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11일 일요일
[주님 세례 축일]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마태3,13-17)
제1독서<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이사42,1-4.6-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화답송>시편29,1ㄱ과 2.3ㄱㄷ과 4.3ㄴ과 9ㄷ-10(◎11ㄴ) ◎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 하느님의 아들들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 주님께 드려라.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
○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 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 주님의 소리는 힘차고, 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 ◎
○ 영광의 하느님 천둥 치시네. 그분의 성전에서 모두 외치네. “영광이여!” 주님이 큰 물 위에 앉아 계시네. 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
제2독서<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사도10,34-38)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37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태3,13-17)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 세례 축일 제1독서 (이사42,1-4.6-7)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1)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2~4)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6~7)
'위로의 책'(이사야서 40~55장)의 첫 대목은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40,1)로 시작된다. 이 시작말은 히브리 예언 역사의 전환점을 알리는 말씀이다.
이전의 예언자들은 전쟁과 기아, 역병으로 대표되는 징벌의 신탁을 선포했으나, 이후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다.
바빌론 유배가 끝났음을 알리는 이사야서 40장 2절은 후반부에서 역사적 상황을 명시하는 유일한 곳이다.
'위로의 책'(40~55장)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네 개의 노래로 되어있는 '야훼의 종'(Yawhe ebed; 야훼 에베드) 또는 '주님의 종'에 관한 신탁이다(42,1-9; 49,1-7; 50,4-11; 52,13~53,12).
여기서 주님의 종이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비빌론을 멸망시키고 유배자들을 풀어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숱한 고난을 이겨낸 이상적 이스라엘 백성(이사41,8~10)
또는 소수의 경건한 남은 자들, 모세, 이사야, 예레미아와 같은 예언자, 요시아, 여호야킨, 즈루빠벨 같은 유다 왕족, 아니면 무명의 제2 이사야서 저자 등 다양한 대상이 제시되었지만, 본문 자체로는 확실하게 규명하기 힘들다.
또한 네 노래가 동일한 대상을 묘사하는지, 아니면 저마다 다른 대상을 묘사하는지도 판가름하기 어렵다.
신약 성경 저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주님의 종'으로 이해했다.
우리는 일단,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유다인들을 풀어 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로 '주님의 종'을 이해하고, 구약은 신약의 예표요 암시요 약속이므로, 이 '주님의 종'을 '예수님'께 적용하기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북방에서 새로운 정복자를 일으켰고, 이 좋은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할 사자(使者)를 파견하라고 이스라엘에 명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셨다(이사40,1~9).
그 다음에 하느님께서는 이 정복자를 당신의 종으로 소개하신다. 즉 당신의 천국 법정의 판결을 민족들에게 집행할 '주님의 종'이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40,1)
그는 이 일을 조용하고 은은하고 섬세하고 온화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수행할 것이다. 그는 이 일이 '세상에' 이루어질 때까지, 지치거나 기가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42,2~4)
하느님은 이 종을 불러 그를 '백성을 위한 계약과 민족들의 빛'으로 임명하신다. 그는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풀어 줄' 것이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42,6~7),
이사야서 42장 1절 이하에서 천국 법정의 사자로 '주님의 종'이 소개되었다. 그는 천국 법정에서 내려진 판견들을 이방 민족들에게 통지하고, 세상에서 그 판결들을 이행할 자이다.
우상들과 우상 숭배자들의 주장을 심의한 재판에서 드러난 이 공의는 이사야서 40장1~5절과 9~10절에서 예고된 공의다.
이사야서 42장 1~4절에서 '공정'(mishipath; 미쉬파트)라는 단어는 3번 나오는데, 이 단어는 정관사가 없을 떄 '공의'(justice)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훨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 단어는 '증인들 앞에서 천국 법정에 의해(즉 주님에 의해) 내려진 판결'을 의미한다. 이 판결은 정책의 기초가 되어야 하며, 관심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키루스는 이 판결을 실행하기 위한 '주님의 종'(사자; 대행자)으로 선택받았다. 주님은 당신의 종(사자)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시고, 그를 '붙들어 주신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영을 그에게' 주셨다(이사40,1).
이 '주님의 종'이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태도의 성실성은 이사야서 40장 2~3절에 잘 표현되고 있다.
이 판결(공정; 정의)은 민족들(40,1)과 세상과 섬들(40,4)에 반드시 알려지고, 확립되어야 한다.
여기서 섬들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리라는 주님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예루살렘의 이웃들을 말한다.
'민족들'과 '세상'과 '섬들'이라는 말은 '주님의 종'의 권위가 다윗이 행사한 권위와 같이 더 넓은 팔레스티나에서 행사될 것임을 나타낸다.
이사야서 40장 4절이 '그의 가르침'에서 '가르침'(교훈; torah; 토라)이라는 단어는 후에 모세오경을 나타내는 전문적인 용어가 되었다.
토라(모세오경)는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이전에 에즈라에 의해 바빌론에서 완성되고, 복사되고, 가르쳐지고, 권위가 주어졌다.
이사야서 42장 6~7절은 주님께서 키루스에게 직접하시는 말씀이다.
'부르다, 붙잡다, 빚어 만들어 되게 하다(세우다)'라는 말은 주님의 종인 키루스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나타낸다. 주님은 궁극적 목표(구원)에 있어 키루스의 후원자이시다.
키루스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그는 '백성을 위한 계약'과 '민족들의 빛'으로,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백성들에게 통치와 공의와 질서를 베풀 책임이 있다.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풀어 주는 일'은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된 그의 역할이다. 이스라엘은 해방을 받고, 복권되어야 하며, 그들의 성전이 있는 성(城)은 재건되어야 한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이다 .
주님이 세례 받으셨을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들려온 말씀이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1,11)이다.
오늘 독서의 이사야서 40장 1절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의 말씀이 복음의 말씀안에서 예수님의 세례 사건에서 실현되고 성취된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시작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공적 활동 (공생활)을 시작하신다.
죄없으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단순한 겸손의 모범도 아니고, 요르단 강(자연수)을 거룩하게 축성하시기 위해서도 아니다.
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요한14,6) 예수님께서는 세례가 인간 구원의 절대 필수 조건임을 계시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주님의 간택을 받아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주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세례 때, 죄와 죄 짓게 하는 악의 세력(사탄)을 끊어 버리고, 신앙의 진리대로 살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니 다시 되찾은 '주님의 자녀'라는 품위와 지위와 신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이 '거룩한 은총의 품위'를 잘 지켜 나가자.
[주님 세례 축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메시아로서 그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물로 베푼 세례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주실 세례와 비교됩니다.
세례(洗禮)는 회개(悔改)를 의미합니다.
공관 복음서가 모두 이러한 의미의 세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태오 복음서도 특별히 의로움을 강조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이어 주는 주제는 의로움입니다.
오늘 독서인 이사야서는 희망에 찬 표현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공정을 세울 것이라는 내용이 반복됩니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대화는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것을 주저하는 세례자 요한과,
그것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의로움은 마태오 복음서가 강조하는 특징적인 낱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을 듣는 군중에게도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뛰어넘도록 요구하시고(5,20 참조),
요한이 가르치던 의로운 길을 걷도록 요청하시며(21,32 참조),
하늘나라 또한 의로움과 관련되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5,10 참조).
의로움은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면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통하여 모든 의로움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분의 길은 이렇게 공적 활동의 시작에서부터 하느님의 의로움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도 여기에 화답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비움과 낮춤으로 살아내는 세례 축성 ♣
예수님께서 받은 세례란 하느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음을 확인받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축성 받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신원을 드러낸 또 다른 공현인 셈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세례를 받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예언적 선포입니다.
주님의 세례는 그분의 공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려주며, 우리 세례를 계시해 주는 성령의 장엄한 축복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새로운 세례의 신비를 드러내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주님의 종 그리스도에게 기쁨의 기름을 바르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감사송)
주님의 세례를 기념하면서 우리 자신의 세례 축성의 의미도 생각해봐야겠지요. 우리가 받은 세례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남의 표지이며 주님의 영으로 거듭나야 함을 말해 줍니다. 세례로 그리스도와 일치되고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할 때 행복한 존재가 됩니다. 세례는 바로 이러한 행복의 통로인 셈입니다.
그러나 세례 자체가 구원을 위한 충분조건이나 행복의 보증수표일 수는 없습니다. 세례 받은 자는 빛 자체이신 분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빛의 자녀’(1테살 5,5)로서 ‘세상의 빛’(마태 5,5)이 되어 “모든 의로움‘(마태 3,15)을 이루어야겠지요. 그렇다면 세례의 약속을 한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한 길은 무엇일까요?
‘빛의 자녀’가 되려면 고난 받는 주님의 종처럼 살아야 합니다. 봉사하고 희생하는 충실한 종이 되는 것이지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성실하게 공정을 펴나가는 것”(이사 42,3)이지요. 어디서나 희망을 불러일으키며,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하느님의 ‘모든 의로움’을 실현해나가는 것입니다.
나아가 모든 이의 빛이 되어,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어야”(42,7) 할 것입니다. 세례 받은 우리의 소명은 해방의 도구가 되고, 생명의 기쁨을 전하여 가난 가운데 하느님의 풍요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희망과 자유의 복음이 되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지요.
또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의 ‘신적인 낮추심’을 혼으로 지니고 살아내야 합니다. 모두를 품기 위한 ‘비움’, 모두와 사랑과 생명을 주고받기 위한 ‘낮춤’을 사는 것이 세례 받은 이들의 몫입니다. 주님을 믿는 이들은 그렇게 비움과 낮춤의 자세로 거룩한 순례를 이어갑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각자의 처지에서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점점 메말라가는 이 시대에 자비를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연민과 온정을 ‘모든 사람들’과 아낌없이 나눔으로써 주님의 얼굴을 드러내야겠지요.
우리 모두 고통과 갈등으로 가득 찬 삶의 현실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녹여 세상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거룩한 세상이 되도록 힘쓰는 오늘이길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 다시 한 번 세례 때의 약속을 회상하면서,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빛으로 오신 그분께 찬미를 드리도록 합시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2026년 01월 11일 일요일
[주님 세례 축일] (이철구 요셉 신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것도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라고 말하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받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3,15)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에서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3,17)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도 듣고 싶은 말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이마에 물을 맞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마에 바른 축성 성유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징표이며, 흰옷은 깨끗해졌다는 외적 표지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내게 숨을 불어넣으시어 생명을 주셨듯이 세례를 통해서 다시 영원한 생명을 향하게 하십니다.
우리 함께 그때의 마음, 세례 때의 첫 마음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그때 내가 하였던 기도와 청원과 다짐은 무엇이었는지요?
아마도 순수한 영혼의 신앙 고백이며 사랑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그때의 첫 마음을 떠올려 보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신앙과 사랑을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주님 세례 축일] 예수님 세례
(마태 3,13-17)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 세례는 죄인들이 받는 것입니다.
1베드3.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 그런데 왜 바른 마음(양심)이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세요? 예수님 그 바른 양심을 모든 죄인들의 마음에 심어주시려, 그들의 죄를 대신 받으심입니다.
히브 10,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 우리는~ 죄의 존재와 의인 예수님이 이루시는 의로움 곧 모든 죄를 없애시기 위한 대속의 십자가 그 때에 이루어질 모든 의로움을 위한 지금 받는 그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이사45,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25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으리라.”
= 주님께만 있는 의로움이~ 십자가, 그 때에 그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 죄값을 다 치루신, 그 ‘다 이루어졌다’하신 그 승리입니다. 그 승리를~ 죄인들이 거져 받는 것이 구원에 필요한 의로움입니다.
로마3,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 세상 물, 곧 죄의 그 쓴물에 빠져 죽으시고 올라오시니 하늘이 씻겨져, 열립니다.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약속, 곧 하느님의 규정, 법규(탈출15,25)의 완성을 미리 보여주심입니다.
루가23, 45 해가 어두워진 것이다. 그때에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열렸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직역하면 이것이 사랑이다. 아들이다.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예수님만을 아들로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그분의 지체가 되어, 그분의 올바른 마음, 올바른 의로움을 받아 아들(예수)로 아들이 되어 딸려올라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지체입니다.(에페5,30)
필리3, 14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것도 믿는다는 신앙인들이 하늘의 생명을 위한 그분의 올바른 마음, 의로움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그 자신의 의로움, 양심을 위해열심한 행위에 바쁩니다. 마르타 처럼~~
이사57, 12 내가 너의 의로움과 너의 행실들을 밝혀내리니 그것들은 너에게 소용이 없으리라.
= 그 사라의 의로움을 버려야 구원의 가치없음 그 헛됨을 깨닫고 십자가의 의로움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의로움 그 예수님의 피로, 악에 물든 우리의 양심이 깨끗이 씻겨 - 바른 양심이 됩니다.
1요한 3,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 우리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쓰레기 같은 마음일 뿐임을 아십니다. 인간은 그 변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하느님이 대신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 신의 죽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 무지개 계약입니다.
홍수 후~
창세8, 20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21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 악한 뜻, 그 악한 마음(양심) 때문에는 저주를 하지 않으시겠답니다. 정결한 죽음의 향내,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그 향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9, 15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 17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나와 땅 위에 사는 모든 살덩어리들 사이에 내가 세운 계약의 표징이다.”
= 아름다운 무지개입니다. 색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 일곱 색깔, 그 7(안식)안에 죄인들을 위한 약속, 예수님의 죽음 그 사랑이 들어있기에 아름답습니다.
세상 모든 죄보다 더 큰 그 사랑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교, 그리스도인입니다.
♡ 아멘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