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화요일]어린이처럼 (마태 18,1-5. 10. 12-14)

2018. 8. 14. 오전 6: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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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간 화요일]어린이처럼 (마태 18,1-5. 10. 12-14)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꿀처럼 입에 단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이스라엘 집안에게 당신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에제 2,8─3,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8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9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3,1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2 그래서 내가 입을 벌리자 그분께서 그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3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4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하신다. (마태 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제1독서(에제2,8~3,4)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3,3)

 

에제키엘 3장 3절인 본문은 주님께서 먹여 주시는 그 두루마리를 에제키엘 예언자의

몸으로 완전히 흡수하여 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일부분으로 만들어 버리라는 명령이다.

 

에제키엘이 말씀에 완전히 동화될 때에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 주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의 배와 창자속에 들어가 채워진 말씀이 그의 살이 되고 피가 되어

그 자신을 말씀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본문에서 '배''속'(창자)에 해당하는 '뻬텐'(beten)'메에'(meeh)

각각 위(stomach)와 내장(bowel)을 의미하는 단어들로서

인간의 신체 내부를 대표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소화기관이나 내장 조직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히브리인들에게 감정과 인격의 자리로 인식되는 곳이다.

 

따라서 이것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라는 것은 그의 감정과 인격,

내면을 모두 하느님의 말씀으로 채우며 그 말씀으로 살아가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채워라'에 해당하는 '테말레'(themalle)는 원어의 뉘앙스를 고려할 때

차고 넘치도록 가득 채우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에제키엘 예언자 자신의 영혼을 말씀으로 충만히 채우라는,

그가 말씀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예언자는 말씀에 충만하여지고, 그 말씀에 완전히 사로잡혀

그의 생각이 말씀과 같고, 말씀이 곧 그의 생각이 되어

그가 전하는 것마다 모두 말씀이 되는 차원에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말씀의 두루마리로 에제키엘의 내면을 가득 채우라는 명령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타인의 사상, 세상의 이론들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충족하게 채워졌다는것은 동시에

그가 충분히 그 말씀을 대변할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실로 말씀이 에제키엘 안에 깊이 인격화됨으로써 예레미야처럼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답답하여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예레20,9)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참되고 의로운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로막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4,20)하고

담대하게 선언한 것처럼, 예레미야 자신도 자신에게 임하였을 뿐 아니라, 그 내면에

차고 넘치도록 충분하게 채워져 그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본문에서 '꿀처럼'에 해당하는 '키드바쉬'(kidbash)의 원형 '떼바쉬'

(debash)벌이 만드는 꿀(honey)을 의미한다(탈출3,8; 1사무14,25).

 

꿀은 강한 단 맛과 높은 영양분을 지니고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였다.

구약 성경에서 주님의 율법 및 말씀은 흔히 꿀보다 더 달콤한 것으로

묘사된다(시편19,11; 119,103).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보배로우며 꿀보다 생청보다 더욱 달다네."(시편19,11)

 

"당신 말씀이 제 혀에 얼마나 감미롭습니까!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도 답니다." (시편119,103)

 

한편 본문은 사도 요한이 받아 삼킨 두루마리가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다는 사실(묵시10,9~10)과 비교할 때,

뱃속에서는 쓰렸다는 내용이 없는 문장이다.

 

삼킨 말씀이 뱃속에서 쓰렸다는 것은 그 메시지의 내용이 혹독한 심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또는 그 말씀을 인격화하는 작업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반(反)하기에 그만큼 처절한 자기 인내와 수련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에제키엘이 받은 메시지의 경우도 동일하다(에제2,1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뱃속에서의 상태는 기록되지 않고

단지 입 속에서의 상태만 기록된 것은, 반역적이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전해지는 그 메시지의 내용이 옳고 정당하다는 사실과,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로

선택받은 것을 아는데서 오는 기쁨과,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8,1-5.10.12-14)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0)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14)

 

'주의하여라'에 해당하는 '호라테'(horate; take heed)의 원형 '호라오'(horao)

일차적으로는 '눈으로 보다'(요한8,57)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알다', '조심하다', '유의하다'라는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것은 잊지 않도록 마음에 두어 유의해서 반드시 지켜야 함을 뜻한다.

 

특히 여기서는 현재 명령형으로 기록되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단순한 권고 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실행해야 할 실천적 명령이며,

또한 현재 명령형이기에 희랍어에서 현재는 일회성이 아닌

계속적으로 유념해야 할 사항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업신여기지'에 해당하는 '카타프로네세테'(kataphromesete;

look down; despise)원형 '카타프로네오'(kataphroneo)

'업신여기게 되다','가볍게 여기다'(마태6,24), '업신여기다',

'멸시하다'(로마2,4)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세를 뜻한다.

 

본문에서는 부정(不定) 과거 가정법으로 사용되었으나, 여기에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메'(me; not)와 함께 쓰여서 강력한 금지를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 18장 10절은 5~9절에 뒤따라 나오지만, 내용상 14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10절에서 14절까지의 한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18장 10절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14절)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멸시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그들의 천사들이'에 해당하는 '앙겔로이 아우톤'(anggeloi auton;

their angels)에서 '그들의'에 해당하는 '아우톤'(auton; their)

앞서 나온 '작은 이들'을 말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수호 천사를 임명해 두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사도12,15).

 

히브리서 1장 14절에서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라고 계시되어 있다.

 

이 천사들의 기능과 역할 및 활동의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이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특별 대우를 받아야 될 존재들임을 나타낸다.

 

'작은 이들'지키는 천사가 항상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하느님께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천사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사실은 '작은 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작은 이들' 예수님께 속한 믿음의 자녀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잃어버리는'에 해당하는 '아폴레타이'(apoletai; should be lost;

should perish)원형 '아폴뤼미'(apollymi)돌보는 사물 혹은

짐승 등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잃다'(마태15,24)라는 뜻만이 아니라,

일이 어그러지거나 실패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망하다'(마태26,52)는 뜻과

그리고 영원한 생명(구원)을 상실하게 됨을 의미하는 '멸망하다'

(요한3,16)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잃어버리다'는 것은 영원히 하느님 품을 떠나

죄의 길에 머물다가 영원한 참 생명을 얻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볼 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선택하신 자들 가운데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나타낸다.






가장 큰 사람

반영억라파엘신부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18,4).하시고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 하여라”(마태18,1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어린이를 중심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결국 어린이와 같은 단순함과 순수한 마음을 지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미아발생으로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보면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 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아이가 길을 잃고 헤맵니다. 그러니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많이 소유한 것이 위대하게 보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가진 것 없는 사람, 자신을 낮추어 비우는 사람이 위대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애당초부터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가진 것을 모두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자꾸만 더해서 많이 갖고, 현명한 사람은 자꾸만 덜어서 많이 갖습니다”(이규경). 노자도 “성인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고, 자기를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빛나고, 자기를 자랑하지 않으므로 공이 있고 자기를 뽐내지 않으므로 윗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루카18,17).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할 때 우리는 하늘 앞에서 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지니고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사랑이 담긴 일을 보시고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생각하는 데는 어린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한 일에는 어린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1고린14,20). 주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기억하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사제는 하느님 안에서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큰 사람이었습니다.


큰 사람은 키가 커서 큰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커서 큰 사람입니다. 하루를 허물로 누벼놓았어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주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자비를 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주님 품에 안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큰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과 길 잃은 양의 비유는 겉보기에 연관성이 없어 보이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하늘 나라, 곧 하느님 공동체에서 가장 큰 사람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이 문제는 당시 라삐 학파들 안에서 자주 발생한 논쟁을 반영해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당혹스러웠고 그들을 실망에 빠뜨렸습니다.
그분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에 따르면, 자신을 낮추어 어린이처럼 된다는 것은 하늘 나라 공동체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일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자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린이처럼 되는 것과 작은 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어쩌면 예수님께서 어린이 같은 언행을 격려하시려고 그랬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어떤 것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어린이는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어른 공동체에서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나약하고 겸손한 존재입니다. 어린이는 가난한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다른 이들에게 완전히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앞에 있는 인간의 처지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늘 나라를 그저 받아들이는 태도와 단순함 그리고 겸손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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