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홍보주일) - 마르코 16,15 - 20

2009. 5. 25. 오후 2:05:26

글자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1
1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3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6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10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시편 47(46),2-3.6-7.8-9(◎ 6)
◎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또는 ◎ 알렐루야.)
○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
○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노래하여라,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노래하여라, 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
○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 찬미의 노래 불러 드려라. 하느님이 민족들을 다스리신다. 하느님이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17-23 <또는 4,1-13 또는 4,1-7.11-13>
형제 여러분,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끝입니다. 16,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승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요? 진정 그분께서는 구름을 타고 ‘우주 저쪽’으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승천에 대한 옛사람들의 표현일 뿐입니다. 표현을 내용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래된 문헌에는 위대한 사람의 죽음을 승천으로 마무리한 예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요한 복음의 말씀처럼 세상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던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셨기에 당신의 사명을 이루신 뒤에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승천입니다. 승천에 담긴 가르침입니다.
우리에게도 본래 모습은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그 모습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모습으로 돌아갈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승천 축일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묵상하는 날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신앙인의 생활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걱정과 욕망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봐야겠습니다. 우리 역시 하늘 나라로 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밝으면 삶도 밝아집니다. 마음이 환하면 신앙생활도 환해집니다.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은 마음을 비우는 날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살아 움직이는 희망의 복음>


   가끔씩 초대를 받아 '한 말씀' 하러 갈 때가 있습니다. 본당에서 단체장이나 교육 분과 담당을 역임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한 말씀'(주제 강의)은 피정이나 연수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요. 참석자들의 기대치에 최대한 부응하기 위해서 '말씀 좋은' 강사를 찾느라 고생이 많으시겠지만, 초청받는 강사 입장에서도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남 앞에 선다는 것 그 자체가 큰 부담입니다. '이토록 영적으로 불안정한 내가, 어떻게 영성생활의 쇄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 '주어진 기도도 제대로 못하는 나인데 기도의 방법에 대해서 강의하다니 참으로 웃기는구나' 등의 반성을 합니다.


   때로 재미있게 한다고 '오버'라도 하는 날이면 밤잠을 설쳐가면서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그런 쓸데없는 말들을 지껄였을까' 하고 후회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제 마음은 많은 경우 회색빛입니다.


   제대로 된 복음 선포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언행일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 자신이 선포하는 말씀을 자신이 먼저 살지 않는 사람이 행하는 복음 선포는 힘도 없을뿐더러 설득력도 없습니다.


   말씀 선포자는 자신부터 먼저 진지하고 성실하게 자신이 선포한 말씀을 철저하게 살아내야 합니다. 온 몸으로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선포한 말씀이 설득력 있게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주님승천대축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을 향해 한가지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남기시는데, 다름 아닌 복음 선포에 매진해달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때로 말씀 선포가 죽기보다 싫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마지못해 사람들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이뤄지는 복음 선포가 제대로 먹혀 들어갈 리 만무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 선포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준비가 소홀했다든지, 기술이 부족했다든지 등 원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 원인은 다른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가지 진리를 자주 망각합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전도 사업은 내 일이 아니라 하느님 일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반드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복음은 스트레스로 다가올 뿐입니다.


   돌아보면 부끄럽게도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도구 삼아 나 자신을 전하려는 경향이 많았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진정한 복음 선포는 '나 자신'이 사라져야만 가능합니다. 내가 무엇인가 하기보다는 그분께서 하시도록 그분 영역을 우리 안에 마련할 때 비로소 참된 복음 선포가 가능하리라 저는 믿습니다.


   저희 수도원에서는 매일 복음나누기가 생활화돼 있습니다. 가끔씩 행사가 있어 복음나누기를 빼먹기라도 하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 끼니는 걸러도 괜찮은데, 복음묵상을 빼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뻔한 내용 가지고, 제한된 울타리 안에서,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생활 분위기 안에서, 매일 보는 똑같은 얼굴들과, 매일 나눌 것이 뭐가 있겠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풍요로워지는 복음입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욱 심오해지는 복음입니다. 마음만 열면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복음입니다.


   수도회의 꽃이라고 불리는 저희 수련자 형제들은 복음 안에서 삶의 지침을 찾습니다. 복음을 통해 생활의 이정표를 세웁니다. 복음나누기를 통해 희망을 나누고 미래를 설계합니다. 결국 복음은 저희 같은 구도자들에게 있어 밥보다 중요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늘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있습니다. 매일 복음에서 길어 올리는 삶의 진리들이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잘 내려옵니다. 그러나 가슴까지 내려온 복음이 다리까지, 손끝까지 내려오기가 그렇게 힘듭니다.


   오늘 우리가 접하는 복음이 머릿속에서만 머무는 복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복음, 행동을 촉구하는 복음, 우리 매일 삶의 에너지가 되고 고단위 비타민이 되는 복음이 되길 기원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40번 / 주의 승천 찬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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