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자 1

2015. 4. 5. 오후 7:41:51

글자

 

압축 파일 <논어>

이제 드디어 <논어>를 들여다 볼 차례입니다.
삼황오제로부터 춘추전국시대까지의 역사 이야기, 그리고 공자 이야기. <논어>를 알기 위해 참으로 많은 길을 거쳐 왔습니다. 도대체 <논어>가 뭐길래 우린 이렇게까지 먼 길을 돌아왔을까요?

< 논어>에 실린 공자의 사상은 대부분 14년 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대략 68세부터 73세까지의 4~5년에 걸친 말년의 생각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그 때 그 시대와 공자의 생애를 전혀 모른 채 <논어>의 첫 장을 넘기면 피식 웃음부터 나올 것입니다. 허탈한 웃음 또는 비웃음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논어>가 참으로 대단한 경전이라고 하여 무작정 그 첫 장을 들춰본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그러할 것입니다.

첫 장을 펼치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학이1-1>

이 편의 이름은 <학이|學而|> 편입니다.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배우고> 편입니다. ‘학이시습지 ……’의 첫 두 글자를 딴 것입니다. 2편의 제목은 <위정|爲政|> 편입니다. 우리말로 <정치를 하되> 편입니다. 이 장은 ‘자왈,위정이도,비여북신……’으로 시작하는데, ‘자왈’은 너무 많이 등장하는 말이어서 그 다음 두 글자를 따서 편명으로 삼은 것입니다. 최초에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성의 없어 보입니다.
내용도 그냥 보면 별 내용도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말이나 대화들이 체계도 없이 불쑥 튀어 나옵니다. 그 대화가 이루어진 상황이나 장소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어 후세 사람들에게 엄청난 숙제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논어는 창작이 아니라 채록입니다. 공자가 직접 집필한 것이 아니라, 공자의 말을 제자들이 기억을 되살려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도 그러하고, 불경도 그러합니다. 공자가 실제 했던 말조차 그가 처음 한 말이 아니라 그 당시 일상적으로 쓰이던 말을 되풀이했던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와 같은 말은 공자가 직접 지어냈다기보다는 이미 그 당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널리 썼던 말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섞어놓았으니 제대로 읽어봐도 제목을 짓기가 만만찮습니다. 각 편의 제목이 저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앞뒤 전후 사정에 대한 설명도 없이 뜬금없이 등장하는 공자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풀어 써야 합니다. 압축된 그 말 속에 담긴 뜻을 풀지 않고서는 그 진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한자|漢字|라는 것 자체가 그 글자 하나에 수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으니 더욱 해석이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당시에 인쇄술도 없었으니 그 글자를 죽간에다가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을 것입니다. 최대한 글자 수를 줄이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생각을 압축하고, 말을 압축하고, 글까지 압축하여 담았으니, <논어>는 한마디로 압축 파일인 셈입니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그것이 2,500년 전의 압축 파일이라는 것입니다. 정성껏 압축을 풀었는데 원래의 글 자체가 이미 암호 수준입니다. 겨우겨우 해석을 해놓고 보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 어감이 조금씩 다릅니다. <논어> 해설서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조금 있다가 다루겠습니다만, 지금은 학습|學習|이라는 말로 묶어 사용하는 단어를 예전에는 학|學|과 습|習|의 용법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도 오늘날 쓰이는 의미와 조금 다릅니다. 인민|人民|이라는 말도, 인|人|과 민|民|의 의미를 달리 사용했습니다. 군자|君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예|禮|는 오늘날 말하는 예절|禮節|이라는 뜻과 무엇이 다른지……. 풀어 놓으니, 말은 되는 것 같은데 정작 진정한 뜻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고문|古文|의 해석 방법을 따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 책을 참조하여 가장 적합한 해석이라고 생각한 것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그러나 합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고전을 읽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 바로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재단하지 않기’입니다. 사극을 보면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이 등장합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우리 손으로 뽑지 않은 왕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면서 백성의 생사를 쥐락펴락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복장도 그렇습니다. 소매도, 바짓가랑이도 치렁치렁한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수염을 기르고, 머리는 평생 자르지도 않고, 사시사철 갓을 쓰고 있습니다. 만약 아직도 절대 왕권을 행사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서 그 시도를 막아낼 것입니다. 아직도 거추장스러운 옛 옷을 입고 학교에 다니거나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며칠을 못가서 그만 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옛날 사람들을 모두 바보 같고 멍청한 사람이라도 매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당시 그런 신분질서와 복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초기 주|周|나라의 문화로 돌아가자고 외쳤다고 해서, 그를 노예주 계급을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라고 몰아칠 수는 없습니다. <논어>에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항상 대비해서 설명한다고 해서, 이분법과 흑백론의 원조라고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그런 말을 한 진정한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먼저이고, 그것이 현재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거의 말들 속에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보편적인 그 무엇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고전을 읽는 근본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부터 <논어> 강독에 들어갑니다. 강독은 뜻을 밝히면서 읽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논어>의 전편을 순서대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각 편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순서대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몇 개의 주제를 정하여, 그 주제에 해당되는 문장을 골라 읽고 그 뜻을 음미하는 시간을 마련해볼까 합니다.

그 첫 번째 주제가 ‘학습과 실천’입니다.

[논어강독 1] 학습과 실천

<논어> 20편의 처음이 <학이> 편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다시피 <학이> 편이 맨 처음 나오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학이> 편이니까 무언가 배움에 관한 내용이겠거니 짐작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뒤에는 효|孝|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예|禮|에 대해 말하다가, 정치에 대해 말하는 등 그야말로 체계가 없습니다. 배움에 대한 말은 오히려 다른 편 군데군데 흩어져 있습니다.
우선 <논어>하면 떠오르는 <학이> 편, 첫 문장을 보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학이1-1>

앞에서 살펴봤듯이, 공자는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아버지도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나이 열다섯에 동네 잔치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계씨는 사|士|를 대접하려 한 것이다. 감히 네가 올 자리가 아니다.”라고 했던 양호의 말이, 어쩌면 죽을 때까지 가슴에 사무쳤을지 모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나이 삼십에 홀로 섰으며, 마흔 살에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위정2-4>

공교롭게도 공자가 학문에 뜻을 두었다는 열다섯 살 때가 바로 문전박대를 당한 서러움이 있었던 바로 그 때입니다. 그 후로 공자는 오로지 스스로 배우고 익혀서 만세의 목탁이 되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공자를 공자답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학|學|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의 목적 중의 하나가 신분 상승입니다. 배우는 것 그 자체가 기쁜 것도 사실이지만, 별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공부를 하여 좋은 데 취직하거나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사는 것을 꿈꿉니다. 공자가 살던 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자 문하에 삼삼오오 모여드는 제자들 중에, 간혹 오로지 공부 그 자체에 뜻이 있어 오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대개는 공부를 하여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공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공자도 평생에 걸쳐 군주와 대부 앞에서 유세를 하며 정계 진출을 꿈꾸었습니다. 그 꿈이 결국 좌절되어 결국 스스로 은퇴 선언을 하고, 국내 최대 사설 학원장으로 여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공자가 살던 때에 와서야 공부하는 사람들이 부각되었을까요? 유가니 도가니 묵가니 하는 제자백가가 출현했을까요? 관학을 대신한 최초의 사학인 공자 학원은 왜 이때 생겨났을까요?

이미 앞서 살펴보았듯이,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종법제도가 무너지고,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던 격변기였습니다. 노예제 사회나 철저한 종법제도와 같이 엄격한 신분 위계가 있을 때에는 학습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공부를 한다고 신분이 상승될 여지가 전혀 없는 사회니까요. <논어>의 첫 머리에서 ‘학습’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기존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금이 가고 있는 사회적 격변기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원래의 문장으로 돌아가서 원문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학이시습지’를 저는 ‘배우고 때맞춰 익히니’라고 번역했습니다. 오늘날에는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로 쓰이고 있지만, 대개의 한자어가 그러하듯이 처음에는 한 글자로 그 뜻을 대신하였습니다. 학|學|과 습|習|의 의미가 서로 다르게 사용된 것입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시|時|와 습|習|의 의미입니다. 시|時|는 ‘제때에’ 또는 ‘때맞춰’라는 의미입니다. 대개 다른 책에서 ‘때때로’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면 뜻이 이상해집니다. ‘때때로’는 ‘가끔’이라는 뜻입니다. 배우고 나서 가끔, 생각나면 익힌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또한 습|習|이라는 말 역시 단순히 ‘익히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저 복습한다는 의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공자 시대에 요즘과 같이 국.영.수 과목이 있어, 수업 시간에 그것을 배우고, 집에서 틈날 때마다 복습하고, 나중에 시험 치고……. 이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격변기를 통해 처음으로 ‘배움|學|’ 그 자체가 처음으로 대두된 때였습니다. 배움이라는 게 처음 생겼는데 무슨 변변한 커리큘럼이 있었겠습니까. 공자가 말년에 기존의 책들을 엮어 시경, 서경, 주역 등 육경을 편찬하기는 했으나, 이것이 유가의 커리큘럼으로 정식 채택된 것은 훗날의 일입니다. 그래서 습|習|의 의미를, 그냥 복습하다는 뜻이 아니라, ‘실천하다’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배운 것을 때맞춰 실천하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배운 것을 실천해 보고나서야 전에 배운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배웠던 것을 이제 확실히 알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와 비슷한 예를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子曰,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칙망,사이불학칙태” <위정2-15>

여기서 해석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사|思|입니다. 대개는 그저 ‘생각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서, 배워서 나름대로 생각하여 정리해야만 자기 것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배운 것을 그냥 생각만 한다고 해서 자기 것이 될까요? 여기서도 사|思|를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뜻이 명확해집니다. 즉, 배운 것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사랑과 이별의 고통을 열심히 가르친들, 그 아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해도 그 의미를 제대로 알 리 만무합니다. 나중에 커서 사랑을 직접 해보고, 이별의 고통을 겪어보고 나서야 그 의미를 진정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배우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얕은 경험적 지식만을 믿고 배우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결국 공자는 배운 것은 실천을 통해야만 그 뜻이 명확해진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배우는 걸까요?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배우는 것은 곧 알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아는 것’은 도대체 뭘까요? 뚱딴지같지만, 바로 이런 뚱딴지같은 질문이 철학의 근본 주제이기도 합니다.


< 논어> 강독, 두 번째 주제는, ‘앎이란 무엇인가?’입니다.
[논어강독 2] 앎이란 무엇인가?

아는 것은 과연 무엇이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떠한지에 대해 따지고 드는 학문을 ‘인식론’이라고 합니다. 인식론은 서양 철학의 일부이자 매우 중요한 분야입니다.
그러나 <논어>는 철학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철학’이라고 부르는 이 학문은 그리스에서 비롯된 사유 방법이자 학문입니다. 이미 잘 알다시피, 철학은 그리스어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했으며,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입니다. 즉 '애지(愛知)의 학문'이 곧 필로소피아입니다. 철학은 필로소피아의 번역어입니다. 그리스적인 의미의 철학은 동양에 없습니다. 다만 오늘날 철학이라는 학문에 비추어 동양의 전통 문화와 사상을 분석하여, 서양의 철학에 비견되는 공통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이미 서양의 철학적 사고에 익숙한 까닭에, 서양식 철학의 틀로 동양의 과거를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일단 시도해 보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앎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아는 바를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그것이 앎이다.”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자왈, “유!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위정2-17>

유|由|는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의 본명입니다. <논어>에 이름이 거론되었다면, 이 사람은 공자와 매우 밀접한 관계였거나, 후에 제자를 많이 두어 <논어> 편찬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로는 전자의 경우입니다. 자로는 공자의 주유천하 14년 동안 한 번도 공자 곁을 떠나지 않은 제자입니다. 처음에 건달이었다가 공자의 인품에 반해 제자가 된 것은 앞서 얘기한 바 있습니다. 용맹스러웠으나 성격은 불같았습니다. 대체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사람은 모르는 것도 안다고 우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로가 그러했나 봅니다. 평소에 그런 성향을 곁에서 지켜보던 공자가 자로를 불러다 놓고 조용조용 타이르는 장면 같습니다.

자로의 이름을 지그시 부르더니, 대뜸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겠다고 합니다. 그래놓고서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려줄 줄 알았는데, 전혀 엉뚱한 대답입니다. 정작 ‘아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동어반복입니다. ‘아는 것을 안다’, 즉 ‘A=A'라는 것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공자의 말버릇이자 주특기입니다. 예를 들어, 제자가 인|仁|이란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러면 공자는 “인|仁|은 애인|愛人|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자리에서는 “자신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가면 인|仁|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논어> 전체를 통해 단 한 번도 인|仁|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仁|을 <논어>의 근본 가치이자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정작 공자는 단 한 번도 인이 무엇인지 속 시원하게 말한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삐딱하게 보면, 공자야말로 무엇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공자의 수제자들이 엮었다는 <논어>가 아무런 체계도 논리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공자 스스로가 그러하지 않았나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앞서 우리는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재단하지 않기’를 합의했습니다. 자본주의 문화와 사고에 익숙한 현재의 눈이 아니라, 공자가 말하고자 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할 것입니다.

공자는 아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의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말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를 이미 안 것 같습니다. 논어에 수없이 등장하는 인|仁|이니, 도|道|니, 군자|君子|와 같은 말을 단 한 번도 시원스레 정의한 적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가장 유명한 구절은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도가도비상도”라는 구절입니다. 도를 도라고 말하는 것은 참된 도가 아니다, 이와 비슷한 뜻인데, 해석이 만만치 않습니다. 노자의 말은, 세상의 근본 이치가 있는데, 그것을 일러 도|道|라고 하지만, 도를 도라고 말하는 순간에 이미 그 도는 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하는 저도 헷갈립니다.

저도 비유로써 설명해보겠습니다.
누가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친구에게, “야, 아이스크림 참 맛있겠다.”라고 했다면, 그 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게 보인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좀 먹자고 요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언어는 이처럼 근본적으로 불명확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 국어사전을 펴들고 ‘알다’는 단어를 찾아보세요. 여러 뜻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그러하다고 믿거나 생각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러하다’를 찾아보세요. ‘(모양이나 모습이) 그와 같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같다’를 찾아보세요. ‘다르지 아니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르다’를 찾으면? ‘같지 않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언어로써 정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같다’라는 말을 모르고서는 ‘다르다’라는 말을 알 수 없고, ‘다르다’라는 말을 모르고서는 ‘같다’라는 말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은 ‘같다’와 ‘다르다’를 동시에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알다’라는 말을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 공자는, 이러한 무한 반복적이고, 어쩌면 무의미한 ‘규정’ 대신에, 살면서 꼭 필요한 실천적인 ‘자세’를 말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앎 자체의 규정이 아니라 앎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인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서양의 철학적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모든 논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실천적 지혜(praxis)’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면, 공자의 다음 말을 보고 공자가 진정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유추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 만약 어떤 농사꾼이 나에게 물으면 내 마음은 텅 비어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다만 (묻는 핵심의) 양면(긍정과 부정)을 따져 물음으로써 알려줄 뿐인 것이다.”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자왈, “오유지호재? 무지야. 유비부문어아, 공공여야. 아고기양단이갈언.” <자한9-7>

소크라테스도 늘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논쟁의 결론은 늘 ‘아직 그것은 모른다’였습니다. 무지|無知|에 대한 고백을 서로 인정하며 끝을 내는 것입니다.

위의 문장은 마치 소크라테스가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와 공자로 변장하여 직접 한 말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똑같습니다.

[논어강독 3]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결국 공자에게 ‘아는 것’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은 공자의 관심 밖입니다. 공자의 관심은 오로지 아는 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니,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 앎이란 결국 모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주제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앎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역시 공자는 소크라테스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소크라테스 이야기는 조금 더 있다가 하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자왈,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옹야6-18>

매우 익숙한 문장입니다. 문장도 어렵지 않으니, 이런 정도는 원문 그대로 외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평범한 문장 같지만, ‘앎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중요한 글자가 세 개 있습니다. 먼저 지|知|는 ‘안다’는 뜻인데, 문맥상으로 보면 뒤에 나오는 호|好|와 낙|樂|에 비해서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아주 낮은 단계의 ‘앎’의 상태인 것 같습니다. 다음은 호|好|, 좋아한다는 뜻인데, 단순히 아는 것에서 한 차원 높은 단계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낙|樂|, 좋아하는 것을 초월해서 즐거움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입니다. 대개는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의 차이를 말하면서 이 문장을 해석하고 끝냅니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너무 표면적인 해석인 것 같습니다.

지|知|와 호|好|, 낙|樂|을 별개의 것으로 여겨서는 해석이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지|知|의 발전 단계로 봐야 옳습니다. 즉, 지|知|는 우리가 통상 ‘안다’라고 하는 단계입니다. 집 나갈 때 어머니께서, “얘야, 차 조심해라.”라고 하면, 우리는 그냥 알았다는 듯이 “네, 어머니”합니다. 어머니의 말뜻이 무엇인지는 알았다는 뜻이니 틀린 대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밖을 나가면 이내 어머니의 말씀을 잊어버립니다. 습관적으로 “네”라고 대답했을 뿐입니다. 집밖에 나가서 어머니의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단계가 아마 호|好|의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정말 교통사고의 경험이 있었다면 그는 본능적으로 거리의 차를 경계할 것입니다. 이것이 낙|樂|의 경지가 아닐까요. 공부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이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공부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 열심히 해두는 게 평생 밑천이 된다.” 학생들에게 이런 얘길 하는데 대개의 경우 건성으로 “네.”하고 맙니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니 그냥 “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로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단계, 나아가 공부 그 자체가 즐거운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조금 전의 어른의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자는 그냥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는 지식은 진정 아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점에서 소크라테스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공자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외쳤다면, 소크라테스는 지덕합일|知德合一|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덕은 도덕, 또는 영혼, 행복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영혼이 일치한다는 것인데, 대개의 경우 아는 것과 영혼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원래는 일치하지 않는데 일치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죠.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것은, 영혼이 변하지 않은 상태는 진정으로 아는 상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쟁의 고통을 안다고 말할 때, 6․25와 같은 전쟁의 끔찍함을 직접 겪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두 말은 천양지차일 것입니다.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정말 전쟁의 고통을 알까요?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영혼의 변화는 곧 영혼의 변화로 인한 행동의 변화까지를 말합니다. ‘앎과 실천의 통일’을 말한 공자의 그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런 지식을 전달해 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사람이 스스로 행동하도록 무지를 깨우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지식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의 행동을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지구 반대편에 먼저 살다 간 공자와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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