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03일 일요일
[부활 제5주일] 길, 진리,생명이신 주님 (요한14,1-12)
제1독서<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았다.>(사도6,1-7)
1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4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
<화답송>시편33,1-2.4-5.18-19(◎22) ◎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자애를 베푸소서.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제2독서<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입니다.>(1베드2,4-9)
사랑하는 여러분, 4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6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시온에 돌을 놓는다. 선택된 값진 모퉁잇돌이다. 이 돌을 믿는 이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믿는 여러분에게는 이 돌이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하는 그 돌이며,
8 또한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은 정해진 대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그 돌에 차여 넘어집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복음<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14,1-1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부활 제5주일 제1독서(사도6,1-7)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1-4)
본문에서 '불평'으로 번역된 '공귀스모스'(gongysmos)는 '투덜댐' 또는 '원망'이라는 의미의 명사이다.
이것은 특히 70인역(LXX; 구약의 히브리서를 희랍어로 번역한 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와 주 하느님을 향해 원망한 것을 묘사할 때 쓰인 단어가 본문의 단어와 동일한 명사와 그 동사형이라는 점(탈출16,7; 민수14,27)을 감안할 때 그리스계 유대인들의 불평이 하느님의 교회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사탄은 교회조직 내에 있는 구성원들의 투덜거림과 불평을 통해 교회를 위기에 몰아넣으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히브리계 유다인들은 팔레스티나에서 살면서 유대의 풍습을 따르고 아람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그리스계 유다인들)에 비해 자긍심이 강했지만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계 유다인들에 대한 구제(사도2,45)를 소홀히 한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온 신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유무상통하는 아름다운 공동체였지 사람을 차별하는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사도4,32).
다만 그리스계 유다인들의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지게 된 것은 아마도 그것을 관장하던 히브리계 유다인들의 행정 착오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대 교회는 비교적 넉넉한 사람들의 봉헌금(사도4,34-37)으로 상대적으로 가난한 신도들의 필요를 채워 주었으며, 특히 생계유지가 힘든 과부들(사도4,31-37)은 매일 구제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로 번역된 '엔 테 다이코니아 테 카테메리네' (en te diakonia te kathemerine)는 초대 교회 당시 매일 행해지던 구제를 일컫는다.
이것은 의지할 데 없는 과부들을 돌아보라는 하느님의 명령(탈출22,20; 신명10,18)에 따라 유다인들이 지켜온 아름다운 전통을 계속 이어가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리스계 과부들은 언젠부턴가 그 매일의 구제에서 조금씩 제외되기 시작했다.
'홀대를 받았기'의 의미로 번역된 단어 '파레테오룬토'(paretheorunto)의 원형 '파라테오레오'(paratheoreo)는 '간과하다'(overlook), '소홀히하다'(neglect)라는 의미의 동사이다.
본문에서는 어떤 일의 반복이나 계속됨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 수동태로 쓰였다. 이것은 그리스계 과부들이 그 매일의 구제에서 단 하루 제외되어서 원망했던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제외되어 온 데에 대한 불만을 참지 못해서 원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불평을 사탄은 교회를 위기에 몰아넣는 기회로 사용하여 히브리계 유다인들과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일치를 이루는데 어려움이 생기게 한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는 유념해야 할 중요한 단어가 있다.
이는 '배급'(구제)으로 번역된 '디아코니아'(diakonia)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섬김'(1코린16,15), '직무'(2티모4,5). '봉사'(사도21,19)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구제'(자선,희사)를 가리키는 단어는 '엘레에모쉬네'(eleemosine)라고 따로 있다 (마태6,2; 루카11,41; 사도10,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의 저자가 '구제'를 표현하면서 굳이 '직무', '섬김', '봉사'를 의미하는 단어 '디아코니아'를 사용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 단어를 1절과 4절에 함께 사용함으로써 중요한 원리를 말하고자 한다.
4절에 '말씀 봉사'(말씀 전하는 것; te diakonia tu logu; 테 디아코니아 투 로구; the ministry of the word)에서 '봉사'(전하는 것)으로 번역된 단어도 '디아코니아'인데,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보여준다.
즉 사도들의 말씀 선포의 직무와 평신도들의 구제하는 등의 직무가 우열의 차이없이 모두 하느님 앞에서 동등한 직무라는 사실을 동일한 단어의 사용을 통하여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다만 말씀 봉사와 구제 봉사는 직무의 성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사도들의 말씀 전하는 직무는 신도들에 대해 지시하고 신도들 위에 군림하는 권리를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제의 직무처럼 신도들을 섬기고 교회가 성장하도록 돕는 봉사의 직무라는 것을 1절과 4절의 '디아코니아'라는 단어의 사용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에페소서 4장 11절에서처럼 사도와 예언자, 복음 선포자, 목자와 교사의 순으로 말씀을 전하는 직무의 우위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사도행전 6장 1~4절에서는 그 일에 봉사하는 사람들의 정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부활 제5주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길은 나보다 앞서 걸어간 이의 흔적입니다.
아무리 “이 길의 끝은 정말 좋은 곳이니 나만 믿고 따라오시오.” 하고 외쳐도, 그가 누구인지,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다면 무작정 따라나설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면서 목숨을 내놓고 따르겠다는 베드로, 주님의 목적지도 길도 모른다는 토마스,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그저 아버지를 뵙게만 해 달라는 필립보, 이들은 주님과 이별하는 순간까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는 동안 당신과,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주님 자신)을 모두 알려 주셨습니다.
그날의 제자들처럼, 내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과 심박(深博)한 신앙 체험이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는 의지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오늘 독서들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 줍니다.
제1독서는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선포)을 첫자리에 두었기에 온 교회의 믿음이 충만하게 자라났다고 증언합니다.
또한 제2독서는 하느님께서 손수 놓으신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 제물을 바치는 거룩한 사제로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기도와 복음서와 성체성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 말로 ‘진리’(알레테이아)는 ‘망각’(레테)의 반대말입니다.
진리이신 주님께서는 기도와 성경과 미사 안에서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가 잊고 있던 아버지의 뜻을 깨우쳐 주십니다.
삶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찾아내며, 주님을 따라 기쁘게 아버지께 나아갑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부활 제54주일 복음 (요한14,1- 1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 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2)
'거처할 곳'으로 번역된 '모나이'(monai; mansions; rooms)는 '모네'(mone)의 복수형이다.
'모네'(mone)는 목적격 단수로 여기와 요한 복음 14장 23절에서 쓰일 뿐, 신약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단 한번도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네'(mone)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이것은 여행중에 잠시 들러서 휴식을 하는 임시적 공간의 의미라기보다는, 제자들과 더 나아가서는 모든 믿는 이들의 희망을 견고히 하는 항구적 거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여기서 갑자기 하느님 나라의 거처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인가?
이것은 제자들에게 당신과 비록 헤어지더라도, 영원한 하느님 나라의 거처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킴으로서,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또한 있다가 없어질 이 땅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하느님 나라의 처소에 희망을 두게 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하고, 성령강림 이후 성령충만을 체험한 후 하늘 처소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때, 이 세상의 일에 대해 근심하지 않았으며, 주님과 교회를 위해 순교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굳센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요한복음 14장 2절의 후반부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중요한 이유에 대해 언급하신다.
'내가 ~간다'로 번역된 '포류오마이'(poreuomai; I go)는 '포류오' (poreuo)의 현재 시제 중간태로서 '내가 스스로 간다'는 뜻이다.
이것을 '미래적 현재'라고 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에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내는 용법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죽음을 신적 통찰력과 예지력으로 미리 아셨고,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예고해 주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라는 말을 덧붙이셔서 그 처소를 마련하러 가시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신다.
당신 자신의 죽음이 제자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며, 그들 뿐만 아니라 영원으로부터 선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반드시 지불하셔야 될 대가임을 밝히고 계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영혼들이 영원히 거처할 처소를 마련하는 이 일은 오로지 십자가상 대속의 구속사업을 통해, 믿는 이들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만 유보된 일인 것이다(사도4,12).
2026년 05월 03일 일요일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아버지께 가서 그들이 머물 곳을 마련하고 꼭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필립보가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요한 14,9)이며,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14,10)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시는데, 어떻게 하느님께 가셨다가,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는 말씀이실까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의 첫사랑인 제니는 가정 폭력으로 상처받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돌다가 세월이 지나서야 주인공 포레스트에게 돌아옵니다.
포레스트는 두려움에 대하여 말하는 제니에게 달리기로 미국을 돌면서 본 애리조나의 아름다운 장면을 전해 줍니다.
그러자 제니가 말합니다. “나도 거기 너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포레스트는 대답합니다. “너는 나와 함께 있었어.”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과 하느님의 관계가 바로 이러합니다.
떠나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오고, 그런 관계 속에서 아드님 안에 아버지께서 계시고 아버지 안에 아드님께서 계십니다.
요양 병원에 병자 봉성체를 갔을 때, 한때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던 이들도 돈도 명예도 다 남겨 두고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간다는 것과 우리는 하느님과 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속이고 실망시키더라도, 마음이 산란해지지 맙시다.
결국 우리는 이 긴 여행을 마치고 모두 아버지께 돌아갈 것입니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부활 제5주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14,1-12)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돌은 물(말씀)이 나오는데 바위(예수)를 뜻합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12)
= 오늘은 예수님께서 하신일~ 표징에 대해서 묵상해 보겠습니다.
(마태12,38-40) 38 그때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 요나는 원수의 나라인 니네베 때문에 큰 물고기(스올-지옥) 속에서 사흘 밤낮을 있어야 했습니다.
그 표징의 실체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그들의 죗값으로 사흘 밤낮을 죽음에 계셔야만 했던 구원의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의 뜻입니다.
그러나~
(요한12,37-40) 7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그토록 많은 표징을 일으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 38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한 말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습니까?” 39 그들이 믿을 수 없었던 까닭을 이사야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40 “주님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무디게 하였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 눈으로 보고(데모마이-밖에 것으로) 하느님의 눈, 그분의 뜻으로 깨달은 것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대로 본~
그 하느님의 뜻의 밖에 것으로 보고 믿게 된다면 치유, 곧 구원의 용서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버린 상태인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1베드2,4.7-8) 4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7 믿는 여러분에게는 이 돌이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하는 그 돌이며, 8 또한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은 정해진 대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그 돌에 차여 넘어집니다.
= 예수님의 표징을 사람의 눈으로 보고(데모마이-밖에 것으로) 그대로 믿으면 예수님의 뜻의 밖에 것, 곧 예수님의 구원의 길이 아닌 육을 위한 사람의 길로 믿게 되나~ 예수님으로 넘어지고 비틀거리게 됩니다.
그것이~
(마태13,3-4.19)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 길을 직역하면 길가, 길 옆입니다.(200주년기념성서 참조)
그래서 19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가)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리시기 위해 드러내는 것, 계시입니다.
비 언어인 자연을 통해 일반 계시로 드러내셨는데 인간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특별 계시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통해 언어로~ 성경으로 주셨는데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에게 하느님을 계시 하는 분이기에 말씀이신 것입니다.(요한1,14)
(히브1,1-2)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 예수님의 모든 표징은 하느님의 사랑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마태22,37-40)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 이 큰 계명을 우리가 지킬 수 없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죄인인 우리를 당신 자신처럼 사랑해 주신 그 사랑의 하느님 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