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18일 일요일
[연중 제2주일]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1,29-34)
제1독서<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49,3.5-6)
주님께서 3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화답송>시편40,2ㄱㄴ과 4ㄱㄴ.7-8ㄱㄴ.8ㄷ-9.10(◎8ㄴ과9ㄱ)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주님께 바라고 또 바랐더니 나를 굽어보셨네. 새로운 노래,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내 입에 담아 주셨네. ◎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제2독서<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1코린1,1-3)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와 소스테네스 형제가
2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에 인사합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다른 신자들이 사는 곳이든 우리가 사는 곳이든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복음<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1,29-34)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연중 제2주일 제1독서(이사49,3.5~6)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49,3.5)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3)
여기서 '종'에 해당하는 '아브띠'(abdi)는 '섬기다','일하다'는 의미의 '아바드'(abad)에서 유래하며 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소유물인 노예나 왕국의 가신(1사무19,1)을 언급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겸손을 나타낼 때에 사용한다(창세33,5).
그러나 본문에서 이 종은 주님을 지칭하는 1인칭 접미어와 결합하여 '주님의 종'으로 표현되고 있다.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에 해당하는 동사 '에트파아르'(ethpaar)의 원형 '파아르'(paar)는 어떤 물체가 찬란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나타내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아름답게 장식하거나 영화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재귀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되 그의 종을 통해서 그렇게 하실 것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너에게서'로 번역된 '뻬카'(beka)는 '메시야의 삶과 일(사명)을 통해서'라는 의미이다.
오직 주 하느님의 말씀대로만 사는 메시야의 삶과 무죄한 자로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은 메시야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요한17,4).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5)
이사야서 49장 5절부터 7절까지는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사명을 성취하게 하실 것과 영광의 승리를 보장하시는 약속이 제시된다.
이러한 내용은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한번 주신 약속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성취시킨다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앞세움으로써 앞으로 제시되는 이사야서 49장 6절의 주님의 말씀이 확실하게 성취될 것을 보증하는 것이다.
여기 이사야서 49장 5절은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주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매우 긴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주님의 종과 이스라엘이 어떤 관계이며, 이들에게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이사야서 49장 5절의 이러한 내용은 이사야서 49장 6절에서 인용되는 주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사야서 49장 5절에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에 해당하는 원문은 '예흐와 요체리 밉베텐 레에베드 로'(yehwa yotseri mibbeten leebed lo; who formed me as his servant from the womb)이다.
여기서 '모태에서부터'에 해당하는 '밉베텐'(mibbeten; from the womb)에서 드러나지만, 주님의 종이 후천적으로 사명을 받은 자가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가 사명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모태에서부터 주님의 종을 예비하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그 종이 성공적으로 사명을 완수하게 하실 것임은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5)
'모여들게 하시려고'의 표현은 앞의 '돌아오게 하시고'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가장 가깝게는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배로부터의 귀환과 신앙적 회복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이사야서 49장 2절에 암시되는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질 것인데, 주님의 종이 본래부터 이스라엘의 영육의 회복을 위해 지음을 받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사명을 입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계획된 주님의 종을 통한 하느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말 것이며, 이 계획은 궁극적으로 종말에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백성들이 다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옴으로써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로마11,25~27).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5)
'소중하게 여겨졌고'에 해당하는 '웨엑카베드'(weekkabed; for I am honored)의 원형 '카바드'(kabad)는 본래 '무겁다'는 의미로서 '소중히 여기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주님의 눈에'라는 '뻬에네 예흐와'(beene yehwa; in the eyes of the LORD)라는 표현은 주 하느님과 주님의 종과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주님의 종을 특별히 소중하게 보신다는 것은 결국 이 종을 통한 사명이 반드시 성취되게 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어지는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라는 표현에서 더 잘 드러난다.
이것은 메시아가 이 땅에서 인류 구속 사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원천이 바로 주님께서 주신 능력에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요한 복음 14장 10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사명이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연중 제2주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관한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전합니다.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先在)를 나타내는 이 말은 이미 서문인 로고스 찬가에서부터 언급됩니다(1,1-3).
선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부터 계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그 전부터 예수님께서 이미 계셨다고 증언합니다.
이와 함께 세례자 요한은 ‘알지 못했다’와 ‘보았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물론 증언에 필요한 표현들이지만 요한복음에서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단순하게 알고 보는 것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나타내고 그분을 믿게 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증언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모든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표현되는 예수님의 전형적인 호칭입니다.
이미 구약 성경에서도 사용된 이 표현은 임금(2사무 7,14 참조)이나 백성 전체(호세 11,1 참조)를 나타내기도 하고, 의인(지혜 2,18 참조)에게 적용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제 복음서는 이 낱말을 예수님께 사용합니다.
요한복음은 더 나아가 예수님을 “아버지의 외 아드님”(1,14)으로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또는 외 아드님(獨生子)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유일무이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으로 이런 예수님께서 세상에 드러나시고 이제 그분을 믿는 이들도 그 관계 안에 참여하게 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2주일 복음(요한1,29~34)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29ㄴ)
여기서 '없애시는'에 해당하는 '호 아이론'(ho airon; who takes away)에서 '아이론'(airon)은 '아이로'(airo)의 현재 분사이다.
지속과 반복의 의미를 갖는 현재 시제는 무죄하신 그리스도의 대신 속죄가 십자가 위에서 단 한번에 성취된 것이기는 하지만,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 효력이 영원토록 유효함을 드러낸다.
희랍어의 '아이로'(airo)는 '지고 간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없이하거나 제거한다'는 의미가 더 적합하다.
즉 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속죄의 제물로서의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죄를 완전히 없게 할 수 없어서 성전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드려지던 동물의 희생 제사와는 확실히 구별된다.
구약의 제사들은 아자젤 염소에게 죄를 지어서 광야로 가게 하거나 (레위16,8.21~22), 제물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는데, 이것은 죄를 없애지 못하고 죄를 기억하게 할 뿐 이었다(히브10,3.4).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을 단 한 번 바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거룩함을 얻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10,10)라는 감격적인 말씀은 그분의 속죄가 완전한 것이었음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세례자 요한에 의해 예수님께 붙여진 이 위대한 칭호는 요한 복음사가의 기록들에서만 발견되며, 다른 세 복음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도행전 8장 32절과 베드로 1서 1장 19절에 각각 한번씩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요한 복음사가의 기록들에 집중되어 있다.
'어린양'을 뜻하는 '암노스'(amnos; Lamb)는 신약 성경에서 네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요한1,29.36; 사도8,32; 1베드1,19).
요한 복음사가의 기록들에서도 같은 뜻을 가진 '아르니온'(arnion)이 더 많이 발견된다.
요한 복음사가가 예수님께 이 칭호를 사용할 때에는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 들어 있는 어린양에 대한 독특한 관념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암노스'(amnos)의 히브리어 상응어는 '케베쉬'(kebesh)이다.
이 용어는 '어린양' 뿐만 아니라 '양'(sheep)을 가리켜서 쓰이기는 하는데, 대부분 희생 제물의 문맥에 나타난다(탈출29,38; 레위4,32; 민수15,5).
요한 복음사가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부를 때에 과월절(유월절; 해방절) 어린양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탈출12,3).
시기적으로 과월절이 멀지 않았고(요한2,13), 이스라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바로 그 밤에, 이스라엘의 집을 보호해 준 것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피(탈출12,11.13)였음을, 유대인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증거는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할 분이시며, 과월절 어린양처럼 자기 희생을 통해 이것을 성취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 것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호 암노스 투 테우'(ho amnos tu theu; the Lamb of God)라는 세례자 요한의 선언은 구원의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람이 잡아서 제단에 드리던 양은 그 수가 무수히 많아도 인간의 죄를 완전히 씻어 주지 못했다.
흠없고 티없는 어린양, 곧 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가 있었다.
2026년 01월 18일 일요일
[연중 제2주일] (이철구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시라고 증언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직접 보고 들은 것에서 비롯된 참된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새 생명을 얻고 다시 태어납니다.
그때 우리는 물로 세례를 받습니다. 따라서 ‘물’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 가운데 물을 붓는 이 예식은, 물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씻어 내는 ‘정화’를 상징함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이로써 죄에서 벗어나고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공생활을 시작하셨듯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도 세상 속에서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활에서 보여 주신 수많은 행위와 기적을 되새기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2주일]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 1,29-34)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튿날,(욤 쉐니) 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과 짝하시려 오십니다. 하늘의 존재께서 땅의 존재와 짝하시어 하늘의 평화를 위한 구원의 완성을 위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루가1,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죽음, 그 죄의 그늘이 죄로 죽음을 판단하는 법입니다. 그 세상의 죄의 법을 없애시고 하느님 나라 그 평화의 길로 이끄실 분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죄를 어떻게 없애시나요? 그리고 세상의 죄가 무엇인지?
세상의 죄가 뭔지 먼저 보겠습니다. 인간들의 계명이 아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탈출15,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쓴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 죄인을 만드는 그 쓴물에 의인이 되게 하시기 위한 단물, 곧 나무하나의 희생, 대속의 십자가가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 곧 계명입니다.
십계명 또한 그 각 계명 안에 그 나무하나의 희생, 곧 십자가의 죽음 그 사랑이 들어있는 하나의 계명이라 묵상했습니다.(마태22,40참조)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생명)의 하늘의 진리라는 것입니다.(요한14,6참조)
그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죗값을 대신 다 치루셨기에 모든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골로2,14참조) 그 대속의 십자가를 진리로 의지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계명을 무시해 버리는 것, 죄입니다.(마르7,7참조)
마르4,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배에 먹을 수 없는 바닷물이 가득 찼습니다. 곧 교회(배)안으로 구원을 줄수 없는 세상의 말 ,인간들의 계명이 거짓진리로 들어와 섞여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르침이나 교회의 가르침이나 다 똑같아 졌습니다. TV에서 들으나 절간에 가서 들으나 교회에서나 똑같습니다. 모두가 다 하느님의 복음이 아닌 인간 중심의 말(계명)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대속의 말씀을 사람들의 선악의 말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복(구원)을 땅의 복으로 만들어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이 TV나 절간에 가서 말을 해도 잘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되는 거잔아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속하셨다면 세상이 칭찬할 것이고 속하지 않았다면 세상이 미워한다 하셨으니~~(요한 16,19참조)
마태4,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사람을 낚는, 사람의 영혼을 求하는 그물은 인간의 그물(말)이 아닌 하느님의 그물(말씀)이어야지요.
루가9,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인간의 말,계명)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선악의 그 인간들의 계명이 아닌 죄를 덮으시기 위한 대속 그 하느님의 계명, 진리여야 되지요.
요한16, 8 보호자(성령)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교회 밖 그 세상을 따라 사는 삶, 그 것이 죄라는 사실은 성령의 이끄심이 깨달을 수 있어요.
선악의 법, 잘 지켜야지요. 그러나 그 법의 지킴은 사람들끼리 정한 인간의 도리이지 구원의 진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인간의 착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에페2,8~참조) 인간의 행위로 받는 용서, 구원이라면 예수님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으셨지요. 그냥 착하게 잘 살라고 가르침을 주시고 곧바로 승천하셨으면 되셨습니다.
그것은 구원은 반드시 티도 흠도 없는 깨끗한 하늘의 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심입니다. 그 십자가의 대속을 진리로 믿었을 때 죄를 용서 받아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 하느님은 사람을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를 먼저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죄의 본성 그대로 사람을 만드셨을까, 그런 생각 안 드세요? 그런데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에페1,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인간의 본능이 죄이기에 그렇습니다. 그 본능은 변할수 없기에(창8,21) 그 대속의 죽음 그 사랑, 그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하늘, 그 빛의 존재께서 다른 존재(어둠)를 품으시는 그 사랑입니다. 어둠을 만드신 후 품으신 것이 아니라 빛이신 당신과 다른 존재, 그 어둠을 품으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고 사람은 그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 감사를 위해 반드시 행위에 바쁜 마르타에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되어야~(루가10,41~참조)
그래야 말씀을 잉태하여 예수(구원)를 낳는(깨닫는) 마리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것이 구원입니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이사43,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 주님 주님의 죽음 그 사랑으로 용서 받는 이 죄인이 여기 왔습니다.
오늘 성체를 파스카 제물의 몸과 피가 아닌 주님의 죽음 그 사랑, 그 피의 새계약으로 먹읍시다.(루가22,6-20참조)
♡ 아멘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