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간 화요일]주님의 기도 (마태 6,7-15)

2018. 2. 20. 오전 8: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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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간 화요일]주님의 기도 (마태 6,7-15) 



이사야 예언자는, 나는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이사 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니 기도할 때에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마태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이사 55,10-11)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10-11)


오늘 독서 이사야 55장 10-11절의 말씀은, 55장 6-7절의 말씀이 천지가 개벽해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하느님께서 정하신 자연법칙을 예로 들면서 강조하고 있다.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 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6-7)

6-7절은 하느님을 만날 기회가 영원무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질 바로 그 때 회개하여 주님을 찾으라고 촉구하는 내용이며, 이 말씀에 따라 죄인이 돌아올 때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시겠다고 하시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는 땅에서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않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  이러한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한 번 주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은

반드시 그 목적한 바를 성취하고야 만다.


하느님께서는 한 번 뱉은 말씀이 성취되기도 전에  그것을 다시 주워 담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민수기 23장 19절에서  발라암의 신탁을 통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어서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아니어서 생각을 바꾸지 않으신다.  그러니 말씀만 하시고 실천하지 않으실리 있으랴?  이야기만 하시고 실행하지 않으실리 있으랴?" 

비가 내리면 그 중에서 수증기로 증발해 버리는 양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한 번 내린 비는 반드시 땅을 적시게 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땅은 생산력을 갖게 되어 있다. 

본문의 진정한 의도는, 하느님께서 목적하시는 바는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데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루어낸다는 것을 자연 법칙을 통해 비유하는 데 있다. 

적절한 시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은 땅을 촉촉히 적셔서 싹이 돋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며 인간에게 양식을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인간 영혼을 살리며, 삶을 풍성하게하는 영적 양식이 된다.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인간 영혼을 살리며,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의 삶은 풍성해지게 마련이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판단력과 완전한 지식과 총체적 계획과 영원한 경륜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이 헛되이 사라지거나 허망한 것으로 끝맺는 일은 결코 없다. 하느님의 말씀은 한 번 입에서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계획한 목적을 달성하고야 마는것이다.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하느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씀이 헛되이 그냥 돌아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것은 그 말씀이 하느님의 기뻐하시는 뜻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내가 뜻하는 바' 해당하는 '아쉐르 하파츠티'(asher hapatsthi)문자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 혹은 '내가 기뻐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은 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며 생명을 구원하는 일과 관련된다는 사실인데, 이것은 당신의 의롭고 선하시고 진실하신 속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하신 바는, 그분의 전지전능하심, 절대 주권에 근거해서 반드시 성취되며, 궁극적으로 그 모든 일들은 그분의 성품에 부합된 것으로, 사람들의 삶에 있어 축복되고 아름다운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간 말씀 그의 마음 속에서 계획하신 뜻을 표현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자 이시기 때문에, 그 말씀 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고, 운동력과 생명력이 있으며, 재창조의 능력이요, 치유하는 광선이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다. 

제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영육의 구원을 위해 절대적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매일 말씀을 읽고 곱씹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살아서, 참으로 말씀이 주는 기쁨과 평화, 행복과 자유를 누리자. 

그럴때,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의미가 있게 되고, 가치롭게 된다.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복음(마태6,7~15)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7~8)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밧탈로게세테'(me battalogesete; do not keep on babbling; do not use vain repetitions)에서 '빈말을 되풀이하다'로 번역된 '밧탈로게세테'(battalogesete)원형 '밧톨로게오' (battologeo)'말을 많이 하다', '생각없이 말하다', '쓸데없이 말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기도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이 했던 기도나(1열왕18,26), 에페소에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외쳐댔던 아르테미스 숭배자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사도19,34). 

또한 하느님을 대상으로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믿는 이들 가운데서도 은총의 지위를 상실하고 죄중에 기도하거나, 하느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때로는 눈물로 애원하고, 때로는 논리적으로 하느님을 설득하는 조로 미사여구를 늘어 놓으며 장황하게 기도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하느님 앞에 아무 의미없는 말들을 많이 쏟아내는 것에 불과하며, 이런 기도는 하느님 대전에 올라갈 수가 없다.


마태오 복음 6장 8절'알고 계신다'에 해당하는 '오이덴'(oiden; knows)완료형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말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미 동작은 끝났으나,

동작의 결과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미 기도하는 이의 형편을 과거로부터 알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우주의 삼라만상과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께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당신께서 선택한 자녀의 청원 내용을 모르실 리가 없다. 

따라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기도가 아니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진실한 기도라면 반드시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라고 하더라도, 그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때와 사람의 때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기도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누군가가 기도해 준다고 하면 마음의 위로를 받습니다.

본인은 기도에 소홀히 하면서도 남에게는 기도해준다고 말하고 또 기도해 달라고 청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기왕 기도할 바에야 효과 있는 기도, 올바른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저 입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되는 기도, 열매를 맺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6,7-8).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청하기도 전에 알고 계신다니 청하는 바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를 먼저 살펴야 하겠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기도의 본질적 요소는 많이 생각하는 데에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 데 있다. 기도란 사랑의 행위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더 많이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을 잘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사랑함으로써 사랑자체이신 하느님과 잘 통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묵주기도, 9일기도, 15기도, 33일 봉헌기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등등 성인 성녀들이 즐겨 봉헌하였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에 따르는 삶의 쇄신과 실천 없이 목표한 바를 채우기에 급급해 하면서 꼭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서 무엇을 그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 할수록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께 나를 맡기게 됩니다.


루이 에블린은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열심을 다해 공덕을 쌓고, 많은 것을 청하지만 실제로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구원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기를 빌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먼저, 더 많이, 더 깊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한상봉).

그러므로 구하기도 전에 우리의 뱃속까지 환히 꿰뚫어 보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기도가 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이사야서 말씀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49,15). 들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14,14).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야고 1,6-7). 

 나보다 나를 더 환희 아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채워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주시지 않고 더 좋은 것을 당신께서 주시고자 하는 때 당신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심을 믿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갈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라파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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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가장 아름답고 완전하다고 불리는 주님의 기도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지요. 전반부에서는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오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어 후반부에서는 영적, 물적으로 필요한 것을 청하지 않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잘못을 용서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할 때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이 첫 번째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어 나에게 필요한 것을 청할 때도 자신의 이익보다도 인류의 공동선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의 내용은 합당하고 보편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자세는 하느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심과 끈질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하느님께 용서받으려면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나도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용서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내가 내 힘만으로가 아니라, 누구인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의 힘으로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들의 도움마저도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 역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조그만 것에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또한 사소한 것에도 욕심부리지 않을 때, 이 지상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될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기도, 주님의 기도>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7-8).”


이 말씀에서 ‘다른 민족 사람들’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들, 즉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들도 기도는 잘합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에 대한 믿음으로, 끈질기게, 또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빈말’일 뿐입니다. 생명이 없고, 그래서 듣지 못하는 우상에게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예언자와 대결했던 바알 예언자들의 기도가 좋은 예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1열왕 18,26).”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1열왕 18,28-29).”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살아 계시는 하느님”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우리가 바치는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느님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고, 우리가 청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하느님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가 ‘빈말’이 될 때가 있습니다. 믿음 없이 바칠 때, 모든 것을 하느님께 떠넘기고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할 때, 말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는 않을 때, 그럴 때에 우리가 바치는 기도는 ‘빈말’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바치는 기도들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도, 즉 신앙인들이 실천해야 할 행동 지침 같은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께 간청하는 ‘청원 기도’이기도 하고, 동시에, 신앙인들이 그렇게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결의문이기도 합니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9-10).”

이 기도는 단순히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간절한 희망을 나타내는 기도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어서,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 자신의 구원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희망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22-23).”

또 이 기도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우리도 동참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는 때, 그때가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나는 때이고, 아버지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이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그날이 조금이라도 더 앞당겨지게 하려면 신앙인들이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마태 6,11)”   이 기도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여행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청하는 기도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이 함께 그 여행에 동참할 수 있도록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나라, 모두가 똑같이 함께 배불리 먹고, 함께 행복을 누리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당시에 그 빵을 받아먹은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체험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마태 14,20).” (그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받아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빵을 나누어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이 기도는 용서를 청하는 기도이면서 동시에 이웃을 용서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곧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으려면, 즉 구원받고 싶다면 우선 먼저 이웃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는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용서 없이는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사랑한다면 당연히 용서하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용서와 사랑이 완성된 곳입니다. 연옥은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보속하는 곳이고,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곳입니다. 지옥은 용서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곳입니다.(용서와 사랑을 거부하는 곳입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마태 6,13).” 이 기도는 온갖 유혹과 악에서 지켜 달라고 청하는 기도이고, 동시에 유혹과 악을 물리치겠다는 다짐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또는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유혹들과 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남을 유혹해서 죄짓게 하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가 함께 선을 지향해야 하고, 선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남 탓을 하거나 핑계대지 말고 ‘나부터’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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