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부활 제5주일 - 요한. 15,1-8
<바르나바는 사울이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는지 사도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26-31
그 무렵 26 사울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지만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가 제자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27 그러나 바르나바는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어떻게 그가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는지, 또 어떻게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28 그리하여 사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다. 29 그리고 그리스계 유다인들과 이야기도 하고 토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려고 벼르고 있었다. 30 형제들은 그것을 알고 그를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내려가 다시 타르수스로 보냈다.
31 이제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시편 22(21),26ㄴ-27.28과 30ㄱㄴ.30ㄷ-32(◎ 26ㄱ)
◎ 주님, 큰 모임에서 드리는 저의 찬양도 당신에게서 오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서원 채우리라. 가난한 이들은 배불리 먹고, 주님 찾는 이들은 그분을 찬양하리라. 너희 마음 길이 살리라! ◎
○ 온 세상 끝끝마다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고, 만 민족 모든 가문 그분 앞에 경배하리니, 세상 모든 권세가들 그분께만 경배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모든 이들 그분께 무릎 꿇으리라. ◎
○ 내 영혼 주님 위해 살고, 후손은 그분을 섬기리라. 다가올 세대에게 주님 이야기 전해져, 태어날 백성에게 그 의로움 알리리라. 주님이 이렇게 하셨음이로다. ◎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8-24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22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8-24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22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열매를 맺지만, 떨어져 나간 가지는 말라 버린다.’ 포도나무의 비유의 핵심은 이 말씀에 있습니다. 어떤 삶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인지요?
사는 것이 불안하기에 ‘신비스러운 힘’을 찾습니다. 굿을 하고 부적을 지니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시도하려 애씁니다.
조상의 묘를 탓하는 이도 있습니다. 터가 좋으면 복이 오고, 터가 나쁘면 화가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멀쩡한 묘를 옮기기도 합니다. 이 땅에 사는 자체가 좋은 터와 나쁜 터를 함께 밟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하는 행동입니다. 사람의 앞날은 하느님께 속해 있습니다. 평범한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불안을 극복하는 첫걸음입니다.
모든 나무는 뿌리에서 오는 ‘생명의 물’을 받아야 자랍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은총’을 받아야 건강한 삶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요행에 매달리면 불안은 곁에 있기 마련입니다. 잘려 나간 가지는 ‘뿌리의 힘’을 흡수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이 기쁨보다 구속으로 느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원인은 포도나무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나, 아직 안 죽었어!>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있던 한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병세는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의식도 가물가물해져갔고, 주변 사람들은 거의 임종이 가까워진 걸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가 꽤 지속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가족들이 큰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의식이 없는 걸로 여기고 어르신의 병상 머리맡에서, ‘향후의 일’에 대해 논의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머니는 누가 모시나, 사시던 집은 어떻게 처분하나, 아버지 장례는 화장으로 하나 매장으로 하나...
그런데 실상 의식이 가물가물하던 것으로 여겼던 아버지는 그 말을 나누던 순간 일시적으로 상황이 호전되어, 그 ‘해서는 안 될 말들’을 똑똑히 들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속으로 ‘녀석들, 내가 참 버릇들도 없군, 내가 교육을 잘못시켰지.’라며 꾹 눌러 참았는데, 계속 듣고 있자니 해도 해도 너무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모든 에너지를 다 모아,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크게 외쳤습니다.
“나, 아직 안 죽었어!”
보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 어떤 형태로든 생명이 붙어있는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고 싶어 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다 사랑받고 싶어 하며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호스피스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의식이 끊겨도, 생명이 끊어져도, 귀는 마지막까지 살아있습니다. 임종의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말씀을 들려드리십시오.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한평생 수고하셨다고 말하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저희는 가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지는 나무의 원줄기 붙어있음으로 인해 의미를 지닙니다. 잘려나간 그 순간부터 가지는 생명력을 잃을뿐더러 아무런 존재의 의미도 가치도 찾을 수 없습니다. 붙어있는 한 매년 싱싱할 포도송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잘려나가는 그 순간 1분이면 다 타고 사라질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우리 인간 존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란 원줄기에 붙어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을 의미를 지닙니다. 제 색깔을 찾습니다. 예수님께 붙어있음으로 인해 우리 삶을 가치 있고, 고귀라고, 존엄하고, 빛납니다.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이란 너무도 든든한 지주에 끝까지 붙어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잠시나마 그분과 떨어져 있었다면 최대한 빨리 그분께로 돌아가 다시 붙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