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01일 일요일
[연중 제4주일] 행복하여라! (마태5,1-12ㄴ)
제1독서<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라.>(스바2,3; 3,12-13)
3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3,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화답송>시편146,6ㄷ-7.8-9ㄱ.9ㄴㄷ-10ㄱㄴ(◎마태5,3)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제2독서<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5,1-12ㄴ)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연중 제4주일 제2독서 (1코린1,26-31)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28~29)
코린토1서 1장 27절과 28절에는 완전히 상반되는 대조적 표현이 선명하게 대구를 이루고 있다. 우선 27절에는 '지혜로운 자들'과 '어리석은 것', 그리고 '강한 것'과 '약한 것'이 각각 대조되고 있다. 그리고 28절에서는 '비천한 것'과'천대받는 것', '없는 것'과 '있는 것'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반복 대구법을 사용한 문장 기교는 코린토 교인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고자 하는 사도 바오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앞의 27절의 내용을 이어받아 28절에서도, 코린토 교회가 세상에서 비천하고 천대받고 없는 자들로 구성된 교회라고 지적하면서,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선택하셔서 '있는 것들'('타 온타'; 'ta onta'; the things that are)을 무력하게 만드신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무력하게 만드시려고'로 번역된 '카타르게세'(katargese)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치게 하다', '끝내다'라는 뜻을 지닌 '카타르게오'(katargeo)의 가정법으로서 목적절을 이끄는 접속사 '히나'(hina)와 더불어 하느님께서 비천하고 천대받고 없는 것들을 택하신 목적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그것은 있는 자들, 유력한 자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신분 따위는 구원을 얻는 데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로 역사 가운데서도 실증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신명7,7) 그분이 보내신 독생성자 예수님께서도 당시 종교 율법적인 사회에서 소외되고 단죄받던 세리들과 죄인들을 선택하셨다.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무시하는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전혀 무능력한 존재들, 곧 인간의 시각으로는 마치 없는 것 같이 무가치해 보이는 자들을 선택하셔서 스스로 능력있다고 여기는 교만한 자들을 무력화 시켰던 것이다.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과 유능한 자들과 가문 좋은 자들은 앞의 27절에서 '부끄럽게 하시려고'란 표현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미 하느님께서 사회적으로 그들보다 못한 자들을 부르신 사건들을 통하여 굴욕을 당했다.
그러나 28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제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력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무력하게 만들다'는 말은 종국적인 멸망의 심판의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는 말로서, 결국에는 그들이 영원히 멸망을 받아 구세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29)
'이것은 ~ 하게 하셨습니다' 로 번역된 '호포스'(hopos)는 '~하기 위하여', '~할 목적으로'(so that ~may)라는 뜻을 지닌 접속사로서, 29절이 앞의 26~28절에서 언급한 하느님의 선택하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여기서 '자랑하지'로 번역된 '카우케세타이'(kauchesetai)는 '자랑하다'라는 뜻을 지닌 '카우카오마이' (kauchaomai)의 부정 과거형으로서, 동사를 부정하는 부정어 '메'(me; no)와 더불어 사용되어 어떠한 자랑도 있을 수 없음을 명확히 밝혀준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인간도'에 해당하는 '파사 사륵스'(pasa sarx)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도 예외없이' 란 의미이다.
26절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코린토 교인들은 인간적으로 보잘것 없는 처지 가운데서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랑을 일삼으며, 하느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1코린1,12; 3,21).
자신들이 받은 은사들을 잘못 평가하여 이것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영적 교만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이 이런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그들 자신의 겉모습이나 지혜와 능력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하느님의 주도적 부르심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것, 그리고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거리끼거나 미천하게 여기는 십자가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은 철저하게 사람들과 사람들의 세상적 지혜를 자랑했다(1코린3,21; 4,7; 2코린10,17). 이러한 형태가 바로 '코린토 교회 내부에서' 횡행했던 것이다.
그들은 세상과 동일하게 세상의 인본주의적 지혜를 자랑하고, 그런 지혜를 기준으로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던 복음 증거자들을 평가함으로써 교회내의 분열과 분쟁을 유발시켰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당면 문제에 대해서 인간의 지혜와 질적으로 다른 하느님의 탁월한 지혜를 제시하고, 그 지혜가 사실상 세상의 지혜를 무효화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코린토 교인들의 잘못된 사고 방식을 교정하고자 한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은 하느님 앞에서(before)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in) 자랑해야만 한다(1코린1,31).
[연중 제4주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신약 성경에서 ‘행복하다’ 또는 ‘행복하여라’라는 표현과 함께 전해지는 말씀은 모두 행복 선언에 속합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이런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군중을 향하여 말씀하신 마태오 복음의 내용은 운문 형태로 전해지며 ‘참 행복’ 선언으로 불립니다.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 쉽지 않아 대부분이 구전으로 전해지는 고대 사회에서 운문 형태는 기억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참 행복 선언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였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합니다.
복음서에서 참행복으로 불리는 본문은 두 가지입니다.
‘진복팔단’으로도 불리는 오늘 복음과 함께 루카 복음에서도 행복 선언을 찾을 수 있습니다(루카 6,20-23 참조).
두 행복 선언이 강조하는 점은 조금 다르지만 공통된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굶주리고 (의로움에) 목마른 사람들과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주제는 공통적으로 행복 선언의 끝에 자리하면서 시대 배경을 잘 보여 줍니다.
행복 선언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미래에 올 보상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행복 선언은 위로의 말씀이면서 신앙인들을 향한 윤리적인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게 합니다.
만일 지금 그렇지 못하다면 현재의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도 신앙인들의 몫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4주일 복음 (마태5,1-12ㄴ)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11~12)
마태오 복음 5장 11~12절은 10절에 나오는 여덟번 째 행복의 보충 내용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3절~10절까지의 전체 팔복(八福)의 보충 내용으로서의 성격이 있다.
특히 마태오 복음 5장 10절의 '의로움 때문에'에 해당하는 '헤네켄 디카이오쉬네스' (heneken dikaiosynes; for righteousness)와 비교할 때, '~때문에', '~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니는 '헤네켄'(heneken; for)은 동일하고, 다만
'의로움' (디카이오쉬네스;dikaiosynes)이 '나'(에무; emou; me)로 바뀌어진 것만 차이가 있다.
사실 마태오 복음 5장 6절과 10절에 나오는 '의로움'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쉬네' (dikaiosyne; righteousness)는 윤리적인 의로움인 동시에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종교적인 의로움이다.
즉 죄인을 심판하고 멸하시며 의인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의 기준인 '공의'(公義)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 5장 10절의 '의로움'은 6절보다 종교적인 측면이 더 강한 의로움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느님의 의로움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의로운 삶은 바로 '의로움', '의'(義)의 전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며,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다는 뜻과 동일한 것이다.
한편 마태오 복음 5장 3~10절까지 나오는 팔복(八福)의 서술에서는 모두 '그들'에 해당하는 '아우토이'(autoi; they)인 3인칭 남성 복수 주격 인칭대명사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5장 11절과 12절에서는 '너희'에 해당하는 '휘마스'(hymas; you)라는 2인칭 복수 대명사가 나온다.
이렇게 인칭이 바뀐 것은 지금까지 말했던 객관적인 진리를 이제는 예수님 앞에 있는 제자들에게 적용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마태오 복음의 일차적 독자였던 초대 교회 시대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현실, 즉 '모욕과 박해를 당하고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미래에 주어질 하느님의 상을 바라보면서, 결코 좌절하지 말 것을 교훈하기 위한 목적도 들어 있는 것이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당시 유다인들로부터 하느님의 거룩함을 훼손시키는 신성 모독자로 취급되어 극심한 박해를 받았고, 또한 로마 지배 세력으로부터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반국가사범이란 죄목으로 잔인하게 처형당했으며, 일반 믿지 않는 대중들로부터는 자신들의 믿음 생활 때문에 질시받고 부도덕한 자들로 매도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마태오 복음 5장 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난을 삼중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셨는데, 이러한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 사람들은 실의에 빠져 애통해할 수 밖에 없기에, 이제 마태오 복음 5장 12절에서 두 번 거듭 명령형을 사용해서 이러한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을 제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기뻐하고'에 해당하는 '카이레테'(chairete; rejoice)의 원형 '카이로' (chairo)는 '기뻐하다', '안녕하다'는 뜻으로서,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며 행복에 겨운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즐거워하여라'에 해당하는 '아갈리아스테'(agalliasthe; be glad)의 원형 '아갈리아오'(agalliao)는 '영화롭게 하다', '높이다'는 뜻이 있는 '아갈로'(agallo)와 '뛰다', '솟아나다'는 뜻이 있는 '할로마이'(hallomai)의 합성어로서 밖으로 넘쳐나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희열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특히 이 두 단어가 모두 현재형으로 쓰인 것은 지금 극한 고난의 상황에 있어도 그 기쁨이 넘쳐나야 함을 보여 준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박해는 절망과 고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받게 될 영광과 기쁨의 약속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12절에서 '상'으로 번역된 '미스토스'(misthos; reward) 는 '품삯', '임금', '보상'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박해를 이겨낸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이 상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기준이 아닌 당신의 기준에 다라 각자에게 적절한 상을 주신다(마태20,1~16; 루카17,7~10).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에게 '상이 크다'는 약속에서 '크다'에 해당하는 '폴리스'(polys; great)는 크기가 크다(large)는 뜻이 아니라 양이 아주 많은(much) 것을 뜻한다.
이것은 천국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상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 지상의 어떤 보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갖가지 보상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믿는 이들은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미래에 종말론적으로 주어질 이 상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 믿는 이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가 추가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과거에 예언자들이 하느님을 위해 박해받았던 사실을 회상케 하며, 지금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자들도 '나 때문에' (마태5,11) 즉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함을 보여 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하느님을 동등한 위치에 놓으시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에 예언자들이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듯이, 이제는 제자들이 하느님과 동일한 분이신 그리스도 당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여 헌신할 것을 촉구하시는 것이다.
2026년 02월 01일 일요일
[연중 제4주일]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선뜻 다가오지 않는 말씀, ‘행복 선언’이 선포됩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며, 박해를 받는 이들이 행복하다는 주님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 고난과 슬픔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의미가 고귀할지라도, 고통은 여전히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실까요?
이 물음을 함께 묵상하기 위하여 ‘3고’라는 신앙 여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3고’는 바로 ‘고통–고독–고상(고귀함)’입니다.
사람은 평안할 때는 기도조차 쉽게 잊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고통이 닥치면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시련 앞에서는 무력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고독을 마주하게 되지요.
이 고독은 우리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근원적 자각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독의 시간을 지나면서 사람은 조금씩 고귀함과 깊이를 배우게 되며, 이 여정을 통하여 참된 기도와 성숙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과 고독을 통하여, 진정 당신을 찾는 고귀한 삶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스바 3,13)는 바로 이러한 여정을 충실히 걸어간 성인들의 상징입니다.
우리 또한 이 시대의 ‘남은 자’로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행복 선언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신앙인의 ‘3고’를 함께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정을 끝까지 걸어가는 이들에게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2).
(진슬기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연중 제4주일]
행복하여라
(마태5,1-12ㄴ)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그)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 직역하면 그 산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주셨던 시나이 산에서의 그 말씀(계명)을 다시 주시려는 것이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13,16)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 사람의 눈과 귀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 뜻으로 알아듣지 않고 하느님의 뜻으로 알아듣는 것이 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령께 의탁해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가난- 풋토코스(해결 방법이 없는 가난) 페네스(해결방법이 있는 형제적 가난) 여기서는 풋토코스다. 그러니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분의 뜻을 깨닫고 나의 구원에 나의 그 무엇도 보탤 수 없음을, 곧 땅의 모든 행위가 가치 없음을 아는 사람들, 그들이 하늘나라를 받아 들여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 되는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 *슬퍼하는- 판테오(파스카)라는 뜻으로 현재형이다. *위로- 파라칼레오(초청을 받다) 그러니까 파스카로 청을 받아 그 파스카의 어린 숫양의 죽음으로 내가 죽어야, 슬퍼야 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곧 앞에서 묵상했듯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구원에 보탤 수 없음을 아는 그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버리고, 죽이는 그 슬퍼함으로 속죄 제물인 어린양(예수)을 계속적으로 먹어야 복이라는 말씀이다.
(요한6,53-54)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 요즘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 새 계약이라 배웠음을 기억해야한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사람의 것(온유)은 구원에 보탬이 될 수 없음을 아는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온유하심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온유의 어린양,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그 온유를 담은 온유한 사람(그릇)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유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2코린10.1) 1 여러분과 얼굴을 마주할 때에는 겸손하고 떨어져 있을 때에는 대담하다고들 하는 나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직접 권고합니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 땅(사람)의 의로움이 구원에 보탬이 될 수 없음을 알고 하늘의 의로움을 갈망하는 사람은,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구원의 의로움인 십자가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흡족해진다.
(로마3,24)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 마음이 가난해서 곧 자신을 비워(버림, 부인) 자비의 주님을 받아들인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유다1,21)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예레17,9)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히브10,14.22)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 하늘의 평화를 내가 먼저 받아 이웃에게 전해주는 그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다. 땅의 평화는 순간적이며 영원하지 못함을 아는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받아들이고 전한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 욕심, 탐욕, 그 죄악 때문에 평화를 누리지 못하며 하늘의 평화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그 세상의 것으로 평화를 바라며 만족하려는 그 사람들의 생각, 욕망을 부수시고 하늘의 참 평화를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
(마태10,34)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땅, 세상, 인간들, 그 스스로의 의로움은 구원의 가치, 능력이 없고, 하늘의 의로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가 주는 의로움만이 구원의 힘, 진리이니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아야 구원될 수 있다고 말하면, 전하면 박해와 핍박을 받는데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 사람들의 모욕, 박해와 사악한 말을 받아보지 못했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뜻을 만족시키는 말을 했다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2코린1,3-5)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 우리의 환난, 그 안에는 하느님의 위로가 들어 있음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당신으로 행복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