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아들을 통한 구원 (요한3,16-18)

2026. 5. 25. 오전 7: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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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31일 일요일

[삼위일체 대축일] 아들을 통한 구원 (요한3,16-18)



1독서<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탈출34,4ㄱㄷ-6.8-9)

4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5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6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8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아뢰었다.

9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화답송>다니3,52.52.53.54.55.56(52) 세세 대대에 찬송과 영광을 받으소서.

주님,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당신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거룩한 영광의 성전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거룩한 어좌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커룹 위에 앉으시어 깊은 곳을 살피시는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하늘의 궁창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2독서<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2코린13,11-13)

11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복음<하느님께서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3,16-18)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대축일 제1독서 (잠언8,22-31)

 

잠언 1장 8절에서 9장 18절까지교훈 모음이며, 삶에 대한 일종의 '지혜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혜시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지혜의 기원과 지혜의 의인화(잠언1,20-33)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양한 교훈들(악인들과 낯선 여인들, 게으름과 간음에 대한 경고 등등: 잠언1,8-19; 2,1-9,18)이다. 다양한 주제가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은 일관된 제작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러 시대와 상황, 장소, 사건 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잠언1장 7절에서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라고 고백하던 지혜의 근원을 잠언 9장 10절에서 반복되고, 잠언 31장 30절에서도 다시 언급됨으로써 일종의 '수미(首尾) 상관적 구조(inclusio)'를 형성하면서 다시 한번 고백하여 강조한다는 점이다.  

 

잠언 1~9장에서도 특별히 잠언1장 2~7절은 책 전체를 요약하고 있는데, 잠언을 일종의 '교육서'로 제시되며,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잠언1,7)임을 대주제로 천명한다. 곧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참된 지혜이며 '행복의 시작'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잠언 8~9장에서는 "숙녀 지혜"가 등장하는데, 지혜의 여성적 의인화가 이 부분의 핵심이며그녀는 창조때 하느님의 협력자로서 활동하였다고 소개된다. 잠언에 나타난 특이한 점은 지혜를 의인화하고 있는 것이다.

 

잠언 1장 20절~33절과 8장~9장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여기에서 지혜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는 여인으로 의인화되어 있다. 이렇게 지혜를 여성으로 의인화하는 것은 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여성 명사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 지혜는 마치 하느님의 말씀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것처럼 표현되는데, 그녀는 자신의 언어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안내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말씀의 선포자, 예언자적 임무를 수행하는 이로(잠언1,20-33), 그리고 하느님과 피조물의 중개자로(잠언8장) 소개된다.

 

이제 잠언의 또 다른 신학적 주제인 "창조와 지혜"가 잠언 8장에서 거론된다. 위에서 언급된 의인화된 지혜 하느님의 속성과도 연결된다. 왜냐하면 잠언 8장 22-26절을 보면, 이 지혜는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이미 거기에 있었고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거들었다(잠언8,27-29).

하느님께서 지혜로 세상을 만드셨다는 사상 잠언 3장 19-20절에서도 발견된다. 그렇다면 지혜는 신적 기원을 가진 존재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또한 그녀는 항상 하느님의 현존안에서 기뻐하며, 새 세계 어디에서나 뛰놀고, 사람들 안에서 즐거워한다(잠언8,30-31). 

 

지혜문학의 창조 신학은 이제 이전의 창조 신학 전승과는 차별화되어 창조가 단순히 하느님 혼자만의 행위가 아니라는 사고를 수용한다.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기뻐하시고 지혜를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잠언8,22-31). 이처럼 지혜는 은혜를 베풀고 올바른 질서를 세우는 힘이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제1독서 잠언에서 성부 하느님의 지혜요 말씀이신 성자 하느님을 미리 보여주고, 제2독서인 로마서 5장 1-5절에서 하느님의 사랑인 성령을 언급하며,  요한 복음 16장 12-15절에서 구약에 이미 계시된 아버지, 예수님,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온전히 계시되고 있다.

 

 

 

 

 

[삼위일체 대축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제1독서는 심연이 생기기 전, 하느님께서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지혜’가 있었음을 전합니다.

영원에서부터 계시는 그 지혜는 바로 ‘말씀’(로고스)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요한 1,1-2 참조).

 창세기는 한 처음에 ‘하느님의 영’이 함께 계셨음을 전합니다(1,2 참조).

이런 까닭에 한낱 미천한 인간 피조물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논한다는 것은 매우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복음 말씀은 이러한 성부, 성자, 성령의 친밀한 관계를 잘 보여 줍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과 언제나 일치를 이루십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이는 다음 장에서 이어지는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요한 17,10)라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십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하느님 계시의 충만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어 하느님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보여 주시고 이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어 제자들을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며 성자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며 은총 속에 머물게 됩니다.

세상의 환난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그 희망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먼저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향하는 우리의 모든 발걸음은 믿음, 희망, 사랑으로 지극히 충만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바랍니다.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에 감사드리며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시편 8,2.5)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삼위일체 대축일]

  

希望切望은 내가 選擇하는 것이다.

 

복음(요한16,12-1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 聖靈이 오시기 前에는 주님의 말씀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眞理로 깨닫지도, 믿을 수도, 記憶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眞理- ‘알레떼이아’ ‘레떼’- 妄覺의 강, 잘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眞理란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 聖靈님만이 앞으로 올 일들, 곧 내일의 영원한 생명, 구원에 관한 일들을 알려 주실 수 있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 13절 ‘진리의 영’께서 이끄시는 眞理? 그 진리로 ‘앞으로 올 일들을 알 수 있다.’ 하신다. 그것이 ‘예수님을 榮光스럽게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먼저 ‘우리 죄인들의 贖罪 祭物로 오셔서 十字架에 代身 달리시고, 죽으시는 예수님의 生命, 救援의 길이요 진리시다.’(요한14,6) 그 진리로 하느님의 영광을 받아 영광이 되는 것이다.

<영광-독사, 하느님의 神性과 本性인 사랑이 가시적으로 드러나 나타난 十字架의 사랑이다.>

 

使徒 바오로가 잘 證言하고 있다. 오늘은 사도 바오로의 證言으로 배우고자 한다. (천천히 마음에 새기자)

 

(로마8,1-17)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새 계약, 새 법)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의뜻)이 아니라 성령(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땅의 법, 생존)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하늘의 법, 생명)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믿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믿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맏으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믿음)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의로움 - 믿음이다. (로마4,3 참조)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믿으),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 肉의 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十字架, 그 피의 새 契約‘, 새법이 덮고 있기 때문이다.

13 여러분이 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行實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 聖靈의 힘인 성령의 법(1절)에 의탁하여 육(법)의 행실이 헛된 것임을 믿는 것, 그러면 肉(법)의 행실이 헛된 것임을 믿는 것, 그러면 肉(법)의 행실이 헛된 것임을 믿는 것, 그러면肉 (욕망, 죄)의 힘이 죽는다.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하느님이 나의 모든 것을 責任져 주실 ‘아빠, 아버자’임을 믿는다면 성령께서 함께하심이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 진리의 성령께서 세상의 나, 육적인 나를 否認하는, 버리는 그 苦難, 試鍊의 자리로 이끄신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모든 約束인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相續者로 영원한 生命을 얻는 眞理의 길이기 때문이다.,

 

(야고1,12)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히브12,7-8.10-11)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8 모든 자녀가 다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사생아지 자녀가 아닙니다.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苦難, 試鍊의 사건들은, 구원을 위한 나의 否認, 버림으로 이끄시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면 영원한 生命, 義, 平和에 대한 希望이지만, 믿지 못하면 切望이다.

 

(사도17,28) 28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영원한 보호자 眞理의 성령님!

우리의 삶속에서 저희 모두의 보호자로 함께 하시며 이끄시니 안심이며 우리의 , 生命이십니다. 感謝합니다. 저희 모두의 마음을 붙들어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 (요한16,12-15)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3)

 

요한 복음 16장 13절에는 진리의 영이 오셔서 믿는 이들을 위해 하시는 두 가지 일들이 두 개의 동사로 나타나 있다.

 

첫째는, 믿는 이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이다.

'이끌어 주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호데게세이'(hodegesei; he will guide)의 원형 '호데게오'(hodegeo)'인도하다', '지도하다', '안내하다','가르치다' 등 복합적인 뜻을 갖는다.

 

고전 희랍어 문헌에는 이 동사가 하늘로 가는 영혼의 여행에 관한 대목에 쓰였고,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나하'(naha)의 역어로 나오는데, 대개 하느님과 관련되며(탈출13,17; 15,13), 주로 시편에서 개인 생활 가운데 나타나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고백에서 쓰였다(시편23,3; 25,9).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인도하심은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통해서 절정을 이룬다(요한14,6).

또한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자가 되셔서 진리로 가는 길을 보여 주신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자애로 인도하시고(탈출15,13), 또한 당신께 성실한 종을 의로움의 길로 인도하셨듯이(시편23,3)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희랍어의 미래 시제가 나타내듯이 오늘도 그분께서는 믿는 이들의 삶에 내재하셔서 인도자로서의 역할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매일 매순간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 아래 있어야 하며, 성령 충만을 위한 기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에페5,18).

이것을 역으로 말하자면, 성령 충만이 없는 사람들은 주님의 참된 진리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믿는 이들에게 앞으로 올 일들 '알려 주실 것이다'는 것이다.

'알려 주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아낭겔레이'(ananggelei; he will tell)미래 시제이며, '드러내 놓다', '선포하다', '가르치다','알리다' 등을 뜻한다.

 

우리 믿는 이들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께서 매일매일 계속해서 우리 믿는 이들에게 미래 일을 가르치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과 목적에 대해 무지한 인간의 실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믿는 이들이 적절하게 하느님의 계획을 따라 살아야 함을 알게 한다.

 

사실은 이 동사가 문자적인 의미에서는 어떤 곳에서 돌아와서 어떤 사실을 '보고하다'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 믿는 이들에게 알리시는 미래의 일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말하자면, 그분께서는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사실을 가르치신다. 따라서 '드러내놓다'(disclose)는 어휘가 적합하다.

 

성령의 역할자의로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께서 우리 믿는 이들에게 계시하셨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일체의 것들을 깨닫고 이해하도록 가르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깨닫게 하시는 영인 진리의 영께 배울 때에만,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고, 하느님의 계획과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삼위일체 대축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삼위의 일치와 사랑으로 현존하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우리가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다만 성경의 계시를 통하여 그 놀라운 신비에 조금이나마 다가가 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세상은 그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고 죄악에 물들어 버렸지만성부께서는 그런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과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을(1,18 참조),

당신과 하나이신 분을(10,30 참조) 보내시어 그분을 통하여 세상이 구원을 얻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3,1).

아버지에게서 세상에 파견되신 아드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눈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펼치신 모든 활동이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고쳐 주시고, 악령에 시달리는 이들을 해방하시며마지막에는 스스로 속죄 제물이 되시어 그 희생 제사로 인류가 성부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14,16).

성령의 파견은 하느님 사랑의 또 다른 표현 방식입니다.

성부께서는 성자뿐만 아니라 성령까지도 보내시어 그야말로 당신의 모든 것을 세상에 내어 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파견된 진리의 영”(14,17)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머물며 성자께서 계시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이들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며 서로 친교를 이루도록 인도하십니다.

결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삼위께서 서로 나누시는 사랑은 고스란히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고그 사랑을 받게 된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요한 13,34 참조) 실천하며 삼위일체를 닮은 친교를 이루게 됩니다.

미사를 시작하며 나누는 인사를 떠올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2독서 참조).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삼위일체 대축일]

 

우리 스스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그리스도!

 

복음(요한16,12-15)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 왜? 인간의 어떠한 눈도 본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1코린2,9)

 

13*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감당 못할 말씀을 성령(聖靈)께서 가르치시고, 꾸짖으시며, 구원의 진리(眞理)로 이끄신다.(1코린2,1-14 참조)

 

13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로 이끄신다는 말씀이다. 곧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죽음, 그 피의 새 계약으로 구원을 완성하심인데, 옛 계약 곧 내 뜻, 소원을 위해 열심 했던 율법의 그 옛 사람인 나를 부수심, 부인(否認) 시키심으로 이끄신다. 그 옛 계약, 율법을 다 지키면 축복(祝福), 구원이다.(신명28,1)

그러나 세상 어떤 사람도 그 율법을 다 ㅈ켜 낼 수가 없기에 저주(詛呪)가 되었다.(신명28.15 로마3,20 야고2,10) 그래서 율법이 요구하는 값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독생자(獨生子)를 우리 죄의 속죄 제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대신 갚으신 것이다. (로마3,21-25 1코린1,18)

 

(시편130,3-4) 3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님,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4 그러나 당신께는 용서가 있으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敬畏)하리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영광(독사),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사랑, 구원의 계시가 드러나 나타나는 것, 영광이다. 곧 우리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느님의 영광이시다. 성령께서 증언하심으로 영광을 드러낸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 삼위일체(三位一體)의 모습이다. 하느님의 영광인 구원의 십자가, 그 진리는 사랑이신 성부 하느님께서 구원의 계획인 계약(스타오로스 - 기둥- 십자나무)을 세우셨고, 성자 하느님께서 사랑을 십자가에서 이루셨고, 성령하느님께서 그 모든 것을 깨닫고 믿도록 가르치심으로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르는 교회 밖에 구원이 있을 수 없다- 1코린2ㅡ14 참조)

삼위일체는 사랑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16)

 

(1요한4,10)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하느님의 외아들께서 사람의 육()을 입으시고 제물(祭物)이 되신 사랑이다.

 

(요한1,14)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들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외아들 ‘모노게네스’ - ‘하나를 가진 자’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두 마음을 지니고 산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은 ‘선악을 하나로 갖신 분’이라는 것이다. 저녁과 아침이 ‘하루, 하나’이듯 ‘밤과 낮, 어둠과 빛,(빛을 깨닫기 위해 어둠은 반드시 필요) 죄와 용서, 죽음과 부활’이 하나이다.

 

(요한11,25-26)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 진리(眞理)란 반드시 이루어짐을 뜻한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누구도 구원이 이를 수 없다. 절대로~

구원은 인간들의 의(義), 인간들의 사랑 실천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로마10,1- 참조), 울 죄인들을 위해 당신 외아들을 내주신 그 하느님의 의(義), 사랑을 믿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곧 ‘외아들(모노게네스)’은 우리가 생각하는 외아들이 아닌 ‘선악을 생명 하나로 갖은 분’이라는 것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사람)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교회 밖에 새 것, 새 창조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신앙(信仰)의 선조(先祖)들이 교회(敎會) 밖에 구원이 없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단다. 성경이 있는 개신교를 말한다면 몰라도 타 종교에 말이다.

그 길이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을 인간들의 ‘4대 성인(聖人) 중 하나’라고 말하는,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믿지 않는 타 종교에 어떻게 구원이 있겠는가? (타 종교, 특히 불교의 경전들은 구약과 거의 같단다. 신약으로 완성되지 못한 구약은 죽음의 법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리석다’ 말하는 그들에게 어떻게 구원의 길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하느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이 ‘사람의 규정과 교리, 지혜를 따르는 것이다.’(마르7,7) 이것이 변질되어가는 우리 가톨릭교회의 현실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성경(聖經)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눈 먼 인도자(引導者)와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마태15,14)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로마12,2) 2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새 것)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손수 가르치시며, 몸소 대신 탄식하시며, 기도하시는 지혜와 계시의 천주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저희 모두가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말씀),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0531일 일요일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이시면서 동시에 한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 이성으로는 완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요한 3,16). 

외아들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하나뿐인 아들을 뜻합니다. 그 외아들을 주신다는 것은 당신 자신을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은 이처럼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외아들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아드님께서는 아버지 뜻대로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내어놓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시고, 하느님의 영께서는 세례로 우리를 하느님의 품으로 이끄십니다

서로 자신을 내어놓고 받아들이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일치를 이루시는 분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는 수학 공식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입니다. 홀로 계시지 않고 늘 함께 계시며, 서로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사랑의 관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위하여 작은 것이라도 기꺼이 내어놓을 때,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아 갑니다.

우리는 미사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큰 선물인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십니다

이 사랑의 선물을 받고, 우리도 서로에게 사랑의 선물로 자신을 내어 놓읍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도 사랑의 공동체를 이룹시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삼위일체 - 하느님의 신비, 그 신비 담은 인간의 신비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부에게서 파견되고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성자의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였고, 오순절에 성부와 성자에게서 파견되신 성령의 강림 사건으로 전례력상 부활 시기를 마쳤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이로써 하느님의 세 위격이다 계시되었기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에 교회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경축합니다.

‘위격이 다른 세 분이 같은 하느님 한 분’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로서는 이해 불가능한 ‘신비’입니다.

이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철학적, 신학적 개념들이 동원됩니다.

‘위격’(persona)과 ‘본질’(natura, essentia, substantia)이라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용어를 동원하여 학문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비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 어떠한 설명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절대 신비’이고 ‘지고의 신비’입니다.

이해 불가능한 신비인 ‘삼위일체의 신비’는 그저 신학자들의 관념적, 학문적 대상이 아니라 실은 우리 모두에게 깊이 연관되어 있는 신비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바로 이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육화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지상의 존재이긴 하지만, 순전히 지상적인 존재인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는 성삼위로부터 오고 성삼위의 모상에 따라 구성되고 역사의 삼위일체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위로부터 형성되어 위에서 오고(oriens ex alto), 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 역시 삼위일체 신비가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피부로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이 삼위일체 신비가 우리 인간존재의 신비와 연결되어 있음을 묵상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의 깊은 신비를 지니신 분이시기에, 하느님을 우리가 온통 다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런 하느님의 깊은 신비를 닮아 창조된 인간이기에, 실은 우리 한사람 한 사람 역시 ‘존재의 신비’를 품고 있고, 하느님의 깊은 신비를 담고 있는 ‘신비의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국적이나 피부색, 재력, 능력, 건강이나 사회적 지위 등등과 무관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고 그 안에 ‘하느님을 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신비 중의 신비인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으며, 지엄하신 하느님의 신비 속에 잠기는 거룩한 시간을 보내면서, 그 깊은 하느님의 신비를 품고 있는 우리 인간 존재의 존엄함을 묵상해 보는 시간도 가져 봅시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 그래서 때로는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가족과 이웃 한 분 한 분이 실은 하느님의 이 깊은 신비를 담고 있는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임을 깊이 묵상해 보는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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