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자 2

2015. 4. 5. 오후 7:46:11

글자

 

 

[논어강독 4] 공자의 정치학

지금까지 <논어>에 나타난 배움과 앎이라는 주제를 다뤘습니다. 이번에 다룰 주제는 공자의 ‘정치학’입니다. 왜 뜬금없이 정치학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공자의 학문은 그 자체가 이미 처음부터 정치학이었습니다.

서양 철학, 정확하게 말하면 고대 그리스로부터 비롯된 철학은, 그 시초가 자연철학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사람을 포함한 세상 그 자체를 말합니다. 자연철학의 특징은 ‘영원한 그 무엇’을 찾는 데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 그러니까 기원전 7세기 경에는 전쟁이 잦았습니다. 이 때 문학적으로 서정시가 유행했는데, 시의 주제는 천편일률적으로 허무와 죽음, 고독, 그리고 전쟁에서 피어난 사랑 따위였습니다. 일을 하다가도 전쟁이 나면 바로 소집되어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즐거움보다는 슬픔이 지배했던 시대였습니다. 철학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인생의 허무를 극복을 위해 변하지 않는, ‘영원한 그 무엇’을 찾기 위한 사색이 바로 철학이었습니다.

반면 동양철학이라고 일컫는 공자와 맹자, 순자, 노자, 묵자, 한비자의 철학은 사실 순수학문을 의미하는 철학이 아닙니다. 영원 그 무엇을 찾아 체계적으로 사색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양의 사상은 처음부터 정치학에 가깝습니다. 공자가 평생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왕들을 만난 것은 스스로 대부의 위치에 올라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맹자의 왕도정치, 순자의 예치주의, 묵자의 겸애설에 바탕을 둔 현인정치, 한비자의 법치주의 등은 모두 정치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사상은 난세를 극복하여 치세|治世|를 이루려는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자가 생각한 정치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령으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면하기만 할 뿐이요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나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사람들은 부끄러워하여 장차 바르게 된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위정2-3>

유가의 덕치주의|德治主義|와 법가의 |法治主義|를 대비시키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정|政|은 정령이라고 풀어봤습니다. 명령이나 법률을 말합니다. 먼저 앞 문장은 법치주의의 폐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하거나 법으로써만 이끌다가 만약 그것을 어겨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그 형벌을 피하려고만 할 것이고, 혹시 형벌을 받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통법규를 어겨서 걸리면 대개는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벌금 내는 돈을 아까워하는 마음뿐입니다. 비자금을 조성하여 불법적으로 유용하다 적발되어도 진실로 부끄러워하는 정치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반면 덕으로써 다스리면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여 결국은 스스로 바로잡게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어지러운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것은 법가사상으로 무장한 진나라였습니다. 당시 재상은 상앙|商鞅|이었는데, 강력한 법치로 진제국의 통일의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자 그의 잔혹한 정치에 원한을 품은 반대파에 의해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집니다. 진나라는 30년을 못가 망하고 맙니다. 그 후에 중국은 한|漢|에 의해 다시 통일됩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들어 법가의 법치주의 한계를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역사 전체를 놓고 보자면, 진과 한은 중국에서 통일제국이 완성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이 통일제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면, 한은 이를 계승하여 지켜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라를 일으킬 때는 힘을 강력하게 결집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어 법가가 유용했지만, 나라가 안정되면서 더 이상 강력한 법과 무력만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 한계에 부딪친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들 흔히, 덕치는 평화로운 시대 즉, 치세의 학이라 하고, 법치는 어지러운 격변기, 즉 난세의 학이라고 합니다.

다시 원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사람들은 부끄러워하여 장차 바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언제 생길까요?

저는 가끔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디 도깨비 감투가 생겨 내 몸이 보이지 않는다면 …….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 집에 몰래 주고 와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개가 평소에 눈치가 보여 못하던 일들을 벌이거나, 아니면 입가에 살며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요리조리 못된 짓을 골라할 생각을 할 것입니다. 투명인간이 되면 ‘부끄러워하는 마음 제로(0)’인 상태가 됩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어지는 것은, 나를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나와 남을 이어주는 고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둘 사이의 관계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몇 년 동안 군대에 가 있어도 오매불망 생각나는 애인은 나와 가장 밀접한 관계의 사람이기 때문이며, 만원 지하철 안에서 서로 몸을 바짝 붙이고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바로 앞의 그 사람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건 나와 그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별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바로 이 관계의 지속입니다.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될 때만 사회는 유지되고 질서가 생겨납니다. 횡단보도가 아닌 차도를 그냥 건너는 것도 남이 볼까 부끄럽고, 휴지를 길거리에 그냥 버리는 것도 부끄러워 그러지 못합니다. 길거리에 노상 방뇨할 수 없는 것은 부끄러워 그러지 못하는 것이며, 술 취하여 과감하게 담벼락에 쉬~하는 것은 술이 부끄러움을 마비시켰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바로 이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라야 스스로 바로 서는 사회라고 믿었습니다. 덕치가 정말 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와는 별개로, 우리는 법치보다는 덕치에 더욱 애정이 끌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덕으로써 인간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반면, 강력한 법만으로 그 질서를 바로잡을 수도 없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500년이 지났지만, 공자의 정치학이 여전히 그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요?

[논어강독 5] 옛것과 새로운 것

공자는 매우 박식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오로지 독학하여 당대 최고 석학의 경지에 오릅니다. 하기야 공자와 같은 신분에 마땅히 교육을 받을 만한 데도 없었습니다. 중국 특유의 과장이 섞이긴 했겠지만 그의 주위에 제자들이 3,000여 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공자에게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그만의 공부 비법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여 애써 구하는 사람이다.”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자왈, 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 <술이7-19>

무언가 대단한 비법이 나올 것 같았는데, 공자는 옛것을 좋아하여 애써 구해 공부했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여기서 옛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오래된 고전|古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책으로, 또는 말로 전해지는 모든 것은 이미 옛것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옛것과 옛것이 아닌 것의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과연 옛것이란 무엇일까요?

주자는 <대학|大學|> 서문에서 ‘무왕불복|無往不復|’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직역하자면 ‘가서 오지 않는 게 없다‘는 것이니, 지나간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일 겁니다. 원래는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했던 솔로몬의 말이 우리에겐 더 익숙합니다. 여기서도 옛것과 현재의 것의 차이가 모호해집니다.

옛것과 지금의 것, 혹은 나중의 것을 나누는 기준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또 무엇일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뚱딴지같은 질문이 바로 철학의 출발점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공자의 다음 말을 보면서 시간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데워서 새로운 것을 알 수 있으면, 스승이 될 만하다.”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위정2-11>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옛것을 연구해서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는 것’ 정도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이 말의 용법을 보면, 대개 옛것|古|을 익히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즉 옛것을 제대로 알아야 새로운 무언가를 알 수 있으니, 옛것을 익히는 데 게을리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은연중에 복고적인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러나 앞에서 공자의 생애를 통해 이미 알 수 있듯이, 그는 언제나 현실 정치의 참여가 목적이었습니다. 옛것만을 반복하여 익히면서 그냥 앉아있질 않았습니다. 과거 찬란했던 주례|周禮|를 현세에서 구현하고 싶어 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고|古|보다는 신|新|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옛것을 익히는 목적은 오로지 새로운 것을 아는 데 있다는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온|溫|은 데운다는 뜻입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을 따뜻하게 데우다 보면, 거기서 무왕불복|無往不復| 또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과거와 현재를 모두 통달한 사람이 되는데, 이런 사람이야말로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도 옛것과 새것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 모두가 하나의 통일된 것으로 인식해야 진정으로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리 해석하면, 옛것과 새것의 그 관계를 통찰할 수 있어야만 진정 ‘안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흔히들 나이가 들면 뇌세포가 죽어가므로 머리가 점점 나빠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살다보면 보더라도 스폰지처럼 다 흡수하는 청소년기의 왕성한 기억력이 점차 힘을 잃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머리가 나빠진다고 할 수 있을까요? 머리가 좋다, 나쁘다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여기서도 핵심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결국 그에 얽힌 ‘관계’를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사물 간의 관계를 훤히 꿰뚫어 보는 능력을  ‘통찰력’이라합니다. 지식과 경험이 쌓여야 통찰력이 생깁니다. 옛것을 볼 줄 아는 능력과 새것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에서, 그 둘 사이의 관계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생깁니다. 통찰력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넘나듦’입니다. 고전을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옛것과 새로운 것의 관계를 알아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공자의 공부 비법,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 답이,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의 다산 정약용식 풀이에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 문장을 ‘스승이 될 만하다.’라고 해석하는데, 다산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이란 직책은 한번 해볼 만하다.”

위|爲|를 ‘삼다’가 아니라 ‘하다’라고 해석하고, 사|師|를 ‘스승’이 아니라 ‘스승 노릇’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선생의 역할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제자들에게 쉽게 풀어 설명하는 데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차갑게 식어버린 옛것을 제자들이 먹기 쉽게 알맞게 데워서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 미처 알지 못한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다산은 아마 자신의 체험에 근거하여 이와 같이 해석한 것 같습니다.
다산의 풀이가 옳다면, 공자의 박학다식함의 비결은 바로, 스스로 공부한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면서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우고 익혀서 나누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논어강독 6] 똘레랑스

‘똘레랑스’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이 소개되고부터였습니다. 이 책은 읽는 이에게 잔잔한 충격을 줍니다. 차분한 문체에는 23년 간의 망명 생활의 고뇌와 깨달음이 묻어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책만큼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조금 샜습니다만, 아무튼 이 책에는 그동안 우리에게 생소했던 똘레랑스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똘레랑스의 어원은 '견디다' '참다'를 뜻하는 라틴어 'tolerare'에서 나왔습니다. 1572년 8월 24일 기독교 구교(가톨릭)와 신교(위그노)의 갈등에서 빚어진 성 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이 똘레랑스를 출현하게 한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전해집니다. 파리에서만 3,000여명의 신교도가 구교도에 의해 희생되었고, 이후 악순환이 계속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지식인들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모아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일 것을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똘레랑스입니다. 똘레랑스를 우리말로 옮기기에 딱 맞는 표현을 찾기 힘듭니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자면 ‘관용’이되 매우 ‘적극적인 관용’이라고 함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화|和|의 입장이지 동|同|의 입장이 아니다. (반면) 소인은 동|同|의 입장이며 화|和|의 입장이 아니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자왈,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자로13-23>

여기서 화|和|를 프랑스의 똘레랑스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조화로운 상태’ 정도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대개 위 문장은 이런 식으로들 해석합니다.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동일하되 화목하지 못하다.”

이렇게 해석해도 됩니다만, 동양 특유의 대비법에 근거하여 풀이하는 것이 훨씬 명쾌합니다. <논어>에서는 대비의 방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어떤 단어에 대한 정의는 그 근원을 찾다 보면 무한반복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로 하나의 개념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 동양의 각 문헌에서는 주로 비유나 대비의 방법을 씁니다. <도덕경>과 <장자>가 주로 비유적인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면, <논어>는 대비의 방법을 많이 씁니다. 여기서는 군자와 소인을 대비하여 그 둘의 근본적인 차이를 또한 화|和|와 동|同|의 대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화|和|와 동|同|의 차이에 대해서는 <좌전>에 잘 나와 있습니다.
제나라 경공이 안자|晏子|에게 화|和|와 동|同|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안자는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화|和|는 고깃국을 끓이는 것과 같아서, 물, 불, 식초, 고기, 간장, 소금, 매실 등을 고루 넣어 끓여야 제 맛이 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또한 맑고 흐림, 크고 작음, 길고 짧음,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골고루 녹아 있는 음악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물로만 조미를 하면 누가 먹겠으며, 여러 악기가 모두 하나의 소리로만 연주한다면 누가 그것을 듣겠냐고 되묻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同|이라는 것입니다.

화|和|는 조화를 뜻합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동|同|은 완전히 같음을 뜻합니다. <논어>가 정치학이라고 했을 때, 이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화|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동|同|은 무조건 같음을 요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군자가 정치를 하면 다양성을 인정하여 무조건적으로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은 반면, 소인이 정치를 하면 무조건 같은 것으로 요구하여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화는 똘레랑스요, 동은 전체주의입니다.
굳이 멀리 1572년 파리의 신·구교 충돌을 예로 들 것도 없이, 우리의 가까운 과거만 보더라도 이 말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오로지 같음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군사독재, 전체주의, 극좌, 극우의 다른 이름입니다.


[논어강독 7] 군자 : 제너럴리스트 vs. 스페셜리스트

앞에서 군자는 화|和|의 입장이고 소인은 동|同|의 입장이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논어> 전반에 걸쳐 군자와 소인의 비교가 많이 보입니다. 군자는 어떠한데 소인은 어떠하다는 식의 대비가 상당히 많습니다. 스무 편 중에서 약 70여 차례나 등장합니다. 이런 까닭에 <논어>를 ‘군자학’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군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군자와 대비되는 ‘소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것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습니다. 언어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 용법이 바뀌고 그 의미하는 바가 확장되거나 축소되어 원래의 의미와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자와 소인이 바로 그러한 예입니다. 오늘날에는 실생활에서 군자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소인이라는 말도 쓰지 않습니다. 소인배라는 말이 쓰이긴 하지만, 간사하다는 의미가 많이 내포되어 있어 <논어>에 나오는 소인과는 그 의미가 많이 다릅니다.

군자에 대한 여러 설|說|들을 종합해보면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먼저 군|君|은 군주|君主|와 같은 뜻으로 ‘통치자’로 볼 수 있습니다. 공자 시대의 왕과 제후를 뜻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이때의 자|子|는 존칭입니다. 그런데 자|子|를 말 그대로 아들로 해석하면, 군자는 군주의 아들이 됩니다. 당시는 혈연에 의거한 지배 체제였으므로, 군주의 아들은 곧 일가의 모든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군자는 귀족 또는 관료 등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군자는 특정한 신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덕이 많은 자 또는 훌륭한 사람 등을 통칭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훗날 주인, 남편 등으로까지 의미가 확대됩니다.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논어>에서 쓰인 각 개념의 명쾌한 정의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인|仁|, 도|道|, 예|禮|, 덕|德|, 군자|君子|, 소인|小人| 등. 참으로 불친절한 <논어>를 해석하기 위해 우리는 고증과 상상력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논어>에 대한 해설서만도 3,000 여 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 같은 이도 감히 <논어>를 논하는 축에 끼어 훈수를 둘 수 있는 것이겠지요. 보다 더 전문적인 것은 전문가에게 맡겨야할 문제이고, 제 생각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군자를 특정 신분을 지칭하는 말로 보지 않습니다. 또한 그 뜻이 고정된 단어로 보지 않습니다. 앞서 학|學|의 의미를 살펴볼 때도 언급했듯이, 이때는 학|學|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시기였습니다. 물론 학|學|이라는 글자 자체는 이미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공자가 말하는 진정한 학|學|의 의미는 공자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군자|君子|라는 말도 이미 당시에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일지 모르겠으나, 공자에 의해 그 용법이 바뀌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공자는, 당시 새로 떠오르는 사|士| 계층을 군자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논어>를 정치학으로 보자면 군자는 곧 관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료이되 개인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천명을 받들어 덕치를 행할 수 있는 관료라면, 이미 그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관료의 한계를 벗어난 것입니다. 군자는 곧 덕과 지혜를 겸비한 훌륭한 사람의 총칭인 것입니다. <논어>에서 군자와 소인을 비교해 놓은 여러 구절을 보면, 각 상황마다 해석을 조금씩 달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군자라는 뜻을 하나로 고정시켜놓고 전체를 해석한다면 말이 안 되는 해석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군자를 덕과 지혜를 갖춘 사|士| 또는 관료, 또는 제후와 왕이라고까지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음 문장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위정2-12>

<논어>가 아무리 압축 파일이라지만, 저런 식으로 써놓으면 참으로 난감합니다. 여기서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것이 고전을 읽는 묘미이기도 합니다. 다빈치 코드가 아니라 공자 코드를 풀어 봅시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군자는 그릇과 같이 용도가 한정된 존재가 아니다’입니다. 그릇은 밥을 먹든 물을 마시든 이미 형태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확대하면 하나의 기술에 익숙한 숙련공 또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 옮기면 스페셜리스트. 현대 자본주의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막스 베버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논어>의 이 구절을 들어 동양 사회는 전문성을 거부하는 비합리적인 사회로 규정했습니다. 막스 베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문성은 곧 효율성이며 경쟁입니다. 자본주의에서 꼭 필요한 속성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전문성은 언제나 아랫사람이 갖추어야 할 능력이었습니다. 도자기를 굽고, 철을 다듬고, 불상을 조각하고, 탑을 세우고, 수레를 만들고, 마차를 몰고 ……. 윗사람은 그저 시키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막스 베버가 말한 전문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하층민을 위한 직업윤리일 뿐입니다.

한편 자본주의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는 생전에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라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제너럴리스트는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두루두루 유능한 사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스페셜리스트의 시대라고 하여 모두 스페셜리스트를 동경하면서, 제너럴리스트는 마치 두루두루 사용할 수는 있어도 막상 어느 분야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대중적인 지적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가 남긴 경영학의 업적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학습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만약 스페셜리스트에 머물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독서광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처럼, 그것은 어디까지나 낮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를 가리키는 표현일 뿐이며, 스페셜리스트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도 존재하며,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결국 제너럴리스트가 움직이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제너럴리스트가 될 것인가, 아니면 스페셜리스트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셨나요? 2,500년 전에 공자가 했던 ‘군자불기’라는 단 네 글자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전문성에 관한 논의가 불을 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보면, 위의 논의는, 제너럴리스트이든 스페셜리스트이든 간에 정작 ‘인간’에 대한 고민은 빠져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는 비인간적인 성격의 논리입니다.

이렇게 읽어보면 어떨까요. 군자를 군주의 명을 받은 자, 즉 전문 관료라고 한다면, ‘관료는 그릇이 아니다’는 말로 해석될 것이고, 이를 확대하면, ‘관료는 군주가 제멋대로 쓰는 도구가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군자는 왕과 제후 등의 귀족이나 일반 평민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지키며 천명을 따르는 존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춘추전국시대에 사|士|라는 계층이 출현하게 된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공자의 집단이 철저하게 사|士| 집단이라고 했습니다. 사|士|는 제3계급입니다. 귀족도 평민도 아닙니다. 따라서 공자의 사상은 제3계급의 사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士|가 비록 군주를 도와주는 일을 맡고는 있지만 군주만의 도구가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에게는 천명을 받들어 군주와 백성을 보필할 의무가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철저하게 보수적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유가가 실제로는 당시 떠오르는 신진 계층의 이해를 대변한 진보적 집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이상적인 선비|士|의 유형, 그것이 바로 군자|君子|입니다.

여기까지 <논어> 강독 끝. 무언가 아쉽습니다만, 허전한 것은 직접 원전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논어>는 읽는 사람에 따라, 읽는 시기에 따라 늘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저처럼 직접 <논어> 강독을 해보시는 것이 어떠할른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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