신앙의 여정을 통과하여 두 번째 주님을 만나는 그 부활과 영광의 자리까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전13:12)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소경이 두 번째 예수님을 만나 내가 믿습니다.’하고 그 분을 온전히 믿은 사건은 바로 이 영광의 자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열심에 의한 객관적 믿음을 부여받아 내가 믿습니다.’라는 온전한 고백을 하는 주관적 믿음의 완성의 자리는 우리 주님의 재림 때다시 말해 우리 몸의 구원이 완성되고 우리의 몸이 새로운 것으로 부활이 될때인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신앙고백을 하겠지만 우리가 이 죄의 몸에 갇혀있는 동안에는 그 고백이 불완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성경을 통하여 또한 인생에 닥쳐오는 여러가지 사건들과 경험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배우고하느님 나라를 배우며죄로 인해 소경된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날 때부터 소경된 자리에서 누가 어떠한 일을 통해 우리를 건져내었는지를 배우며 내가 믿습니다.’라는 온전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로 한발 한발 걸어가면서 참된 주님의 종으로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세상으로부터의 출교와 외면과 공격과 위협이 수단과 방법으로 동원되는 것입니다그래도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자로서의 삶을 기꺼이 살아내며 오로지 목표는 내가 믿습니다.’라는 온전한 고백을 하는 완성된 하느님의 백성의 자리여야 합니다.

 

 


  

20260315일 일요일

[사순 제4주일] (김재형 베드로 신부)

 

태어날 때부터 눈먼 이를 낫게 하신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에는 참된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여러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웃 사람들, 바리사이들, 유다인들, 심지어 눈먼 이의 부모까지 예수님의 능력과 그 기적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눈먼 이가 볼 수 있게 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데, 정작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이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왜 진실 앞에서 그들의 시야가 가려졌을까요? 그 까닭은 그들이 신앙인의 눈으로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눈에는 사랑과 연민이 깃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치유의 기적 앞에서 사랑의 눈길 대신 냉소적인 눈길을 보냈고, 누구 하나 기쁨으로 축하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앞을 보게 된 이를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가 눈을 뜨고 처음으로 바라보게 된 세상은 축복이 아니라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흘러야 할 눈에서 슬픔의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다가오십니다.

보지 못하는 순간에 보게 해 주시고,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해 주시는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또한 대부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은총으로 새롭게 눈을 뜬 이가 될 수도 있고, 신앙인의 눈으로 보지 못한 채 편견과 왜곡의 눈길에 사로잡힌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기억합시다. 사랑과 연민이 깃든 신앙인의 눈으로 주님을, 가족을, 이웃을 바라봅시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사순 제4주일]태생 소경 치유 (요한9,1-41)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허상입니다. 

 

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 하느님의 일은 그분의 뜻(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6,38-40)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요한17,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태생소경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곧 어둠인 그에게 빛(생명)을 주시려는 그 하느님의 자비, 사랑을 드러내시기 위한 그 하느님의 일을 예수님께서 오늘 하십니다.

 

4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 낮은 날, 빛, 시간 같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낮, 그 빛의 일을 하실 것인데 밤에는 곧 빛이신 당신의 죽음을 말씀하심 인데~ 그 어둠에는 아무도 그 빛(생명)의 일을 못한다 하심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 모든 어둠들에게 빛(생명)을 주시기 위한 대속의 죽음, 그 사랑입니다.

 

(요한1,4-5)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 어둠의 빛으로 죄인들의 생명으로 오신분, 다시 죄인들의 속죄제물로 오셔서 그 대속의 죽음으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그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못 알아보는 소경입니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 인간은 낮, 빛이 없으면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모두 그 태생소경입니다. 그렇듯 우리의 구원의 빛,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 보는 것, 소경입니다.

 

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에 숨(생명)을 불어넣으시어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창세2,7) 그런데 그 사람이 뱀의 유혹으로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 그 나무하나로 그 생명나무를 몰라보는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 땅(흙, 사람)에 당신의 입에서 나로는 침(말씀-숨)으로 재창조를 하십니다.

소경(어둠)에게 빛(하늘의 생명)을 주는 그 하느님의 일을 파견 받으신 예수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39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 에덴의 선악의 나무를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 그 생명나무 하나로 못 보는 이들이 보도록, 또 쓴물(악)을 위해 그 쓴물에 빠진 그 나무하나의 희생(선) (탈출15,25) 곧 십자나무의 대속 그 구원의 빛이신 주님을 몰라보는 이들이 볼수 있도록, 그래서 하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선과 악의 그 두 나무로 보고, 그 선악의 법을 빛으로 보면서 잘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진짜 소경임을, 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구원이 없음을 알게 하시려 오셨답니다.

 

40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4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 성경을 도덕과 윤리의 그 선악의 나무(책)로 보고 신앙을 산다면 그 선악으로 죄는 그대로 남게 됩니다. 사람은 빛이 없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존재라 했습니다.

그 사람의 구원은 대속의 그리스도를 참 빛으로 보고 받아드렸을 때 이루어집니다.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마태26,14-27.66)26.03.23조회 16[사순 제5주일]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요한11,1-45)26.03.18조회 14[사순 제4주일] 태생(胎生) 소경 치유 (요한9,1-41)26.03.11조회 18[사순 제3주일] 영원한 생명의 샘물 (요한4,5-42)26.03.03조회 14[사순 제2주일] 거룩한 변모(變貌) (마태17,1-9)26.02.26조회 16[사순 제1주일]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마태4,1-11)26.02.19조회 13[연중 제6주일] 율법의 완성 (마태5,17-37)26.02.12조회 13[연중 제5주일] 세상의 빛 (마태5,13-16)26.02.06조회 16[연중 제4주일] 행복하여라! (마태5,1-12ㄴ)26.01.30조회 11[연중 제3주일(말씀 주일)] 나를 따라오너라. (마태4,12-23)26.01.23조회 11[연중 제2주일]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1,29-34)26.01.16조회 11[주님 세례 축일]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마태3,13-17)26.01.09조회 11[주님 공현 대축일] 동방박사 방문 (마태2,1-12)26.01.03조회 14[성가정 축일] 나자렛 사람 예수! (마태2,13-15.19-23)25.12.24조회 11[대림 제4주일] 예수 탄생예고 (마태1,18-24)25.12.19조회 11[대림 제3주일] 오실 분 (마태11,2-11)25.12.12조회 66[대림 제2주일] 회개하여라 (마태3,1-12)25.12.05조회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