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태생소경 치유 ( 요한 9,1-41)

2017. 3. 25. 오후 11: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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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 태생소경 치유 ( 요한 9,1-41)

08.03.02 - 요한 9,1-41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사이의 아들 가운데 막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으로 세우게 하신다. (사무엘상 16,1ㄱㄹㅁㅂ.6-7.10-13ㄴ)
그 무렵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이 6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0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며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라고 한다. ( 에페소 5,8-14)
형제 여러분,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10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11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12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13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14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 눈먼 사람을 보시고 눈에 진흙을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게 하시어 보게 하시자, 눈이 멀었던 이가 예수님을 믿고 경배한다. ( 요한 9,1-41)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4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8 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9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으니, 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17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18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그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20 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하고 말한 것이다.
24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25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26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 27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30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32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8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39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4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사순 제4주일 제1독서 (1사무16,1ㄹㅁㅂ.6-7.10-13ㄴ)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13)

인본주의적 통치로 실패한 초대 임금은 사울의 뒤를 이어서, 하느님께서 새롭게 준비하신 임금인 다윗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다윗'이란 이름의 어원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징적으로 '사랑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도드'(dod)를 어근으로 해서 '사랑을 받는 자'(beloved one)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사실상 사무엘서의 중심 인물인 '다윗'이라는 이름을 지금까지 숨기고 있다가 기름부음이 이루어지는 사무엘기 상권 16장 13절에서 갑자기 등장시킨 것은 이사이의 아들 중에 하찮게 여김을 받은 사람이 결국 위대한 '다윗 왕'이 되었다는 것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다윗이 몇 살 때 기름부음을 받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다윗이 친교제 이후 공동 식사에도 불참한 것으로 보아 성인(成人)으로 인정되던 20세에도 이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그는 B.C.1025년경, 약 15세에 처음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다윗은 두 번 더 기름부음을 받았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임금이 된 B.C.1010년경, 약 30세(2사무2,1-4)때와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임금이 된 B.C.1003년경, 약 38세 때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2사무5,1-5). 이처럼 다윗은 임금으로서 처음 기름부음을 받고 정식 임금으로 등극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며, 그 기간 동안 하느님께로부터 많은 단련을 받았다.

한편, '들이닥쳐'에 해당하는 '왓티츨라흐'(wathitsllah; and came)의 원형 '찰라흐'(tsallah)'갑자기 엄습하다'(rush)라는 뜻을 갖는다. 특히 이 단어가 본문의 표현처럼 '위에'라는 의미를 지닌 '엘'(el; upon)과 같은 전치사를 동반하여 사람과 결합될 때에는 '주님의 영이 간택한 자의 위에 내리는 것'을 나타낸다(판관14,16; 10,6). '주님의 영'이 과거 사울에 내리셨던 것처럼(1사무10,6; 11,6), 이번에는 다윗에게 내리셨다. 그러나 두 경우에는 차이가 있다.

사울의 경우에는 기름부음을 받을 때 곧바로 주님의 영이 내린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돌발적으로 내렸다. 하지만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을 때 곧바로 주님의 영이 내렸으며 그 능력은 줄곧 지속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차이점도 결국 하느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간택하셨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제 사무엘기 상권 16장 13절사무엘기 상권 16장 1~13절의 사건을 마무리하는 부분으로서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라는 명시적 표현으로 막을 내린다.

반면에 다음에 이어질 사무엘기 상권16장 14~23절 악령으로 말미암은 사울의 번뇌와 다윗이 사울의 손발이 되는 내용'주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라는 명시적 표현으로 시작된다. 이로써 인본주의적인 임금의 시대에서 신본주의적인 임금의 시대로 서서히 이동해 가는 것이다.


사순제4주일(요한 9,1-41) - 소아마비 막내딸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십니다. 이 장면은 하느님께서 진흙을 빚어 사람을 창조하시는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창세 2장 참조).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는 의미이지요. 이어 예수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자 그의 눈이 밝아집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는 일하면 안 된다는 자신들의 논리에 갇히고는 예수님을 죄인 취급해 버립니다. 더욱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눈을 뜬 사람과 그의 부모까지 몰아붙이지요. 부모는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해 주셨다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추방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얼버무려 버립니다.
하지만 눈을 뜬 사람은 바리사이들의 위협에 조금도 굴하지 않지요. 오히려 그들에게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상세하게 증언합니다. 대단한 용기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바리사이들로부터 회당에서 쫓겨나지 않습니까?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다가가시고, 그는 마침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지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는 모든 것을 보게 되었고, 영적인 눈마저 뜨게 된 것입니다.
오늘 바리사이들은 진실을 은폐하려 하지만 진실은 결코 어둠 속에 묻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빛의 아들로 처신했지만, 점점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하느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처신했지만 결국 하느님을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 되었지요. 반면, 눈을 뜬 사람은 더욱 빛의 세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


예수님께서 어떤 눈먼 사람을 고쳐 주셨는데,

하필 그날이 안식일이었고(요한 9,14),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죄인이다.

그런 죄인이 한 일은 하느님의 기적이 아니다." 라고 주장합니다(요한 9,16).


그들은 눈먼 사람이 보게 되었다는 기적은 보지 않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율법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기적을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율법만 보느라고

그 율법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은 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은총을 받은 당사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요한 9,25)."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요한 9,32-33)."


이 말을 정리하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분은(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나를 고쳐 주셨다.

그러니 그분은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이라는 것이 분명하다."입니다.


사실 진리라는 것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그 사람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고

'밖으로' 내쫓아 버립니다(요한 9,34).

밖으로 내쫓았다는 말은 회당에서 내쫓았다는 뜻인데,

유대인들의 공동체에서 추방해버렸다는 뜻이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했다가 보게 된 그 사람은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즉 영적으로 눈을 뜬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입니다.


육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 9,3)."


그러나 영적으로 눈이 먼 것은 죄입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영적으로 눈이 먼 것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안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봅니다.

그것은 스스로 눈을 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은 본 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능으로 기적을 행하셨음을 보았다면

예수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데,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믿기가 싫어서

예수님 덕분에 보게 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했다는 것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만일에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위해서

어떤 신분증 같은 것을 만들어 주셨다면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믿었을까?

아마도 분명히 그들은 그 신분증이 위조된 것은 아닌지 조사했을 것입니다.

진짜 신분증이라는 것이 입증되어도 혹시 훔친 것은 아닌지 의심할 것이고,

훔친 것이 아니라고 증명이 되어도

혹시 무슨 착오가 있어서 잘못 발급된 것은 아닌지 의심할 것입니다.

결국 그 신분증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무것도 안 믿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셨습니다.

복음 선포와 설교를 통해서, 병자 치유를 통해서,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을 통해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을 통해서...

그분의 말씀과 기적들은 제자들만 듣고 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고 보았는데, 믿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안 믿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눈을 감고 안 보았으면서도

"나는 못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일은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단은 바오로 사도를 위해서

신분증 같은 것을 만들어 주지는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전하는 '말씀'과 자신의 '삶'으로

자기가 사도라는 것을 증명했는데,

믿은 사람도 있었고, 안 믿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안 믿은 사람이 많았던 것은 바오로 사도의 탓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영적으로 눈을 감고 있었던 탓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또는 교회, 또는 성직자들)은

자신들이 제대로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제대로 '복음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들의 '삶'부터 먼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적으로 눈을 감고 있어서 복음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지만,

신앙인들(또는 교회, 또는 성직자들)이 제대로 살고 있지 않아서

거부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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