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28,16-20)

2026. 5. 12. 오전 8: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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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7일 일요일

[주님 승천 대축일]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28,16-20)



1독서<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사도1,1-11)

1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3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6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10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화답송>시편47,2-3.6-7.8-9(6)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노래하여라,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노래하여라, 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 찬미의 노래 불러 드려라. 하느님이 민족들을 다스리신다. 하느님이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2독서<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에페1,17-23)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복음<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28,16-20)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주님 승천 대축일 제1독서 (사도 1,1-11)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2)


'승천하신 날 까지의'

'승천하다'로 번역된 '아넬렙테'(anelepthe)는 단순히 '들어 올리다' 라는 의미를 갖는 '아날람바노'(analambano)의 과거 수동형이므로 '올려졌다'(he was taken up)이라는 의미이며 본문은 '그가 올려진 날까지'(until the day in which he was taken up)로 번역되어야 한다. 사도행전 1 11절에서는 이 동사의 수동태 분사 '아날렘프테이스'(analemptheis) '승천하신'(올라가신)으로 번역했다.

이 동사는 물론 승천을 가리키지만, 승천이란 구체적 사건을 통하여 보여지는 예수님의 높아지심 즉 현양의 신분도 암시하므로 '올리우신'(올리우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특히 여기서 수동형은 신적(神的) 수동태로서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 승천하셨으며, 이로써 본래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신분을 완전히 회복하는 현양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루카복음사가는 이미 루카 복음 24 51-53절에서 마태오가 기록하지 않은 예수님의 승천 기사를 다루었고 사도행전의 서두에서 다시 언급함으로써 '승천 모티프'(ascension motif)를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의 가교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예수님 승천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3)

본문은 십자가 수난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 40일간의 예수님의 행적을 요약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수난을 받으신'에 해당하는 '파테인 아우톤'(pathein auton) '고통을 당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파스코'(pasko)의 부정(不定; Indefinite) 과거 부정사와 3인칭 단수 대명사가 나란히 쓰인 형태이다.

원문 성경은 수난 받으신 주체가 아무 죄도 없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인칭 대명사를 사용했으므로 이것을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원문의 어순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받으신' 것보다 '드러내셨습니다'(파레스테센; parestesen)을 더 앞에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발현하신 일을 더 강조하려는 루카의 의도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더라도 제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면(1코린15,6),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 확고히 정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증거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부활의 확실한 증거는 과거 영적으로 우둔하고 다분히 비겁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을 열정적이고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복음의 전사들로 변모하게 한 원동력이다.

물론 그들로 하여금 온전한 모습의 사도로 바뀌게 한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가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의 40일 동안 보여 주신 확실한 많은 증거 역시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할 분이심을 확실히 믿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증거'로 번역된 '테크메리오이스'(tekmeriois) '확실한 표적에 의해 보여 주고 입증하다'라는의미를 지니는 동사 '테크마이로'(tekmair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의심할 바가 없이 명쾌하고 확실한 표징이나 징표'라는 의미이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셔서 제자들이 보는 눈앞에서 십자가 처형때 입으신 상흔을 보이시고(요한20,20), 그들과 함께 구운 생선을 잡수시는 등(요한21,9-14) 예수남께서는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실을 제자들에게 분명한 증거로 보여 주셨으며 루카는 이 사실을 이처럼 명확한 의미를 가진 단어로 표현했던 것이다.

'사십일 동안'

예수님께서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의 날 수가 40일 이라는 기록은 신약 성경 전체에서 본문에만 있다. 이것은 역사가로서 루카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기록이다.

'사십'(텟세라콘타; tesserakonta)은 당시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완전수이며 많음을 상징하는 숫자였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산에 머문 기간과(탈출24,18; 34,28) 예언자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기 위하여 걸어간 날수(1열왕19,8) 및 예수님께서 공생활 활동 기간 전 광야에서 단식하던 기간이 사십일이었다(루카4,1.2). 이러한 날수는 물론 실제적인 기간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부족함이 없는 충만한 기간이었음을 상징한다.

본문에 있어서 루카가 사십 일이라는 기간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시며 자신을 보이시고 하느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날수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4-5)

'함께 계실 때에'로 번역된 '쉬날리조메노스'(synalizomenos)는 문자적 의미로 '함께 식사할 때에' '함께 모였을 때에'라는 표현 모두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단어의 원형 '쉬날리조'(synalizo) '함께'를 뜻하는 접두어 ''(syn) '소금'을 뜻하는 '할스'(hals) 또는 '운집함'을 뜻하는 '할레스'(hales)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만약 어원적으로 볼 때 '쉬날리조' '' '할스'에서 유래했다면 이 단어는 '어느 누구와 함께 소금을 친 것 즉 음식을 먹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되고, '' '할레스'에서 유래하였다면 '함께 모여들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반대로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첫째 제자들이 그들의 지도자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예루살렘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언제 자신들까지도 잡아들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 그들의 집이 갈릴래아에 있었으므로 굳이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속사정을 모르실리 없는 예수께서 굳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미 구약에서 예루살렘이 율법과 야훼의 말씀이 나오는 곳으로(이사 2,3 ; 미카4,2) 예언된 사실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한 구원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이곳은 구원의 시발점이며 약속하신 성령이 임할 장소로서 교회의 시발점인 동시에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곳에서부터 온 유다로 또한 세계 각 곳으로 복음이 퍼져 나가게 될 복음의 근원지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사도1,8).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성읍인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하고 초대 교회가 세워짐은 사탄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사적 측면에서 중요성을 지닌 예루살렘은 신학적으로 보더라도 큰 의미를 지닌다. 즉 이곳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의 예표요 모형이라 할 수 있는 이사악을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번제로 바치려 했던 장소이며(창세22,2.14), 신약 교회의 모형이라고 볼 수 있는 성전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은 신도들의 영원한 처소가 될 새 예루살렘의 모형이 되기도 한다(묵시21,1-7).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예루살렘을 신약 교회의 출발지로 삼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명령하신다.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나자렛에서 시작하여 갈릴래아와 유다를 거쳐서 예루살렘에서 마무리하였다.

한편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히에로솔리마'(hierosolyma)는 히브리어 '예루샬라임(jerushaleim)을 음역한 것이다. '예루샬라임' '기초를 놓다', '건축하다' 등의 뜻이 있으며, '도시', '도성'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예루'(jeru) '평화'란 뜻이 있는 '샬롬'(shalom)의 변형 '샬라임'(shalaim)이 합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는 '평화의 거주지' 혹은 '평화의 도성'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 장소가 이러한 의미를 갖게 된 것 역시 이곳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서 거룩하신 하느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또한 평화의 영이신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서 하느님과 평화를 이루는 사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 강림이 임박한 시점에 초대 교회의 구심점이 될 사도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게 함으로써 이미 하느님의 구원 사업의 계획 가운데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을 가능케 하신 것이다.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본절의 예수님의 말씀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모두 등장한다. 먼저 '나에게서'는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아버지'는 성부 하느님을 가리키며 '약속하신 분'은 성령 하느님을 가리킨다.

성령은 아버지 즉 성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영이다(요엘2,28.29; 에제 36,26.27). 또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바 있다(요한14,16.2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기도까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한14,16).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승천한 이후에 이 땅에 남겨질 그의 제자들이 스승없이 복음 전파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아시고 성령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해 주실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이었다.

또한 루카는 제자들의 복음 선포가 하느님의 영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행전의 시작을 성령의 강림과 내주에 대한 약속을 거듭 확인하는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다(사도1,4.5.8).

본절은 성령 하느님께서 필연적으로 성부 하느님, 성자 하느님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함께 활동하심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는 성자 그리스도의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역사하심을 암시한다(사도2,33).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성령님께서 이어서 계속하신다는 것은 구원사의 전개 과정에서 볼 때 온 인류를 위한 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지 않으시고 이 땅에 계속 남아 계셨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존재 방식이기는 하지만 육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거슬러 영적인 몸으로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이 정상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이 오심으로 인하여 영적 은혜가 온 세상에 편재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은 물론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5)

본절은 멀게는 요엘서 3 1-2절의 새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겠다는 예언과 연결된다. 가깝게는 마르코복음 1 8절의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고 한 세례자 요한의 예언 성취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세례'라는 의미의 '밥티스테세스테'(baptisthesesthe)의 원형 '밥티죠'(baptizo) '담그다'는 뜻과 함께 '씻다'라는 뜻을 가진다. 세례는 '죄로 오염된 옛사람이 죽고 회개하여 하느님을 향해 새 사람이 되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사도행전 2 1-4절과 연관지어 볼 때 우선 직접적으로 불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될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은 마치 물 속에 흠뻑 잠기는 것처럼 성령의 세력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힘을 받아'(사도1,8) 즉 성령의 권능(특은)을 덧입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직후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던 요한복음 20 22절의 "성령을 받으라."라는 말씀은 그 당시 이루어졌고 만일 이루어졌다면, 여기 사도행전 1 5절에서의 성령 강림 예언과 사도행전 2 1-4절에서의 성령 강림 사건과 어떻게 조화가 되는가?

요한복음 20 22절의 말씀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약속하는 상징적 행위로 보는 것이 좋고, 죄사함의 은총으로 양심의 평화를 주는 고해성사의 사죄권에 대한 말씀으로 보면 된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6)

'다시~일으키실'(회복하심) 이에 해당하는 '아포카티스타네이스'(apokathistaneis)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주다' 라는 의미를 지닌 '아포카티스테미'(apokathistemi)의 직설법 현재동사이다. 이 동사는 미래적 의미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현재형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것은 루카가 제자들이 정치적 의미의 하느님 나라의 회복을 매우 임박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명백한 미래적 사건을 묘사하는 데도 현재형으로 기록한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 세례를 베푸시는 시점이 자신들이 희구하고 있던 로마의 정치적 속박으로부터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인가를 물은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의 영적 무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질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눈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9-11)

사도행전 1 9절에서 11절까지는 예수의 승천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신 후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명하신 인류구속사업을 완전히 마치신 후 다시 하늘 보좌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심판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하늘 보좌에서 계속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여기서 '보는 앞에서'로 번역된 '블레폰톤'(bleponton)은 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보고 있을 때' 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승천이 제자들이 보고 있을 때 이루어졌다는 것은 승천이 꾸며 낸 일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준다.

또한 '오르셨는데'에 해당하는 '에페르테'(eperthe ; he was taken up)는 사도행전 1 2절의 '승천하신'에 해당하는 '아넬렙테'(anelepthe)처럼 신적(神的) 수동태이다. 예수님의 승천은 바로 예수님의 지상의 모든 활동을 기쁘게 여기신 성부 하느님의 장엄한 역사적 행위였다. 예수님께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을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인간이 되어 탄생하신 사실 만큼이나 신비한 일이었다(루카 2,5-7). 이 세상에 신비하게 오신 예수님께서는 신비하게 이 세상을 떠나가셨고 또한 재림 때에도 천군 천사와 함께 심판주로서 신비하게 오실 것이다.

 한편 루카복음 24 50절과 51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을 제자들을 축복하는 대사제의 모습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예배하는 모습으로 승천 기사를 다루었다. 사도행전 1장의 승천 기사가 역사적 측면을 강조했다면 루카 복음 24장은 예배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9)

직역하면 '구름이 그들의 눈(시야)으로부터 그를 붙잡아 데려갔다' 이다. 성경에서 '구름'은 예수님의 신적 권세를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된다. 예수님께서 타볼산에서의 변화(마르 9,7 ; 루카 9,34.35), 올리브산에서의 승천과 재림에 대한 말씀(마태26,64; 마르13,26)이라는 중요한 사건들에 있어서 구름과 함께 등장하시는 모습은 과거 하느님께서 모세의 만남의 천막에 영광으로 임재하셨던 일을 상기시킨다(탈출40,35).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본문에서 '하늘'은 물론 공중을 의미하지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반드시 장소적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라논'(uranon)의 원형 '우라노스'(uranos)는 신약 성경에서 272회나 사용된 단어로서 다양한 용례로 사용되었다.

천사들과(마태18,10; 에페3,15) 하느님의 옥좌(묵시11,13)가 있는 곳이며,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곳이며(마르1,11; 히브12,25) 성령이 내려오는 곳이며(사도2,2 ; 마태3,16), 진노와 심판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루카17,29).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주권을 행사하시는 곳이다(히브8,1).

이처럼 성경에서 '하늘'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신성과 관련된 신학적 개념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승천의 의미는 장소적 이동의 개념을 넘어서 인간이 받는 제약이 없는 세계, 물리적 법칙이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초월한 차원(세계)에로의 이동을 말한다.

'그들이 ~유심히 바라보고' 로 번역된 '아테니존테스'(atenizontes) '~에 눈을 고정시키다','응시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테니조'(atenizo)의 현재 능동태 분사 복수형으로서 '있는데'로 번역된 미완료 동사 '에산'(esan)과 더불어 '그들이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즉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리워지고 구름 사이로 들어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잠시라도 그들의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보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흰 옷을 입은 두 사람'

'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히 천사들이다. 사실 흰 옷 차림은 천사들의 상징이기도 하다(마태28,3; 요한20,12). ''으로 번역된 '류카이스'(leukais)는 성경에서는 빛이 날 만큼 흰 상태나 광채가 나는 상태(마르9,3)를 나타내며 주로 하느님이나 천사들의 신비스런 모습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마태17,2 ; 묵시1,14).

천사들은 예수님의 승천과 함께 재림에 관한 사실까지 제자들에게 선포했다. 이처럼 루카는 예수님의 사적을 역사적 관점에서 철저히 기록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하느님의 아들되심을 보다 설득력있게 전하기 위하여 천사와 관련된 사건도 매우 자세하게 기록에 남겼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천사들이 제자들을 향해 부른 이 호칭은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즉 제자들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망각하면 갈릴래아의 일개 평범한 사람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요한복음 7 52절을 보면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날 수 없다고 단정할 정도로 그곳은 영적으로 소외된 지역이고 보잘것없는 지방에 불과했다.

천사들은 앞으로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땅끝까지 용감한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별볼일 없는 갈릴래아 촌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복음의 능력자가 될 것인가?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 (11)

'쳐다보며'로 번역된 '엠블레폰테스'(emblepontes)는 현재분사로서 진행적 의미를 나타낸다. 이런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 '어찌하여 너희는 계속해서 서서 하늘을 향해 쳐다보고만 있느냐?'이다. 즉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라지고 없는 하늘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초대 교회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루카가 천사의 말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 교회 신도들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의 재림만 기다리며 현실적인 이 땅에서의 하느님의 일과 사명을 소홀히 하는 자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육체를 입은 몸으로 구름과 함께 영광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듯이 그대로(ho tropon; 호 트로폰; in like manner) 육체를 입은 몸으로 큰 영광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가시적으로 재림하실 것을 가리킨다.

 





  


 주님 승천 대축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장엄히 선포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중요한 대목을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라는 수동형 문장으로 시작하십니다.

당신의 모든 일이 아버지에게서 위탁되고 주어진 것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들에게 모든 권한을 주신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는 제1독서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늘 인간과 함께 계셨던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함께하시고자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십니다.

더욱이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함께하심’이 ‘예수님과 우리가 공동 상속자’라는 내용으로 선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독서와 복음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인간과 함께하시려고 어떠한 일들을 하셨는지 그 구원의 역사를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 역사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인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준엄한 약속으로 마무리됩니다.

육화하신 ‘성자’께서는 구약 내내 인류와 함께하신 ‘성부’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계시이시고, 이렇게 성자 안에 성부께서 온전히 드러나셨음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일반적으로 삼위일체를 ‘신비’라고 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함 때문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사랑을 통한 체험으로 인식되고 확인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삼위일체의 결정적 신비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선언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지금 내 삶과 주변에서 구체적으로 체험하지 못한다면 삼위일체의 관계적 신비는 당연히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주님 승천 대축일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마태28,16-20)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 예수님께서 배반의 죄를 짓고 끝내 돌아오지 않고 죽은 유다가 빠진 열한 제자인 것, 후에 마티아가 뽑혔지만(사도1,26) 성경은 그의 행적에 대해서 아무 말씀이 없다. 그것은 내가, 우리가 그 열두번째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갈릴레아~ 예수께서 돌아가시기전 분부하셨던 곳으로 살인자들의 도피성이 있었던 곳 중 하나이며(여호수아21,32) 또한 그곳은 이민족의 갈릴레아로 첫 제자들을 뽑으신 곳이다.(마태4,15-18)

 

먼저 도피성을 보면,~

(여호20,6-7) 6 그 살인자는 재판을 받기 위하여 공동체 앞에 설 때까지, 그리고 그때의 *대사제가 죽을 때까지 그 성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자기의 성읍, 곧 자기가 도망쳐 나온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7 그리하여 그들은 납탈리 산악 지방에서는 갈릴래아의 케데스를,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서는 스켐을, 유다 산악 지방에서는 키르얏 아르바 곧 헤브론을 성별하였다.

= 죽어야할 죄인(살인자)이 대사제의 죽음으로 풀려나기를 기다리는 곳이 도피성, 그 도피성 갈릴레아에 대 사제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이민족들에게, 그리고 죄인들에게 자유를 주시려 가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제자들을 동참시키려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제자들을 뽑으셨다는 것은, 그 제자들이 자유를 받아야 할 죄인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시는 것, 이 세상이 구원자를 기다리는 갈릴레아인 것이다.

신앙의 시작은 이민족으로 죄인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 아브라함도 이민족으로 우상을 팔아 살았던 그 죄인이었을 때, 부르심을 받았쟎은가~ 우리의 본래의 자리가 그 죄인들의 갈릴레아라는 것이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 삼년 반을 밤낮으로 함께했던 그 예수님께서 죽으셨다 부활하셨는데~ 제자들이 그분을 뵙고도 의심했다는 것은 그분에 대해서 몰랐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기적의 肉을 입은 예수님을 따랐고, 자유를 주시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몰랐다는 것이다.(필리2,6-8참조)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 하늘의 용서, 자유의 권한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의 규정과 교리, 그 법으로 가르쳐 행위의 신앙으로 지키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대 사제의 죽음으로 받는 하늘의 용서, 자유 곧 십자가의 죽음, 그 예수님의 대속, 그 길을 진리로 가르쳐 하늘의 자유를 얻어 하늘의 생명을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 그것이 지키는 실행인 것이다.

 

(야고1,23-25) 23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 25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 그러나 지금 이 세대에는 하느님의 뜻을 지키기가 너무 힘들다. 사람의 마음(뜻)을 현혹시키는, 감동시키는 그럴듯한 헛된 가르침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2티모4,2-4) 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 참 가르침은 사람의 마음을 만족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죄)을 깨닫도록 꾸짖는 가르침이다.

그래야 다시 살릴 수 있으니까, 하늘의 참 자유를 줄 수 있으니까~ 예수님도 그런 가르침을 하셨쟎은가(루가12,51)

그러니 사람의 규정과 교리의 그 행위의 어리석은 신앙생활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깨닫는 참 신앙생활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에페5,16-17) 16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17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아멘.

 

 

 

 


주님 승천 대축일 복음(마태28,16~20)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에 해당하는 '파사 엑수시아 엔 우라노 카이 에피 테스 게스'(pasa eksousia en ourano kai epi tes ges;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에서 '하늘과 땅의'로 번역된 '엔 우라노 카이 에피 테스 게스'(en ourano kai tes ges) '하늘 안에 그리고 땅 위에'로 직역되는데,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모든 영역'을 말한다.


그리고 '권한'에 해당하는 '엑수시아'(eksousia)는 신약에서 '권세', '권능', '권리', '', '자유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중보자(중재자)로서의 권한'이 강조된다. 또한 '나는 ~받았다'에 해당하는 '에도테 모이'(edothe moi; was given to me)에서 '에도테'(edothe) '주다'는 뜻을 지닌 '디도미'(didomi) 동사의 직설법 부정과거 수동태 3인칭 단수로서 '그것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 동사가 수동태로 쓰인 것은 성부 하느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동사가 부정(不定) 과거형으로 쓰인 것은 예수님께서 받은 권한이 단번에 받은 것임을 나타낸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화(강생) 이전에도 성자로서 성부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가지셨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자연계와 영계를 제어하는 권한을 나타내보이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 권한은 신성(神性)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근본적으로 지니셨던 권한에 비하면 제한적이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십자가상 구속(대속) 사업을 완수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잠시 성부 하느님께 맡겨 드렸던 본래의 권한을 다시 받아 회복하신 것이다. 그래서 구속 사업과 부활 이후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오직 구속 사업을 완수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행사하기로 하셨다(요한5,20~22.30).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그 권한을 가지고, 마태오 복음 28 19절에서 제자들에게 선교 명령을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영역인 하느님의 나라는 선교를 통하지 않고서는 확장되고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너희는 가서'로 번역된 '포류텐테스'(poreuthentes; go)는 복수 2인칭 명령 분사이며, '너희'는 직접적으로 승천 직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을 지칭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사도1,8참조). 그리고 제자로 삼아야 할 대상은 '모든 민족'이다. 여기서 '민족'으로 번역된 '에트네'(ethne) '에트노스'(ethnos; nations)의 목적격 복수로서 제자를 삼는 대상이다.


또한 '제자로 삼아'에 해당하는 '마테튜사테'(matheteusate; make disciples; teach) '마테튜오'(matheteuo)의 복수 2인칭 명령형 동사이다. 이 동사는 '너희는 가서'에 해당하는 '포류텐테스'(poreuthentes), '세례를주고'에 해당하는 '밥티존테스'(baptizontes), '가르쳐'에 해당하는 '디다스콘테스'(didaskontes)의 세 개의 분사에 둘러싸여 있다.


원문의 뜻은 '제자로 삼는 일' '가는 것' '세례를 주는 것' '가르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궁극적인 핵심을 보여 주는데, '제자로 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중심 주제이며, 나머지는 이에 수반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세례를 주고'에 해당하는 '밥티존테스'(baptizontes; baptizing)는 현재 분사인데, 현재형이라는 점에서 세례가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데, 세례가 바로 제자로 삼는 수단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밥티존테스'(baptizontes)의 기본형인 '밥티조'(baptizo)는 본래 '담그다'는 뜻을 지닌 '밥토'(bapto)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동사가 '세례를 받다'(사도1,5)는 세례 의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일 때에는 '담그다' '씻다'(루카11,38참조)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가 있다.


먼저 이 동사를 '담그다'는 의미로 볼 때, '세례'는 몸을 물에 담그는 의식을 나타내며, 영적으로 믿는 이들이 세례 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에 함께 참여한다는 뜻이 강조된다(루카12,50; 로마6,3). 또한 이 동사를 '씻다'는 뜻으로 보면, '세례' '죄의 씻음', '죄의 용서'라는 의미가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사도2,38; 22,16).


실제로 세례 성사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뜻과 더불어 죄사함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함이 분명하게 계시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삼위일체 하느님 가운데 한 분이심을 명확하게 하셨다.

 

   

20260517일 일요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누구나 한 번쯤 새들처럼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답답한 일상, 풀리지 않는 걱정거리, 관계의 무게, 미래에 대한 불안, 이런 것들이 우리를 짓누를 때,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하늘 높이 날아가고 싶어집니다.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에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오르시어 아버지께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늘을 바라보시며 사셨습니다. 명성과 권력을 쥐실 수 있었지만 그것들을 쫓으시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품으셨습니다.

미움과 원망이 쌓일 수 있었지만 그것들을 바람 결에 훌훌 털어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주셨을 때조차 절망하시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를 활주로 삼아 두 팔을 하늘로 벌리고 하느님 아버지를 우러르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늘로 오를 수 있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미움과 욕심과 걱정이 우리를 아래로 끌어당기지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품게 하시고 위로 올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아버지께 올라가시어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주님 승천 대축일에서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구 일 동안을 성령의 오심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여기고 구 일 기도를 바칩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 마음을 비우고, 성령의 바람을 맞을 준비를 합시다. 하느님을 향하여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작합시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주님 승천 대축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인간의 말(계명)로 받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계명) 안에 들어있는 그분의 뜻, 곧 그분의 사랑(아가페), 자비, 은총(은혜)을 깨달아 마음 안에 간직하는 것, 지킴이다. 그것이 세례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 마음 안에 간직한 하느님의 그 아가페를 이웃에게 전해주는 것,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큰 계명지킴이다.

 

(마태28,16-20)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무슨 의미일까 - 성부 하느님 아버지는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계획, 계약을 세우셨고, 그 아버지의 뜻을 성자(예수) 하느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다 이루셨고, 성령 하느님께서 그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를 죄인들에게 적용하시어 구원을 완성하셨다.(로마8,1-4) 그것을 깨닫기 위한 세례인데- 먼저 성부 하느님의 뜻을 독서에서 보면~

 

1독서(신명4,32-34.39-40) 32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33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 빛 앞에 어둠이 존재할 수 없음과 같다.

 

34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 이집트는 온갖 문물이 풍부했던 세상을 모형 한다. 그 풍요를 위한 이집트(세상)의 神(법, 말)에 하느님의 자녀(백성)들인 이스라엘이 노예(죄)생활을 했다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온갖 사랑(열심)으로 그 노예, 곧 죄의 삶에서 빼어내신 것이다. 오늘날 세상 것들에 노예가 되어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39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 이집트(세상)의 풍요를 위한 그들의 신, 법(말)을 마음에서 지우고(부인하고) 하느님의 뜻(말씀)을 진리로 마음에 새기라는 것이다.

 

40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는 나무하나의 희생으로 쓴물이 단물이 되는, 곧 십자나무로 죄인들이 구원받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 계약(약속)의 모형인 것이다.(탈출15,22-25 참조)

 

40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 영원한 생명이 있는 약속의 땅이다. 곧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와 40년 광야생활 동안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을 지킨적이 없단다.

 

(민수14,22-23) 22 나의 영광, 그리고 이집트와 광야에서 내가 일으킨 표징들을 보고도, 이렇게 열 번 씩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나를 업신여긴 자들은 모두 그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

= 열 번씩이나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열(10) -충만, 완전히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전부 죽었고, 새로 태어난 세대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하느님의 말씀(법, 계명) 대신 이방(세상)인들의 풍요를 위한 그들의 신(神)을 섬기고 말(법)대로 살았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집, 성전문을 닫으심으로 구약이 끝난다.

 

(말라1,10) 10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성전 문을 닫아걸어서 너희가 내 제단에 헛되이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였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를 좋아하지 않는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너희 손이 바치는 제물을 받지 않으리라.

= 그렇게, 모두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져야 했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그들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 그들의 모든 죄를 대속하실 새 계약, 새 계명으로 사랑하는 당신 아드님 예수를 이 땅에 속죄 제물로 보내신 것이다.(히브10,16-23)

그래서 그 죄인들 대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유혹을 받으시고 이겨내신 후(마태4,1-11) 복음 선포의 공생활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마태4,16-17)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 하느님의 뜻(말씀)으로 예수께서 오셨으니 예수님께서 곧 하느님 나라다. “회개 하여라”- ‘죄를 반성 하여라’ 가 아닌 그 반성을 넘어 세상의 노예생활, 그 길에서 하느님의 뜻(말씀, 길)인 당신께 돌아오라는 말씀이시다. 곧 하느님의 말씀(계명)을 예수님께서 다 완성하려 오셨으니 이제 하느님의 용서, 생명, 구원, 평화를 받으러 안심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마태5,17)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예수님의 죽음으로 완성하신 것이다.

 

(골로2,14) 14그래서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 예수님의 목숨 값으로 다 이루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쁜 소식, 복음이다. 그 말씀을 근거로 죄인들의 구원을 완성하신 분, 성령이시다.

 

(로마8,1-4)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2독서에서~

2독서(로마8,14-17)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선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진리의)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 하늘의 생명을 받기 위해서는 땅(세상)의 목숨을 위한 삶이 목적(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세상의 돈, 명예, 영광이 구원을 주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말씀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혹 하느님의 계획이 실패되어서 다시 예수님을 보내셨나? - 아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계획이 어찌 실패될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계획은 창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 성령 안에서 완성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완성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례(끊어버림)로 받아 들여 믿기만 한다면~

(에페1,4-5)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토브)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토브는 창조의 단어이다.

 

(히브4,1-3) 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2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아멘>

 

☨ 저희 죄인들의 구원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성령이시여! 늘 당신 보호 안에 의탁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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